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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 김규현의 인간과 예술 세계
김정오
수필가. 문학평론가
들어가는 말
좋은 글을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풍요로워진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글을 쓰는 이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남겼다. “글을 쓸 때는 아름답고 미운 것과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배움을 깊이 하여 만인에게 이로움을 주는 글을 써야한다”고 가르쳤다. 또 우리나라를 다섯 번이나 찾은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도 “ 문인은 시대를 증언하고 어둠속에서 횃불을 밝히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문학의 사명을 말한 것이다. 김승우는 그의 『현대수필론』에서 “덕이 인격적 차원이라면 문장은 그것을 구조적인 이미지로 떠올려 언어적인 소재로 형태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이란 이미지의 사고 형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미지의 언어적 형식화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구조의 자율적 조화로 해서 미적차원에 서게 되고 정서적인 감동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며 수필은 그에 딸린 문학의 한 장르이기에 그 문학성은 마땅히 언어의 미적 차원에서 오는 정서적 감동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을 분석하고 비평할 때는 법칙이 있다. 그것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정의를 내리고 있다. 이상섭은 그의 저서 『문학연구의 방법』에서 「역사주의 비평」, 「형식주의 비평」, 「사회. 윤리주의 비평」, 「심리주의 비평」 그리고 「신화비평」과 「구조주의 비평의 방법 (from Selden, Raman. Contemporary Literary Theory)」등을 들고 있다. 박덕은(朴德垠)은 『현대문학 비평의 이론과 응용에서』 「원본 비평」, 「역사전기적 비평」, 「사회문화적 비평」, 「형식주의 비평」, 「신비평」, 「구조주의 비평, 「심리주의 비평」, 「신화 원형 비평」, 「문체론적 비평」, 「독자 반응비평과 수용이론」, 「현상학적 비평」, 「기호학적 비평」과 「해석학적 비평」, 「해체 비평」에 이어 20여종의 비평방법을 들고 있다. “문학비평은 문학작품에 관한 일체의 논의 즉 문학작품을 정의 분류 분석 평가하는 작업이며, 그것을 해석, 선별, 판단, 비교하는 작업(중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그 평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야만 한다. 그러나 비평가의 비평관과 문학에 대한 안목에 따라 다양한 비평 유형(방법)이 가능하다.” 고 했다. 필자가 김규현의 수필세계를 논평함에는 비평가의 비평관과 문학에 대한 안목에 따라 다양한 비평 유형(방법)이 가능하다는 분석 방법에 주안점을 둔다. 따라서 그녀의 문장 구조나 문맥구성상에서의 문제점이나 완벽성 여부보다는 그녀의 글월에 내재되어 있는 순수한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을 밝힌다.
두 날개의 재능을 지닌 축복받은 예술인
새벽 2시를 알리는 괘종소리가 둔탁한 여운을 남기며 누리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문을 여니 푸르름이 짙게 드리워진 나무들 사이에서 머물던 새벽 공기가 가슴속으로 밀려든다. 하늘은 맑고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별들이 빛을 내고 있다. 나는 이 아름다운 하늘을 보면서 방금까지 읽고 있던 김문원의 수필들을 생각하면서 이 평을 쓴다. 그 녀의 수필 「가을 하늘」한 대목을 본다.
