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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창조신화의 지리적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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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창조신화의 지리적 배경 김 성(협성대학교/성서고고학)
I. 서론 고대 이집트 최고의 신은 태양신 라(Ra)이다.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이집트로서는 가장 뚜렷한 자연 현상인 태양을 신적 존재의 근본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태양을 상징하는 이집트의 신들은 라 외에도 아침의 태양신 케프리(Khepri), 저녁의 석양을 상징하는 아툼(Atum) 등이 있고 왕권을 상징하는 송골매의 신 호루스(Horus)도 근본적으로는 태양신의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신들이 태어난 곳은 태양의 거처인 하늘이 아니라 범람 후 나일강변에 형성된 늪지대 언덕이다. 또한 창조신화가 형성된 대표적인 도시들은 모두가 이러한 태고의 원시언덕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집트의 창조관이 태양신 전통과 나일강의 범람 결과 생겨난 원시언덕 전통, 즉 천상의 태양과 지상의 나일강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자연현상 사이의 갈등과 역설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게 된다. 태초의 원시 상태가 혼돈의 물을 상징하는 눈(Nun)임에도 불구하고 왜 신들의 계보에서 눈이 생략되고 태양신 계열이 상위를 차지하는가? 서기전 3,000년경 유일한 교통로인 강을 이용하여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일강 유역을 한 국가로 통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창조신화는 종교적 중심지와 정치적 중심지 등 여러 도시에서 신들의 계보를 바탕으로 형성됐다. 과연 통일왕국 이후 이들을 최고신 개념으로 엮을 수 있는 구심점은 없었는가?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각 도시에서 형성된 창조신화를 검토한 다음 이들 신화의 다양성 속에 내포된 공통분모를 이집트의 지리적 배경에서 확인하고자 한다. II. 도시별 창조신화 1. 헬리오폴리스의 창조신화 ‘태양의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헬리오폴리스는 원래 이집트어로 ‘유누’로 불렸던 곳이고 구약성서에서는 히브리어로 ‘온’으로 기록돼 있다. 서기전 3000년쯤 이집트에서 통일왕조가 시작될 때 헬리오폴리스에서 우주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 형성됐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헬리오폴리스의 창조신화는 제 5왕조 파라오의 우나스(Unas)의 피라미드 내부 벽에 새겨진 소위 ‘피라미드 문서’를 통해 알려졌다. 피라미드 문서는 중왕국 시대의 ‘관 문서’에 영향을 끼쳤고 신왕국 시대의 「죽은 자의 책」에서도 창조에 관한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태초에 흑암 속에 잠잠하고 무한한 바다가 있었다. 이러한 물의 상태가 바로 ‘눈(Nun)’이라는 신으로 알려졌다. 눈 신을 위한 특정한 신전은 없었지만 신전 내부에 설치된 거룩한 호수가 바로 태초의 물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존재치 않는 태초의 물은 창조 이후에는 궁창의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지구를 감싸게 됐으며 지하 세계로 통하는 경계를 이루고 있다. 아툼(Atum)은 이러한 태초의 물로부터 솟아 올라 천지를 창조함으로써 헬리오폴리스의 최고신으로 자리잡았다. 태양 신으로서 아툼이 태초의 흑암의 물위로 솟아 오르는 사건은 홍수 이후 나일강에 여러 개의 언덕들이 형성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원시의 언덕은 ‘벤벤(Benben)’으로 불리며 아툼을 떠 받치고 있다. 고왕국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건축물인 피라미드는 바로 이 벤벤 언덕을 상징하는 것이다. 실제로 헬리오폴리스에 있었던 소형의 피라미드는 아툼의 ‘화석정자(化石精子)’로서 ‘훗트-벤벤’, 즉 ‘벤벤의 신전’으로 불렸다. 아툼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다른 신들의 생명력을 내포한다. 