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2004년 4월16~17일
산행지:통영 사량도 지리망산
만날곳:압구정동 현대백 주차장(밤11시)
제85차 산행지는 3월 도봉산에서 정한 사량도와 거제도다. 안내는 거제가 고향인 형철.약속시간인 4월 16일 밤 11시에 일행 11명(당초예상 14명)이 모두 모여 들뜬 마음으로 25인승 버스에 올랐다. 독감으로 인주가 불참하고 상희역시 불참, 인상은 호언장담과 달리 불참.재윤은 4월 15일 저녁 6시의 충격에도 불구 참석. 11시 10분에 압구정에서 장도에 올랐다.
참석자:이명인,이대용,김원탁,이종원,김재윤,김호경,이정우,김승기,김형철,서영준,최혜관(무게순)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호경이 숙면을 위한 처방전을 돌리기 시작.소맥의 폭탄주 두서너배 돌쯤 원탁의 휴대폰에 벨소리.왕비의 엄명," 술 먹지 말라". 뒤이어 명인," 물 많이 먹어라 ".땀 많이 흘리니 수분 보충에 신경쓰란 말인가? 원탁은 왕비의 엄명에도 불구 잔꺽기가 분주하다.
술 몇잔이 돌즈음 영준이 공병 의무병 시절 감기약 대신 설사약을 조제한 애기를 시작으로 그뒤를 이어 종원이 유머 한마당. 외국인이 이해할 수 없는 질문 세가지.
첫째;motel에 가면--잠을 주무실건가요?
둘째;이발소에 가면--머리 깍으실 건가요?
셋째;안마시술소에 가면--안마 받으실 건가요?
우리의 회장은 일찌감치 맨 뒷좌석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다.여행 떠나기전 고된 노동이라도 한걸까?재윤은 남자의 귀소본능을 주장하는데 이는 사량도와 거제도에서도 이어진다.
12시30분에 죽암 휴게소에 들러 잠시 휴식후 호경이 보초를 서고 일행은 잠을 청했다.대용이 지는 길다고 필자와 자리를 바꾸잔다. 무릎 꺽어지기는 마찬가지다.이눔아! 호경의 심문이 점점 날카로워진다. 고향이 어디요? 나이가 몇이요? 애는? 어디 사셨오? 등등. 해군 범죄수사단에 있었는지 호경의 심문에 운짱은 그 흔한 졸음운전 한번 못해보고 산청 휴게소에 잠시 들른뒤 일행을 통영 가오치 선착장에 새벽 4시 도착시킨다.
첫배 출항시간이 7시라 아침식사를 위해 통영으로 향했다.눈비비고 봐도 그시간에 식당찾기가 만만찮다.결국 통영항변 60년전통 3대 충무 할매 김밥집 간판에 적힌 시래기국밥에 시선이 집중.허나 시래기국밥 대신 김밥용 배추국에 밥 말아 먹었다.
그것도 옆집에서 얻어온 것. 값은 시래기 국밥으로.그 새벽 주인 할머니 상대생 뺨쳤다. 더불어 시킨 충무 김밥도 남아 남은 것을 챙겨 산에서 먹기로 했으나 우여곡절로 그 김밥은 햇빛도 못 본채 그일생을 다하게 된다. 무 김치는 일미여서 호경이의 소주안주로 빛을 발하게 된다.
가오치에 도착하여 7 시까지 시간 죽이기다.드디어 7 시에 사량호에 몸을 싣고 사량도로 향했다.어느새 해가 떠 일출을 놓쳤지만 잠시후 시야에 들어온 사량도를 보며
부푼가슴으로 다가올 산행을 기다렸고 호경을 비롯한 몇몇은 객실에서 못 다한 수면을 취했다.
<사량호에서 바라본 사량도>
<사량도 주능선>
사량도(蛇梁島)는 크게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으로 되어 있지만 삼천포 바로 앞에 있는 수우도도 사량면에 속한다.섬 이름을 사량도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윗섬과 아랫섬의 건널목인 동강 나루에서 뱀이 꼬리를 물고 다리(梁)처럼 지나다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상도의 중심지인 금평리 진촌은 신라 시대에 청해진 을 설치했던 장보고 장군이 머물렀던 곳인데,고려 말엽에는 왜구의 잦은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서 최영 장군도 여기에 오래 머물렀다 한다.돈지리는 500여 년 전 진촌마을에 진 을 설치할 때 다른 마을에 비해 부역을 가장 많이 한 마을이라 하여 "고된 지게" 라는 뜻에서 "된지게" 라고 했다가 "돈지" 가 되었다고 한다. 상도와 하도이외에 유인도인 수우도,무인도 6 개로 이뤄졌다.
