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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03
S#1. 건물 앞.
-준형이 차에 급히 탄다. 허겁지겁 물휴지로 손을 닦는다. 아, 정신없어.
-저만치 다미와 장호가 오는 것 보인다. 막대 사탕을 하나씩 물고서.
S#2. 선재 거실.
-선재가 황황히 주방에서 욕실로. 조그만 대야를 들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니다.
-욕실 안 혜원, 아픈 것 참으며 뚜껑 닫힌 변기에 한쪽 발 들고 앉아 있다. 선재가 혜원의 발 앞에 대야를 놓는다.
-욕실 앞에 놓인 매트며 그 안의 구형 세탁기. 커다란 함지엔 샤워기가 걸쳐져 있고, 빨랫감, 비누통, 샴푸병 등등.
선재 : 여기(혜원의 발 잡아 대야에 담근다)
혜원 : 뭔데?
선재 : 끈끈이가 콩기름에 녹거든요. (두리번, 비누통의 수세미 집어든다) 녹은 담에 비누칠,
혜원 : (선재 손의 수세미 나꿔채는) 내가 할게.
선재 : (움찔) 아,네,
-다미와 장호 말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현관문 열린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선재. 혜원,?
-선재, 손가락 입에 대며 다미와 장호 마구 밀어낸다. 그 서슬에 혜원의 구두가 나동그라진다.
다미 : 왜애,
장호 : 누구,
선재 : 교수님, 아니, 암튼,
-기어이 내보내고 문 닫는 선재. 혜원의 구두를 반듯하게 놓는데,
혜원 : 친구들이야?
선재 : 가,갔어요.
-선재, 욕실 문 옆 벽에 붙어 선다(혜원에게 자기 모습 안보이려고). 이 상황이 너무나 무참해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욕실 안의 혜원, 발바닥을 수세미로 살살 문지른다.
혜원 : 신기하네... 깨끗이 닦아져.
선재 : 네, 그게 원래,
혜원 : 너무 떤다, 너? 방금 전엔 제법 과감하더니?
선재 : 죄송합니다.
혜원 : 뭐가?
선재 : 과감,아니, 떨려서요.
혜원 : 그래가지구 시험 어떻게 볼래.
선재 : ....
혜원 : 내가 괜히 왔나보네.
선재 : 아니요, 그건 절대 아니구요, 네, 분명히 아닌데, 근데 제가 너무, 아,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혜원 : (웃음) 뭐래는 거야?
선재 : (들릴락 말락) 그러게요.
-조금 후, 혜원이 욕실 앞에서 발 닦고 선재가 방에서 급히 나온다.
혜원의 외투와 가방을 들고 있다.
혜원 : 뭐야, 가라구?
선재 : 얼른 가보셔야 할 거 같아서요. 교수님 밖에서 기다리시니까,
혜원 : 너 치는 거 듣구 가야지.
선재 : 내일 제가 갈게요. 가서 들려드릴게요. 예비소집 끝나구,
혜원 : (본다)
선재 : (떨려서 못 치겠습니다)
혜원 : (외투 받아 입는다) 내일 오면서 전화해.
선재 : 네... 번호 좀,
혜원 : (가방 받아든다) 강교수한테 하믄 돼.
선재 : 선생님 꺼요.
혜원 : 니 선생은 내가 아니라 강준형 교수지.
선재 : 싫은데요.
혜원 : (이건 또 무슨)
선재 : 아닌데요... 저는, 그날, 선생님께,
혜원 : 글쎄 내가 왜 니 선생,
선재 : 왜냐믄요,왜냐믄, (좀 더 쩔쩔 매다가) 그건 그날, 선생님 첨 만나던 날 정해졌어요. 운명적으루.
혜원 : (픽 웃음)
선재 : 저는 퀵 배달을 하기 땜에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단골두 있긴 하지만 거의 다 첨보는 사람들이예요.
저랑 아무 상관두 없구 제가 누군지 관심두 없죠. 저두 관심 없구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 연주를 더 듣겠다 그러셨구, 제가 어떤 놈인지 관찰하셨구, 어떻게 사냐구 물어보셨구,
저랑 같이 연주를 해주셨어요. 저는 그날 다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제 영혼이, (멈칫. 이런 말 써도 되나 싶지만) 거듭난, 거죠.
혜원 : 과하다... 말하구 보니까 너두 오글거리지?
선재 : (본다. 정색) 아니요, 진심인데요...
혜원 : (얼핏 당혹. 그래서 웃음)
S#3. 명화 식당.밤.
-다미와 장호, 명화를 거들어 뒷정리. 냅킨통 채우기, 수저통 정리, 식탁 닦기 등.
장호 : 진짜 잘 치나봐. 교수님이 집에까지 막.
명화 : 글쎄 뭐, 운이 트이는 건지.
장호 : 오오, 엄마 어깨에 힘 들어갔다. 너, 선재 뜨기 전에 도장 콱 찍어 놔라.
다미 : 어. 콱.
명화 : 콱은 무슨,
장호 : (바깥을 내다본다) 어? 간다.
S#4. 식당 앞. 밤.
-선재가 허리 꺾어 인사하고 준형의 차 떠난다.
-식당에서 나오는 명화, 다미, 장호.
명화 : 그냥 가시게 하믄 어떡해. 말을 했어야지. 엄마두 인사 좀 하게.
선재 : 어어, 그게,
-다미, 달려들어 선재 얼굴 싸쥔다. 입맞추려는.
선재, 다미 손아귀 떼내려 하면서 고개를 이쪽 저쪽 돌려가며 피하는.
장호 : 오오, 박다미 홧팅. 19금 가자!
명화 : 무슨 짓이야!
-명화가 다미를 떼내고 선재, 도망치듯 들어간다.
다미 : 야!
명화 : (다미 등을 한 대 때리는) 겁두 없이, 길바닥에서.
장호 : 새끼 열나 인색하네. 입술 정도 걍 받아주지.
명화 : (장호와 다미의 등 떠민다) 늦었어, 가.
다미 : 선재 너 붙구 나서 쌩까믄 가만 안둬. 아줌마두.
명화 : 시끄러. (들어가려다가) 총각!
-거대한 덤프트럭이 서고 기사가 내린다.
명화 : 차 거기다 세우믄 어떡해.
기사 : (가면서 건성) 봐 줘요. 아침 일찍 빼는데 뭘.
명화 : 안돼. 우리 아들 운빨 막혀. 저 아래 공사장 앞에 자리 있잖아. 안 그럼 민원 넣어 버린다?
-가다 말고 서서 돌아보는 장호와 다미.
S#5. 선재 방. 밤.
-선재, 혜원의 명함 보면서 번호 찍는다. 저장. 오혜원.
-인물 검색 해본다. 오혜원.
-혜원의 사진 및 학력, 경력. 서한 아트센터 기획실장. 가족 배우자 강준형 서한음대 피아노과 교수.
-관련 기사들 다 뒤져보는. 혜원 인터뷰도 있다. 큼직한 사진과 함께 기사.
선재, 혜원의 사진 한참 보다가 마우스로 줄 그어가며 꼼꼼히 읽는다.
