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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한 좋은 글 스크랩 <Reading Books> 페드라 (後) -라신느-
김철교 추천 0 조회 44 15.04.01 08: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페드라 (後)


라신





[] 3

 

[] <1> 페드라 . 에논

 

[페드라] ! 내게 주어진 이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 수는 없단 말인가? 그대는 어찌하여 이 몸이 여러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오. 차라리 이 몸을 숨겨 미칠듯이 괴로운 심정을 달래 주오. 내 저주 받은 사랑의 이야기는 벌써 바깥세상으로 퍼져나가고 말았소. 그 매정한 이폴리트는 내 애절한 호소를 듣고도 무언가 구실을 붙여 빠져나가려고만 했소. 왜 유모는 나의 죽음을 말렸소? 그의 칼이 내손에 의해서 이 가슴에 박히려고 할때 이폴리트의 안색이 변하기라도 했던가요? 그가 내 손에 칼을 빼앗아 가기라도 했나요? 하기야 내 손이 닿은 이 칼이 그의 거룩한 손을 더럽힐까 두려웠겠지만

[에논] 왕비께서는 어이하여 자신의 불행만을 한탄하시며 마땅히 꺼져버려야 할 정염의 불길에 도리어 부채질을 하고 계시옵니까? 그보다는 미노스의 혈통에 어울리는 씩씩한 기상으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달아나려고만 하는 배덕자를 엄히 다스려야 하며 왕국의 앞날을 걱정하심이 상책인가 하옵니다.

[페드라] 이 몸더러 나라를 다스리라고? 내 율법으로 한나라를 기뻐하란 말인가? 나의 연약한 이성은 이미 스스로의 마음도 가누지 못하는 이때에 사물의 분별을 할 기력조차 잃었으며 부끄러운 멍에에 얽매어 신음하는 이때에.

[에논] 정 그러시다면 도망을 하시지요.

[페드라] 못하오. 이폴리트를 떠날 수는 없소.

[에논] 지난날은 그분을 추방하기에 앞장섰던 당신이 어찌하여 이제는 그것을 못하신다 피하시옵니까?

[페드라]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오. 그는 이미 내 철부지 같은 연정을 알아버리고 말았소. 나는 사랑의 정복자 앞에 무릎을 꿇고 수치스러운 고백을 했던 것이오. 내 꺼져가는 영혼에 활기를 불어넣어 그를 사랑할 수 있다는 암시를 준 사람이 그 누구란 말이오. 다름아닌 유모 그대가 아니었소?

[에논] 제게 왕비님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있건 없건 간에 당신을 위하는 것이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어쨋든 왕비님은 그 오만한 자의 모욕을 잊었단 말입니까? 그는 얼마나 잔인한 눈초리로 자기의 발아래 쓰러진 당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까? 어째서 왕비께서는 그때 저와 같은 눈을 갖지 못하셨습니까?

[페드라] 유모 당신을 화나게 하는 그의 오만은 이제 곧 없어 질 것이요. 숲속에서 자랐기에 그는 딱딱하고 거친 성품의 소유자가 된 것이요. 아마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자 그는 놀라움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을 것이요. 그것을 우리가 지나치게 탓했나 보오.

[에논] 그가 야만인의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왕비님

[페드라] 유모의 충고도 이미 때가 늦엇소. 이제부터 내 사랑의 성공을 도와주오. 사랑을 경멸하는 이폴리트, 그를 공격할 급소를 찾아야하오. 한 나라를 지배한다는 매력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 이미 그의 모든 뱃머리는 아테네를 향하여 돛폭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소. 자 유모, 이 몸을 대신해서 공명심에 들뜬 젊은이를 만나러 가 주오. 그의 눈앞에 왕관의 번쩍임을 보여 주오. 이 몸은 내손으로 그의 머리위에 왕관을 씌어주는 영광으로 족하오. 이미 내손으로는 지킬 수 없는 이 엄청난 권력을 그에게 넘겨 주려오. 그는 내 아들에게 즐겨 통치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아울러 부친으로서의 지위는 사양치 않을 것이요. 그의 권력의 그늘 아래 우리 모자의 앞날을 맡기려 하오. 그 일을 유모가 맡아 줄 수는 없겠소? 울며 매달려 이 페드라가 죽어간다고 애원해 주오. 그대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고 모든 것을 그대에게 맡기오. 자 어서 가 주오. 이 몸은 여기서 그대를 기다리겠소.


[] <2> 페드라

 

[페드라] 이토록 수치심에 떨고 있는 이 몸을 지켜보고 있는 무자비한 비너스의 신이여. 아직도 이 몸에 대한 시련이 부족하십니까? 당신의 잔인함이 이에 더하지야 않겠지요. 당신은 승리자이십니다. 당신의 모든 화살은 어김없이 표적을 꿰뚫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이 몸보다 더욱 완강히 당신을 거역하는 적을 겨누십시요. 이폴리트는 당신을 멀리하고 당신의 진노하심을 비웃으며 당신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마저도 그의 오만한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합니다. 여신이여! 그에게 복수를 하십시요. 그 사내가 사랑에 빠지도록--- - 유모는 벌써 돌아 왔구료! 역시 그는 이 몸을 싫어하는 모양이군. 유모의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나요?

 

[] <3> 페드라 . 에논

 

[에논] 부질없는 사랑의 꿈에서 어서 깨어나시어 지난날의 정숙한 미덕을 되찾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줄로만 믿었던 테제왕께서 이제 곧 당신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 분은 이미 도착하셨고 백성들의 그를 환영하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페드라] 내 낭군이 살아 있다니 모든 것은 결말 났소. 유모, 이몸은 낭군의 명예를 더럽히는 가증스런 사랑의 고백을 했소. 그가 살아있으니 이 몸의 갈 길도 정해진 셈이오.

[에논] 그 무슨 말씀을---?

[페드라] 유모의 애절한 눈물이 내 슬기의 빛을 무디게 한 결과요. 오늘 아침 내가 죽었더라면 애도의 값어치나 있었을 것을. 그대의 권유를 따랐던 탓으로 이젠 수치스런 죽음만이 남았을 뿐이요.