7 시 40 분 상도의 금평항에 도착.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산행 출발지인 돈지로 향했다.기사의 구수한 안내방송.지리산은 맑은날 지리산을 볼 수있다 하여 지리망산으로도 불려지며 수직 철제 사다리에서 손을 놓으면 헬기로 하산케 되니 놓치 말라는 친절도 곁들였다.
8 시 10 분 돈지분교를 끼고 산행 시작.초반부터 급경사가 시작되는데 일행은 말없이 오른다.숨이 턱에 차니까. 가파른 길을 겨우 지나 능선에 도착.잠시휴식.반대편으로 쪽빛 바다가 눈에 잡힌다. 지리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타가 바위능선에 앉아 종원의 내자가 정성스레 준비한 수박과 딸기 그리고 방울도마토로 갈증을 풀었다. 아이스팩으로 무장해 시원함을 더한 과일에 호경의 연이은 탄성이 따른다.종원의 상식 한토막:" 전립선염은 성병이 아니다." 영준의 최신형 디카가 빛을 발하고 회장의 아카,원탁의 노디카도 바쁘다.정우의 실화 한마당." 도봉산 우이암을 거쳐 도봉산장에 도착하여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된채 산장에 들어선 순간, 누군가 "밖에 비와요?" 하더란다.
<바위능선 1 ,2,>
9 시 50 분에 지리산(398M)정상에 도착.기념촬영과 간단요기.사방을 둘러보니 장관이다. 남부 내륙의 산과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이 눈에 벗어나지 않아 즐거움을 더해준다. 수우도와 논개도가 바로 코앞 쪽빛바다 가운데 떠있고 잠깐 바닷바람과 산바람이 어우러져 머릿카락 흩날리는데 이 또한 상쾌하기 그지없다.
<지리산에서본 논개도와 수우도>
<지리산 정상에서 일행>
<지리산에서본 불모산,가마봉,옥녀봉>
배낭 둘러메고 최고봉인 불모산(399M)을 향해 전진.능선은 암릉과 육산으로 형성되어 있어 급한 바위벼랑을 지날 때는 오금이 저려오기도 한다.깎아지른 바위벼랑 사이로 해풍에 시달린 노송이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가 하면 바위 능선을 싸고 있는 숲은 기암괴석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별세계"를 연출한다.고개를 들면 한려수도의 그 곱고 맑은 물길에 다도해의 섬 그림자가 환상처럼 떠오르고,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솟구치고 혹은 웅크린 바위 묏부리와 능선은 말없이 세속의 허망함을 일깨워 준다.
불모산을 앞두고 잠시 휴식. 호경의 레미마틴 꼬냑에 재윤의 치즈stick이 제격.이틈에 원탁의 초밥(내자가 정성들여 만든)도 동이 난다.다시 전진.호경의 걸쭉한 노래.필자의 맞장구. 불모산 밑에 도달.매달려있는 밧줄을 보다 일행은 우회코스를 이용키로 하는데 꼭 한놈이 거스른다. 호경 혼자 불모산 정상을 밟았다. 이때가 11 시 20 분경.
가마봉을 100M 정도 앞두고 간단 요기.충무에서 싸온 김밥을 찾았으나 헛탕.재윤이 어떤 가방에 넣었는데 하필 정우가 버스에 남겨놀 가방에다 넣었을 줄이야! 해서 필자의 비상용 고추참치와 김밥용 무김치로 안주삼고 대용의 숯빵과 영준의 내자 닮은 예쁜 흰빵으로 요기를 대신했다. 이때 형철이 수년후 거제로 냑향한다고 선언. 질세라 대용도 청도로 낙향 결정. 회장의 산식구 감소 걱정과 언젠가 청도산행의 기대감.대용이 마침내 결단. 체력(?)을 빌미로 최대 난코스인 가마봉과 옥녀봉을 앞두고 하산 결정.