서한음대 피아노과 수석 입학. 3학년 때 건초염으로 진로 변경. 유학. 예술 경영으로 예일대 석사...
-선재, 멍...대단하신 분...
-클래식 사이트 접속, 바삐 자판 치는 선재.
선재 소리 : 막귀형, 내가 제대로 귀인을 만났어.
S#6. 혜원 서재. 새벽.
-까운 차림 혜원, 서서 책상 모서리에 포스트잇 두어 장 붙이고 정리하다가 컴퓨터 화면 본다.
-나천재 님의 쪽지.
선재 소리 : 내가 어떤 사람 앞에서 난생 처음 제대로 연주를 했는데, 그게 대박. 내가 해석을 할 줄 안대.
혜원 : (응?!...)
선재 소리 : 서한대 피아노과 정시 치래서 원서 냈어. 남편이 거기 교수. 근데 나한테는, 교수님보다두 그 분이 진정 스승이야.
혜원 : (엉?...얘 혹시...자판 친다. 확인하려는. ‘누군데’)
S#7. 선재 방.
-자판 치는 선재.
선재 소리 : 오혜원 실장님이라구, 혹시 들어봤어?
S#8. 혜원 서재.
혜원 : (기가 막혀 허허허)
S#9. 플래시 백. -1부 준형 서재.
-모니터 속 선재 동영상.
준형 : 미친 넘 피아노루 개그 하나. 튀구 싶어 환장한 것들.
혜원 : 잠깐만. 미친 넘이 아니라 아픈 넘이네. (자판 치며) 너 얼른 병원 가라.
-2부 혜원 사무실.
-혜원이 태블릿 들여다본다.
선재 소리 : 막귀형 고마워. 병원 갔댔어. 낫고 있음.
S#10. 혜원 서재.
선재 소리 : 형은 전공자니까 업계 사람들 많이 알지?
-혜원, 자판 친다. ‘모름. 난 완전 허접 전공생이라’ 보내고,
선재 소리 : 검색 함 해봐봐. 스펙이 장난 아냐. 근데 더 죽이는 건 카리스마. 그런 인종 처음 봐.
무섭구 화끈하구 재밌는데 열라 우아해. 나 완전 멘붕.
혜원 : (뭐?...)
선재 소리 : 심지어 발두 이뻐.
혜원 : (부지중에 책상 아래 자기 발을 본다)
-쪽지 창에 또 글자들이 콕콕 찍힌다.
선재 소리 : 여자 발에 꽂혔다믄 이상한 거야? 형은 그런 적 없어?
혜원 : (잠깐 머뭇, 하다가 자판. ‘요점이 뭐냐? 그 여자 발이야?’)
선재 소리 : 그건 아냐.
혜원 : (자판. ‘그럼 뭐’)
선재 소리 : 여인의 향기. 나 지금 쓰러지기 직전.
혜원 : (팔을 들어 코를 대본다)
선재 소리 : 이거 맛이 간 거지? 낼 모레 시험인데.
혜원 : (팔에 코 댄 채...)
선재 소리 : 형...
혜원 : (두 손 얼른 자판. 그러나 머뭇)
선재 소리 : 주무셔?
혜원 : (자판 친다. ‘아니, 물 좀 마시느라구’)
선재 소리 : 내 얘기 쫌만 더 들어 줘.
혜원 : (자판. ‘그러니까 니가 지금 어떤 여자한테 뻑이 간 거지?’)
선재 소리 : 그렇게 말하믄 너무 싸 보이구, 뭐랄까, 사로잡힌 영혼이랄까,
혜원 : (픽 웃음 ‘영혼?’)
선재 소리 : 아니, 몸과 마음 다, 송두리째. 아오.
혜원 : (자판. ‘혼자 너무 가는 거 아님?’)
선재 소리 : 절대 아님. 형, 여자랑 슈베르트 판타지아 쳐봤어?
혜원 : (은근히 앙큼해진다. 자판. ‘그런 것두 했다고?’)
선재 소리 : 어.
혜원 : (‘어땠길래’)
선재 소리 : 절정 그 자체. 나 아직 동정이라 그딴 거 모르지만,
혜원 : (얘, 점점 쎄진다...)
S#11. 플래시 백.
-혜원과 선재의 연주.
선재 소리 : 실제로 한다 해도 그 이상일 수는 없을 거야. 난 다 바쳤어, 여신한테.
S#12. 혜원 서재.
-혜원, 벙... 자판에 손을 얹은 채 모니터 본다.
선재 소리 : 여신님이 그걸 아실까.
혜원 : (급히 자판 친다)
S#13. 선재 방.
-‘냉수 한 사발. 잠이나 자라’
-선재, 어?
선재 소리 : (급히 자판) 잠깐만 형,
-‘막귀님이 퇴장 하셨습니다’
-선재, 쩝.
S#14. 혜원 서재.
-혜원, 쿵덕쿵덕 두 손으로 얼굴 싸쥐고 있다가 태블릿을 세워 얼굴 이쪽 저쪽 비춰본다. 화들짝 일어서며 엎어 놓는다.
S#15. 파우더 룸.
-혜원이 바닥에 앉아 엄지발톱에 새빨간 색 에나멜 칠한다.
-혜원, 손으로 발 끝에 바람 일으켜 말린다.
-손거울로 발끝 비춰보는 혜원.
-거울에 비친 빨간 발톱.
-한참 본다.
-발을 내려다보며 앞으로 뒤로 몇 걸음씩 걸어보는.
S#16. 침실.
-자고 있는 준형(더블 베드). 혜원이 싱글베드 커버를 젖히고 올라가려다 멈칫. 빨간 발톱이 찔린다.
S#17. 파우더룸.
-혜원, 화장 솜에 리무버 적신다. 의자에 발을 올리고 빨간 칠 닦아내는.
S#18. 서회장 침실. 다음 날 아침.
-감미로운 노랫소리와 성숙의 콧노래.
-더블 베드 두 개가 협탁 사이에 두고 놓여있다.
-양쪽으로 각각 서회장과 성숙이 따로 쓰는 드레스룸. 욕실도 두 개 딸려 있다.
-양 쪽의 드레스룸 문이 열려 있다. 성숙이 머리 매만지고 나와서 서회장 드레스룸 쪽으로.
-집사가 셔츠를 받쳐주고 서회장이 팔을 꿴다. 성숙이 들어온다.
성숙 : (상냥 명랑) 내가 할게요.
집사 : 네. (목례하고 나간다)
서회장 : 릴리 여사는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
성숙 : (넥타이 고르는) 점심 약속 있구, 오후엔 진회장댁 컬렉션 자랑질 하는 거 봐 주러 가.
끝나믄 스파 갔다 들어와서 당신 기다릴 거야. 단둘이 놀려구.
서회장 : (흐뭇) 내가 오늘 일진이 좋은가.
성숙 : (흐흥 웃으며 넥타이 서회장 목에 대보는) 이거 어때?
서회장 : 당신 맘이지.
성숙 : (넥타이 매주는) 재단 명의 신탁, 하나 해지해두 돼?
서회장 : (성숙 엉덩이 슬몃) 뭐 하시게.
성숙 : 쪼꼬렛 사 먹게.