[에논] 안됩니다. 왕비님

[페드라] - 오늘이라는 이 날이 이 몸은 어떤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 낭군은 그의 아들을 앞세우고 여기에 나타나겠지. 이폴리트는 테제를 맞이하는 이 뻔뻔스런 얼굴을 지켜보고 있겠지. 테제의 명예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 아들이 제 아버지가 배신 당 하는 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거야. 설사 그가 입을 다물었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인 것을--- 유모 이 몸은 스스로 부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얼굴하나 붉히지 않는 세상의 여성들과는 다르오. 이 벽 저 돌층계 저 기둥들이 입을 열어 이 몸을 힐난할 것이며 내 낭군의 눈을 뜨게 하려고 기다리는 듯 하오. 죽어야 하오. 그 길만이 이 두려움으로 부터 이몸을 구할 수 있소. 죽는다는 것이 그다지도 불행한 일이란 말인가? 비참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요.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후세에 남을 이름뿐이요. 내 가엾은 자식들에게 이 무슨 가혹한 유산이란 말이요. 후일 무고한 내 자식들이 죄 많은 어미로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어 하늘을 우러러 떳떳이 얼굴을 쳐들고 살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그것만이 괴로움이요.

[에논] 그건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두 아드님이 가엾습니다. 어찌하여 두 아드님의 불행을 자초하십니까? 사람은 필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아비를 배반한 죄 많은 페드라는 그 낭군을 대하기 두려워 죽음을 택했다고. 이폴리트 또한 당신이 목숨을 받쳐 자신의 말이 진실함을 입증했다고 기뻐할 것입니다. 당신을 비난하는 자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 차라리 하늘이 벼락을 내리시어 이 몸을 삼켜 주었으면--- 왕비님 제발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요. 아직도 이폴리트를 당신은 생각하고 계시옵니까? 불손한 왕자가 당신의 눈에는 어떤 모습으로 비치십니까?

[페드라] 내 눈에는 당돌한 배덕자로 보일 뿐이요.

[에논] 정녕 그럴진데 어이하여 모든 승리를 그에게 돌리옵니까? 용기를 내십시요. 오늘 그가 당신에게 지워준 죄과를 모조리 그에게 뒤집어 씌우십시요. 당신의 말씀을 의심할 자 감히 누구겠습니까? 당신에 남아 있는 그의 칼은 좋은 증거물이 될 것입니다.

[페드라] - 이 몸은 어찌 무고한 자를 해칠 수 있단 말인가?

[에논]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당신의 침묵 뿐입니다. 모든 것은 내게 맡기십시오. 물론 몸서리 쳐지도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이런 짓을 하느니 보다 오히려 천번을 죽는 편이 속 편하겠사오나 이렇듯 슬픈 수단을 쓰지 않으면 당신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명은 내개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테제왕께오서는 내 말을 듣고 진노하시겠지만 자기 아들에게 추방 이상의 응징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버이는 벌을 줄 때도 어버이기 때문에 가벼운 형벌로 그분의 분노는 진정될 것입니다. 왕비님! 명예는 소중한 것입니다.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라면 어떠한 시련도 달게 받아야 하옵니다. 위기에 직면한 우리의 명예를 위해서는 희생이라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옵니다. 누가 이리로 오는군요. 아 테제왕이십니다.

[페드라] - 이폴리트 모습 또 보이는구나. 그의 오만스러운 두 눈에 이 몸의 멸망이 알알이 새겨저 있는 듯 하오. 그대의 뜻대로 하오. 이 몸 송두리째 그대에게 맡기리다. 이렇듯 흐트러진 마음가짐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오.

 

[] <4> 테제 . 이폴리트 . 페드라 . 에논 . 테라멘

 

[테제] 제아무리 짖꿎은 장난일지라도 이젠 내 앞에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여왕이여! 그대의 품속에 이 몸을---

[페드라] 아니되옵니다. 페하! 환희 넘치는 당신의 희열을 욕되게 할 수 없사옵니다. 이 몸은 이미 기꺼이 페하의 뜨거운 정을 받아드릴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 몸은 견딜수 없는 치욕에 떨고 있습니다. 시기심이 많은 운명의 신은 떠나 계오신 동안에 당신의 왕비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페하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페하를 가까이 뫼실수 없는 이 몸 이제 부터 자취를 감출 궁리에 골몰해야 하옵니다.

 

[] <5> 테제 . 이폴리트 . 테라멘

 

[테제] 내 아들아! 이렇듯 야릇한 방법으로 이몸을 맞이하니 이 어이된 일이냐?

[이폴리트] 이 야릇한 수수께끼는 왕비님만이 설명드릴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소자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실 수만 있다면 폐하, 이후로는 저로 하여금 왕비님을 만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옵니다. 그리하여 왕비가 계신 이곳에서 소자가 영원히 자취를 감출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테제] 내 아들인 네가 이 몸을 떠나다니---?

[이폴리트] 그 분을 여기에 모셔온 것은 소자가 아니라 아버님이옵니다. 폐하! 당신이 트로젠을 떠나실 때 아리시공주와 왕비를 남겨 두시고 소자에게 그들을 보호하라 명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제가 이곳에서 머물러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지 않사옵니까? 부질없이 숲속을 헤메던 소년시절도 이로서 작별을 고하고 이 부끄러운 안일에서 벗어나 보다 값어치있는 피로 제 창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지금의 저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용맹한 무사로 그 빛나는 이름을 사해에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자랑스런 아버지의 아들인 이 몸의 이름을 세상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있사오며 어머니의 발자취 조차 따를 수가 없사옵니다. 소자의 용기를 시험할 기회를 주시옵소서. 만일 아직도 아버님의 손을 벗어난 악마가 있다면 이 몸이 그 자랑스런 시체를 아버님 발 아래 갖다 바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몸이 아버님의 아들 되기를 부끄럽지 않음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테제] 이 무슨 괴변이냐? 어떠한 공포가 이 궁전에 번졌기에 내 가족이 갈피를 못잡고 이 몸을 피해 도망치려 하는가? -신이여! 나의 귀환이 이토록 그들에게 주체스러운 것이었다면 어찌하여 이 몸을 가두었던 감옥에서 구해 주셨나이까? 내게는 단 한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그는 무정한 정념에 몸이 달아 폭군 에피르의 왕비를 빼앗으려고 했었지.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 없었던거야. 그러나 분노한 운명의 신은 우리의 눈을 멀게하고 무기마저 빼앗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잡히는 몸이 되어 지옥과 접한 땅굴 속에 갇힌체 육개월이 지났어. 그제서야 신들은 내가 그 생지옥을 벗어 날수 있도록 도와 주었으며 나는 그 사악한 적과 괴물들을 모조리 처치하고 희열에 차서 내 가족들을 찾아 한 달음에 뛰어 왔거늘 이 무슨 괴변이란 말인가? 나를 맞이하는 자들은 모두 부들 떨며 달아나고 포옹조차도 거부하니 이럴 바에야 차라리 에피르의 감옥이 훨씬 마음 편한 곳으로 생각되는구나. 말하라! 누가 페드라를 모욕하고 이 몸을 배신했다는거냐? 어이하여 너는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느냐? 내 몸소 저 안으로 들어가리라. 이몸을 짓누르는 의혹을 견딜 수가 없구나. 페드라가 말해 주겠지.

