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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 일월신 궁상이와 해당금이 (서정오/현암사)
2023.11.21.한지혜
*일월신 궁상이와 해당금이의 내용: 옥황궁 선비 궁상이와 땅 세상의 아리다운 처녀 해당금이가 우여곡절 끝에 해와 달의 신이 된 이야기. 둘의 사이가 너무 좋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아 처음에는 해와 달이 함께 다녔는데 옥황상제가 둘을 밤과 낮으로 갈라놓았다고 한다. 낮달이 뜨는 것은 둘이 가끔 몰래 만나기 때문이라고 한다.(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일월놀이푸념 (日月놀이푸념) : 평안북도 강계 지방의 무당굿에서 전승되던 서사무가.
원제목은 ‘일월노리푸념’이며, 내용은 해와 달의 유래를 이야기한 것이다. 1933년 손진태(孫晉泰)(『조선신가유편, 『조선민담집』, 『국사대요』 등을 저술한 국사학자)가 당시 강계읍에 사는 전명수(田明守)의 보유 자료를 채록하여, 1937년 『청구학총(靑丘學叢)』 28호에 「무격(巫覡)의 신가(神歌)」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 서사무가는 「성인노리푸념」과 함께 1940년 『문장(文章)』(1939년에, 김연만이 민족 문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창간한 문예 잡지)9월 호와 1958년 『사조(思潮)』 6월 호에도 수록된 바 있다. 강계 지방에서는 대규모 무제(巫祭)를 행할 때 여흥거리로 일월신제(日月神祭)와 성승제(聖僧祭)가 베풀어지는데, 이 무가는 일월신제에서 구연되는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명월각시와 궁산이는 혼례를 치르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궁산이는 명월각시가 너무나 예뻐서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여 밥을 굶기까지 하였다. 명월각시는 자기의 화상을 그려서 궁산이에게 주고 나무를 해 오라고 하였다.
궁산이가 명월각시의 화상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나무를 하는데, 광풍에 화상이 날려 배선비네 집에 가서 떨어졌다. 배선비는 화상을 보고 명월각시의 미모를 탐하게 되어, 배에다 생금을 싣고 내기 장기를 두기 위하여 궁산이를 찾아간다.
궁산이는 배선비와 장기를 두어 세 판을 모두 지고 명월각시를 배선비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명월각시는 큰 종년을 자기처럼 꾸미고 자기는 종 노릇을 하여 배선비를 속이려고 하였으나, 배선비가 종 노릇 하는 명월각시를 달라고 하자 할 수 없이 배선비에게로 가게 된다.
명월각시는 배선비에게 부탁해서 궁산이를 데리고 가다가 섬에 내려놓고 간다. 궁산이는 섬에서 학의 새끼를 먹여 살리고 어미 학의 도움으로 학을 타고 섬에서 나와 거지가 되어 다닌다. 이 때 명월각시는 배선비에게 요청하여 거지를 위한 잔치를 연다.
잔치한 지 사흘 만에 궁산이를 만난 명월각시는 구슬 옷을 내던지고, 이 옷의 깃을 잡아 고대를 추어 입는 사람이 자기 낭군이라고 한다. 궁산이가 이 구슬 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높이 떴다가 내려오자 배선비도 따라서 구슬 옷을 입고 백운 중천에 떠올랐는데, 벗을 줄을 몰라 내려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어 솔개가 된다.
궁산이와 명월각시는 다시 만나 살다가 죽은 뒤 그들의 혼령이 일월신이 된다. 이상의 내용은 부인을 걸고 내기를 하였다는 점에서 『고려사』 권71 악지(樂志)에 수록된 「예성강」노래의 유래설화와 같은 궤적을 가진다. 또한, 구슬 옷을 가지고 본래 남편을 찾고 부인을 빼앗아 간 남자를 징치하였다는 내용은 민담 「새신랑」과 유사하다.
이런 점에서 민간에서 전승되던 흥미 있는 설화가 무가로 이입되어 개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월신에 대한 이 밖의 신화는 우리나라에 없으며, 민담으로 전승되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내용이 이와 전혀 다르다. 참고문헌「조선무격의 신가」(손진태, 『손진태선생전집』5, 태학사, 1981)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돈전풀이 : 함경도 망묵굿의 한 제차.
함경남도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기 위하여 행하는 큰굿을 망묵굿이라고 한다. 망묵굿에는 죽은 사람이 저승의 사자에게 끌려가는 동안 사용하라고 황색의 종이돈과 흰색의 종이돈을 놓는데, 이것은 다른 지방의 영혼 천도를 위한 굿과 마찬가지이다. 이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저승에서 돈을 알맞게 쓰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돈전풀이」를 창송(唱誦)한다.