S#19. 레슨방 복도. (준형 비밀 교습소)
-양 쪽으로 연습실. 준형이 출입문에 나있는 유리창 들여다본다.
유라가 피아노 치고, 최강사가 서서 한심하다는 듯.
-최강사가 나온다. 고개 절레절레.
-레슨실 안 유라, 폰 거울 보며 귀밑머리 내리는.
준형 : 악보는 외냐?
최강사 : 지금 서너 군데 집중 연습 시키는데, 모르겠어요. 오후엔 또 예비소집이라.
준형 : 실격만 안당하게 해 줘. 민학장 전화 왔더라. 이사장이 신경 많이 쓴다구.
최강사 : 저런 애를 어떻게. 솔직히 너무하지 않나요?
준형 : 한 둘이야?! 어느 집단이나 깔아주는 애들은 있게 마련 아니냐. 재능 있는 애들 뽑아서 키우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지.
최강사 : 아, 증말.
S#20. 양식당 밀실.낮.
-성숙, 혜원, 민학장. 식사 후 다과.
민학장 : 신경 쓸 거 없어. 걘 정시 정원 열 다섯 명 중에 열 다섯 째루 붙을 예정이거든.
피아노과 1차 에이 그룹 시험관이 다섯 명이구, 조인서 말구는 다 우리 쪽이야.
게다가 이번엔 든든한 방패두 하나 있잖아. 이선재.
성숙 : 봤어?
혜원 : 저희 집에서 연주한 거, 동영상 보내드렸거든요.
민학장 : 나 아주, 깜짝 놀랐어. 큰소리 칠 수 있다고. 조인서두 반할 거야.
재단에서 그런 애 하나 확실하게 키우믄 그룹 광고 백 개 하는 거 보다 나아.
혜원 : 그건 좀 과장이지만, 어쨌든 실리와 명분, 둘 다 있죠.
민학장 : 바루 그거지.
성숙 : 설레발은... (혜원에게) 시험 끝나믄 한 번 데리구 와. 손 볼 데 있음 고쳐주구, 한번 만들어 보자.
예술 재단과 이 한성숙이 그룹 이미지 격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두 알려줄 겸.
혜원 : (웃어보이는)
S#21. 서한 음대 정문. 낮.
-예비 소집 안내문.
-선재와 장호, 정문 들어서며 둘러본다. 장호는 다미의 지령으로 따라붙었다.
선재 : (중얼) 대학교다...
장호 : 너 꼭 붙어라. 붙어서, 도서 대출증, 뭐 그런 것두 좀 빌려주구 그래 봐... 야 근데 이 학교 연영과 있냐?
선재 : 몰라. (두리번 찾기만)
장호 : 방송연예과는.
선재 : 몰라... 저쪽이다.
-둘, 음악대학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S#22. 대형 강의실. 낮.
-종수가 주의사항 전달.
-수험생 대부분 이어폰 꽂은 채 건성 듣는다. 책상 끝에 손 걸치고 음계 짚는 애들도 있고...
반면 선재는 긴장하여 듣는다. 장호는 옆으로 한자리 건너 정유라 힐끗거리며 다미와 카톡.
유라는 한눈에 봐도 부잣집 딸 같다. 까칠한 표정이며 명품 옷과 가방, 장신구 등.
종수 : 홈피 공지에 다 떠있지만 다시 한번 확인 하세요. 1차 전형은 네 그룹으로 나눠서 101번부터 150번 까지는 오전.
그 중에 25번까지는 대연주홀, 26번부터 50번까지는 소연주홀. 151번부터 192번까지는 오후,
장호 소리 : 쟤는 딱 봐두 걸친 거만 천만원두 넘겠어. 패딩 3백, 비니 30, 장갑 4십, 귀걸이 백, 가방 4백,
S#23. 뷰티샵 세탁실.
-다미, 구석에 서서 문자.
다미 소리 : 함 꼬셔 보던가... 야 너 이따 밤에, 우리 실장한테 전화해서 뻥 좀 쳐 주라. 내일 결근하게.
S#24. 대형 강의실.
-수험생들 나간다. 장호는 잽싸게 유라 뒤 따르고,
-종수, 안내자료 챙기며 둘러본다. 선재가 쭈삣 거리며 서 있다가 종수와 눈 마주치자 꾸벅.
S#25. 학장실.
-민학장, 준형, 인서, 최강사가 소파에 둘러앉아, 시험관 명단 보면서.
민학장 : 올해는 정말 발표까지 쭉 순탄하게 갑시다. 시험 때마다 번호 이름 사진 다 가리구,
녹화 카메라 돌리구 별짓을 다 하는데두 매번 시끄럽다 말이지.
인서 : 별짓을 다해두 할 짓 다 한다는 게 문제죠.
최강사 : 일단 시험관 명단 확인할게요. 타대학 강사들 그룹 별로 두 명씩,
인서 : 저는 이것두 석연치 않습니다.
민학장 : 뭐가?
인서 : 이 친구들 솔직히 사정 능력이 검증두 안돼있구요, 지금 와서 말해봐야 소용없지만.
준형 : 편견을 버려. 교육자적 양심과 사명감, 그거 너만 갖구 있는 게 아니잖아?
민학장 : (일어서며) 자,자,
S#26. 음대 로비.
-출입문 안쪽, 선재, 좀 떨어져 서서 핸드폰 만지작. 혜원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장호는 짜증스레 통화 중인 유라 주위 어정.
유라 : (짜증) 그러게 내 차루 온대니까 왜 나서가지구...빨리 와. 피곤해. (끊는다)
장호 : 시험, 오전이죠?
유라 : (아래 위 스캔)
장호 : 내 친구랑 거의 앞 뒤루 치겠네. 걘 재수했죠. 난 13학번 현역이구.
유라 : 음대예요?
장호 : 땡. 창조경제학과라구 알어? 요즘 방송연예과를 그렇게 부르잖아.
유라 : (원, 별)
장호 : 선재야, 너네 교수 이름 뭐랬지?
선재 : 어? 어어, 강준형,
유라 : (힐끗)
장호 : 얘가 그 분한테 길거리 캐스팅을, 아니다, 이건 연예계에서나 쓰는 말이지.
암튼, 둘 다 붙으믄 친하게 지내. 나두 여기 와서 좀 놀게. 우리 과 애들 진짜 말이 안통하거든.
도대체 뭐땜에 몇 백년동안 같은 곡을 계속 치냐, 완전 그 수준,
유라 : 나두 그 수준. (간다)
장호 : 오, 반말 고마워.
-유라가 차에 타는 것 보인다.
장호 : 오, 차를 보니까 더 맘에 드네.
선재 : (핸드폰 보며 나직히 탄성) 왔다!
혜원 소리 : 끝났음 사무실로 가. 직원한테 말해놨어.
S#27. 아트센터 지하. 복도.
-선재, 세진 반 발짝 쯤 뒤 따라가는.
세진 : 과제곡 연습하구 있으래요.
선재 : 네...
-세진, 개인 연습실 비밀번호 누른다.
세진 : (문 열어주며) 솔리스트 전용 연습실이예요.
선재 : (아아)
세진 : 저녁은 지하1층 카페테리아에서 먹음 돼요. 실장님 번호 대면 그냥 줄 거예요.