“고요한 하늘입니다. 가을 하늘은 하늘 중 하늘입니다. 푸르러서 깊고 깊어서 더욱 고요로운 하늘입니다.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하늘입니다. 손대면 금세 푸른 물이 주루룩 쏟아질 것만 같은 푸르른 하늘입니다. 내 영혼이 깃든 남쪽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가득히 어머니의 얼굴이 차오릅니다. 지붕 위에 널어놓은 탐스런 붉은 고추 색과 파란 하늘빛의 앙상불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고향 하늘입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넓은 논두렁 허수아비도 푸른 가을 하늘이 마냥 좋아서 양팔을 벌리고 갸우뚱 어깨춤을 춥니다. 한껏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입니다. .-김문원 수필 「가을 하늘」한 대목
그녀는 고요한 가을 하늘을 보면서 푸르러서 깊고 깊어서 더욱 고요로운 하늘이라고 감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 하늘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글 속에서도 그녀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문학에서 이미지(心象)는 중요하다. 특히 수필은 자기가 겪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 내야하고 그것을 리듬으로 이어가면서 조각처럼 뚜렷한 이미지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성품이 고와야 쓸 수 있다. 천성이 고우면 그 숨결이 아름답게 울어 나오기 때문이다. 선인들은 그 숨(呼吸)은 영원한 우주에 닿아 있고 얼은 영원한 사랑과 이어져 있다고 가르쳤다. 맑은 숨과 순결한 얼이 함께 해야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그것을 가슴에 심으면 그 울림이 글이 되어 만인을 감동 시킨다. 그러나 글로는 그 숨을 다 밝힐 수 없고, 말로는 그 얼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 그녀는 그것을 그림으로 채울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화가이다. 무한과 절대와 초월을 유한한 글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그 예술적 가치를 그림으로 대신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축복이다. 삶을 글과 그림으로 꽃피울 수 있는 두 날개의 예술적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글이란 인간의 삶에서 피어나는 영감을 감동으로 포착(捕捉)하여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다. 영감이란 때에 따라 변하는 것이며, 시대와 함께 혹은 한걸음 앞서 갈 수도 있다. 그녀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눈으로 보면서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녀의 수필「품앗이」는 봄바람이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봄기운으로 비롯될 때 정원 울타리의 나뭇가지 끝에 연둣빛 눈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는 말로 시작된다. 대지에 생기가 돌면 농부들은 절기에 맞춰 일을 하고, 일손이 부족하면 서로 품앗이를 한다는 고향 생각을 하면서 쓴 글이다.
“농부들은(중략)어둑어둑한 새벽에 들로 나가서 종일 열심히 일을 하고 땅거미 질 때, 집으로 돌아옵니다. (중략)그 일을 옛날에는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했습니다. 모내기 때, 김맬 때, 추수할 때, 일손이 모자라면 품앗이를 했습니다. 품앗이하면 제일 먼저 농촌이 생각나지요. 고향이 떠오르고 부모님이 생각나고 어릴 적 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밀짚모자 쓰고 이웃과 함께 밭갈이하며 풍요로운 삶을 꿈꾸는 신성한 터전이 떠오릅니다. 이웃끼리 힘 드는 일을 거들어주면서 서로 품을 지고 갚고 했습니다. 품앗이는 우리 농촌의 아름다운 풍속이지요. 품앗이는 서로 무언의 우정을 교환하는 것이 아닐는지요.”.-김문원 수필「품앗이」한대목
품앗이라는 말은 일손을 뜻하는 '품'과 서로 나눈다는 '앗이' 하나로 된 말이다. 마을사람들이 남 여 노소 구분 없이 바쁠 때 힘을 모아 서로 품을 나누는 전통적인 공동노동의 한 모습이다. 두레가 한 해 중 가장 바쁜 농번기, 특히 모내기를 하는 때에 이루어지는 데 비하여 품앗이는 때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지며, 농촌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작업을 포함한다. 가래질하기, 모내기, 물대기, 김매기, 추수, 풀베기, 지붕의 이엉 엮기, 퇴비 만들기, 길쌈하기 등이 그것이다. 배품을 받게 되면 그것을 보답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정에 따라 반드시 갚지 않아도 그것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을 단위로 하여 그 가족의 모자란 일손을 도와주기 위해 다른 가족들의 일손을 빌려 쓰고 물어주는 미풍양속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농촌의 품앗이를 회상하면서 품앗이 문화가 사라져가는 것을 아쉽다고 한다. 그러면서 관혼상제도 당연히 품앗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친지나 평소에 가깝게 지내온 이웃끼리 큰일을 치룰 때 서로 오가며 위로해 주고 또 축하 해주는 것은 좋은 품앗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름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을 때는 난감할 때가 있다고도 했다.
열정(Passion)이 넘치는 예술가로서의 삶
그녀는 어디를 가나 주인 정신으로 살아간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삶, 곧 열정(Passion)이 넘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예술과 더불어 날로 새로워지는 삶을 살고 있는 그녀를 보면 영국 시인 「새무얼 울만」이 일흔여덟 살 때 지었다는 '청춘'이란 시가 떠오른다.