이와 같은 의식은 함경남도 지방의 무속 제례에서만 볼 수 있다. 「돈전풀이」에는 돈을 다루는 신의 생성담이 곁들여 있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궁상선비는 재산이 많고 재색이 겸비된 명월각시라는 아내가 있었다. 배선비가 궁상선비의 재산과 명월각시를 탐내어 내기장기를 두어 궁상선비의 재산과 명월각시를 빼앗았다. 명월각시는 여러 가지 꾀를 써서 정조를 지켰다. 얼마 뒤에 궁상선비와 명월각시는 다시 만나 걸식하며 살았는데 죽어가는 고양이와 뱀을 집에 데려와 먹여 살렸다.
뱀은 용왕의 아들로 득죄하여 인간세상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득죄의 기간이 끝나고 돌아가 용왕에게 인간세상에서 지낸 일을 말하였다. 용왕은 궁상선비와 명월각시를 용궁으로 데려와 보은으로 금은보화를 주겠다고 하였다.
궁상선비가 용왕아들의 귀띔을 받아 망태를 요구하였으나 용왕이 그것만은 못 주겠다고 하여 아무것도 받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 동안에 고양이가 이 망태를 훔쳐 왔다. 궁상선비는 망태를 기둥에 걸어 놓았는데 밤을 새고 나니 돈이 가득 있었다. 이 돈을 쏟아 내자 또 돈이 가득 채워졌다.
이 돈은 임금님의 곳간에 있는 돈으로 곳간의 돈이 없어지자 임금님이 찾아다니다가 궁상선비의 집에 나랏돈이 있는 것을 보고 벌하려 하였다. 궁상선비는 나랏돈을 가져온 것이 아니고 망태 안에 돈이 들어 있어서 쏟아 놓았을 뿐이라고 하였다.
임금님은 이상한 망태를 가지고 대궐로 돌아와 기둥에 걸어 놓았으나 돈은 나오지 않고 말똥·쇠똥 등 쓸모없는 것만 나왔다. 왕은 그 망태를 다시 궁상선비에게 돌려주었다. 궁상선비 집에 돌아온 망태에서는 또 돈이 자꾸 나왔다. 임금님은 이것을 보고 궁상선비와 명월각시를 돈을 다루는 신(神)으로 삼았다.
「돈전풀이」에서는 이러한 생성신화의 다음에 망자(亡者)가 저승에서 지닐 수 있는 본전(本錢)과 이자(利子), 대왕에게 바치는 돈의 액수 등을 서술한다. 망자의 생년 간지(干支)에 따라서 저승에서 매이는 대왕이 다르고, 그가 지니는 본전과 이자와 대왕에 바치는 돈의 액수가 다르다고 한다.
경오·신미·임신·계유·갑술·을해생의 망자는 진광대왕(秦廣大王)에게 매이고, 무자·기축·경인·신묘·임진·계사생의 망자는 초강대왕(初江大王)에 매인다고 하여 육십갑자의 죽은 자가 육조(六祖)가 되어 각 조는 각각 십대왕에 매인다고 하는 것이다.
망자가 본전과 변전을 바치는 금액 등에 관해서는 굿의 정황에 따라, 무당에 따라 다르게 서술된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숫자를 정확히 말하는 것이 무당에게는 어려운 탓이거나 또는 금액의 정확성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망자에게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무속에서 드러난 태양신의 비밀-우리 신화의 수수께끼(8) 조현설 | 2009.06.29.남양주 뉴스
새해를 맞았다. 올해도 여전히 첫 일출을 맞으려고 동해안은 사람의 바다를 이루었다. 어제 해와 오늘 해가 별다를 리 없겠지만 사람들은 기어코 첫 일출에 큰 뜻을 담으려고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징인’(homo symbolicus)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 현대 상징인의 ‘비념’ 속에 빛나고 있는 것은 신성에 대한 동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굿을 하던 원시적 심성이 여전히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새 해를 맞으면서 우리 태양신의 이름을 불러 본 이들은 몇이나 될까? 종교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불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양신의 이름이라니? 서양신화에 친숙한 이들은 그리스의 아폴론이나 이집트의 라와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다. 중국이나 일본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희화(羲和)나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를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태양신은?