선재 : 네.
S#28. 화랑 건물 앞. 밤.
-성숙과 혜원.
-성숙의 차와 왕비서가 대기 중이고.
혜원 : 저는 택시 불렀어요. 차두 회사에 있구.
성숙 : 맛사지 안할래?
혜원 : 이선재 한번 봐주기로 했거든요. 시험 경험이 전혀 없는 애라.
성숙 : 그럼 진작 말하지. 얼른 가라. 컨디션 잘 챙겨 주구?
혜원 : 네... 들어가세요.
S#29. 교수실 (인서 방)
-인서, 해드폰 쓰고 모니터 뚫어지게 본다.
-혜원 방에서 연주하는 선재. 곁에 서 있는 혜원 모습 보인다.
-동영상 끝나고, 헤드폰 벗는 인서.
S#30. 아트센터 로비.
-혜원, 통화 하며 급히 간다.
혜원 : 어, 인서야... 뭘 또 봐... 근데 자꾸 보구 싶지? ...솔직히 민우보다 낫지 않니? ...그래서, 탐나? 뺏구 싶어?
S#31. 인서 방.
인서 : (전화) 딱 그러구 싶은데, 널 봐서 접는다... 얘, 강선배가 아니라 니가 키울 거잖아.
S#32. 아트센터 계단.
-혜원, 계단 내려가며.
혜원 : 무슨... 나야 군기나 잡는 거지... 기분이 좋긴 해, 무척... 옛날 생각두 나구...
이렇게 말하믄 좀 웃길래나? 내가 떠나온 세계, 내가 하구 싶었던 거,.. 뭔 말인지 알겠지.
S#33. 인서 방. (교수실)
인서 : (전화) 너 아주 푹 빠졌구나?
S#34. 아트센터 복도.
혜원 : 걔가 나한테 빠졌지... (아차) 아니 뭐 그런 뜻은 아니구, 왜 있잖아. 생애 첫 선생님한테 어떻게든 칭찬 받구 싶은 거.
(모퉁이 돌며) 그런 앨 어떻 게 안 이뻐해? (하다가 흠칫)
-경비원, 선재와 부딪칠 뻔. 경비원과 선재가 꾸벅, 하자,
혜원 : (돌변. 사무적) 미안, 나중에 통화 해. (끊고는 선재에게 딱딱) 넌 또 걸렸니?
선재 : 그게 아니라요,
경비원 : 통제실 연락 받구 와봤죠. 카메라에 배회 하는 모습이 자꾸 잡힌다구.
선재 : 화장실 갔다 오니까 문이 잠겨 있어서요.
혜원 : 안에 비번 적혀 있잖아. (경비원에게 상냥히) 잠금 풀어주시구요, 이만 가보셔두 됩니다.
경비원 : 알겠습니다. (목례하고 돌아서며 무전기) 3번 연습실 도어록 해제요.
-혜원, 경비원 얼핏 보고 연습실 향한다. 선재, 반걸음 뒤떨어져 따라간다.
혜원, 선재의 시선 어깨에 꽂히는 것 느껴져 더욱 꼿꼿이, 발소리도 또각또각 내면서.
선재 소리 : 그걸루 난 다 바친 거야. 여신님한테...
-연습실 앞.
혜원 : (문을 열려다가) 밥은 먹었어?
선재 : 아니요 아직.
혜원 : 너 말 좀 안듣는구나? 지금 먹어둬야 밤에 푹 자구, 그래야 아침에 몸이 가볍지! 그 정도 계산두 안돼?
선재 : ...
혜원 : 나 좀 쉬구 있을테니까 먹구 와.
선재 : 네.
혜원 : 배부르게는 말구, 서른 번 씹어서 천천히. 알았어?
-선재, 꾸벅 하고 간다. 혜원, 잠시 보다가 들어간다.
S#35. 연습실.
-혜원, 가방을 탁자에 툭 내려놓고 털썩 앉는다. 방금 전의 긴장이 풀리는 듯.
S#36. 카페테리아.밤.
-쟁반을 집어드는 선재. 앞사람이 하는 것 살핀다. 접시와 포크 스푼 따위 집어 쟁반에 얹고, 앞사람이 덜어 담는대로 따라한다.
-빈 자리 찾아 앉는 선재.
S#37. 연습실.밤.
-혜원, 소파에 다리 길게 뻗고 앉아 통화하며 외투를 배에 대충 덮는다.
혜원 : (통화) 아니. 내일은 늦게 나오셔. 그 전에 밀린 일 처리하자.
재단 감사 자료 정리. 악기랑 미술품 구입 내역서, 영수증 사본 미리 챙겨 놔.
이전 회계연도 예산안이랑 대조하기 쉽게...어...계산두 미리 맞춰보구...어...내일 보자.
-끊고, 시각을 본다. 핸드폰 탁자에 놓고, 가방 집어 머리에 괴고 눕는다...
S#38. 카페테리아.
-꾸역꾸역 먹는 선재.
S#39. 연습실.
-선재가 들어오면 소파에 외투 덮고 누워 자고 있는 혜원.
한쪽 발이 외투 밖으로 삐죽, 소파 모서리에 걸쳐진. 구두가 반쯤 벗겨져 있다.
벽에는 ‘연습실 사용시 주의 사항’ 붙어 있고.
-선재, 얼핏 손을 든다. 구두를 벗겨줘야 할 것 같아서.
S#40. 통제실.
-씨씨티브이 중 하나에 잡히는 선재와 혜원.
당직, 갸웃. 화면 확대.
S#41. 연습실.
-선재, 혜원의 구두 벗겨주고 싶어 손을 댈락 말락하는데, 구두가 벗겨져 툭 떨어진다.
선재 얼른 손을 거두고,
-혜원의 핸드폰 울린다.
-선재, 놀라 반쯤 돌아서고 혜원 일어나 앉으며 외투 주머니 더듬는다.
-핸드폰 꺼내드는 혜원. 발신자명 ‘통제실’
혜원 : (전화) 네, 수고하십니다. 오혜원이예요....네?...네...
(구두 신으며 일어선다. 선재를 한번 보고는) 아아, 아무 일 없어요...이 친구는 연습하러 왔구요...제가 잠깐 잠이 들어서...
한시간 쯤 뒤에 나갈 거예요....네...수고하세요. (끊고 묵음 설정 한 뒤 선재 본다) 너 뭐 이상한 짓 했어? 춤이라두 췄니?
선재 : (절래절래)
S#42. 통제실.
-당직, 모니터 보며 킬킬킬. 한 손으로 조작 버튼 움직이면서.
-모니터. 선재가 혜원 구두에 손대려는 장면 빠르게 포워딩 리와인드 반복. 무성영화 코메디.
당직 : 새끼 이거 진짜 웃기네...
S#43. 연습실.
혜원 : 저거 안보여?
선재 : (네?)
-감시 카메라.
선재 : (본다. 아이고)
혜원 : 너 여기 처음 온 날두 저거 찍혀서 걸린 거 아니니. 믿음 퀵 청년으루.
선재 : 저기 실은, 선생님 구두가 벗겨질려구 해서, 잠 깨실까봐, 죄송합니다.
