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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사람(아담)'
'사람(아담)'은 참 '중요한 존재들'이다.
성경의 내용이 전부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이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록이고
하나님께서도 진노로든 질투로든 징계로든 사랑으로든
사람들에게 집중하시고 계시고
천사들을 보내셔서 사람들을 돕도록 명하셨고
마귀들도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온 우주가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음 받았다
성령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라는 것이 지금 동물보다
조금 나은 인생을 논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라 천사의 한 종류인데
우주를 고체로 만들어 놓으시고 모든 만물을 고체와 육체로 존재하게
지으신 후 사람도 육체를 입혀 지금의 모습처럼 만드셨다.
(예레미야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아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드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 넣어주셔야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로보트에 전기를 공급해 주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아멘.
하지만 사람은 한번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어주면 생령이
되는데 이 생령은 영원히 살 수 있게 만들어졌다.
사람은 하나님의 특성대로 몇개체로 분리되게 지음 받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점토로 무언가를 만들었던 것처럼
그런 흙으로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영의 세계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가 '하나'로 되어 있지 않고
'권혁미 영' '권혁미 혼' '권혁미 육체' '권혁미 생각(정신)' '권혁미 의지'
이렇게 5개체로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고 '권혁미 의지'
'권혁미 생각(정신)' 이렇게 2개체로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다.
5개체로 분리될 때는 기도(회개)시간이고, 일상생활 때는 2개체로
분리되어 있다. 2개체라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나의 의지 양 옆으로
나의 생각과 나의 정신이 버티고 있다.
나는 이것을 경험하는 훈련을 받았다. 영의 세계의 일이다.
판타지 영화에서 보면 한사람이 여러 개체로 분리되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영의 세계에서 사람의 개체가 하나가 아니라 5개나
2개나 3개로나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분리될 수도 있었다.
영화는 어떻게 알고 그렇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지음받은 사람은 특성도 같게 지음
받았는데, 하나님은 성부하나님.성자하나님.성령하나님 '3위'로도
계시고 한분 하나님인 '1위'로도 계시는데, 사람도 하나님처럼 지음
받았기 때문에 5개체로도 있을 수 있고 2개체(3개체)로도 있을 수 있다.
육의 세계에서 보면 권혁미육체인 1개체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선'과 '악'의 성품이 공존 하신다
(창세기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
'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아멘.
하나님의 성품은 '선의 성품'과 '악의 성품'이 공존하신다.
사람도 하나님처럼 '선'도 있고 '악'도 있게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선만 발휘하시고 악은 발휘되지 않도록
다스리실 수가 있으시고, 창조된 사람은 악이 발휘되었을 때
악을 다스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렇지만 사람도 '의지를 사용'해서 죄를 거절할 수는 있다.
나의 의지를 사용해서 선악과를 선택할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다.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멘.
사람은 '스스로 존재 한다'고 할 만큼 위대하게 지음 받았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살 수 있도록 대단한 존재로 창조되었는데
'창조주가 없다'고 하고 '스스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하게 만들어졌다.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아담(히브리어)=사람'은 얼마나 똑똑한지
지금 존재하고 있는 동물들의 이름을 다 지어줄 정도였다.
이 웅장하게 창조되어진 만물을 사람에게 다스리라고 하셨을
정도면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을 할 수 있다.
삶의 교육도 하나님께 직접 받았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아멘.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렇게 연구를 하고 만들어내고 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안전장치'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영화에서도 보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로봇에 점령당하고
지배를 당하는 영화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기를 사람들에게 '창조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계약을 걸어 놓으신 것이 '선악과'인데
다른 것은 다 먹을 수가 있고, 다 다스리면서, 육체는 생명나무를
먹으면서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셨는데 만약에 순종 시스템이 잘못
되면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시고 '육체'가 죽을 수 있게 하셨다.
그것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자율로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 나무 열매
'선악과'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 것'이라고 여기고 '먹지 말라'고 하셨다.
스스로 반응하게 지음 받은 사람은 순종(선)도 할 수 있고
불순종(악)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사람이 만들어낸 로보트의 개념과
다른 존재다. 하나님처럼 자율로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
처음부터 순종(선)만 발휘되게 만드셨다면 그것은 로봇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것인 선악과만 자율로 안 먹으면 영원히 살 수 있었다.
"너희들은 100개 중 99개를 먹고 하나님 것인 1개는 먹지 마라"
하나님은 '선 악'의 주인... '악(불순종)'은 오직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의 주인이시다.
피조물인 사람은 '선(순종)'만 사용해야지 '악(불순종)'까지 사용하면 안된다.