궁산이는 명월각시한테 반해 첫 해에 말 붙이고, 둘째 해에 편지 받고, 삼 년만에 장가를 간다. 각시를 너무 예뻐한 궁산이는 한시도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굶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궁산이가 일하러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명월각시는 자신의 화상을 그려 주며 나무를 해오라고 한다. 일이 되느라고 그런지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각시의 초상이 바람에 날려 아랫마을 배 선비네 집에 떨어진다. 초상에 반한 배 선비는 금을 한 배 싣고 궁산이와 내기 장기를 두러 온다. 먹거리도 없는 집에 내기에 걸 것이 있을 리 없다. 배 선비의 계략에 말려든 궁산이는 마누라를 걸고 내기를 한다. 마누라 걸고 도박하는 노름꾼의 원형이 여기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기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궁산이가 진다. 소식을 들은 명월각시는 탄식 중에도 꾀를 낸다. ‘종년을 나처럼 꾸미고 나는 종년 차림에 다리까지 절면 종년을 데려 가겠지.’ 이 대목에서 잠시 ‘종년’의 인권이 걱정스럽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배 선비가 데려가는 것은 명월각시니까. “남의 마누라를 데려가면 평생 원한을 쌓을 테니 마당에 물긷는 종년을 나를 주소.” 제 꾀에 발목이 잡힌 꼴이다. 명월각시는 어쩔 수 없이 배 선비를 따라가면서도 말미를 얻어 궁산이의 옷을 지어주고 먹을 것을 마련해 준다.
그럼 혼자 남은 궁산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먹을 것이 떨어지자 이름처럼 궁해져 거지 신세가 되어 떠돈다. 배 선비를 따라 아랫마을로 간 명월각시는 웃음을 거두고 입을 다문다. 답답해 가슴을 치는 배 선비에게 소원을 들어주면 말을 하겠다고 한다. 언제 궁산이 소문을 들었는지 사흘 짜리 거지잔치를 여는 것이 소원이란다. <심청전>의 거지잔치가 겹쳐지는 장면이다. 궁산이는 첫날은 맨 아래쪽에, 둘째 날은 맨 위쪽에 앉았다가 못 얻어먹는다. 마지막 날 겨우 얻어먹고 나가는데 명월각시가 ‘구슬옷’을 던지면서 누구든 이 옷을 들어 입을 수 있으면 내 남편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거지들이 서로 달려들어 옷을 입으려고 해도 입을 수가 없다. 그런데 궁산이가 옷깃을 가볍게 들어 걸치자 하늘로 붕 솟아올랐다가 내려온다. 보고 있던 배 선비가 가만있을 리 없다. 배 선비도 옷을 입자 하늘로 떠오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입긴 입었는데 벗는 재주가 없는 배 선비는 다시는 내려오지 못하고 죽어 솔개가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게 무슨 태양신화인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명월각시와 궁산이가 다시 만나 살다 죽어 일월신이 되는 데서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 일월신의 내력을 풀이한 신화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일월신을 즐겁게 하는 기도라는 뜻을 지닌 <일월놀이푸념>(1933년 평안북도 강계의 무당 전명수 구송)이라는 제목까지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큰굿의 뒤풀이에서 음식과 춤으로 신을 위로할 때 불리는 노래라는 사실도 뒷받침이 된다. 하지만 이 신화는, 태양마차를 모는 아폴론이나 10개의 태양을 여섯 용이 끄는 수레에 차례로 싣고 달리는 희화와 같은 태양신의 이미지를 상상하는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무슨 태양신화가 이래?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태양신이 된 거지 궁산이’ 이야기 안에는 신화의 논리가 숨어 있다. 그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둘이다. 첫번째 수수께끼가 명월각시가 거지들에게 던진 구슬옷이라면 두번째 수수께끼는 명민한 명월각시와 어리석은 궁산이라는 신화 특유의 남녀관계다. 먼저 구슬옷을 풀어보자. 대체 무슨 옷이길래 보통 사람은 들지도 못하는데 임자는 입으면 하늘로 올라가고 벗으면 내려오는가? 선녀의 날개옷 혹은 성룡의 영화 <턱시도>를 연상시키는 이 옷의 비밀을 풀려면 살짝 우회로가 필요하다. 우회로란 흔히 우리 일월신화의 자취를 간직한 이야기로 알려진 <연오랑 세오녀>를 경유하는 길이다. <연오랑 세오녀>를 보면 연오랑·세오녀 부부가 차례로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들이 각각 일월의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부부를 모셔오려고 찾아간 사신에게 이미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어 있는 두 사람이 준 것이 ‘세오녀가 짠 옷감’이라는 사실. 이 비단을 제물 삼아 제사를 지내자 신라의 일월은 빛을 되찾는다. 여기서 우리는 ‘세오녀-옷감-빛’ 사이에 뭔가 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세오녀는 탁월한 길쌈 능력을 지닌 여자였다. 동시에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달의 정령, 달의 여신이었다. 직조공이란 직업을 발명한 이집트의 여신 네이트나 직조 기술로 유명한 그리스 여신 아테나를 생각해 보면 달의 여신 세오녀의 길쌈 능력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시간과 운명을 관장하는 달의 성스러운 이미지가 베짜기라는 여성 특유의 노동과 결합하면서 탄생한 것이 달 여신의 옷감짜기 능력이다. 동시에 달은 풍요와 재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달 여신이 짠 비단이 신라의 사라진 빛을 재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짐작이 간다. 명월각시가 던진 구슬옷의 비밀이 여기서 풀린다. 명월각시는 이름이 말하듯 달의 여신이다. 재생의 신 명월각시가 짠 구슬옷은, 세오녀가 짠 비단이 일월의 빛을 되찾아왔듯이, 죽음에 사로잡힌 존재를 재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무능력하게만 보이던 궁산이가 구슬옷을 입자 잃어버리고 있었던 태양신의 능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궁산이는 이름처럼 무궁해진 것이다.