 

[] <6> 이폴리트 . 테라멘

 

[이폴리트] - 두려움이 이몸의 피를 식게 하는도다. 부정한 사랑에 사로잡힌 페드라가 자신과 이 몸을 죽이는 것이나 아닐까? 부왕은 뭐라고 할까? 어찌하여 사랑은 이 저주스런 독약을 왕족의 머리위에 뿌렸단 말인가?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몸을 떨게 하는구나. 그러나 무죄한 자는 필경 의혹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테라멘, 부왕을 즐겁게 해 줄 일을 달리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아리시와의 사랑을 고백하려오. 물론 부왕은 용납하지 않으려 드시겠지만 왕의 권력으로도 우리의 사랑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 -

 

[] 4

 

[] <1> 테제 . 에논

 

[테제] - 이 무슨 망칙한 일이냐? 애비를 배신한 당돌한 자가 내 명예에 곤욕을 끼얹는구나. 가혹한 운명의 신이 이 몸을 핍박하도다. 지금 이 몸은 어디로 가야하며, 어디에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어버이의 자비로 호의를 배신으로 보답한 가증스런 흉계와 폭력! 나는 그 칼을 기억하고 있어, 나는 그 칼을 영광된 일에 쓰라고 주었거늘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다니, 페드라가 침목을 지키는 것은 그를 비호하기 위함인가?

[에논] 왕비께서 비호한 것은 오직 가엾은 폐하뿐이옵니다. 이폴리트로 하여금 욕된 사랑의 노예가 되게 한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한 왕비를 죽음을 택하려 하셨습니다. 손수 죄없는 목숨을 거두시려는 찰라에 이 몸이 달려가 구했습니다. 저만이 그분의 번뇌를 헤아릴 수 있고 전하의 괴로운 심정을 짐작할 수 있사옵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감히 이렇게 왕비님의 애절한 탄식을 말씀드리게 된 것입니다.

[테제] 배신자! 그처럼 낯가죽이 두꺼운 놈도 나를 대한 순간 안색이 변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았어, 나는 그가 조금도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은데 놀랐소. 그의 차가운 포옹은 그에 대한 나의 애정을 얼어붙게 만들었어. 그래 이 사악한 연정의 사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이요?

[에논] 전하. 저는 이미 이제까지 모든 사연을 소상히 사뢰었습니다. 이 이상 더 왕비님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 홀로 버려 둘 수 없어 이곳을 떠나는 이 몸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 <2> 테제 . 이폴리트

 

[테제] , 저녀석이 이리로 오는구나. - 신이여! 저렇듯 훌륭한 자태를 보고 그 뉘인들 나처럼 속지 않을 사람이 있으리오. 음탕한 생각으로 더럽혀진 저 이마에 저토록 성스러운 미덕의 기상이 빛나다니, 제발 배신자의 증표가 나타나게 해 주소서.

[이폴리트] 전하. 어떤 요사스러운 그름이 용안을 흐리게 하였나이까? 진심으로 아버님을 섬기고자 하는 소자를 가상히 여기셔 그 비밀을 말씀해 주실 수는 없사옵니까?

[테제] 발칙한 놈! 네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다니! 하늘의 벼락이 이같은 악당을 놓아두다니, 내가 소탕한 좀도둑, 이 찌꺼기 같은 놈! 더러운 욕정에 넋을 빼앗겨 애비의 침실까지 범한 네가 감히 내앞에 그 가증스런 얼굴을 내밀다니. 내 이름이 미치지 않은 땅을 찾아 낯선 이역의 하늘 아래로 사라져버려! 반역자!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아! 너같은 죄 많은 자식을 낳았다는 치욕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되도록 발길을 재촉해서 내 왕국으로부터 자취를 감추어라! 네프튠 신이여! 지난날 이 몸이 당신의 해역을 욕되게 하던 살인귀들을 소탕한 용기와 노력의 대가로 당신은 이 몸의 한가지 기원을 들어주기로 언약한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이 몸서리치는 옥중의 고통속에서도 당신의 불멸의 힘을 빌리지않고 견디었습니다. 그것은 보다 더 긴요한 때에 당신의 구원을 받고 싶어서 아껴두었던 것입니다. 오늘이야 당신에게 간청하오니 이 불행한 애비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저는 이 반역자를 당신에게 맡깁니다. 저놈의 더러운 정욕의 불길을 자신의 피로 끄게 하소서. 부디 당신의 진노로 테제와의 언약을 지켜주소서.

[이폴리트] 페드라가 이 이폴리트를 모함하여 부정한 사랑의 죄를 뒤집어 쒸우다니! 이 몸은 두려움에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테제] 비겁한 놈. 페드라가 입을 다물어 너의 짐승같은 행위를 덮어주기를 바랐겠지. , 도망칠 때 네 죄의 증표가 될 칼을 두고 온 것이 잘못이었지. 너의 죄를 숨기려면 차라리 한 칼에 페드라의 목숨과 말을 빼앗었어야 했을 것을---

[이폴리트] 가증스런 거짓말에 분통이 터져 당장에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고 싶사오나 폐하에게 관련되는 비밀이기에 폐하를 존경하는 정으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 소자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번뇌의 구렁텅이에 빠지려 하시지 마시고 지금 까지의 제 생애와 사람됨을 생각해 보십시오. 큰 죄에는 반드시 작은 죄가 선행되는 법입니다. 죄를 범하는데도 일정한 순서가 있는 법이어서 순결하고 소심한 자가 갑자기 극단적인 배덕자로 돌변하는 예는 없습니다. 덕망 높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살인자나 비열한 불륜의 포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절한 어머니 품에서 자란 저는 그 순결한 혈통을 욕되게 한 적은 아직 없습니다. 만인의 숭앙을 받던 증조부님인 피-테왕께서는 제가 어머님의 품을 떠나자 곧 손수 거두어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결코 과장된 자찬을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폐하, 다만 얼마만의 덕망이라도 제게 있다고 믿으신다면 지금 제게 씌워진 대죄를 누구보다도 증오하리라는 것을 믿어 주십시요. 이폴리트는 지나치게 도덕관에만 사로잡힌 고루한 자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늘의 햇님도 이 마음보다는 맑고 깨끗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이폴리트가 어찌 욕된 정염에 마음이 홀려---

[테제] 바로 그 방자함이 너로 하여금 죄에 빠지게 하는거야. 비겁한놈! 네가 여자들에게 냉담했던 이유를 나는 알고 있어. 페드라에게 눈이 뒤집혀 다른 여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거지.