'악(불순종)' 이라는 것은 하나님 것이다.
하나님은 '해야 되고' 이시면서 '안 해도 되고' 이시지만
사람은 '해야 되고' 만이다. '안 해도 되고'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해라" 하시면 "예" 하고
"하지마라" 말씀하시면 "예" 해야 한다.
"해라" 하셨는데 "안하고 싶은데요" 하거나
"하지마라" 하셨는데 "하고 싶은데요" 하면 안된다.
그런데 하와가 하나님의 "먹지마라" 말씀에 "먹고 싶은데요" 한 것이다.
우리가 로봇을 만들 때는 '해야 되고' 를 프로그램 해놓아야지
'안해도 되고'를 프로그램 해놨다고 했을 때 로봇이 "안 하겠다"고
한다면 그 로봇을 만든 의미가 없다.
"청소해라 로봇아" "싫어요!", "로봇아 이것 좀 해라" "싫어요!"
"로봇아, 아기 좀 보고 있을래?" "아~ 나 지금 바쁜데요"
"로봇아, 마트에 가서 이것들 좀 사올래?" "싫은데요"
만약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든 로봇이 사람이라면 '해야 되고' 와
'안해도 되고'라는 프로그램을 설정해 놓았을 때 이 사람이라는 로봇이
스스로 '안해도 되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되고'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스스로'라는 자율성을 주신 대신에
그에 버금가는 '숙제'를 주신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마라"
인간과 컴퓨터의 능력 비교
컴퓨터가 지나치게 진보하면 인간이 오히려 컴퓨터에게 지배당할 우려가 있다.
컴퓨터의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처리 내용이 분명하지 않고, 또한 고속으로
대량의 정보를 다루고 있다면 이러한 우려도 나올 만하다.
컴퓨터는 한 번 가르친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몇 번이고 같은 일을 충실히 되풀이한다.
하지만 이것은 한번 잘못 가르치면 몇 번이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결과가 된다.
즉 컴퓨터를 잘 활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결국 사용자 하기 나름인 것이다.
인간의 오감은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으로, 이것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량을
정량적으로 나타낸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 다음이 귀이고, 나머지 감각 기관은 이 2개의 감각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어쨌든 눈과 귀를 통해 대량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는데,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폐기되어 버리고, 최종적으로 뇌에 인식되는 것은 1초 동안에 100비트(숫자나 문자,
예를 들면 언어나 문장 해독의 속도에 대응하고 있다)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같은 폐기 방법의 우수함이 인간의 뛰어난 능력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외부 상황도 정확하게 파악한다.
예를 들면, 전화가 걸려 오면 즉시 그에 대처할 수가 있다.
오늘날 컴퓨터의 연산처리 능력은 무한대의 힘으로 발전하고 있어, 인간이 일생을
걸려서도 계산할 수 없는 자리수 π(파이)의 값까지도 순식간에 계산해 낸다.
더욱이 최근에는 출력 장치도 급속히 진보하여, 리얼타임(즉시 처리)으로 복잡한
3차원의 분자 구조를 표시, 이동하는 것 따위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하는 데는 아직도 키보드 등 극히 한정된
수단을 통해 저속으로밖에 이룰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과 컴퓨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적어도 현재의 컴퓨터는 고속, 대용량의 처리를 하는 장치에 불과할 뿐,
인간처럼 외계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정보를 받아들여 적절한 취사선택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의 면에서만 보더라도 결국 인간을 지배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인터넷 글)
사람은 하나님의 '복제품' 하나님의 성품이 다 들어갔다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사람에게도 존재케 하셨는데 악을 존재하지 않게
만드실 수가 없었던 것이 하나님과 똑같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있었던 선의 성품이나 악의 성품이나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게 됐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복제품'을 만드셨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신다.
이 똑똑한 복제품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대항하면
안 되기에 '안전장치'를 만드셨다.
인간도 복제품을 만들었는데 하나님 닮아서 그런가보다.
인간복제는 인간의 세포(체세포)를 떼어내어 이를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한 인간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다른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복제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단체 및 인물로는 캐나다의 종교단체인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클로네이드(Clonaid)社, 이탈리아 인공수정 전문의 세베리노 안티노리,
미국 켄터키대 생식의학과 교수 출신인 파보스 자노스 박사 등이 있다.