-청춘-
진정한 청춘이란 젊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정신 속에 있다./ (중략)중요한 것은 풍부한 상상력, 타오르는 정열이다./펑펑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당신 정신은 오늘도 신선한가?/ 생동감이 넘치는가? 용기 없는 정신 속에 청춘은 존재하지 않는다./(중략)/ 용기 없는 20대 라면 그는 이미 노인,/ 용기 있는 60대라면 그는 한창 청춘이다.- 새무얼 울만(영국 시인) -
그녀는 생명의 질서와 조화를 꿰뚫어 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정성을 드려 그린 그림들을 경인미술관에서 다섯 번째?인가 개인 전시회를 갖는다. 동시에 그동안 지면에 발표했던 작품들을 모아 한권의 아담한 수필집을 펴내고 있다. 그 작품들 가운데는 「품앗이」를 비롯해 「연꽃 바람 부는 날」,「찔레꽃」, 「할미꽃」, 「고향 가는 길」, 「황금물결 억새꽃 바다,」「산」, 「설중매의 진한 향기처럼」, 「소방관 생명수당 2만원」, 「아름답게 늙고 싶다」, 「배추농사에 얽힌 사연」, 「산꿩이 날던 대밭」, 「수체화를 그리며」, 「매화축제」, 「메밀꽃 필무렵」, 등 21편의 작품이 들어 있다. 그 가운데 8편이 꽃에 관한 글이다. 꽃에 관한 그녀의 마음을 나태주 시인의 <시는 상처의 꽃이다>라는 글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시를 쓰는 것을 창작이라고 한다. 창(創)자는 상처를 뜻하는 창(倉)이란 글자와 칼(刀)을 뜻하는 선칼도방(刂)으로 되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승화라고 한다.” 그는 인생이나 시작 과정에 꽃을 빗대고 있다. “그 꽃 뒤에는 상처가 있고, 외로움이 있고, 그리움이 있고, 실패가 있고, 사랑이 있고, 열정이 있고, 그리고 어리석은 우리네 인간의 욕망 내지는 소망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바탕으로 생각하면 꽃을 사랑하는 그녀의 내면세계는 예술을 삶의 뿌리로 삼고 그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창작의 아픔을 예술로 꽃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가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도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글 「연꽃 바람 부는 날은」한 대목을 본다.
“연꽃 계절 7월이 오고, 북풍이 불어 올 때면, 가슴이 두근거려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덕진 연못을 스쳐 온 은은한 연꽃 향기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덕진 연꽃 향기가 전주 시내까지 묻어온다는 말은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다. 뿐만 아니다. 남풍이 불면 수 십리 떨어진 완주군 삼례읍까지 실려 간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덕진 연못에서 피어난 연꽃 향기는 유명했고 전주의 자랑거리였다. 전주의 자랑 중의 하나인 덕진 공원은 오직 연꽃방죽이 있어서 라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에 향수처럼 남아 있기도 한다. (중략) 이승과 저승을 잇는 가교가 연꽃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더욱 연꽃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연꽃을 찾았다. 특히 비 오는 날, 연잎에 떨어지는 크고 작은 은방울 소리는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나를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김문원의 「연꽃 바람 부는 날은」한 대목
그녀의 삶은 “연꽃의 특징”에 견줄 수 있다. 연꽃은 새벽 4시경이면 피어나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같은 연꽃 과인데도 수련은 잠을 즐긴다. 다른 꽃보다 늦게 피었다가 다른 꽃보다 일찍 접는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함부로 어질러 놓지도 않고 고요히 자취를 감추는 연꽃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의 삶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예술은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 낼 열정’만큼이나 ‘자신의 작품과 관련된 사색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희수를 앞두고 쓴 그녀의 글「화가의 말」을 본다.