혜원 : (본다. 입이 간질간질)
혜원 소리 : 어이, 나천재. 아니 너천재. 내가 바로 막귀형이거든?
선재 : (엉거주춤 피아노 가리키는) 칠게요.
S#44. 뷰티 샵 리셉션 데스크.밤.
다미 : (평상복 차림. 짐짓 울먹) 죄송합니다.
직원 : 할 수 없지. 얼른 가 봐. 내일 못나올 거 같으믄 전화 하구.
다미 : 네... (꾸벅 하고 돌아서서 혀끝 낼름)
S#45. 명화 식당 주방.
명화 : (설거지) 니 엄만 대체 몇 번째 돌아가시냐.
다미 : (어묵 따위 먹으며) 이왕 가신 건데 뭐.
명화 : 그래서, 낼 시험장 따라갈 거야?
다미 : 당근. (전화 한다...) 연습을 여태 하나?...
명화 : 일찍 들어와 자얄텐데.
S#46. 아트센터 연습실.
-선재, 마구 실수하면서 치고, 혜원, 구석에 세워진 막대기 집어들어 바닥에 탕.
선재 : (멈춘다)
혜원 : 너 긴장했지? 그게 얼마나 나쁜지 알어? 자세부터 엉망이 돼. 그러니까 뒤로 갈수록 박자가 미친 듯이 빨라지지!
선재 : 때리시믄 맞겠습니다.
혜원 : 허리 끌러.
선재 : 벗구 맞아요?!
혜원 : (허, 부지중에 혼잣말) 이거 아주 흑심 사심 잡심이 만발이네.
선재 : 네?
혜원 : (아차, 수습) 잘 치구 싶다, 꼭 붙어야 한다, 그것두 흑심이구 사심이구 잡심이야.
선재 : 네...
혜원 : 그건 팬다구 없어지는 게 아니지. 내가 배운 대로 가르쳐 줄게. (막대기 들어 보이는) 이거 들어갈 만큼만 끌러 봐.
선재 : (반쯤 돌아앉아 바지 단추 끄르면)
혜원 : 등 세워.
-혜원이 선재의 뒷목 옷깃을 손끝으로 잡아 당겨 막대기 거꾸로 쑥 집어넣는다.
선재 : (이거 뭐야!)
혜원 : 더 세워. 엉치뼈랑 이거랑 직각으루 만나게. (선재 이마 당겨 막대기에 댄다)
선재 : (더 빳빳이)
혜원 : 양 손 주먹.
선재 : (지시대로)
혜원 : 겨드랑이 붙이고, 주먹 당긴다. 어깻죽지로 이걸 잡는다 생각하구...네 박자 두 번 센다...
선재 : (힘껏)
혜원 : 셋 둘 셋 넷 넷 둘, 천천히 팔 내린다. 숨 내 쉬고,
선재 : (후우...)
혜원 : 허파가 손바닥만해질 때까지, 다 비운다...
-준형이 들어온다.
준형 : 뭐 해?
혜원 : 어,
-선재, 막대기 꽂은 채 일어서려.
혜원 : 뭘 일어서. 빠져 가지구...앉어.
선재 : (다시 앉는다. 더 정신없다)
준형 : (빙긋) 너 제대루 걸렸다. 우리가 너만 할 땐 더 독하게 했어.
혜원 : (막대기 뽑아 던지고 선재 양 어깨 움켜쥐더니 뒤로 젖힌다) 어깨 펴라는데.
준형 : 말씀 잘 들어라.
선재 : (간신히) 네.
혜원 : (무릎을 쳐들어 선재 등에 대고 더 젖힌다)
선재 : (헉)
준형 : 그쯤은 돼야지.
혜원 : (선재를 놓고 돌아서서 소파로) 방금 그거 열 번 하구, 다시 쳐 봐.
선재 : (얼이 다 빠져 멍한 채로) 네.
-시간 경과. 선재 연주 중.
혜원은 앉아있고 준형이 곁에 서서 큰 소리로 지시.
준형 : 끌지 말구!...왼 손 포르테!...그렇지, 좋아... (손뼉 치며) 빰바, 밤바, 빰빰!
혜원 : (고개 돌리며 픽 웃음)
S#47. 동 복도.
-준형, 선재의 어깨에 팔 두른 채 나온다. ‘그 부분은 더 약하게 가두 돼. 대신에 박자는 정확히 지켜야지’ 어쩌구 저쩌구.
그 뒤 혜원 나오면서 전화.
혜원 : 3번 연습실 지금 나갑니다... 네, (끊는다)
준형 : 당신 먼저 가. 나 이 놈 데려다 주구,
선재 : (황황) 아닙니다. 바루 가는 뻐스 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허리 꺾어 절하고 돌아서서 마구 간다)
준형 : 어어?
혜원 : 냅 둬. 편하게 가겠다는데.
준형 : (선재 향해) 이선재, 낼두 지금처럼만 쳐!
혜원 : 가서 바루 자라.
-뛰다시피 가는 선재, 손등으로 이마의 땀 닦는다.
S#48. 선재 옥상.밤.
-선재, 헉헉대며 샌드백에 발길질. 올려차기. 돌려차기.
혜원 소리 : 이거 아주 흑심 사심 잡심이 만발이네.
-명화가 선재방에서 내다본다.
명화 : 안 자?
선재 : (차면서) 말 시키지 마. 헉. 쪽 팔려서, 헉 죽을 거 같애.
명화 : ?
S#49. 동 주방.
-선재가 물을 벌컥이고, 명화, 김 오르는 국남비를 휘젓는다.
명화 : 간이 덜 됐는지, 고기가 적은지, 왜 이렇게 슴슴하냐.. (조금 떠서 선재에게) 함 먹어 봐. 낼 아침에 줄 건데.
선재 : (치우라고 손짓하고 물컵 싱크대에 넣는다)
명화 : (먹어본다)
-선재, 싱크대 서랍들 열어 뒤진다.
명화 : 뭐 찾어.
선재 : (퉁명) 손난로.
명화 : 버렸지. 망가져서.
선재 : 버렸으믄 새 걸 사다 놓던가. (발로 서랍 닫고 방으로)
명화 : 다미더러 사오래까? 낼 같이 가준대는데.
선재 : 됐다 그래!
-문 쾅.
명화 : 음마?
S#50. 선재 방.
-선재, 머리를 싸쥐고 엎드려 중얼중얼. 명화가 문간에 서서.
선재 : 흑심 사심 잡심,
명화 : 엄마 말은 말두 아니다 이거야? 내가 아무리 해준 거 없이 고생만 시켰어두 그렇지,
선재 : (앉는다) 아 진짜,
명화 : (삐질) 내가 너 키우면서 기도를 얼마나 했는데! 동네 애들 다 지 엄마 지갑 뒤져서 오락실 다닐 때,
넌 제발 그런 짓 하지 말라구 피아노두 안 팔구,
선재 : 알어...
명화 : 근데 왜.
선재 : 나 자야 되거든?
명화 : 알았어. 잘 자. (나간다)
선재 : (다시 털썩 고스라지는) 어후우...