또한 아툼은 전체성을 지니며 고대 이집트적 사고관에서 이 점은 긍적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아툼은 이시스와 같은 긍정적인 여신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셋트와 같은 부정적인 신도 탄생시켰다. 아툼의 창조행위 창조의 신으로서 아툼이 신들을 탄생시킨 과정은 피라미드 문서에서 두 가지 내용으로 나타난다. 첫째로, 피라미드 문서 제 527주문에는 다음과 같이 아툼이 자위행위를 통해 신들을 탄생시킨다고 언급한다. 그가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사정함으로써 슈(Shu)와 테프눗트(Tefnut)의 쌍둥이를 낳았다. 둘째로, 피라미드 문서 제 600주문에는 아툼이 침을 뱉듯이 슈와 테프눗트를 뱉어내어 탄생시켰다고 한다. 아툼은 슈를 뱉어냈고 테프눗트를 토해냈다. 이 문장에서는 이집트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동음이어 현상이 적용됐다. 슈라는 신의 이름의 어원은 ‘이셰쉬(yshsh)’로서 ‘재채기하다’, 또는 ‘침을 뱉다’라는 뜻이 있다. 테프눗트의 경우 ‘테프(tf)’가 또한 ‘침을 뱉다’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슈와 테프눗트의 탄생에 관해서 비슷한 발음을 지닌 ‘침을 뱉는’ 행위를 연상시켰고 아툼이 바로 이들을 입으로 뱉어냄으로 탄생됐다는 내용이 피라미드 문서에 언급된 것이다. 이렇듯 피라미드 문서에서도 주문에 따라 아툼의 창조행위가 각각 다르게 언급된 것으로 미루어 피라미드 문서는 일관된 사상과 신학으로 편집된 것이라기 보다는 전해져 내려 오던 신들의 이야기들을 단순히 수집해서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툼에 의한 신들의 창조행위는 브렘너-린드(Bremner-Rhind) 파피루스에도 등장한다. 이 문서에서도 피라미드 문서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툼이 두 가지 과정을 통해서, 즉 자위행위와 뱉어내는 행위를 통해서 슈와 테프눗트를 탄생시킨 것으로 나타난다. 단 피라미드 문서 제 527주문과 차이점은 자위행위를 통해서 어떤 신을 창조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슈와 테프눗트를 입으로 뱉어내는 것으로만 묘사했다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내가 생긴 후에 형성됐다. 하늘과 땅은 존재치 않았다. 나는 스스로 모든 것을 창조했다. 내 주먹이 내 배우자가 됐다. 나는 내 손과 교접했다. 나는 슈(Shu)를 재채기를 통해 탄생시켰다. 나는 테프눗트(Tefnut)를 뱉어냈다. 다음으로 슈와 테프눗트는 게브(Geb)와 눗트(Nut)를 생산했다. 다음으로 게브와 눗트는 오시리스, 셋트, 이시스, 네프티스를 낳았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이 땅의 주민들을 생산했다. 헬리오폴리스의 구신계(九神系)‘페스젯트(에니아드)’ 헬리오폴리스의 체계적인 아홉 신들의 계보는 서기전 2300년경 기록된 제 6왕조의 두 파라오 메르네라(Mernera)와 우세르카라(Userkara)의 피라미드 비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슈와 테프눗트는 창조의 첫 물질인 공기와 습기를 상징하며 게브와 눗트는 구체적인 피조물인 땅과 하늘을 상징한다. 다른 지역의 신화와는 달리 이집트 창조신화에서 하늘이 여신으로 표현된 것은 태양의 운동에 대한 해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태양이 저녁에 죽고 아침에 태어나는데 이를 주관하는 하늘은 태양을 삼켰다가 다시 자궁으로 탄생시켜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여성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위대한 구신계 아툼, 슈, 테프눗트, 게브, 눗트, 오시리스, 이시스, 셋트, 네프티스 아툼이 이들을 낳았다1). 헬리오폴리스의 제사장들은 이 도시의 전통적인 태양신 아툼의 창조 계보에 오시리스 신화를 접목시켰다. 즉 하늘의 여신 눗트와 땅의 신 게브가 오시리스, 이시스, 셋트, 네프티스 등네 명의 자녀를 낳음으로써 서로 다른 두 개의 신화가 합쳐지는 계기가 됐다. 즉 오시리스는 창조와는 관계없이 고대 이집트 인들의 죽음을 해석해 주는 대표적인 지하의 신이다. 2. 멤피스의 창조신화 남쪽의 상 이집트 세력이 북쪽의 하 이집트를 점령한 후 제 1왕조를 건설했을 때 그들은 멤피스를 최초의 수도로 삼았다. 멤피스는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경계 지점인 카이로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두 땅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지정학적 잇점을 지니고 있었다. 멤피스의 신전은 ‘훗트-카ㅡ프타’, 즉 ‘프타의 영혼의 집’으로 불릴만큼 프타는 멤피스의 대표적인 신이었다. 