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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남씨 충경공 직제학공 목사공 동지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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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카페자료실 스크랩 의령남씨(宜寧南氏)
익명 추천 0 조회 246 11.10.16 01: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의령남씨(宜寧南氏)
    【시조】남민(南敏). 

    【인구수】150,394명 (2000년 현재)

    【주요파】

    ▲충간공파(忠簡公派)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의산위공파(宜山尉公派)

    ▲강무공파(剛武公派) ▲보문제학공파(寶文提學公派) ▲사천백공파(沙川伯公派)

    ▲좌찬성공파(左贊成公派) ▲양정공파(良靖公派)

     

    시조 남민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바다에서 표류하던 중

    신라 유린땅(현 경북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죽도)에 기착했다.

    그곳에 살기를 원하자 신라왕은 중국 여남(汝南)에서 왔다하여 남(南)이라는 성을

    하사하고 이름을 민(敏)으로 했다.

    그 후 고려 후기 때 시조의 후손 3형제를 중시조로 하면서 3개의 본관으로 갈라진다.  

    ▲맏형 남홍보(南洪甫)는 영양(英陽)남씨,

    ▲둘째 남군보(南君甫)는 의령(宜寧)남씨,

    ▲막내 남광보(南匡甫)는 고성(固城)남씨가 된다. 

    이 가운데 의령(宜寧)남씨가 가장 번창했다.

    2000년 현재 영양(英陽)남씨는 69,155명, 고성(固城)남씨는 9,982명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들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 시조를 지은 남구만은 숙종 때 영의정과 대제학을 지낸 소론의 영수다.

    그는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을 뿐 아니라 당파싸움이 심했던 당시 정계를 주름잡은

    정치인이었다.

     

    남씨 문중에서 추앙을 받는 인물로 남이(南怡)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20대에 천하를 평정하겠다고 만주벌판을 굽어보며 읊은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백두산의 돌은 칼 갈아 다 닳아지고
    두만강의 물은 말 먹여 없애리라.
    사나이 이십에 나라 평정 못하오면
    후세에 누가 일러 대장부라 하리오.
     
             

    이 詩에는 그의 웅지가 담겨져 있다.

    장군의 본관(本貫)은 의령(宜寧)이고, 태종의 외증손(外曾孫)이며, 좌의정(左議政)권람

    (權擥)의 사위이다. 세조3년(1457) 17세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亂: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족(女眞族)의

    주위(建州衛)을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렀다.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고

    훈(勳) 1등이 되어 26세의 나이로 병조판서(兵曺判書)가 되었다.

     

    남이(南怡)는 출생에서부터 결혼,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태종 이방원의 외증손인 남이(南怡)는 어렸을 때 귀신을 쫓고 어린 처녀를 살려낸다.

    그 처녀는 나중에 남이의 부인이 된다.

    그는 17세 때 무과에 장원,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 13년 이시애의 난이 일자 우대장으로 이를 토벌하고 서북방으로 건주위를 칠 때

    선봉장으로 공을 세운다.

     

    남이(南怡)장군이 소년시절에 하루는 길에서 놀고 있었다.

    이 때 어떤 하인이 보자기에 무엇을 싸서 지고 가는데 그 보자기 위에 하얀 분면(粉面)

    의 귀신이 앉아있었다. 그는 기이하게 여겨 슬그머니 그 뒤를 따라갔다. 그 하인의

    집은 재상 권람(權擥)의 집이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집안에서 곡성이 났다.

    집안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집 대감의 딸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귀신의 소행임

    을 알았던 남이(南怡)는 그집 하인에게 말했다.

     

    「내가 들어가면 그 처녀를 살리겠다」고 하니 행여나 하고 그를 들어오도록 했다.

    남이가 죽은 처녀의 방에 들어가자 처녀의 가슴에 눌러 앉아 있던 귀신이 곧 달아났다.

    그리고 처녀는 소생하였다.

    그러나 남이(南怡)가 방에서 나오자마자 처녀는 또숨을 거두었다.

    남이(南怡)만 들어가면 처녀는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남이는 그 집 하인이 조금 전 보자기에 싸온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홍시라고 했다.

    처녀가 조금 전 그 홍시를 먹자마자 숨졌다는 것이다.

     

    남이는 귀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에 적합한 약을 처방하도록 했다. 결국 죽었던 처녀를

    마침내 살려냈다. 그 처녀는 권재상의 넷째 딸이었다.

    그 뒤 권재상은 남이(南怡)를사위로 삼았다. 그러나 권부인은 결혼 후에 소생이 없었고,

    남이(南怡)장군이 화를 당하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남이(南怡)장군이 어느 날 궁궐에서 숙직을 서다가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무심결에

    '옛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날 징조'라고 말했다.

    평소에 남이(南怡)를 시기하던 유자광이 이 말을 엿듣고 남이가 역적 모의를 꾸민다고

    모함하여 26세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더구나 남이(南怡)장군이 지은 시로 알려진 "남이장군호정시(南怡將軍豪征詩)" 의 한 구절

    빌미로 삼아 대역 죄인으로 몰았다. 위 시는 이때 지은 시였다. 

     

    그의 죽음은 시대를 앞서가는 비범을 시기와 질투, 모함과 중상으로 점철된 조선사가

    꺾어버린 역사의 주살이다. 순조 18년 그의 관직은 복구되고 충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남이(南怡) 장군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2리에 있다.

    그는 외가인 남양홍씨가 살던 마을 인근인 이곳에 묻혔다.

    지난 71년 충북 음성에 있던 부인도 이장해 현재는 함께 묻혀 있다.