<가마봉을 올라가는 바위능선 과 올라가는 회원들>
<가마봉 정상에서>
밧줄타고 가마봉(303M)에 오르니 뒤쪽으로는 불모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좌우로 남해, 다도해가 눈속으로 들어온다.영준의 디카가 불을 뿜는다. 이때가 12 시 50분경.
<가마봉에서 바라본 불모산>
가마봉을 내려오는 철제 사다리에서 상황 발생.원탁이 20M 수직 사다리로 하강 거부.오늘의 산다람쥐 호경 정우의 에스코트로 무사히 하강.이를 두고 후에 원탁은 구사일생 아닌 구졸일생(九卒一生)으로 칭했다.
<가마봉에서 내려오는 철계단>
옥녀봉은 거의 수직벽을 20M 밧줄로 올라가고 10M 수직 밧줄 사다리 하강 코스.
호경 정우 두놈이 정상을 밟고 나머지는 우회.이때가 13 시 40 분경. 옥녀봉의 전설 한토막."계부의 비뚤어진 욕정에 못이겨 옥녀는 계부에게 옥녀봉에 오르면 몸을 허락하겠다고 하고,옥녀봉에 올라 계부가 그곳까지 오자 벼랑으로 몸을 던져 자진햇다 한다."
<옥녀봉 오르고 내려가기 와 옥녀봉>
옥녀봉을 지나 10여분 가면 옥녀 돌무덤이 있다. 허나 돌무덤위에 팻말은 이곳이 옥녀봉이라 적혀 있으니 어디가 진짜 옥녀봉인지 아리송하다.
<옥녀 돌무덤>
이젠 본격 하산. 가파른 하산길을 종종 서둘러 금평항에 도착하여 대용과 해후. 이때가 14 시 30 분경.보통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를 6시간 20분이나 걸렸다.경치에 폭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부둣가 무명횟집에서 산낙지,해삼,멍게에 맥주로 목을 축이고 배출항 시간인 16 시까지 자유시간.
<무명 횟집에서>
시간죽이기는 막걸리가 제격. 파전에 막걸리. 우리 회장은 무슨 걱정이 있는지 어슬렁거린다.이사이 종원과 재윤은 황금다방에서 귀소본능에 의해 안식처를 찾기에 이르는데 대용이 뒤늦게 나타나 깽판 쳤단다.
16 시에 사량호에 몸을 싣고 통영으로 향. 8 시간 동안의 사량도 사랑도 끝나고 지친 일행 대부분 객실에서 잠을 청하고 체력을 비축한 대용은 상갑판에서 해상경치 감상.사량도를 뒤로하며 퍼온 시한수 읊는다.
사 량 도(蛇 梁 島)
비상하는 갈매기를 바라보고 그냥 한 마리 새가 되고 싶었다.
분재같은 섬들이 황홀하게 앉으니 난 바다의 섬이고 싶었다.
마을버스가 한낮에 더위를 싣고 간 자리엔 폐선들이 졸고 있엇다.
바다! 남해바다!
숨겨논 바다가 사량도 지리산 능선 뒤로 보였다.
이대로 저 푸른 바다에 뛰어 내리면 물고기가 될거야!
바위산 기슭에 날개 접고 앉으면 새가 될거야!
나는 사량도 옥녀봉 바위 끝에 앉아 마을버스가 되었다가 섬이 되엇고,
폐선이 되었다가 물고기가 되고 한마리 새가 되어 보았다.
<사량도 산행지도>
16 시 45 분 통영 가오치에 도착. 버스에 몸을 싣고 형철의 고향 거제시 하청면으로 향했다.거제대교를 지나 삼성조선소를 옆에 끼고 버스는 줄창 달려 하청에 이르러 대중목욕탕에서 더러운 몸을 씻고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다. 18 시 20 분경 형철의 집 도착.대문앞에서 형철의 어머니, 누이, 형철의 내자의 환영.이 가문의 종부가 서을에서 내려와 우리를 맞을 줄이야! 언젠가 청도에 가면 또 한분의 종부가 문 앞에서 우리를 반겨 줄 것이 틀림없다.