프타는 미이라의 형태로 묘사되며 양손이 앞으로 나와 제드, 와스, 앙크 지팡이를 한꺼번에 잡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멤피스의 수호신 프타의 신전을 ‘훗트-카-프타(프타의 영혼의 집)’라고 불렀으며, 서기전 14세기 아마르나 서신에서는 아카드어로 “히-쿠-우프-타(Hi-ku-up-ta)”로 기록되었고 이것이 그리스어로 ‘에-기-프토스(Ae-gy-ptos)’로 발음되면서 ‘콥트’와 ‘이집트’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멤피스 신학 서기전 700년경 제 25왕조의 샤바카 왕(서기전 712-698)은 멤피스의 한 신전 창고에서 벌레먹어 썩어가는 한 낡은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이 문서는 이전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창조신화가 기록돼 있었다. 샤바카는 이 문서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하여 돌판에 새길 것을 명령했다. 샤바카 석비는 1800년대 초 사카라 지역에서 발견됐으며 한 가운데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농부의 맷돌로 재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 비문은 서기전 700년경 기록됐지만 그 문체상으로 보아 참조했던 원본의 기원은 고왕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멤피스 신학으로 알려진 샤바카 석비의 내용은 멤피스 수호신 프타가 이집트 최고의 창조의 신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서기전 3000년경 상 이집트 출신의 나르메르(Narmer)는 하 이집트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제 1왕조를 건설했다. 그는 통일된 이집트를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상 하 이집트의 경계지점인 멤피스에 도읍을 정했다. 당시 이미 하 이집트의 전통적 1) Wilson tr. p.3. 인 태양신의 도시 헬리오폴리스에는 태양신 아툼으로부터 비롯되는 구신계가 정착돼 있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멤피스 중심적인 신학적 정립이 요구됐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형성된 것이 샤바카 석비로 구체화된 소위 ‘멤피스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멤피스 신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프타가 모든 신들을 태어나게 하지만 전통적인 태고의 혼돈이 물 눈(Nun)과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프타는 눈과 동일시되며 그의 배우자 나우넷트와도 일치된다. 나아가 헬리오폴리스의 창조신 아툼과도 비교되었다. 아툼이 단순히 신체적으로 자위행위와 입으로 뱉어냄을 통해서 신들을 탄생시킨 반면 프타는 입의 말씀을 통해서 신들을 구체화 시켰다. 즉, 프타는 생각(심장)에 물질을 품고 말씀(혀)으로 신들을 탄생시켰다. 이런 차원에서 멤피스 신학은 물질적인 창조관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 끌어 올린 것으로 평가되며 신약성서의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로고스(말씀) 창조론’을 연상시킨다. 모든 신들은 프타로부터 비롯됐다. 프타는 위대한 보좌에 앉아있다. 아툼을 낳은 아버지로서의 프타-눈(Ptah-Nun)1) 아툼을 낳은 어머니로서의 프타-나우넷트(Ptah-Naunet)2) 위대한 프타는 구신계의 심장이자 혀이다. 프타의 구신계는 이빨과 입술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는 아툼의 정자와 손과 동일시된다. 아툼의 구신계가 그의 정자와 손에 의해 구체화된 것 같이 (프타의) 구신계는 입의 이빨과 입술로 구체화되었다. (프타의) 입은 모든 것을 외쳤으며 구신계의 형성자 슈와 테프눗트를 낳았다. 멤피스 신학은 헬리오폴리스의 아툼을 상당히 견제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프타가 아툼의 부모와 동일시된다고 선포한다. 나아가 호루스를 프타의 심장으로, 그리고 톳트를 프타의 혀로 보고 있다. 호루스와 톳트는 각각 고대 이집트의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신이었다. 그리스 인들은 이집트의 프타를 장인들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os)와 동일시했다. 아마도 이 때부터 프타가 기술자들의 수호신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 같다. 3. 헤르모폴리스의 창조신화 헤르모폴리스에는 예로부터 남신과 여신으로 짝으로 이루는 여덟 신 계보, 즉 팔신계(Ogdoad)가 발달했다. 