[이폴리트] 아니옵니다. 아버님! 이젠 더 숨길 수가 없어 이렇게 아버님 발아래 조아려 소자가 저지른 죄를 고백 드리겠습니다. 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내리신 율법을 어기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다름 아닌 아리시공주가 제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합니다. 페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아리시를 사모해서 제 넋을 불태워 왔습니다.

[테제] 네가 아리시를 사랑한다고? 그따위 서툰 간교는 통하지 않을걸. 죄인을 가장하여 자신을 정당화하려 들지만 어림도 없어.

[이폴리트] 페하,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줄곳 아리시를 피해오긴 했습니다만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떨며 아버님께 말씀드리려 나아왔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그릇 생각하심을 바로잡을 수는 없사옵니다. 어떤 맹서를 해도 납득이 가지 않으십니까? 천지신명께서---

[테제] 닥쳐라, 악인들은 언제나 거짓 맹서를 일삼는 법이니라. 달리 너의 위선을 감출길이 없다고 해서 그따위 중언부언 하찮은 넉두리를 늘어놓지 말아.

[이폴리트] 저의 행위가 아무리 도덕적이었다고 해도 페하의 눈에는 그것이 위선으로 밖에 보이질 않으니 애닮습니다. 차라리 페드라 왕비께서는 페하보다 훨씬 정당하게 저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테제] - 이 무슨 파렴치한 말버릇이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구나.

[이폴리트] 제가 추방당할 날자와 장소를 지정해 주십시요. 폐하.

[테제] 될수록 빨리 가라. 아무리 먼 곳으로 간다고 해도 이 몸은 반역자와 너무 가까이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폴리트] 이토록 치욕적인 죄의 누명을 쓰고 아버님의 버림을 받은 소자를 뉘라서 반겨 맞을 자 있사오리까?

[테제] 불의를 칭송하고 불륜의 간통을 일삼는 악당의 무리를 찾아가라. 반역자들. 명분도 없고 율법도 없는 무례한 놈들이 너같은 악당을 두둔하여 맞아 줄 것이다.

[이폴리트] 페하께선 역시 소자를 불의와 불륜의 화신으로 생각하시옵니까? 정 그러시다면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페드라 왕비께서 어떤 분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나셨나를 생각해 보십시요. 왕비의 핏줄은 저의 혈통과 견줄 수도 없을 만큼 죄의 역사로 더럽혀져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페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계시옵니다.

[테제] 뭐라고? 마침내 네 놈은 미치고 말았구나. 예가 뉘 앞이라고 감히 당돌한 망언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것이냐? 마지막 경고다. 어서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반역자. 내 분노와 저주가 네놈을 송두리째 삼켜버리기 전에 꺼져 없어져!

 

[] <3> 테제

 

[테제] 몹쓸놈! 너는 이제 스스로 파멸의 길로 달음질 치고 있는 것이다. 네프튠 신은 이 몸과 언약을 했고 그 언약을 이제 지킬 것이다. 복수의 신이 너를 뒤쫓으리라. 너는 그것을 피할 길 없이 멸망한 것이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그것이 더욱 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허나 네가 저지른 죄는 너를 벌하지 않고는 못견디게 하는도다. 이 세상에 어떤 어버이가 이보다 더 가혹한 오욕을 당한 자 있단 말인가? 이 몸을 산산히 부셔버리는 듯한 이 번뇌를 신들이여 굽어 살피소서. 이몸은 어찌하여 그토록 죄 많은 자식을 이 세상에 낳았단 말입니까?

 

[] <4> 페드라 . 테제

 

[페드라] 폐하! 견딜 수 없는 두려움에 겨워 이 몸은 당신 앞에 나왔습니다. 페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제 귀에까지 울렸습니다. 당신의 추상같은 질책에 어떤 보복이 지체없이 뒤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면 제발 당신의 아들을 살려 주십시요. 이렇게 비옵니다. 당신의 혈족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왕자의 비명을 들어야 하는 몸서리치는 무서움으로 부터 이 몸을 구해 주옵소서. 왕자의 피로 부왕의 손을 더럽히는 이 처절한 비극을 어서 거두어 주시기를 엎디어 비옵니다.

[테제] 아니요 왕비. 결코 내 혈족의 피로 내 손을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요. 그렇다고 해서 그 배은망덕한 놈이 내 손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오. 이 몸의 기원을 받아드린 저 무서운 네프튠 신이 그놈을 멸망시킬 것이요. 이제 당신도 그 참을 수 없는 오욕을 씻게 될 것이요.

[페드라] 네프튠 신에게 그 무서운 일을 기원하다니. - 당신의 기원이---

[테제] 어인 말이요. 당신은 행여 내 기원이 이루어 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지만 그런 염려는 거두어 주오. 그놈의 숱한 죄상을 상세히 내게 일깨워 자칫 망서리기 쉬운 이 몸의 분노를 불태워 주오. 당신은 아직 그의 죄를 속속들이 모르고 있소. 그는 당신을 비방하여 기만과 허위에 차 있다고 지꺼렸소. 그는 아리시를 사랑하며 아리시 또한 자기의 마음을 송두리째 차지했다고도 떠벌였소.

[페드라] 뭐라구요?

[테제] 분명 그렇게 말했소. 그러나 내가 그따위 어설픈 술책에 넘어갈리 있겠소?. 자 이제 네프튠 신의 신속한 재판을 기원하기로 합시다. 이몸은 손수 재판에 나아가 신의 분노가 지체없이 그를 멸망시키도록 재촉하려오.

 

[] <5> 페드라

 

[페드라] 예기치도 못한 새로운 소식이 미처 못다 사위어진 내 마음의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하는구나. 이 무슨 청천벽력이냐? - 하늘이여 이 어인 저주스러운 소식이오니까? 이 몸은 왕자를 구해야겠다는 한 마음에서 한사코 매달리는 에논을 뿌리치고 심장을 저미는 후회를 되씹으며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만일 수치심으로 해서 말문이 막히지 않았다면 모든것을 사실대로 자백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폴리트는 정을 아는 사나이면서도 내게만은 마음을 도사렸구나. 그러므로써 아리시를 사랑한다고? - 신이여! 내 청을 거역한 그 오만하고 냉혹한 자의 사랑의 문을 언제나 굳게 닫힌채 어떤 여성에게도 허하지 않을 줄 믿었거늘 다른 여자에게 연정을 불태우다니! 그렇다면 그가 냉담했던 것은 이 몸 뿐이었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그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단 말인가?

 

[] <6> 페드라 . 에논

 

[페드라] 에논. 내가 지금 들은 사실에 대해서 유모는 알고 있소?