형철 아버님께 인사후 오늘의 침소인 옆 사당내 송년재(松年齋)에 여장을 풀고
만찬을 위해 "해안횟집"으로 향했다.자연산 도다리와 농어의 세꼬시, 자연산 멍게, 굴, 이지방 특산품인 죽순에 두릅까지.재윤이 갖고온 발렌타인21. 폭탄주 두 서너배에 일행은 이성을 잃어가고,목소리는 커지고,우애는 돈독해지고 있엇다. 폭탄주후 소주로 일행은 오늘을 벗어나고 있엇다.명인도 물대신 술을 꽤나 마셨다. 산행기를 위해 열심히 시간 check 를 하던 필자도 몇시에 그곳을 떠났는지 알 길이 없고 깜깜한 밤 부둣가에서 낚시를 하던 두 할머니 기억과 남기고 온 안주가 많았다는 기억이 전부다.침소로 향하던 중 뒤풀이로 몇몇이 노래방에 들렀고 명인이 장원이었다.
재윤과 종원은 귀소본능에 의해 밤거리를 헤맸다고 한다.영준은 감기로 인해 맥주만 몇잔 마시고 말았으니 오호 아까운지고! 혹여 감기들까 걱정하여 형철 아버님이 실내온도를 28 도로 지정. 모처럼 일행은 찜질을 하고,그 덕에 어제의 고된 산행과 폭주에도 불구 06 시에 전부 멀쩡하게 기상하였다.출발전 형철의 중시조 묘역을 둘러보았다. 중시조께서는 임진왜란때 공로로 임금님이 가선대부 로 명하셨고, 정일품에 이르셨단다. 현충사 사당을 굽어 보고 있는 소나무는 기백년은 되 보이는데 우리가 머물렀던 송년재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07 시에 형철 가족의 환송을 받으며 오늘의 코스인 해금강과 외도 관광을 위해 학동으로 향.떠나기전 작년에도 왔었던 명인은 형철 아버님께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 후 유자차 부탁도 빼놓치 않았다.버스를 타고 학동으로 향 하는데 곳곳에 죽림이라.모두 어제 먹은 죽순을 떠올리는데 대용이 시한수 읊조린다.
"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옥포조선소를 끼고 지세포와 구조라를 지나 학동에 08 시에 도착. 몽돌 해수욕장으로 유명.서둘러 바지락 해장국과 된장찌게로 아침을 해결. 08 시45 분에 유람선에 올랐다.해금강은 학동에서 15 분 거리.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갈개마을의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 바위섬(해발 약 116m, 면적 약 0.1㎢)을 거제해금강이라 부른다. 두 개의 섬이 맞닿은 해금강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었다.지형이 칡뿌리가 뻗어 내린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갈도(갈곶도)라는 이름보다는 바다의 금강산을 뜻하는 해금강으로 널리 불려지고 있다.
주위의 경관으로는 해금강 최고의 비경인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사자바위, 부처바위, 촛대바위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 그밖에 환상적인 일출과 월출로 유명한 일월봉도 있다. 유람선이 십자동굴안을 들어서 좌우 위벽을 바라보니 신의 조화에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35년전에도 이곳에 있었는데 그때의 감흥은 기억 조차 없으니 감흥 또한 나이 따라 변하는가?
<해금강의 사자바위,촛대바위,십자동굴,등등등>
해금강을 뒤로하고 10 분만에 외도 착.20 년동안 심혈을 들여 가꾸어 1995 년에 일반에 개장. 잘 가꾸어 진 식물원이라는 인상.영준은 감기 몸살로 10 분 만에 구경을 포기하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1 시간 30 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우리 일행은 상당부분 앉아서 지친 몸을 달랬다.여하튼 엄청난 벌이가 되고 있음은 우리를 감탄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입구에서 영준과 다시 만나 10 시 40 분 외도를 출발.
<외도에서 일행들>
<외도에서 본 해금강>
11 시에 학동에 도착. 이제 본격적 귀경이다.12 시 30 분 사천의 유명한 "재건 냉면집" 에서 수육,육전으로 소주와 함께 냉면을 들고 13 시 30 분 출발.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 잠시 들러 서울에 17 시 30 분에 도착함으로 금번 산행은 끝을 맺었다.
일행 모두 무사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사천 냉면집에서 일행이 적어 낸 감상문 중 장원을 필자 마음대로 뽑아 여기에 올린다.
작자: 김 재 윤
아 ! 사 량 도
와 ! 해 금 강
허참 ! 외 도
이상 끝
2004. 4. 26. 김 승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