첫 번째 짝인 눈과 나우넷트는 혼돈의 물을 상징하며, 두 번째 짝인 헤와 헤헷트는 창공을 상징하고, 세 번째 짝인 켁크와 케켓트는 어둠을, 그리고 마지막 짝인 아문과 아마우넷트는 보이지 않음을 상징한다. 이 여덟 신은 함께 만물을 창조한 다음 죽어서 지하세계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들은 지하세계에서 나일강을 흐르게 하고 매일 태양이 떠 오르게 함으로써 창조행위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했다. 팔신계 중 남신들은 개구리의 얼굴로 그리고 여신들은 뱀의 얼굴로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가 나일강변의 늪지대에 서식하는 파충류로서 원시상태의 생명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뱀과 개구리 같은 파충류가 홍수 이후에 형성된 나일강 변의 진흙 속에서 스스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헤르모폴리스에서 의미하는 신들의 고향은 다름 아닌 원시의 언덕이며 이곳에서 신들이 스스로 알을 까고 태어난다고 보았던 것이다. 1) 눈(Nun)은 헬리오폴리스의 구신계에서 아툼 이전에 존재하는 태초의 혼돈의 물 상태인데 이것을 프타와 동일시 했다. 또한 눈은 헤르모폴리스의 팔신계에서 그의 배우자 나우넷트와 함께 첫 번째 짝으로 등장한다. 2) 나우넷트(Naunet)는 눈의 배우자 여신으로서 헤르모폴리스의 팔신계에서 첫 번째 짝으로 나타난다. 헤르모폴리스에는 창조와 관련되어 팔신계 외에도 다음과 같은 네가지 창조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째, 천상의 기러기가 태고의 언덕에 알을 낳았으며 이 알로부터 라(Ra)신으로 태어났다. 둘째, 지혜의 신 따오기, 즉 톳트가 알을 낳았고 이로부터 라가 태어났다. 셋째, 원시의 물로부터 연꽃 줄기가 뻗어나왔다. 연꽃의 봉오리가 벌어지자 그 안에서 라(Ra)신이 태어났다. 넷째, 연꽃으로부터 스케럽이 태어났고 이것이 어린아이로 변했으며 이 아이의 눈물이 인간이 되었다. 헤르모폴리스도 이집트의 전통적인 태양신 라를 태초의 신적 존재로 인정하고 있으며 난생설로 라를 탄생시켰다. 또한 인간은 라의 자녀들이라는 개념을 확립시켰다. 연꽃에서부터 라가 태어나는 것은 봉오리가 아침에 벌어지고 저녁에 오므라드는 현상을 태양과 연관시킨데서 유래됐다.
III. 이집트의 지리적 배경 이집트의 지리적 배경은 ‘광야 한 가운데로 흐르는 나일강’으로 표현된다. 지중해 유역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이집트에서 만일 나일강이 없었더라면 문명이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1). 이집트 지역은 아프리카의 북부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하라 사막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원래 겨울철 우기에 비가 내리는 사바나 초원지대였다. 서기전 6,000년경 기후 변동으로 인하여 사막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나일강 유역에 인구와 동물이 집중됐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농사가 시작된 신석기 시대는 메소포타미아보다는 4,000년 가량 뒤진 서기전 6,000년경부터이다. 이 때부터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나일강은 고대 이집트어로는 ‘이아테루(I3tr.w)’라고 불리웠지만 서기전 8세기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네일로스(Νειλος)’로 알려졌고 이것이 오늘날 나일강의 어원이 되었다. 나일강은 전체 길이가 6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이다. 나일강은 동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타나(Tana) 호수에서 발원하는 청나일과 중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Victoria)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나일이 오늘날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Khartum)에서 합쳐진 것이다. 청나일은 타나(Tana) 호수에서부터 발원하며 백나일과 합쳐지는 카르툼까지의 길이는 1700킬로미터이다. 백나일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수는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의 세 나라에 걸쳐있는 넓이 68,800평방킬로미터의 거대한 내륙 호수로서 적도에 위치하여 일년 중 강수량이 2000밀리미터 이상이나 되는 지역이다. 