[에논] 아니오.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떨리는 몸으로 예까지 나왔습니다. 당신의 결심을 알았기 때문에 창백하게 질렸습니다. 혹여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지나 않으셨는지 걱정되옵니다.

[페드라] 유모. 누가 나를 믿어 주겠소. 내게 사랑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에논] 사랑의 적이라니요?

[페드라] 이폴리트는 사랑에 빠졌소.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요. 그토록이나 무뚝뚝 하던 자가, 존중하면 거역하고 핍박하면 귀찮게 여기던 그 사내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몸을 도사리던 그 밤 같은 자가 스스로 정복자를 찾아 길들여 주도록 머리 숙이다니! 아리시가 그 사내의 마음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했단 말이오.

[에논] 아리시 공주라고요?

[페드라] - 난생 처음으로 겪는 이 괴로움이여. 이제 와서 이 무슨 가혹한 시련이오? 이제까지 겪은 나의 모든 번뇌, 공포, 분노, 사랑의 연인, 회한의 두려움, 참을 수 없는 모욕, 이런 것들도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곤욕에 비길 수는 없는 것이오. 그들은 사랑하고 있소. 어떤 마술로 그들은 내 눈을 속였단 말인가? 어떻게 그들은 만났을까? 언제! 어디서! 그대는 알고 있겠지? 그러면서 어찌하여 이 몸을 저들이 기만하도록 내버려 두었단 말이오? 어찌하여 그대는 저들의 정사를 이 몸에게 알려주지 않았소? 저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몇번이나 보았소? - 저들은 아무 꺼리낌없이 사랑을 속삭여 왔을테지. 하늘은 저들이 열정에 몸 달아 토하는 입김을 감미로운 미소로 삼켰으리! 저들은 날이면 날마다 맑고 깨끗하게 타올랐겠지. 그런데도 삼라만상으로 부터 버림받은 애달픈 이 몸은 태양을 등지고 광명을 피해 살아왔소. 나의 기도에 응하는 신은 단 하나 죽음의 신 뿐이요. 이 몸은 죽을 날 만을 기다려 탄식해 왔소. 슬픔과 눈물에 젖은 불행한 이 몸은 감시의 눈길속에서 속시원히 울기조차 못한채, 맑은 얼굴을 꾸며 괴로움과 눈물을 감추며 살아야만 했소!

[에논] 저들의 그 값어치 없는 사랑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이제 다시 못 만나게 될 것입니다.

[페드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저들은 사랑에 빠져 있을 것이요. - 생각조차 하기 싫도다. 내가 이토록 사랑에 미쳐 분노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아랑곳조차 하지 않을 것이오. 이폴리트의 추방으로 비록 그들의 몸은 떨어져 있을지언정 마음만은 헤어지지 말자고 천만번 맹세할 것이오. 안될 말이오. 이 몸을 모욕하는 그따위 행복을 참고 볼 수 없소. 유모! 질투의 불길에 휩쌓인 이 몸의 심정을 보살펴 주오. 아리시를 그냥 둘 수 없소. 그 가증스러운 혈통에 항거하는 내 낭군의 분노를 불러일으켜야 하오! 그녀의 죄는 그의 오빠들의 죄에 능가하는 것이니 가벼운 벌로 그치지 않도록 내 질투에 겨운 분노에 힘입어 내 낭군 테제에게 간청하려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내 지각이 갈피를 잃고 질투에 눈이 멀어 테제왕의 권능을 의지하다니. 내 낭군이 엄연히 엄연히 살아 있는데 사련으로 몸을 불사르다니! 이 누굴 위한 일이란 말인가? 내 말의 무서움에 스스로의 머리칼이 곤두서는구나. 내 죄는 이미 분수를 넘었도다. 불륜의 욕정과 위선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이 가증스런 몸뚱아리. 복수하기에만 몸이 달아오른 이 살륙에 굶주린 손은 죄 없는 사람이 피에 잠기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구나. - 가련한 여인이여! 그래도 이 몸은 살아있단 말인가? 어디에 이 몸을 숨겨야 할까? 지옥의 암흑 속으로 피하리라. 아니야. 그도 안될 말. 그곳에서는 내 아버지 미노스가 운명의 항아리를 안고 파랗게 질린 죄인들을 준엄하게 다스리고 계시온데 당신의 딸이 그 앞에 끌려나가 극악한 죄상을 자백하는 몰골을 보신다면 놀라움에 떨며 혀가 굳어 말문이 막히리라! 아바마마가 당신의 딸에게 형벌을 내리는 시름에 겨운 모습이 보이는 듯 하도다. 용서하소서! 가혹한 비너스의 저주를 받은 이 당신의 가엾은 딸의 모습을 보십시요. - 내 슬픈 마음은 내가 지은 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불행에 쫓기며 덧없는 가책에 몰리어 번뇌하는 이 가련한 한 목숨을 당신에게 드리려 하옵니다. -

[에논] - 왕비님! 부질없는 두려움을 버리셔야 하옵니다. 용서받을 수 있는 과오를 그토록 자책하는 눈으로만 보시지 마십시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찌 그것이 당신뿐이겠습니까? 사랑의 포로가 된 사람이 어찌 당신 뿐이겠습니까? 마음 약한 인간들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옵니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숙명적인 여자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왕비님께서 아무리 탄식한들 그것은 이미 먼 옛날부터 인간에 지워진 멍에입니다. 그토록 준엄하게 인간을 다스리는 신들마저 때로는 그릇된 정염에 사로잡혀 가슴을 태우는 적이 있는 법입니다.

[페드라]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그대는 내게 무슨 증언을 하려는 것이요? 그대는 언제까지 이 몸에 독소를 불어 넣을 작정이오? 이 불행한 여인이여! 이 몸을 이토록 망쳐버린 것은 그대가 아닌가? 이 세상의 빛을 등지려는 이 몸을 악착스럽게 만류한 것은 바로 유모가 아니었소? 그대의 간청으로 이 몸이 지켜야할 도리마저 잊게 하였소! 이폴리트를 피하는 나에게 그를 만나도록 한것도 그대였소. 그리고는 그 가증스러운 입을 놀려 도리어 그분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분의 생명마저 위협하다니! 그분은 그로해서 목숨을 잃게 된 것이오. 이미 이성의 분별을 잃어버린 테제의 기원을 네프튠 신이 받아 들였을지도 모를 일이지. 이제 더 이상 그대의 말에 기우릴 귀는 내게 없소! 익살스런 악마! 어디로든 없어져! 내 슬픈 운명은 내게 맡겨 줘. 하늘은 그대에게 정당한 벌을 내릴지니 그래서 그 형벌은 비겁한 술수로 불운한 왕자들로 하여금 죄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그대와 같은 자들에게 영원한 본보기가 될지어다. 비열한 아부의 무리들! 하늘의 분노가 내게 내려준 가장 불길한 하사품이 바로 그대로다.