그런데 궁산이의 잃어버린(혹은 잠재된) 능력을 되살려내는 명월각시의 이미지에는 재생의 신 이상의 뜻도 숨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아니라 남편을 위해 구슬옷을 짰기 때문이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의 등경돌이 선문대할망이 길쌈할 때 켰던 등잔이라는 전설이 있듯이, 길쌈은 창조여신의 문화 창조 과정의 일부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승되는 구전신화에서 창조여신의 제 옷 만들기는 대개 실패로 돌아간다. 선문대할망의 속옷 만들기(6회 참조)나 충청도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갱구할머니의 옷 만들기가 그렇다. 오히려 여신들이 옷 만들기에 성공하는 것은 남편의 옷을 만드는 경우다. 붉은 빛 조복(朝服)을 만들어 남편에게 주었다는 선도성모나 <일월놀이푸념>의 명월각시가 그런 경우다. 왜 그럴까?
여신의 주변화가 답일 것이다. 청동기 혹은 고대국가 이후 여신은 남신의 배필이나 딸로 위계가 조정된다. 남성중심적 현실의 신화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창조여신의 옷 만들기가 실패하고, 남신의 배필이 된 선도성모나 명월각시의 옷 만들기가 성공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월놀이푸념>의 명월각시가 어리석은 남편의 내기 때문에 당한 고난 속에도 현실의 남녀관계가 깊이 스며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칠 수 없는 진실이 하나 있다. 역사 속에서 소외되었지만 여전히 풍요와 재생의 힘을 자궁 안에 간직하고 있는 달의 여신 명월각시의 지혜와 길쌈이 어리석은 거렁뱅이 궁산이를 태양신으로 만들었다는 신화적 진실. “궁산이”하고, 새로 솟아오른 우리 태양신의 이름을 부를 때 마음속으로는 명월각시도 되새겨볼 일이다.
조현설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 연구교수 mytos21@hanmail.net
*이야기 중에서
장가 간 뒤로는 궁상이가 밖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허구한 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네. 왜 그런고 하니, 제 색시 해당금이가 너무 예뻐서 한시도 떨어지지를 못해서 그런 거야. 해당금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이거 참 일이 나도 예사로 난 게 아니거든. 이러다가는 굶어죽기 딱 좋게 되었으니 말이야. 생각 끝에 제 얼굴을 그림으로 그려서 궁상이에게 줬어.(215페이지)
그림이 바람에 실려 멀리멀리 날아가서, 어디로 갔는고 하니 바다 건너 남쪽 고을에까지 갔어. 그 고을에서 제일가는 부자 배선이 집 마당에 가서 떨어졌지.(216페이지)
“그럼 이렇게 합시다. 만약 내가 지면 금덩이 한 배를 다 드리리다. 만약에 선비님이 지면 부인을 내게 주시오.”(217페이지)
그 바람에 구슬옷을 입은 배선이도 공중으로 남실남실 떠올라 높이높이 올라갔어. 그렇게 올라간 배선이는 다시 내려오지 못하고 솔개가 되어 하늘을 빙빙 돌게 되었대.
궁상이와 해당금이는 다시 만나, 그 뒤로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금실 좋게 살았단다.(223페이지)
*감상나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