청나일, 백나일 외에도 카르툼 북쪽에는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에서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류인 아트바라(Atbara)강이 나일강으로 합쳐진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유일한 교통로로 이용하여 통일 왕국을 건설했는데 지중해로부터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아스완 근처에 더 이상 배가 지나갈 수 없는 급류가 형성되어서 전통적인 이집트의 남쪽 경계가 되었다. 나일강이 지나는 이집트의 대부분의 지역은 석회암 지대여서 쉽게 강물이 지나갈 수 있지만 아스완 지역은 매우 단단한 화강암 지대여서 바위 사이사이를 뚫고 물이 흐르면서 경사지 급류를 이루었다. 오늘날 이집트학계에서는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 급류부터 시작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급류에 차례대로 번호를 붙여서 아스완 지역을 제 1급류로 그리고 최남단인 카르툼 근처의 급류를 제 6급류 등으로 분류했다. 이미 고왕국 시대부터 급류지역에서 배를 분해하여 우회한 후 다시 조립하여 항해를 계속함으로써 남쪽의 누비아(Nubia)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이집트의 전통적인 남쪽 경계는 중왕국 시대까지도 엘라판틴 섬의 주거지를 중심으로하는 아스완, 즉 제 1급류였다. 신왕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남쪽의 경계가 좀 더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에 의해 형성됐다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표현은 서기전 6세기 헤카타이오스(Hecataios)가 처음으로 언급했다. 헤카타이오스는 터키의 밀레토스(Miletos) 출신의 역사-지리학자로서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차례로 여행한 다음 일종의 여행 안내서로서 ꡔ페리에게시스(Periegesis)ꡕ를 저술했고, 이 책에서 그는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서기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헤카타이오스의 영향을 받아서 이집트 문명 형성에 나일강의 절대적인 역할을 강조했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헤카타이오스보다는 헤로도토스의 언급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는 오늘날 아부 심벨(Abu Simbel)이라 불리는 이곳에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건설하는 등 이집트의 남쪽 경계를 더욱 확장했다.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의 급류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상류쪽으로 진출한 이유는 황금, 노예, 상아, 향료, 흑단목(ebony) 등 이집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특산물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오늘날에는 아스완 댐의 영향으로 홍수기인 7-9월을 제하고는 연중 일정한 양의 물이 흐르지만 그 이전에는 갈수기에는 초당 방류량이 120 입방미터, 그리고 만수기인 7-9월에는 약 75배인 초당 9,000입방미터에 달하는 등 연중 수량의 차이가 매우 두드러졌다. 또한 범람 지역과 나일강 하류의 삼각주의 토양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 결과 연평균 1밀리미터의 충적토가 쌓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일강의 물은 7월 초부터 서서히 불어나서 8월 중순 최고 수위에 달했다가 그 후 줄어들기 시작하여 11월 말부터 갈수기에 이르면 1-2월에는 최저 수위에 도달하게 된다. 나일강은 이 지역의 유일한 수원지이자, 해마다 여름철(6-10월)의 범람으로 새로운 흙을 실어다 주고, 나아가 유일한 교통로로서 이집트 전역을 통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또한 나일강은 지중해로 흘러 내려오면서 해변에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여 넓은 농경지에서 일찍부터 농경 및 목축이 가능하게 됐다. 이집트는 대부분이 광야이지만 나일강변과 특히 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에는 해마다 여름철 강의 범람으로 쌓인 퇴적토로 기름진 경작지를 형성한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매년 7월 20일경 불어나는 나일강의 범람과 함께 시작된다. 7월 20일이 아켓트(범람) 계절, 1월 1일인 셈이다. 