“황금물결 갈대밭을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물감 풀어 자연과의 대화에서 /나 잔잔한 희열에 마냥 행복했다./나의 일상생활을 통해 /손자손녀에게 정서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나 오늘 희수를 향해 달려온 생활은 /정녕 아름답게 늙고 싶었어라./억새 물결 속엔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쳐왔을 /그리운 속삭임이 있다. /생을 막아서던 시련과 욕망을/ 묵묵히 견디지 않았다면 /저 낮 익은 일상의 고마움을 /또 그 위로 내려앉은 /따사로운 오후의 햇빛을 /사랑할 수 있을까.“ 「화가의 말」에서
예술은 인간 최고의 창조적 산물이다. 그녀의 모든 삶은 예술과 함께 하고 있다. 그만큼 구체적인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그녀의 예술은 전통적인 기법과 비엔날레 풍의 느낌을 함께 보여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이전의 비평적 논의와 상관없이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활용하는 그녀의 예술적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그녀의 글 「수채화를 그리며」한 대목을 본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어느 법칙에서 출발하여, 그 법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리는 형식이 훗날 나의 독특한 형식과 파벌에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이다. 예술은 형식과 법통의 기성적 미술사의 법칙을 따르는 경우가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어제까지 있어 왔던 무슨 주의 주장이나 미술사적 법통(법통)은 낡은 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화법의 지론이다. 기존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희열인가! 나에게는 구상, 반 추상, 추상 사이를 오가는 의식적인 행위는 없다. 오직 나의 자유로운 기법에 의하여 그것을 형상화 시킨다. 소재 자체를 유화가 효과적일 것 같으면 유화를 선택하고, 수채화가 효과적일 것 같으면 수채화를 선택한다. 대상이 무거운 느낌이나, 어떤 사상과 철학적인 분위기가 녹아 있으면 유화로 시작하고, 대상이 낭만적이거나, 정서적이면 수채화를 선택한다. 특히 수채화를 그리는 경우는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중략)맑은 하늘 아래, 산수유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호반에 앉아 있으면 계절의 유혹에 흠뻑 빠져 들게 된다. 이럴 때, 유화는 붓끝이 머뭇거리고 잘 돌아가지를 않는다. 그럴 때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수채화의 영상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적한 호반에 자리를 잡고 맑은 물을 떠다 놓고, 물감을 풀어 붓끝을 움직일 때, 그것이 수채화가 가져다주는 기쁨이 될 것이다. 그뿐인가 바람결에 멀리서 묻어오는 꽃향기에 즐거움이 더하고, 저만치 숲 속에서 들려오는 호반 새 울음 따라 나의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수채화는 생각하는 그림이라기보다는 노래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화는 지극히 심오하고 사색적일 때 그려지는 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따라 그림으로 못 다한 말을 남기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계절 탓인가 보다. “ 김문원의 수필 -수채화를 그리며-한 대목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 어느 법칙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훗날 독특한 그만의 형식으로 평가 받고 싶다는 것이다. 예술의 형식에서 기성적 법칙을 따른다든가 무슨 주의 주장이나 법통(법통)은 낡은 박물관에 소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지론이라고 했다. 기존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희열인가! 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는 연암의 사상과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암은 예술의 생명은 낡은 수법을 그대로 따르지 말고 새로운 기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했다.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다. 옛것을 바탕으로 하되 새로운 기법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라는 말이다. 그녀의 미술이나 문학 등 예술세계는 이처럼 늘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도 <문학의 윤리>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라>...고 하면서 “인간은 자명(自明)의 이치라는 /맷돌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하지만, /거기에서는 넣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그렇지만 관습에 얽매이는 대신에 /자발적인 생각을 채용하면,/그 순간부터 시, 기지, 희망, 미덕, 학식, 일화 등,/모든 것이 마구 쏟아져 나와 /인간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녀의 예술은 사회적 담론으로서 작품의 내부적 요인보다는 그것이 존재하는 맥락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그녀의 “예술은 작품을 마무리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끝없이 탐구할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작품에 대한 형식적인 인식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문화이론 등과 같은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담론들까지 예술적 고민을 깊이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그의 예술은 ‘창작의 의무’만큼이나 ‘자신의 작품과 관련된 사색적 맥락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슴 따뜻한 어머니 같은 작가
문원 김규현을 떠올리면 따뜻한 마음이다. 그것을 모성애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이면 누구나 갖는 모성애지만 그녀에게는 만인의 어머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그녀가 초등학교 교직에 있을 때 1학년 담임만을 맡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철모르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나서 학교생활을 비롯할 때 그 빈 마음을 감싸주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녀는 그것을 잘했기에 퇴임할 때까지 많은 세월을 1학년만을 맡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옛 제자들이 각계각층에서 크게 성공한 후에도 선생님을 잊지 못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친어머니처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영국문화협회가 102개 나라 4만 명에게 ‘가장 아름다운 낱말을 물었다. 그 대답 가운데 첫 번째가 어머니 (Mother)이었다. 어머니는 이렇게 좋은 것이다. 그녀도 자식들로부터 존경받는 어머니로서 대접을 받고 있다. 또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친정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글<가을 하늘>에서
“내 영혼이 깃든 남쪽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 가득히 어머니의 얼굴이 차오릅니다.” 라는 글에서 친정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얼마나 짙게 묻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서 길러 주신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모셨으며 시어머니 또한 며느리를 친딸처럼 아껴주었다는 사실을 그녀의 글 <내림반지>에서 볼 수 있다.