S#51. 혜원 침실 다음 날 이른 아침.
-커튼이 양쪽으로 열리면서(자동) 아침 안개 휘감은 앞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준형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턴다.
까운 차림 혜원이 리모컨 눌러 티브이를 켜고, 준형이 급히 욕실로.
-아침 뉴스.
준형 : 날씨 어때. 춥지 않어?
혜원 : 쪼끔.
-화장실 안의 준형, 볼일 보며 큰 소리.
준형 : 종수더러 가서 태워 오랠까?
혜원 : 길 막힐 거 같은데? (문자 찍는)
S#52. 선재 방.이른 아침.
-선재, 책상 위 핸드폰. 곁에는 수험표와 지갑 따위 반듯하게.
혜원 소리 : 지하철 타.
S#53. 선재 욕실.
-선재, 샤워기 손에 들고 머리 헹군다.
S#54. 거실. 조금 후.
-선재가 욕실에서 나온다. 벗은 웃통. 한손으로 수건으로 머리 닦으며.
-다미가 안방 들여다보고 있다. 장호는 밥을 푸고.
다미 : 아줌마는?
선재 : (본다) 왜,
-식탁 위 차리다 만 밥.
S#55. 동네.
-명화, 뛰다시피 걸으며 통화.
명화 : 아이구 얘, 손난로 샀다. 아직 문을 안열어가지구, 다 돌아다녔어.
S#56. 선재 거실.
-선재, 서서 버럭거리며 통화. 장호와 다미는 앉아서 국에 만 밥을 퍼먹으며 힐끗.
선재 : 나가믄 나간다구 말을 하던가! 놀랬잖아, 아침부터!
S#57. 동네.
-명화, 위태롭게 길을 건너며 통화. 약국 봉다리와 손지갑 대롱대롱 매달린 손을 들어 주행 차량 막아가면서.
명화 : 아유 알았어 미안해. 암튼 샀으니까, 밥 먹구 있어. 지금 동사무소 지난다. 금방 가. 막 뛰어 가께.
-골목안 연립주택 신축 공사장에서 나오는 덤프 트럭 보인다.
S#58. 선재 거실.
선재 : (식탁 앞에 앉는다) 뛰지 말구 걸어 와, 넘어져! ...글쎄 천천히, (하다가 흠칫) 엄마?...여보세요?
다미,장호 : ?
선재 : 여보세요?! (더럭 불길) 엄마?!...
S#59. 서한 음대 교정.
-곳곳에 과별 실기 시험장 안내판.
S#60. 응시자 대기실.
-수험생들, 이어폰으로 과제곡 들으며 책상 끝을 건반 삼아 손가락 연습 중. 가슴에는 수험표.
-전면 칠판에 ‘공정한 전형을 위하여 응시생 전원의 실기 장면은 녹화됩니다’
-종수가 응시자들 이름 부르며 얼굴 대조한다. 손을 들어보이며 대답하는 응시자들.
종수 : 124번 이선재.
-정유라, 껌 씹으며 둘러본다.
종수 : 이선재... (선재의 원서 접어놓고) 125번 정유라.
유라 : (풍선 불며 손 든다)
S#61. 실기시험장.
-준형,인준, 최강사, 차(여, 40대 후반), 장(30대 후반, 전임) 등 5명의 심사위원이 들어온다.
-피아노 옆에 비디오 카메라 세워져 있다.
인서 : 그 친구, 기대할게요.
준형 : 어,뭐, 그냥 하던대루 하라 그랬어.
-종수가 들어온다. 교수들에게 목례하고 준형에게 저 잠깐만,
S#62. 복도.
종수 : 열 시에 대기실 문 닫습니다. 그때까지 안오면 자동 실격,
준형 : (초조하다. 핸드폰 꺼내 단축번호 누른다)
S#63. 혜원 사무실.
혜원 : (통화. 미치겠다) 이선재, 전화 받어! 너 이렇게 소심해? 겁 먹었어?!
S#64. 선재 집 현관 앞. 낮.
-혜원, 문 밀어본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S#65. 명화 식당 앞.
-혜원, 급히 차를 향하며 통화.
혜원 : 일단 위치 추적 좀 해봐... 글쎄 지금은 꺼져 있지만, 연결이 될지두 모르잖어!
S#66. 실기시험장.
최강사 : 수험번호 124번, 결시로 실격 처리합니다.
-인서와 강사들, 준형을 보고, 굳은 채 말이 없는 준형.
장 : 갑자기 얼었나. 경험이 전혀 없다더니.
차 : 하긴 그런 애들 있더라. 좀 친다 해두 사회성 빵 점.
장 : 그럼 의미가 없는 거지.
인서 : (준형을 본다) 혹시 사고라두 난 거 아냐?
준형 : (이를 악무는)
S#67. 학장실.
민학장 : 실격?!
S#68. 성숙 사무실.
성숙 : 무슨 일을 그렇게 하니?!
S#69. 혜원 사무실.
-혜원, 전화기를 든 채 책상 옆에 서서 굳은 표정. 영우가 문간에서 비아냥.
영우 : 그러니까 너네 지금, 그애 내세워서 끼워 팔기 할래다가 망한 꼴이다 그치? 완전 사기극.
-왈칵 문 열리며 세진.
혜원, 돌아본다.
세진 : 찾았어요!
S#70. 장례식장 복도. 밤.
-저만치 영안실. 빈소 앞에 물끄러미 앉아 있는 선재가 보인다. 아무도 없다.
-혜원, 더 가지 못한다. 곁에 세진과 종수.
혜원 : (중얼) 난 못 보겠다...
세진 : (본다. 글썽)
-혜원, 가방에서 봉투 꺼내 세진에게 주고 돌아선다.
S#71. 동 주차장.
-혜원, 차를 향해 가고,
-일각. 장호와 다미. 장호가 담배 꽁초를 휴지통에 넣는다.
다미 : (눈물 콧물) 내가, 까불어서, 돌아가신 거 같애. 사고 났다구 거짓말 해서, 끅끅끅...
장호 : 그렇게 생각하믄 못살지... 선재는 백배 천배 더 할 거 아냐...
S#72. 영안실.
-선재와 세진, 종수, 마주 서서.
세진 : 실장님두 같이 오셨는데요, 밖에 계세요... 맘 아파서 못 보시겠다구...
선재 : (눈 앞만 볼 뿐. 퉁퉁 부었다)
세진 : (어떡해...정신이 나간 거 같애...)
종수 : (선재 어깨 툭 친다) 기운 내라. 다 멘붕이지만 뭐, 어쩌겠냐, 니가 젤 안된 걸.
선재 : (여전히)
S#73. 화장장.
-명화의 관이 불길 속으로.
-명화의 사진.
-다미가 벽에 기대 눈물 철철.
-울부짖으며 따라들어가려는 선재. 장호가 붙잡는다.
S#74. 명화 식당 앞. 며칠 후 낮.
-식당 문에 ‘임대’라 큼직하게 쓰인 종이가 붙어 있고,
길 가에 서 있는 1톤 트럭(동아 피아노. 중고 매매 및 수리 전문. 000-0000-0000)에 선재의 피아노 실린다.