    남이(南怡) 장군 묘는 10여 년 전만해도 후손들이 잘 돌보지 않아 자연석으로만 대충 다듬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71년 당시 후손들이 비석을 새로 세우고 묘소를 다듬었다.
    후손들은 <남이(南怡) 장군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고 외가가 있는 곳에 무덤을

    방치했으나 뒤늦게나마 후손들이 묘소를 손질했으니 이제야 편안히 눈을 감을 것 같다>

    고 말한다.

     

    생육신 추강 남효온도 추앙받는 인물이다.

    사림의 거두 김종직의 문인이었던 그는 사육신 사건 이후 정계와 손을 끊고 의령군 칠곡면

    산림에 묻혀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다.

    남효원은 과격한 말이나 임금의 비위에 거슬리는 애기를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기개있는

    인물로 유명하다.

     

     

     아버지 남빈(南?)과 어머니 홍여공의 딸 사이에
    1443년 지금의 서울 종로구 연건동 126번지에서

    출생한 충무공 남이장군의 초상화이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126번지

     

    조선 세조때의 무신(武臣)인 남이(1443-1468)의 묘

     

     

     

     

     

     

     

    경기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
    경기도기념물 제 13호 / 1973년 7월 10일

    조선 세조 때의 무관인 남이장군 묘는 비봉면 사무소가 있는 양로리에서 북서쪽 3km 쯤의

    야산에 있으며, 봉분을 중심으로 앞에는 상석, 왼쪽에는 묘비가 있고 좌우에는 망두석이

    세워져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이장군 사당제(南怡將軍 祠堂祭)] 동영상 보기

    역모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은 남이(南怡)의 원혼을 달래고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민속제를 오늘날에 맞게 발전시킨 향토축제 모습. 

     <1999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0호>

     

    의령남씨 항렬표

     

    21世

    (元)

    22世

    (廷)

    23世

    (熙)

    24世

    (相)

    25世

    (祐)

    26世

    (基)

    27世

     (鉉)

    28世

    (潤)

    29世

    (植)

    30世

    (炳)

    31世

    (均)

    32世

    (鎭)

    33世

    (求)

    34世

    (柱)

    35世

    (燮)

    36世

    (圭)

    37世

    (鎬)

    38世

    (淳)

    39世

    (根)

    40世

    (榮)

    41世

    (瓚)

    42世

    (鍾)

    43世

    (洙)

    44世

    (禎)

    45世

    (燁)

    46世

     (周)

    47世

     (鎰)

    48世

     (永)

    49世

     (杓)

    50世

     (炯)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世孫은 21代孫)

     

    이름의 돌림자(항렬자) 정하는 법

     

    1).五行相生法(오행상생법)으로 쓰는 경우 :

    오행의 근본인 金·水·木·火·土(금.수.목.화.토)가 포함된 글자를 변으로 하여 앞,뒤 이름자에

    번갈아 쓰는 경우인데 대개 이 방법을 가장 많이 쓴다.


    2).十干(십간)순으로 쓰는 경우 :

    甲,乙,丙,壬,癸(갑,을,병,임,계)를 순차적으로 쓴다.
    혹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천간

    (天干)을 포함한 글자를 순차적으로 쓴다.


    3). 十二支(십이지)순으로 쓰는 경우 :

    子,丑,寅,戌,亥(자,축,인,술,해)를 순차적으로 쓴다.
    혹은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의 지지(地支)를 포함한 글자를 순차적으로 쓴다.


    4).숫자를 포함시키는 경우 :

    일(一:丙·尤)·이(二:宗·重)·삼(三:泰)·사(四:寧)등으로 쓰는 경우.


    5).천자문 글자순


    6).드문 예이지만 韓山李氏는 3단위 木 . 土 . 水 기준 반복법을 사용한다.

     

     

    역사의 인물들

     

    남회    : 제주목사
    남천택 : 경주부윤, 대사헌
    남재    : 조선개국 1등공신, 중추원 학사 겸 대사헌, 영의정
    남은    : 조선개국 1등공신, 의정부원군, 참찬문하부사
    남경우 : 병조판서, 의령군
    남지    : 의성군, 1451년에 좌의정
    남효온 : 생육신
    남이    : 세조때 의산군, 병조판서
    남곤    : 중종때 영의정
    남효의 : 중종때 형조판서
    남이공 : 광해군때 공조판서
    남치근 : 중종때 제주목사
    남이웅 : 인조때 진무공신, 춘성부원군, 우의정, 좌의정
    남선    : 인조때 병조참의, 이조, 형조판서
    남이성 : 숙종때 예조판서
    남구만 : 숙종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남익훈 : 경상감사, 이조참판, 함경도 관찰사
    남태제 : 영조때 이조판서
    남태온 : 영조때 "경종실록" "숙조보감"편찬
    남태회 : 옥당, 정헌, 병조판서
    남이익 : 강원도, 함경도 관찰사, 병조판서
    남유용 : 영조때 예문관제학, 양관대제학
    남공철 : 정조, 순조때 대사성,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남주헌 : 순조때 춘천주사, 좌승지
    남이관 : 헌종때 세례받고 천주교에 입교, 기해박해때 순교
    남상교 : 천주교를 신봉하다가 고종 3 년에 순교
    남종삼 : 헌종때 승지, 천주교에 입교, 병인박해때 순교
    남헌교 : 이조참판, 황해도 관찰사, 병조판서
    남정순 : 경기, 강원도, 함경도 관찰사, 이조판서
    남병철 : 예조, 이조판서, 대제학
    남상길 : 좌참사
    남일우 : 대사성 공조판서
    남투병 : 공조참판, 어영대장, 7도감사
    나효윤 : 판도판서, 좌리공신
    남대번 : 조정승
    남자현 : 여성독립운동가, 1962년 대한미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수여
    남상덕 :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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