“지난 삶을 그림으로 그려 낸듯한 인정어린 얼굴! 창백하고 어린아이 같은 작은 손가락! 이러한 시어머님의 모습이 한꺼번에 내 눈 앞에 다가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어머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다 사셨어요? 용돈도 모자라실 텐데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느 사이에 내 왼손가락엔 눈부신 진주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큰 소리로 자랑하고 있었다. 올해 여든 다섯 살이신 어머님께서 며칠 후에 있을 며느리의 60회 생일 선물을 미리 준비하신 것이다. 은빛의 우아한 광택을 지녔고, 청순·순결·여성적인 매력의 상징으로서 높이 평가받아 온 보석이라서 전부터 갖고 싶었던 반지이기도 했다. 나는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걸 가까스로 참으면서, “어머님 감사합니다. 마음에 쏙 들어요. 잘 간직하겠습니다.” 하고 어머님 손을 꼬옥 잡았다. 나는 그 후 온 가족들이 다 모인 날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어머님께서 주신 이 진주반지를 윤씨 가문의 《내림 반지》로 정하고 윤씨 문중 32대손 석이의 아내가 될 제 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며느리는 또 다음 며느리에게 내려 주도록 하겠습니다.”이 말을 들은 온 가족들은 환호를 했다. 나는 금비녀와 이 진주반지에 《회천정윤回天正倫》이라는 윤씨 가문의 얼을 담아서 보관하기로 마음 속 다짐을 했다.“-<내림반지>의 한 대목
시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 정을 주고받았던 며느리의 모습이 드러나는 글이다. 고부갈등이란 찾아볼 수도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파평 윤씨 가문에 새로운<내림반지>의 전통을 만들어 낸 슬기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도 그녀를 만날 때마다 막내 이모나 사촌 누나 같은 따뜻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그녀는 부드럽고 다정다감하며 인간적이고 친화적인 성품을 지닌 대표적인 어머니 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든다.
사상가 유영모는 “어머니 마음은 지성과 감성의 뿌리”라고 했다. 어미가 새끼를 품는 것은 존재의 핵심에 있던 거룩한 힘이 초 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어미와 자식은 함께 지성과 감성이 발달하는 것이며, 세상만물은 오로지 뜨거운 모성애가 있기에 그 지혜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본능에서 모성애는 생명의 근원과 본성이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유영모의 제자이며, 철학자인 박재순은 “모성애에 대해서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말한다. 생명의 근원과 본성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성애는 아름다운 감성과 맑은 지성의 열매를 영글게 한다. 모성애가 지성과 감성에서 온 것이므로 인간의 예술적 감성과 지성은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모성애 안에서 감성이 깊어지고 지성이 맑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기 때문에 마음의 정이 깊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생각하는 존재가 되었고, 자신을 돌아보아 자각하는 주체적 존재가 되었다. “우리말에서 사랑과 생각은 서로 통하고 또 같이 섞여 쓰이기도 한다. 그것은 사랑과 생각은 서로 생명진화사의 깊은 진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모성애는 지성과 감성이 발달해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예술적 감성과 지성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성애로 인해 감성이 깊어지고 지성이 맑아진다.“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예술성은 남다른 모성애가 예술의 누리 속에서 더욱 알찬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조로 힘입어 꿈을 펼치는 예술가
그녀의 수필에는 혼탁으로 얼룩진 세태를 맑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 스며있다. 가난했지만 정이 넘치고 아름다웠던 옛날의 삶을 돌아보면서 가슴이 따뜻한 글을 즐겨 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추억을 재생적 회상 기법으로 밝게 더듬으며 인생을 관조하는 글을 쓴다. 그녀의 글에는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의 흙냄새와 고향 고유의 정서를 끝없이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의 「고향 가는 길」한 대목을 본다.