[에논] - 신이여! 저분을 섬기기에 온갖 짓을 다 하고 모든 것을 버린 이 몸. 그 보답이 겨우 이것이란 말입니까? 하늘도 너무 하시옵니다.

 

- -

 

[] 제 5 

 

[] <1> 이폴리트 . 아리시 . 이스멘

 

[아리시] 대체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옵니까? 이토록 극심한 위험에 처하시고도 잠?고 계시니 심히 안타까웁습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시는 부왕의 그릇된 질책을 그대로 받들 작정이옵니까? 무정하신 분. 제 눈물의 호소도 아랑곳없이 조그마한 연민의 정도 보이지 않으시니 두 번 다시 이 몸과 만나지 않을 작정이시라면 슬픔에 잠긴 이 아리시의 곁을 어서 떠나십시요. 허나 떠나시더라도 목숨만은 안전히 보전하시기 바랍니다. 더 높은 명예를 수치스러운 비난으로부터 지키십시요. 그리고 부왕께서 신에게 기원하신 저주를 취소하도록 간청 해 보십시요. 아직 시간은 충분합니다. 또한 무슨 생각에서 당신을 비방한 페드라를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까? 제발 테제왕의 의혹을 풀어 드리기 바랍니다.

[이폴리트] 사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오 아버님의 규방에 대한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백주에 드러내란 말씀이오? 그런 일로 해서 부왕의 존안이 치욕으로 물들게 할 수는 없지 않소? 그대만이 이 가중한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오. 나의 결백함은 신과 당신만이 알고 있소. 내 자신에게 마저도 숨겨두고 싶은 일들을 당신에게도 차마 말할 수가 없군요. 이것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증표로 알고 할 수만 있다면. 이제 내가 한 말일랑 잊어주시요. 그리하여 이 저주받은 사랑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 순결한 입일랑 행여 열지 마오. 공명하신 신들에게 우리의 앞날을 맡기기로 합시다. 전능하신 신들은 이 몸의 결백함을 충분히 굽어 살피실 것이요. 그리고 페드라는 조만간 바라는건 이것뿐이오. 그밖의 모든 것은 자유로운 나의 분노에 맡기려 하오. 당신이 지금 처해있는 볼모의 처지에서 벗어나 이 몸의 뒤를 따라주시요. 미덕이 독기를 마시는 이 불길하고 부정한 땅을 빠져나와 이 몸으로 인해서 벌어진 혼란을 틈타 당신이 도피한 길을 은폐하시오. 당신의 피신을 위한 모든 방편은 이 몸이 강구하리다. 당신의 감시병은 모두가 내 부하입니다. 힘센 장사들이 우리 편이 되어 싸워 줄 것이오. 아르고스가 양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고, 스파르타가 우리를 부릅니다. 우리 편이 되어 줄 사람에게 정의의 부르짖음을 보냅시다. 페드라가 우리를 왕좌에서 추방하고 그 유산을 자기의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일을 용납할 수는 없소.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오. 어떤 두려움이 당신을 망설이게 하오? 당신은 주저하고 있군요?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이 몸은 불같이 타 오르거늘 오히려 당신께서는 그토록 냉담하다니 어인 일이요. 추방자를 따르기가 두려워서 그러시오?

[아리시] 아니오이다. 그런 단순한 추방이라면 이 몸의 기쁨은 더할 나위없는 것입니다. 왕자님, 당신의 운명과 같이 할수만 있다면 이 몸의 모든 사람의 저버림을 받아도 가슴 벅찬 희열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직 명분이 서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는 처지온데 어떻게 명예로운 도피의 길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제가 테제왕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고 해서 불명예가 될 것은 없습니다. 폭군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면 그길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이 몸을 사랑하고 계시옵니다. 까닭에 왕자님 이 몸의 명예를 위하여---

[이폴리트] 아니오. 이 몸은 당신의 명분을 위해서 훌륭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우리들의 원수를 피하여 당신의 지아비 될 이 몸을 따르시오. 하늘의 뜻이니 우리는 불운한 가운데서도 자유롭습니다. 혼인의 의식은 언제나 축복의 횃불로 밝혀지는 법은 아닙니다. 트로젠의 성문밖에 우리 선왕을 모신 분묘 가운데 성스러운 하나의 전당이 있소. 그것은 위선자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곳이며 거짓 맹서를 하는 자는 무서운 벌을 받는 곳입니다. 그대가 이 몸을 믿는다면 그곳에 가서 우리의 영원한 사랑을 엄숙히 맹서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숭앙하는 신들의 지혜로운 보살핌을 빌어 우리들의 수호신이 되어 주시도록 기원합시다.

[아리시] 왕께서 오십니다. 어서 피하시오. 왕자님! 이 몸은 잠간동안 이곳에 머물러 저의 출발을 숨기려 하옵니다. 그리고 이 몸은 당신에게로 인도할 수 있는 진실한 안내자를 저에게 보내 주십시오.

 

[] <2> 테제 . 아리시 . 이스멘

 

[테제] - 신들이여! 나의 이 번뇌. 빛을 내리소서. 그리하여 이 눈에 진실을 보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몸은 그 진실을 찾아 이곳까지 나아 왔습니다.

[아리시] 이스멘. 모든 일을 조심해서 도피할 차비를 차려줘, 어서.

 

[] <3> 테제 . 아리시

 

[테제] 공주! 안색이 좋지않군, 뭘 그렇게 당황하오? 이폴리트는 여기서 뭘하고 있었다지?

[아리시] 폐하, 그분은 저에게 영원한 작별을 고하였습니다.

[테제] 그대의 눈은 반역스러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소. 게다가 그는 그대로 인해서 첫사랑의 탄식을 맛보게 되었소.

[아리시] 폐하.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옵니다. 그 분은 폐하처럼 증오에 차서 살지는 않사옵니다. 그분께서는 한번도 이 몸을 죄인 취급한 적이 없사옵니다.

[테제] 알겠소. 그가 그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서 했을테지. 그렇다고 변하기 쉬운 그자의 마음을 너무 믿질랑 마오. 그는 그대에게 한것처럼 다른 여자들에게 수없이 많은 사랑의 맹서를 하고 있으니까.

[아리시] 그분이 설마---

[테제] 공주는 그자의 마음을 더 단단히 잡아 두었어야 했을것을. 어쩌자고 그대는 그토록 가증스런 사랑의 분배를 참고 견디었단 말이오.