짐칸에 비스듬히 걸쳐진 널판 위로 중고상과 선재가 피아노를 밀어 올리는.
-피아노에 모포를 씌우는 중고상. 선재가 거든다.
-다미와 장호가 불안하게 바라본다.
장호 : 괜찮겠냐?
선재 : 뭐가.
다미 : 니가 저거 없이 어떡할라구.
중고상 : (손 멈춘다) 어떻게, 도루 내려?
선재 : 아니요.
-트럭에서 내린 중고상이 고무 밧줄을 고리에 걸고, 짐칸 위의 밧줄을 당겨준다.
-밧줄 다 맨 중고상이 짐칸을 닫으며,
중고상 : 혹시 밤새 맘 바뀌면 연락해요. 산 값에 다시 팔아 주께.
선재 : 가세요.
-트럭 떠난다. 선재들, 식당으로 들어가고
-멀찍이, 차안에서 바라보는 혜원. 저 애를 어떡해야 하나.
S#75. 혜원 주방. 밤.
-혜원, 턱을 괴고 앉아 앞에 놓인 찻잔 만지작. 준형이 어귀에 서서.
준형 : 가라 그래. 되다 만 놈. 말이 쉬워 군대지, 한창 때 2년 그렇게 보내믄 재능이구 나발이구가 어딨어.
인생 그렇게 꼬이는 애들은 어차피 안돼. (돌아선다)
S#76. 북한 강변 전경.낮. 봄.
-공무수행 트럭 달린다.
-짐칸의 선재와 김주사, 각종 현수막과 포스터 잔뜩 실려 있다.
공익요원 제복 차림의 선재, 붉은 바닥 면장갑 낀 손을 무릎에 걸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무심히 바라 본다.
햇살이 눈을 찔러 귀찮다.
S#77. 남양주군 어느 면사무소 앞.낮.
-게시판에 스태플러 팡팡 두들겨 찍어가며 포스터 붙이는 선재(공익요원 제복) ‘민속놀이 경연대회’ ‘강나루 축제’ 등등.
곁에 놓인 상자에는 각종 포스터 잔뜩 담겨 있다.
-1톤 트럭과 오토바이 서 있다. 트럭 운전석 앞에 ‘공무수행’ 팻말.
-서툰 왈츠곡과 구령 소리. 엉 드 트르와, 엉, 드, 트르와...
-맞은 편 상가 2층 무용 학원.
선재 : (중얼) 잘 좀 하지...
-집배원 오토바이 온다.
-선재, 우편물 한아름 받는다.
S#78. 면사무소 안.
-선재가 우편물 책상 마다에 올려놓는다.
김주사 : 이선재,
선재 : 네.
김주사 : 숙직 좀 대신해 주라. 축구회 회식이 있어가지고.
선재 : 네.
김주사 : 불만 있냐?
선재 : (우편물 집어 확인하고 책상 위에)
김주사 : 불만 있냐고.
선재 : 아닙니다.
-선재, 다시 우편물 나눠주다가 멈칫.
-받는 사람 이선재 보내는 사람 오혜원. 내용물 : 책. (서한 예술재단 봉투)
-멍해지는 선재.
S#79. 숙직실. 밤.
-트레이닝 복 차림 선재, 책상 앞에 앉아있다. 조그만 머릿등 불빛.
앞에는 책 한권. 표지엔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나이와 제목. ‘리흐테르’
-선재, 감히 책장을 넘기지 못해 떨리는 손끝. 이윽고 표지 넘기는.
-조금 후, 찬찬히 읽는 선재...한 장 넘기면,
-여기저기 밑줄들..
-넘긴다. 또 밑줄..
혜원 소리 : 선생님의 편지에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돌아와라. 너는 내 가장 뛰어난 제자다...’
묵을 곳도 없었지만 어디에서든 연습을 했다. 음악원 교실이든 친구네 집이든 가리지 않았다.
-뒷짐 지고 벽에 기대 서서 물끄러미 눈 앞을 보는 선재.
혜원 소리 : 어디를 가든 잠자리가 불편하지도 않았다. 스승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신세를 질 때에, 나는 피아노 밑에서 잤다.
-선재, 망연자실, 몸을 돌려 모로 기댄다. 눈물 후두둑 떨어진다. 가슴팍이 쪼개지는 것 같다. 사정없이 흐르는 눈물.
S#80. 술집 앞. 밤.
-혜원의 차가 다가와 선다. 도산 공원 부근 이면 도로. 복잡하다.
-주차요원과 지배인이 달려간다.
-혜원, 지배인 에스코트 받으며 들어가고, 주차요원이 혜원의 차 몰고 부근 주차장으로.
-다미가 좌우 둘러보며 온다. 장호가 술집에서 급히 나온다.
S#81. 술집. 룸.
-혜원과 종업원이 들어온다.
-영우와 우성(젊은남의 예명)이 키스하며 마구 만지다가 떨어진다. 우성이 엉거주춤 일어서고,
영우 : 뭐 이렇게 늦어?
혜원 : 나오는데 강교수 전화가 와서.
-우성은 나가고 혜원, 종업원 시중 받아 외투 벗는다.
영우 : 애들 델구 엠티 갔다며.
혜원 : 뭐 이것저것 시키더라... 근데 넌 꼭 여기서 봐야 돼?
영우 : 왜, 겁나?
혜원 : (스카프도 벗어서 종업원에게 주고 외투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낸다) 내 취향 아닌 거 알면서.
영우 : 니 취향 따위 관심 없지. (종업원에게) 애들 델구 오라구 해.
종업원 : (혜원의 외투와 스카프 단정히 걸어놓는다) 네. (나간다)
혜원 : (앉아서 생수병 마개 딴다. 곁에 핸드폰) 뭐하자는 거야...
영우 : 널 다시 내 사람 만들겠다는 거다, 나처럼 타락시켜서.
혜원 : (마시려다 풉)
영우 : 허, 웃겨?
혜원 : (냅킨 집어 닦는다) 웃기지 그럼.
S#82. 술집 앞.
다미 : 나 혼자 가란 말야?
장호 : 그럼 어떡해. 오디션 잡아놨다는데.
다미 : 오밤중에? (팔 잡아 끈다) 잔소리 말구 가. 좀 있으믄 차 끊어져.
장호 : 아, 그게 원래, 술 한잔 하면서 자연스럽게,
종업원 : 야, 져스틴!
장호 : (돌아보고는 황황히 다미를 돌려세우는) 진짜 미안한데,
다미 : 져스틴? 니가 저스틴?
장호 : 암튼 끝나구 전화 하께. (뛰어가며 급히 전화 받는다) 어, 유라야, 오빠 지금 오디션 중이거든?
다미 : 야, 너,
S#83. 술집. 룸.
-영우의 내연남을 필두로 청년들 서너명 들어온다. 장호는 맨 끝.
혜원, 팔짱 끼고 바라본다.
영우 : (혜원 전화기 집어 구석으로 던진다) 도망갈 생각 마. 밖에 애들 지키구 있다.
혜원 : (픔, 웃음)
영우남 : 일동 인사.
청년들 : (허리 굽힌다)
영우남 : 제 후배들입니다. 다 예술 분야에 종사하구 있구요, 하나같이 감성이 뛰어나구 고급스럽죠.