이집트의 1년은 나일강의 범람에 따라 다음과 같은 3계절로 구성된다. 범람의 계절인 아켓트(Akhet), 성장의 계절인 페렛트(Peret), 그리고 가뭄의 계절인 쉐무(Shemu) 등이다. 해마다 6월에서 9월 사이에 이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장마 비가 내리며 이곳에서 발원하는 청나일과 아트바라 강을 통해 엄청난 양의 물이 나일강으로 합쳐지면서 범람의 계절이 시작된다. 아스완 지역에는 6월밀부터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하며 카이로 지역에는 9월에 수위가 최고조에 달한다. 범람과 함께 나일 강변에는 비옥한 퇴적토가 쌓이고 9-10월에 물이 빠지면 파종을 하며 3-4월에 추수를 한다. 범람기는 농한기로서 특히 고왕국 시대에는 피라미드 공사가 이 계절에 시행됐다. 대규모 석재를 배로 수송했기 때문에 불어난 강물 덕분에 공사 현장 가까이까지 배를 댈 수 있었다. 특별히 범람기에 홍수의 신인 하피에게 제물을 바치며 축제를 벌였다. IV. 창조신화의 지리적 배경 1. 원시언덕(Primeval!! Mound) 원시언덕은 원시의 바다 눈(Nun)으로부터 솟아난 땅으로서 나일강의 범람이 끝난 후 생겨나는 비옥한 대지를 의미한다. 원시언덕은 창조 행위의 대표적인 상징이며 멤피스의 타체넨(Tatjenen)1) 신은 바로 이 언덕의 인격화된 신이다. 타체넨은 수양의 뿔과 태양, 그리고 깃털로 이루어진 왕관을 쓴 형태로 묘사된다. 멤피스의 타체넨은 헬리오폴리스의 벤벤석과 비교된다. 벤벤석은 헬리오폴리스에 세워졌던 소형 피라미드로서 범람한 나일강의 물이 빠진 후 드러난 최초의 원시언덕을 상징한다. 또한 벤벤석은 태양신 아툼의 화석화된 정자(精子)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벤벤석은 오벨리스크와 피라미드의 원초적인 상징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황금빛의 사각뿔이나 오벨리스크의 끝부분을 벤벤네트로 불렀다. 헬리오폴리스의 벤벤석은 아침 태양빛이 처음으로 닿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적어도 제 1왕조 시대부터 벤벤석 제의(祭儀)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헬리오폴리스에는 벤벤석과 연관된 불사조 베누새가 있었다. 베누새는 벤벤석과 함께 고대 이집트어의 동사 ‘웨벤(weben)’에서 유래됐고 그 의미는 ‘떠 오르다’이다. 이런 관점에서 헤로도토스는 베누새를 500년마다 환생한다는 불사조 피닉스(Phoenix)로 묘사하고 있다2). 베누새는 ꡔ피라미드 문 1) ‘타체넨’의 의미는 ‘솟아오른 땅’이다. 2)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고 그림으로만 본 피닉스라 불리는 거룩한 새가 있었다. 헬리오폴리스 사람들에 의하면 이집트에서도 매우 드물게 이 새는 500년만에 한번씩 돌아온다고 한다.’ (Herodotos, Persian Wars. Book II.73.) 서ꡕ에서는 아툼의 현현으로 나타나며1) ꡔ죽은 자의 책ꡕ에서는 라(Ra)와 오시리스의 바(ba) 새로 나타나기도 한다2). 2. 태양과 나일강의 조화 헬리오폴리스의 구신계는 아툼을 정점으로 자연현상을 대표하는 초기의 4신들과 태초의 왕권을 암시하는 후기의 4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후기의 4신들은 오시리스와 셋트의 갈등과 대결을 나타내는 오시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오시리스와 셋트는 각각 북쪽의 하 이집트와 남쪽의 상 이집트를 대표하는 신들로서 통일 왕국이 건설되기 이전의 영토 분쟁의 갈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헬리오폴리스 창조신화에서 아툼이 자위행위와 뱉어냄을 통해서 신들을 탄생시켜 구신계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툼은 창조 이전의 혼돈의 물인 눈(Nun)과의 관계를 밝혀야만 했다. 따라서 ꡔ죽은 자의 책ꡕ 제 17장에는 아툼이 홀로 눈 속에 있었다고 언급하며 또한 아툼을 전통적인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기도 한다3). 멤피스의 창조신 프타는 헬리오폴리스나 헤르모폴리스의 창조신화에 비해서 훨씬 더 세련되고 지적인 소위 ‘로고스(말씀) 창조관’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자신을 태초의 혼돈의 물 눈(Nun)과 아툼과 일치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바로 이집트의 기본적인 창조행위가 나일강 범람과 태양신이라는 두 자연현상에 기초할 수 밖에 없음을 다시금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헤르모폴리스의 경우 팔신계에서는 혼돈의 물 눈(Nun)이 정점에 위치하여 창조 행위의 물질적인 배경을 구체적으로 시사해 준다. 