[아리시] 그럼 어찌하여 폐하께옵서는 악의에 찬 호소를 받아들여 그토록 티없이 깨끗한 그분의 생애를 망치려 하옵십니까? 어찌하여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헤아릴 줄 모르십니까? 만인의 눈에 번쩍이는 그분의 미덕이 어찌하여 저주받은 한조각 구름으로 해서 폐하의 눈만을 가리워야 하옵니까? - 그분을 악랄한 독설에 맡겨두시다니. 정말 너무하시옵니다. 신에게 기원하옵신 그 살벌한 저주만을 거두어 주사이다. 폐하. 준엄한 하늘은 폐하의 기원하심에 응답하는 한편으로는 폐하도 증오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라옵니다. 필경 하늘은 우리들 전부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옵니다.

[테제] 아니오. 그대가 아무리 그 발칙한 죄인을 감싸주려고 해도 이미 틀렸소. 공주는 사랑에 눈이 멀었소. 이 몸은 거짓없는 증인들의 증언을 믿소. 뿐만 아니라 나는 그자의 거짓없는 눈물을 보았소.

[아리시] 부디 조심하시기 바라옵니다. 폐하. 무적의 용사이신 폐하께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악마들을 인간세계로부터 소탕하시었나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멸망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사옵니다. 그 중의 한사람이 살아 남아서 폐하를 --- 왕자님께서는 이 몸을 걱정하신 나머지 이 이상 더 말씀드리는 것을 금하셨나이다. 그분의 분부를 괴롭힐 수는 없사옵니다. 행여 침묵을 깨뜨릴세라 이만 어전을 물러가겠사옵니다.

[테제]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번번히 서두만 띄어놓고는 말꼬리를 흐리니 무엇을 숨기자는 건가? 저들은 거짓말을 늘어놓아 이 몸을 현혹시키려는 것인가? 저들은 결탁하여 이 몸을 괴롭히고자 하는 것일까? 스스로 냉혹해지려 다짐하건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어오는 이 자책의 부르짖음은 어인 일인가? 내 영혼의 밑바닥에 숨어있던 애련한 정이 이 몸을 괴롭히고 슬프게 하는도다. 다시 한번 에논를 심문해 보기로 하자. 이 가공할 죄상을 속속들이 밝혀야겠다. 여봐라! 에논을 찾아라. 내가 몸소 나아가 심문하리라.

 

[] <5> 페드라 . 에논 . 파노프

 

[페드라] 유모. 더이상 아무말도 말아주오. 이제 오욕의 정념도 사위었고 회한의 눈물도 진하였소. 내 아버지의 미노스의 심판을 받으러 지옥길을 재촉할 따름이요.

[파노프] 왕비마마. 제발 두 아드님을 생각하시어 정신을 차리셔야 하옵니다. 마마마저 안계시오면 어린 왕자님들은 의지할 곳 없는 외톨이가 되고 맙니다.

[페드라] 다 부질 없소. 이 죄많은 애미가 살아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보람을 더 하겠소. 에논. 그대도 죄를 지었소. 그러나 모두가 이몸을 위해서 한 노릇이니 너무 마음에 두지말고 내가 떠난 뒷 일들이나 보살펴 주오.

[에논] 내가 저지른 죄과는 너무나 엄청납니다. 이폴리트 왕자님의 생명도 촌각에 달려있고 또한 왕비님마저 헤어날 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간사스런 간계로 해서 두분의 멸망을 초래한 죄값은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가책으로 이 몸을 괴롭힙니다. 극악스런 독기로 찌들은 내 혓바닥은 왕비님의 목숨을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무르게 할 말을 논할 기력이 없거니와 죄많은 손으로 당신의 눈을 감겨 드릴 수도 없습니다. 한발 먼저 당신의 부친 미노스 앞에 나아가 준엄한 심판을 받으려 합니다.

[파노프] , 에논. 어이하여 당신마저 이러시오?

[페드라] 모든게 부질없는 짓. 이 몸과 그대의 숙명적인 죄과는 신들이 거둘 것이니 새삼스레 후회나 탄식의 사슬에 메어 속절없이 눈물 지워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유모. 이 세상에서 맺어진 우리의 인연도 이제 끊어질 시간이 촉박했나 보오. 못내 안타까운 것은 부왕의 저주로 네프튠 신에게 맡겨진 이폴리트의 운명을 우리들의 죽음으로 어쩔수 없으니 그것이 한스러울 뿐이요.

[파노프] 에논. 안되오!

[에논] 나의 발길을 막지 마오. 파노프. 제발 가엾은 왕비님에 그대의 마직막 따뜻한 보살핌을 베풀어 주시기 바라오.

 

[] <6> 테제 . 파노프

 

[테제] 에논는 어디 있느냐?

[파노프] ! 페하! 에논은 깊은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성난 파도는 순식간에 그분의 모습을 우리들의 눈앞에서 앗아가고 말았습니다.

[테제] - 이 무슨 놀라운 소식이냐?

[파노프] 그분의 죽음도 왕비님의 마음을 진정시키지는 못하였습니다. 왕비님의 괴로움은 더해갈 뿐 귀여운 왕자님들 마저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하십니다. 그 총명하던 눈빛은 갈피를 잃고 방황하며 저희들마저 알아보질 못하십니다. 제발 폐하, 어서 납시어 왕비님을 구해 주십시요.

[테제] ! 하늘이여 에논은 죽었소이다. 게다가 페드라도 죽으려하오. 내 아들 이폴리트를 불러다오. 그의 결백함을 자신이 말하도록 해야 해. 이몸은 즐겨 그의 증언을 들으리라. (혼자서) 네프튠 신이여 당신의 불길한 은총을 조급히 서둘러 베풀지는 말아주오. 차라리 영원토록 내 기원을 듣지말아 주었으면. 믿어서는 안될 자들의 증언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너무 황급히 이 잔인한 손을 들어 당신의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 나의 성급한 기원이 어떤 슬픔 절망을 내게 안겨줄 것인가?

 

[] <7> 테제 . 테라멘

 

[테제] 아 그대인가 테라멘. 그대는 내 아들을 어떻게 하였소? 내 아들을 어릴적부터 그대에게 맡기었소. 헌데 그대가 눈물을 흘리다니 대체 내 아들은 뭘하고 있단 말이요?

[테라멘] ! 그 애정어린 심려도 이젠 소용이 없사옵니다. 이미 이폴리트왕자는 이 세상을 떠나시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 사람들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분의 숨 거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페하. 누가 뭐라해도 왕자님의 결백하심을 이 몸은 알고 있사옵니다.