“고향! 하면 하얀 눈길이 떠오른다. (중략)내 고향은 만덕산이 하얗게 눈 산으로 하늘 닿아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사람마다 가슴 속에 고향을 담고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평생을 두고, 내 고향 만덕산을 가슴에 품고(중략)살아가고 있다. 만덕산은 계절 따라 미적감동을 달리하고 있다. 봄에는 진달래 불길로 타올라서 아름답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 속에 숨어 있는 산삼의 향기가 비밀스러워서 아름답다. 가을에는 낙엽 따라 상수리가 구르는 소리의 정겨움을 나는 좋아한다.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만덕산은, 하얀 눈 속에서, 그 큰 산이 몸을 숙이고 자중자애하는 겸손함이 나를 황홀케 하며, 눈 속 품안에 안기고 싶어지게 하는 군자의 모습이어서 좋다. 만덕산이 눈 속에서 설치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산 위에 겨울 철새들이 날고 있기 때문이며, 그보다도 산골짝 후미진 구릉마다 눈 속에서 굶주린 산짐승들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이 얼마나 어진 군자의 도리인가. 나는 내 고향 만덕산의 이러한 모습을 좋아하며 또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고향 가는 눈길을 가장 좋아하고 있다. 내 고향 가는 눈길은, 그림이요, 詩가 있는 길이다. 어머니가 내 손을 따뜻한 입김으로 후후 불어 주시며 함께 걷던 모정의 길이요, 아버지께서 만덕산의 전설을 들려주시던 역사의 길이요, 우리 형제들이 눈싸움을 하면서 잔정이 쌓인 길이기에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고향길인 것이다. “ 「고향 가는 길」한 대목
이「고향 가는 길」에는 사물이나 세상살이 이야기는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만덕산, 하얀 눈길, 진달래, 설경, 눈산(雪山), 상수리, 겨울 철새, 산골짝, 산짐승, 등, 말이 없는 자연현상을 작가의 의식과 더불어 그려내고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어떤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은 모습도 불분명한 가운데 자연현상의 구비마다에서 넘쳐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기쁨이었다. 결국 인간정서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얻고, 만나고, 이루어지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김문원의 수필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기쁨은 그녀의 수필이 인간의 욕망이나 성정(性情)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법열(法悅)의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에릭프롬[Erich Fromm]’은 기쁨(喜悅)과 선(善)과 덕(德)을 같은 뜻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돈이나 지위나 권위 등을 더 가지려는 소유 욕구는 기본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선에서 중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서 보람을 찾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면서 인술을 펼치고 있는 남편의 외조가 주는 심리적 현상이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부군 윤자헌 박사는 일찍이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마포구 합정동 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옛 마을에 새 서울 의원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지 않고 이웃을 위해 선(善)한 인술을 베풀고 있다. 좀 더 번화한 곳으로 나가 큰 병원을 차리라는 권면도 많았지만 정든 이웃들과 더불어 살면서 의사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선과 덕과 기쁨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앞에서 밝힌바 있다. 그런 현실에서 좋은 글을 쓰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자 애쓰는 그녀의 글과 그림이 만인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동양 종교에서는 만물을 정신적 현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찰나는 순간을 벗어나는 ‘지금’이며 그것은 곧 ‘찰나적 정신’이다. 이 때 기억되는 추억을 ‘개아’라 한다. 그것은 자신의 눈높이에 따라 ‘지금’의 현상을 얻으려 하거나 모른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얻으려고 애쓰면 ‘찰나는 사라지고 만다.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얻으려는 욕심만 더 커지니 선의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을 집착이라 한다. 그것을 버리고 원인과 실체를 깨닫게 되면, 만상에 펼쳐지는 환희를 맛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그녀가 갈망하는 ‘해탈심(解脫心)’, 또는 ‘열반락(涅槃樂)’이며 선(善)이다. 그녀는 선을 베푸는 부군과 함께 이웃들과 더불어 정을 나누며 마음껏 예술의 꿈을 펼쳐가고 있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중용(中庸)에 심재불언이면 시이불견(心在不言 視而不見)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사물을 볼 때 'See(見)가 아닌 마음의 눈 'Look(看)'의 자세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삶을 아름답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인생을 진솔하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을 읽으니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주정적인 경험의 독백(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예술 더욱이 좋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그 어떤 체험이 필수 요건이다. 실존주의 신학자 마르셀(G Marcel)은 체험의 마당이 다르면 삶의 모습과 이론적인 바탕의 자료도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만물 가운데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유일한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지성에 의한 사고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의지에 의한 도덕적 행위와 정감에 의한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예술적 활동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곧 진(眞)선(善)미(美)성(聖)의 문화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곧 올바른 도(道)에 이르는 길이다.