영우 : 골라 봐.
영우남 : 네, 친구분(혜원)두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시라구, (장호 가리키는) 이 친구는 처음이예요.
장호 : (손을 들어 보인다) 유 캔 콜 미 저스틴.
영우 : 귀엽네.
혜원 : 미안한데, 자리 좀 비켜주시믄 안될까요? 긴히 할 얘기가 있어서.
영우 : 됐구, 각자 특기부터 보여 줘봐.
-하는데, 챙그랑.
-혜원이 반토막 깨진 맥주병 들어 보이고, 다들 얼음.
혜원 : 나 이런 누나거든? 말 듣지?
영우 : 죽을래?!
영우남 : (어떡해요 누님)
S#84. 국도. 밤.
-달리는 트럭. 공무수행 팻말 그대로. 묵묵히 운전하는 선재.
S#85. 술집. 밤.
-남자들 없고, 영우와 혜원, 동시에 스트레이트 잔 비운다. 웬만큼 취했다.
-종업원이 새 양주병 따서 놓아주고 나간다.
영우 : 나쁜 년.
혜원 : (술잔 두 개 채우는) 술은 같이 마셔주잖아.
영우 : 얼마나 버티나 보자. (또 원샷)
혜원 : (비우고는) 영우야.
영우 : 뭐!
혜원 : 내가 맨날 말하지. 윤리 도덕 괜히 있는 거 아니라구. 도로교통법 어기믄 사고 난다구. 정지선은 지키라구.
영우 : (혜원 흉내) 내가 맨날 말하지. 그딴 건 너나 지키라구.
혜원 : 너 저 친구 계속 만나는 거, 이사장이 크게 한 번 써먹을 거야.
지난 달에 사고 치구 남편한테 여권 압수 당한 건 다행히 아직 모르지만.
영우 : 나두 써먹을 거 많어. 백선생 딸은 기어이 붙여 줬더라? 그 여자 부탁은 거절 못한대며, 개인 자금을 하두 많이 불려줘서.
혜원 : 니가 그거 건드리기 전에, 이사장이 니 남편 쪽이랑 손 잡을 거다.
영우 : 안 무섭거든? 그것들 다 나보다 백 배 천 배 더해.
혜원 : 정리 해라. 돈 주구 사는 애인이 뭐 그렇게 좋다구.
영우 : 나두 좋지는 않어. 근데 위로는 돼.
혜원 : (본다)
영우 : (삐질삐질) 다 알면서 왜 그래. 인생 단 한 번인데, 나두 제대루 된 사랑 한번 해보구 싶지.
너 정말 내가 얼마나 외로운지 알어? 어쩌다 하나 얻어걸리믄 행여나 차일까 수표부터 쳐바르는 내 심정, 알기나 해?
혜원 : (물끄러미 보다가 단호히 술잔 비우고는) 병이야. 남자 끊구 상담 받어.
영우 : 그렇게 말하지 마... 나 너 밖에 없는데. 엉엉.
혜원 : (술 따르는) 요거 마시구 일어나자.
S#86. 술집 앞. 밤.
-최기사와 지배인이 영우를 부축하여 힘겹게 차에 태우고 혜원은 우성을 술집 안으로 밀며 타이른다.
영우 : 얘 어딨어. 우성아. 우성아,
혜원 : 험한 꼴 당하구 싶지 않음 우리 서대표 당분간 만나지 말아요. 이쪽 동네두 좀 멀리 하시구.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우성 : (기에 눌려) 알겠습니다.
혜원 : (최기사에게) 내일 아침 성북동 조찬 날이예요. 삼성동 가자 그래두 들어주지 마세요. 꼭 댁으루 모셔야 돼.
최기사 : 너무 취하셨는데 괜찮을까요? 전무님두 귀국 하셨구요.
혜원 : 전화 해놨어요. 나랑 마셨다구.
최기사 : 네.
지배인 : 저, 대리 왔습니다.
혜원 : (본다) 안녕하세요.
-혜원 차 곁에서 대리기사(여)가 목례.
-영우의 차 떠나고, 혜원, 차에 탄다.
S#87. 혜원 집 부근. 밤.
-혜원의 차 꺾어서 접어든다.
기사 : 참 꼿꼿하시네요.
혜원 : (후우...) 아직 업무가 덜 끝났잖아요. 집에 들어가서 확인 전화 다 돌린 담에 쓰러져야죠.
기사 : 암튼 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혜원 : 제가 감사하죠... (차창 밖을 보면)
-차창에 비친 혜원 얼굴. 지친 모습.
-공무수행 트럭(운전석 비어있는)이 서 있고, 그 옆을 지나치는 혜원의 차.
S#88. 면사무소 앞.
-문 앞에 앉아 있는 다미.
S#89. 혜원 집 마당.
-혜원 차 안. 혜원, 기사에게 팁을 준다.
기사 : 아니예요. 팁 받았어요.
혜원 : 그건 그거구.
기사 : 감사합니다.
혜원 : 살펴 가세요.
기사 : 네,
-기사 가고, 혜원, 현관 향해 돌아서며 중얼.
혜원 : 어후, 확 오르네.
-현관 계단 앞. 혜원이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밑을 조심하며 한 칸 올라서려는데,
선재 : 저예요.
혜원 : (흠칫, 보는)
-뒤꼍 모퉁이 쪽에 누가 있다.
혜원 : 누구,
선재 : 선재요.
혜원 : (쿵) 너라구?...
-그 누가 터벅터벅 다가온다. 내가 지금 취중 환상을 보고 있나... 앞에 마주 선다. 선재다.
혜원 : 그래...너구나...
선재 : (네...)
혜원 : (취기를 억누르며 어른 미소. 정신 차리자는) 근데 좀 달라 보인다? 그 새 좀 컸나?
선재 : 그건 잘 모르겠구, 달라지긴 한 거 같아요.
혜원 : 책은 받았어?
선재 : 네...
혜원 : 읽어봤니?
선재 : 밑줄 치신 데만,
혜원 : 어땠어?
선재 : ...흔들렸어요, 다 끊었는데.
혜원 : 그러라구 보냈어. 니 재주가 아까워서.
선재 : (마른 침 꿀꺽)
혜원 : (새삼 웃음) 아직 많이 힘들구나?
선재 : 아니요, 저, 아주 잘 지내니까, 그런 거 보내시지 말라구,
혜원 : 거짓말 하믄 못 쓰지. 선생님한테.
선재 : 맞아요, 거짓말이죠. 근데 상관 없어요, 다 지옥이라,
혜원 : 저런... (선재 뺨을 쓸어준다)
선재 : (고개를 뒤로) 하지 마세요.
혜원 : (멈칫. 과했나?)
선재 : 제가, 돌아버리잖아요. (안는다)
혜원 : (헉...) 너,너, (밀어낼 수가 없다)
선재 : (안은 채 한 손으로 혜원의 뒤통수 감싼다. 떨리는 입술 가까이)
혜원 : (가방 떨구는 혜원)
-입술이 닿고 또 닿고,
-망설이는 혜원의 두 손. 마주 안고 싶다. 어쩌자고.
3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