하지만 헤르모폴리스의 창조신화는 이와는 별도로 거룩한 새에 의한 난생설과 함께 나일강의 물에서 올라 온 연꽃을 라 신의 탄생지로 여기고 있다. 이 두 현상도 각각 태양신의 거처인 하늘의 속성과 나일강의 속성을 동시에 창조관의 현장으로 여기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지리적 개념으로 해석된다. VII. 결론 각 도시별로 형성된 이집트 창조신화와 신들의 계보는 이들의 기원이 서기전 3,000년경 통일 왕국의 제 1왕조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도시별로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헬리오폴리스의 라 또는 아툼, 멤피스의 프타, 헤르모폴리스의 눈, 그리고 테베스의 아문 등은 각각 자신이 속한 도시의 수호신으로부터 이집트 최고의 신으로 발전되었다. 이집트의 최고신이 하늘의 태양신이지만 이들이 태어난 고향은 하늘이 아니라 나일강의 늪지대라는 창조관의 상반된 논리는 태고의 혼돈의 물 눈(Nun)을 통해 해결된다. 즉 비록 태양이 가장 중요한 신이지만 그 이전 상태인 혼돈의 물을 등장시켰고 이 물은 다름 아닌 나일강의 범람의 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헬리오폴리스의 구신계에서는 비록 태양신 아툼이 정점에서 여러 신들을 탄생시켰지만 아툼의 아버지는 태고의 혼돈의 물인 눈(Nun)이며 그 어머니는 나우넷트(Naunet)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헤르모폴리스의 팔신계에서도 눈이 가장 먼저 등장함으로써 다시금 강조된다. 1) ‘아툼은 헬리오폴리스의 베누(새)의 신전에서 벤벤(석)으로 떠오른다’. (피라미드 문서 제 600절). 2) ꡔ죽은 자의 책ꡕ 제 83장 3) Faulkner 1985: 44.
고대 이집트인들은 모든 생명이 나일강이 범람한 후 물이 빠지며 생겨난 젖은 대지로부터 비롯됨을 잘 알고 있었다. 강물 한 가운데 솟아난 대지로부터 만물의 싹이 트기 때문에 혼돈의 물 눈(Nun)이 모든 신들의 고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들은 낮을 지배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생명을 부여하는 태양의 위력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해석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벤벤석이나 피라미드가 그 형태로는 태고의 언시언덕을 구체화한 것인 동시에 태양빛이 한 정점에서 내려와 사방으로 퍼지는 태양신의 상징과도 일치시켰다. 따라서 이집트의 대표적인 창조신화들은 해당 도시의 수호신을 깃점으로 독자적인 계보를 확립했지만 동시에 라, 또는 아툼으로 표현되는 태양과 눈(Nun)으로 구체화된 나일강을 창조의 기원으로 여긴 것이다.
참고문헌 Baines, J.R. 1970 Bnbn: Mythological and Linguistic Notes. Orientalia 39: 389-404. Faulkner, R.O. 1969 The Ancient Egyptian Pyramid Text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3-8 The Egyptian Coffin Texts. 3 vols. Warminster: Aris & Phillips. 1985 The Ancient Egyptian Book of the Dead. London: British Museum. Hart, G. 1990 Egyptian Myths. London: British Museum. 1999 이집트 신화. 이 응균, 천 경효 옮김. 범우사. Ions, V. 1965 Egyptian Mythology. Feltham: Hamlyn House. Janssen, J.J. 1987 The Day the Inundation Began. Journal of Near Eastern Studies 46: 129-136. Quirke, S. 1992 Ancient Egyptian Religion. London: British Museum. Saleh, A.A. 1969 The So-called ‘Primeval!! Hill’ and Other Related Elevations in Ancient Egyptian Mythology. Mitteilungen des Deutschen Archäologischen Instituts, Abteilung Kairo 25: 110-120. Van den Broek, R. 1972 The Myth of the Phoenix according to Classical and Early Christian Tradition. Leiden: E.J. Brill. Wilson, J.A. tr. 1950 Egyptian Myths, Epics, and Legends. In: J.B. Pritchard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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