아름다움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가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이 편해지고 익숙해지면 새로운 일을 꺼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정신과 육체가 무뎌지고 정신적 활동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게 된다. 헤겔은 이것을 “인간은 습관에 젖어들면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안토중천(安土重遷)이라는 고사성어가 그 말을 대신한다. 날로 새롭게 바뀌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위(衛)나라의 철인 재상 거백옥(遽伯玉)은 말했다. “행년 오십이지 사십구비 육십이 육십화( 行年 五十而知 四十九非 六十而 六十化)”라고. 50이 넘고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살이 되더라도 신선하고 발랄한 사람이다.” 60이 되더라도 그만큼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언제나 신선하고 유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새우와도 같은 삶을 말한다. 새우는 살아 있는 한 껍질(皮角)을 벗는다. 껍질을 벗지 않으면 딱딱해서 죽고 만다. 살아있는 새우가 언제나 신선하고 유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백옥이 살았던 때는 50세이면 매우 많은 나이였다. 그래도 그는 새로 시작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육십이 육십화(六十而 六十化)”라고 말하면서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했다. 요새 나이로는 백 살 정도가 되어야 당시 60살 쯤 될 것이다. 앞서가는 이의 남다른 모습이다
독수리는 .40년이 지나면 날개가 무거워지고 먹이를 사냥하기 힘이 들 정도로 발톱이 무뎌지고 부리가 굳어진다. 이때 독수리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발톱과 날개의 깃털을 모두 뽑아낸다. 그리고 바위에 부리를 찍어 없애는 데 생살을 뜯어내는 그 아픔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부리와 발톱이 날 때까지 굶주림과 폭풍 등 자연과 싸우면서 거의 반년 동안이나 아픔의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3.40년을 더 산다. 환골탈퇴인 것이다. 김문원의 삶과 예술세계가 바로 이런 삶이다. 지아비의 아내요 며느리이며, 자식들의 어머니인 주부로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기고 화가와 문사의 두 날개를 펼치면서 유연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예술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물감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라는 글을 본다.
“미국의 모리스할머니는 평범한 시골 주부였다. 그녀가 붓을 들어 그림을 시작한 것은 75세였다. 101세에 사망할 때까지 그림을 그려 미국의 국민화가로서 유럽, 일본,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투르먼 대통령으로부터 여성 플레스클럽상을 받기도하고 뉴욕지사 록펠러가 그의 100번째 생일을 모리스할머니 날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 놀라운 열정에 힘입어 화실을 찾게 되었다. 화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물감 풀 때면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봄이면, 제비꽃 민들레 아름다운 생명을 담아 화폭에 옮기던 지나간 시간들이 지금도 마음에 부시다. 세월의 속도는 마음의 속도를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조급하게 살면 한없이 모자라지만, 느긋하게 따라가면 넉넉한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먼저 내 마음을 물들인다. 꽃 빛, 하늘빛, 환하고 예쁜 색색으로 마음을 물들일 때면, 마치 내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것 같다. 석양에 화판을 들고 가을 나들이에 나서면, 저만치 황금물결 갈대밭을 물들이는 노을이 하도나 아름다워 그 노을처럼 살고 싶다는 깊은 상념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갈대밭 이랑에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토하고 싶은 아픔이 출렁이고 있는 듯싶기도 했다. 어느덧 20여 년, 푸른 물감으로 내 마음 물들이면서 열심히 달려온 오늘, 돌아보니 한나절 햇살보다 짧다.” 김문원 수필「살아오면서 물감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한 대목
그녀는 “봄이면, 제비꽃 민들레 등 아름다운 꽃들을 화폭에 담아 옮기던 지나간 시간들이 지금도 마음에 부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세월의 속도는 마음의 속도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조급하게 살면 한없이 모자라지만, 느긋하게 따라가면 넉넉한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먼저 내 마음을 물들인다. 꽃 빛, 하늘빛, 환하고 예쁜 색색으로 마음을 물들일 때면, 마치 내 인생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희수 전을 가졌을 때 뜰에는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이 한결 가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제1 전시실 입구에 놓인 방명록엔 그리운 이름들의 손길로 이어진 분에 넘치는 찬사의 말과 격려의 글들로 한 장 한 장 귀하게 채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던가. 새삼 나의 노후 생활의 선택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집 거실에도 내가 그린 수채화 한 점이 항상 환하게 반기고 있다. 이젠 일상에 감사하며 가족과 소중한 이웃과의 우정이 가을 햇살처럼 오래오래 깊은 여운으로 익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푸른 물감으로 내 마음 물들이면서 푸르게 아름답게 살리라.”라고 쓰고 있다.
그녀의 예술세계는 그 회화적 깊이와 종교적 수양으로 다듬어진 정신세계가 한국적인 정서와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자연을 관조하면서 응축된 생명의 질서를 정중동(靜中動)의 정서에 담아 예술로 발돋움 시킨다는 말이다. 그것은 평소 조그마한 충격과 희열까지도 예술에 접맥시킬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빛과 색의 조화를 바탕으로 차가운 추상보다는 아름다운 감성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문원 예술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소녀 같은 마음으로 산이 좋아 산을 찾는 그녀의 작품 「산」의 한 대목을 본다.
