2007. 9. 8.(토)
신흥사(新興寺)
신흥사 극락보전(新興寺 極樂寶殿)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호
소재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170번지
이 건물은 신흥사의 중심 전각으로 조선시대에 1647년(인조25)에 지였다. 극락보전은 극락세계의 주인공인 아미타불을 주존(主尊)으로 봉안하는 보배로운 전각이라는 뜻을 지닌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계시면서 영원토록 중생을 교화하는 분이다. 그래서 무량수불(無量壽佛)무량불광이라고 부른다. 우리 나라에는 일찍부터 아미타 신앙이 성행(盛行)하였고, 많은 사찰에 극락보전. 무량수전 또는 미타전이 들어서 아미타불을 봉안하였다. 고통의 바다에 살고있는 무릇 중생은 누구나 지극한 행복을 원한다. 이 지극한 행복을 극락(極樂) 또는안양(安養)이라 하는데, 누구나 올바른 깨달음을 통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 바로 아미타불이시다. 신흥사 극라보전은 창건 후 1750년(영조26)과 1821년(순조21)에 각각 중수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의 크기는 190평방메타로서 목조, 와가 이며 원형보존이 잘되어져 있다.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과 우측에 대세지보살(大勢至普薩)을 함께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여 극락세계의 광경을 나타냈다.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雪嶽山 新興寺 統一大佛)
여기 반세기 동안 이 겨레를 갈라놓은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는 민족의 비원인 국토통일을 이룩하고자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 대작 불사에 종단의 모든 스님과 2천만 불자는 물론 7천만 우리 민족의 마음과손이 하나로 모여 설악산보다 더 크고 동해보다도 더 오랜 대불의 광명에 통일염원을 이루어, 나아가 나라와 겨례의 평화와 자유복지가 번성하고 온 극민의 마음의 귀의처가 될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을 청동좌상으로 조성하다.
높이: 14.6m, 좌대높이: 4.3m, 좌대직경: 13m, 소요청동: 108톤,
신흥사 보제루(神興寺 普濟樓)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
1770년(영조46)에 세워진 것으로, 장대석으로 2단 쌓은 기단 위에 정면 일곱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선방과 요사채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을 둘러싸 사찰중심 영역의 공간성을 확보해 준다.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 있는 공간으로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 주는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여,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결려 있다. 이 중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신흥사 경판(神興寺 經板)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판은 불경을 찍어내던 각판(刻板)으로, 나무판에 도장 새기듯 불경을 새긴 것이다. 설악산 신흥사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을 비롯하여 법화경(法華經)경판 일부, 다라니경 경판 일부와 기타 흩어져 있는 몇 매의 경판 등 모두 280매이다. 이 가운데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3.4 쪽과 13. 14쪽의 경판 두장이 빠져있다. 한문(漢文)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싣고 잇으며, 중요한 부분은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이 경판 끝장에 순치(順治) 15년 강원도 양양부 설악산 신흥사 개간(開刊)이라는 연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658년(효종9)에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보제루(普濟樓), 경판(經板), 부도군(浮屠群)의 설명판에는 신흥사(新興寺)의 신자를 神으로 한 이유를 알 수 없음
신흥사 부도군(神興寺 浮屠群)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15호
부도는 스님의 유골을 넣은 원당(圓堂) 모양 또는 석종(石鐘) 모양의 석조물을 일컫는 말로 승탑(僧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부도군은 1644년(인조220에 신흥사가 중건된 이후 역대 고승들의 부도를 단일 장소에 조성한 전형적인 부도군으로, 19개의 부도가 있다. 대원당탑(大圓堂塔) 등 3개다 원당 모양의부도이며, 성곡당탑(聖谷堂塔) 등 16개가 석종 모양인데,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 12개이다. 부도와 함께 신흥사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신흥사 사적비(神興寺 事蹟碑)를 비롯하여 강세황(姜世晃)이 쓴 용암당 새선사비(龍巖堂大禪師碑) 등 6개의 비석이 있는데 1764년부터 1827년 사이에 세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