[테제] 내아들이 죽었다니? 어찌된 일이오? 내가 두팔을 벌려 그를 맞으려 하거늘 성급한 신들이 그의 죽음을 재촉하다니. 대체 어떤 괴변이 내아들의 목숨을 이토록 앗아갔단 말이야?

[테라멘] 우리가 트로젠의 성문을 나서기도 전에 이미 왕자님께서는 침통한 표정으로 도열한 호위병들의 전송을 받으며 전차에 몸을 싣고 말고삐를 잡으셨습니다. 그렇게도 위풍 당당하던 그의 준마들까지도 왕자의 슬픔을 아는듯 고개를 떨구고 눈빛마저 흐리였습니다. 바로 이때 바다 밑바닥으로부터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벽력이 일며 산더미같은 파도가 해안을 밀어닥치는가 했더니 보기에도 흉칙스런 괴물을 토해 놓았습니다. 그 괴물의 포효는 삼라만상을 공포에 떨게 했으며 인간의 피를 얼어붙게 했습니다. 병졸들은 혼비백산해서 제 갈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도망했지만 단 한사람 이폴리트 왕자님만은 용사의 아들답게 말을 몰아 괴물에게 육박했습니다. 왕자님의 날쎈 창날은 어김없이 괴물의 옆구리에 가서 꽂혔습니다. 치명상을 입은 괴물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말굽아래 쓰러졌으며 피와 불길과 연기를 토하자 놀란 말들은 미칠듯 내달아 바위등성이로 치달았습니다. 바위에 부딧친 전차는 산산조각이 나고 왕자님은 말고삐에 매달린채 끌려 갔습니다. 겨우 말들이 멈추었을 때는 주위의 왕자님의 피로 붉게 물들었고 가시덤불에는 왕자님의 살과 머리카락이 흩어진채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폐하께 아리시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 영웅은 내 품에 안긴채 처참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혹한 신들이 승리의 증표로 남긴 그 슬픈 모습. 부왕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그 처절한 모습.

[테제] - 내 아들이여 영영 잃어버린 내 소중한 희망이여! 내 기원을 지나치게 받아들인 가혹한 신들! 이제 무엇을 위해 이 목숨 부지할 것인가?

[테라멘] 이때 아리시공주가 그곳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녀는 페하의 노여움을 피해 신들 앞에 무릎꿇고 왕자를 낭군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왕자의 비참한 모습을 보자 공주는 슬픈 눈을 들어 신들을 원망하더니 정신을 잃고 사랑하는 그분의 발아래 쓰러졌습니다. 이 몸은 세상을 저주하면서도 페하 앞에 나와 그분의 남기신 유언을 전하여 내게 맡기신 불행한 임무를 다하고자 하옵니다. 아 저기 왕자님의 생명을 앗아간 원수가 옵니다.

 

[] <8> 테제. 페드라. 테라멘. 파노프. 병졸들

 

[테제] 자 어떠시오. 내 아들은 죽고 당신은 승리를 거두었소. -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내 잔혹한 의혹의 집념은 이폴리트를 징벌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신중을 기하라고 외치지 않았던가? 어쨌든 왕비여. 그의 멸망이 정당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당신은 기뻐하시오. 설혹 이 몸이 기만당했다고 해도 당신이 그를 비난하니 나는 그를 죄인이라 믿어야 했소. 이젠 그의 죽음이 내 눈물의 원천이 되었소. 이제와서 내 아들의 무고함이 밝혀진다고 해서 그를 되살릴 수도 없는 일. 이 몸의 고통만 더할 뿐인것을--- 당신과 이 해안을 멀리 떠나 갈갈이 찢긴 내 아들의 피에 젖은 모습을 떨쳐 버리게 하여 주오. 걷잡을 수 없는 이 마음, 죽음보다 절박한 고통으로 괴로와 하는 이 몸은 온누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싶구료. 이 세상 모든 것이 내 그릇된 처사에 반기를 드는 것만 같소. 온누리에 떨쳐진 내 명성이 오히려 이 몸의 경솔함을 꾸짓는 듯 하오. 차라리 이름없는 필부로 태어났다면 몸을 숨기기도 쉬웠을 것을. 신들이 이 몸에게 베푸는 가호마저도 거치장스러울 따름이오. 신들의 살벌한 은총도 싫거니와 부질없는 기원으로 신들을 괴롭히지도 않으려오. 신들의 이 몸을 위해 어떤 호의를 베푼다고 해도 이미 내게서 뺏어간 내 아들을 되돌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요.

[페드라] 지금에 와서야 가증스런 침묵을 깨뜨리고 당신의 아들이 결백함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왕자님에게는 티끌만한 죄도 없사옵니다.

[테제] - 불행한 애비로다! 이 몸은 그대의 맹서만 믿고 무고한 내 아들을 저지경으로 만들었도다. 잔인한 여인이여! 그리고도 그대 죄를 사함 받을 생각으로 예까지 나왔단 말인가?

[페드라] 지금 이 몸은 촌각이 소중하오. 테제왕이시여! 제발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오. 순결하고 준엄한 왕자에게 불륜의 추파를 던진 것은 이 몸이요. 비너스 신의 화살이 이 가슴에 정념의 불길을 타오르게 했으며, 그밖에 모든 일들은 에논이 서둘러 저지른 짓이옵니다. 그러나 이젠 그도 자기 죄를 깨닫고 바다 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 몸은 당신앞에 나아와 내 한맺인 탄식을 털어놓고 한발 늦게 죽음의 나라로 내려가려 합니다. 메데아 여왕이 아테네로 가져온 독약을 내 타오르는 혈관속에 흐르게 하였소. 독기는 이미 심장에까지 스며들어 숨결마저 가빠진 이 가슴에 싸늘한 냉기를 퍼뜨리고 있소. 이 몸은 살아 있는것을 치욕으로 생각하는 하늘도 내 낭군도 몽롱한 아지랑이 저쪽에 아련하오. 죽음은 내 눈에서 빛을 빼앗아 이 눈이 더럽힌 이세상의 모든 빛을 정결케 하려는 것이오.

[파노프] 왕비님께서 숨을 거두십니다.

[테제] 이토록 가증스러운 범행의 기억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수는 없는 법! 내 부질없는 방황도 이젠 끝났도다. -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정이 이 가슴을 저미는구나. 자 우리들의 눈물을 내 아들의 핏자욱 위에 뿌리러가자. 사랑하는 내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내 가증스러운 기원의 공포를 씻으러 가자. 그리하여 그에게 주어 마땅한 모든 명예를 돌려주기로 하자. 그의 성난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설사 그의 일족이 모반을 꾀했다고 해도 지금은 내 아들의 배필인 아리시공주에게 내 딸의 지위를 주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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