“산은 우리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털끝만큼도 흉내 내기 어려운 그 어떤 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나는 산을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필력이 모자라서 산에 대한 그림이 산 옆에 가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어쩌랴! 산을 사랑하다 못해 존경하고 흠모하기까지 하여 산에 대한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있는 것을…….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의 꿈을 펼치듯 산을 그리면서 내 마음에 산심을 담아본다. 내 몸으로 산 냄새를 풍겨 보는 경지에 이르기를 소원해 보며 행복을 느끼고 있다. 산은 평소에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고 있다.” -김문원의 수필「산」의 한 대목-
산을 자주 찾으면서 자연의 형상을 보다 가까이 투사시키기 위한 발상은 생명의 발현을 위한 원초적 사유를 표출시키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로서 그녀의 말은 겸허하다. “언제부터인가 덧없이 지나와 버린 날들에 대한 허전함으로 가슴이 텅 비어 버렸다. 이때 예술만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온 힘을 다해서 예술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에 평안과 행복감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녀의 글 「아름답게 늙고 싶다」한 대목을 본다.
“숱하게 많은 취미생활 가운데 왜 하필이면 그림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선뜻 대답하겠다.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창출하는 작업이야말로 색채감에서 느끼는 풋풋한 젊음을 만끽하기 때문이라고. 그것이 바로 아름답게 늙어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아름답게 늙고 싶다」한대목-
독일의 천재시인 휠더린(Höllderlin)은 선배인 실러(Schiller)에게 보낸 글에서 알키비아데스(Alkibiades)와 소크라테스(Sokrates)와의 문답 형식을 들어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은 생명력과 같다고 했다. 또 진정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깊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 앞에서는 신을 대하듯 경건하게대한다고 했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 하고 있는 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꿈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생명수이며 그것은 진실과 통하기 때문이다.
원형갑은 이런 마음 상태를 보는 “시력(視力)에 가치판단의 정신적 기능이 쉬고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이러한 특이한 ‘현상학의 철학’을 ‘현상학적 환원’ 또는 ‘현상학적 판단중지’, 또는 ‘괄호작용(括弧作用)’이라고 했다. 따라서 현상학자로 성공한 사람은 휠더린과 릴케 등의 문학을 해설한 하이데커 뿐이라고 했다. 하이데커의 존재론을 20세기에서 가장 앞서가는 철학으로 인정하는 것도 그의 현상학적 환원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선입관을 우리의 의식으로부터 돌려보내는 환원이야말로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뿌리가 된다고 했다. 특히 초기 하이데거 이래 현상학적 미학의 발전은 문학예술의 존재론적 해석이 얼마만큼 근원적인 인간 문제인가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김문원은 글과 그림을 통해 모든 이들과 함께 그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삶의 희열을 맛보면서 가치 있는 삶의 꽃을 피우고자 최선을 다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수필을 쓰고 있다.
마침말
김문원의 예술은 내재된 생명의 질서와 조화의 본질을 통해 글과 그림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술적 깊이와 정신을 한국의 전통과 이어오면서 정중동의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꽃피우고 있다는 말이다. 때로는 굵은 붓놀림의 변형으로 자연 현상을 보다 가까이 투사시키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생명의 발현을 위한 근원적인 사유 즉 원초적 사유를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평소 겪었던 조그마한 충격과 그 희열까지도 놓치지 않고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그녀의 작가로서 그 면모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그녀는 “덧없이 지나 버린 날들에 대한 허전함과 올 날들에 대한 상념으로 마음이 어지러울 때라도 흔들림 없이 오직 예술의 길만을 걸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문원의 예술은 겉모습의 돋보임 보다도 더 깊은 내면세계의 예술의 힘이 더욱 큰 감동을 준다. 이제 맑고 아름다운 삶의 힘이 자연과 하나 되어 문원 예술의 절정기를 이루고 있다. 더욱 좋은 글과 그림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영원한 거울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첫댓글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풍요로운 이 가을과 함께 더욱 좋은 일 많으소서.
문원 김규현님은 마포구 합정동에서 서서울의원을 경영하는 훌륭한 의사의 부인입니다. 아주 훌륭한 화가 그리고 수필가입니다. 나는 이런 훌륭한 분과 교류를 하게 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