복제 기술은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로 나뉜다. 그러나 생식세포 복제 방식이
체세포 복제 방식에 밀려 1990년대 후반부터 거의 사라지는 추세이며 복제양 돌리가
체세포 복제기술에 의해 지난 1997년 2월 탄생하였고 돌리 이후 각국에서 생쥐,소 등의
체세포 복제가 뒤따랐고 국내에서도 지난 1999년 복제 젖소 영롱이와 한우 진이가 탄생되었다.
체세포 복제는 현존하는 생명체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체세포)를 떼어내어 이를
착상시키는 기술이다. 즉, 다른 몸에서 추출한 난자의 핵을 빼고 그 대신 체세포를
투입하면 자신과 똑같은 복제생물을 만들 수 있는 원리다.
따라서 체세포 복제는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수정과정 없이도 생명체를 탄생시킬
수 있다. 난자만 있다면 손톱이나 귀,머리카락 등 몸에서 떨어진 세포 하나로도 자신과
유전형질이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종교단체인 '라엘리안 무브먼트(RAELIAN MOVEMENT)'는 모든 인간은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 과학자들로부터 복제된 것이라고 믿으며 최초의 인간복제
전문회사인 클로네이드(Clonaid)사를 설립하고 2001년 2월 불임부부 등을 위해 세계
최초의 인간복제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2년 4월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인간복제 프로젝트에 참여중인
수천 명의 불임부부중 한 명의 여성이 임신 8주째를 맞았다"고 밝혔고 2002. 12. 26에는
'이브(Eve)'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 최초의 복제아기가 출생했다고 언론을 통해서 전했다.
그러나 이후 DNA 자료 등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아 사실 여부가 여전히 논란인
상태다. 이탈리아 인공수정(IVF) 전문의 세베리노 안티노리(Severino Antinori) 역시
"전세계 불임부부들의 희망은 인간복제"라며 2001. 1. 28 미국 켄터키대 생식의학과
교수 출신인 파노스 자보스(Panos Zavos)박사와 함께 인간 복제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2004년 1월 파노스 자보스는 복제 인간배아를 35세된 여성의
자궁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글)
사람이 '사람 복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불임부부에게 자녀를
만들어 주기 위함인 것 같은데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자녀가 없을 때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간구해야 하는데 이렇게
과학이라는 것을 빌려서 할 때는 아마도 떼돈 들어가는 것 같다.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임신하게도 해산하게도 하신다
(이사야 66: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사사기 13: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아멘.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자녀를 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게 생기고
간절히 원하는 사람에게는 안 생기는 것 같은데, 시댁 식구들의
눈치가 있다든지 하면 더더욱 안 생기는 것 같다.
그런 것도 내려 놓으면 쉽게 생기려나?
나 같은 경우에는 자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하나 정도는 낳을려고 했지만 많은 자녀를 원하지
않았는데 임신이 너무 쉽게 되었다. 그래서 낳지 않는 수술도 했다.
나는 과거에 8년 동안 임신을 못해서 인공수정까지 하려고 했던
사람을 위해 1년 동안 간절히 시시때때로 기도를 드려주었는데
꼭 된다는 믿음 보다는 그녀가 너무 아이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보고 내 기도보다 더 많이 해주었던 것 같다.
나중에 다음해에 딸을 낳았다는 소식만 들었다.
내가 시험들어 교회를 잠깐 떠난 사이에 일어났다.
'불임'은 과학을 빌어서 해결할 일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로 해결할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자녀를 낳고 싶어 하는 것 같이 하나님과
똑같은 존재를 만드시고 스스로 순종하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려고
하셨던 것이다.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같이 친구처럼, 부모처럼
대화도 하고,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기억하고, 배우고,
스스로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셨다.
'스스로'를 주신 대신 불순종 하면 '육체의 죽음'
하나님께서 사람을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만드시지 않았다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공공방송을 통해 "지금부터 몇분까지 밥을 먹어라"
"지금은 화장실을 가라" "지금은 공부를 해라" "지금은 일을 해라"
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시려면 안 만드시는 게 낫지 않을까.
사람은 스스로 살 수 있는 대신 불순종을 선택하면 악의 성분이 발휘
되게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순종이 '선'이라면 불순종이 '악'이다.
그런데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므로 불순종을 선택한 것이라서
악이 발휘되게 되었는데 아담도 넘어가서 같이 발휘되게 되었다.
그래서 악(불순종)이 발휘되는 상태에서 영원히 살면 안 되기에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만큼 살다가 육체는 죽어야 한다.
나는 과거에 성경을 읽으면서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하와도 먹고 아담도 먹었는데 정작 죽은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을 당하기만 했다. 이상했었다. 왜 죽는다고 하셨는데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생명나무를 못 먹게 하시기 위해서 쫓아내기만 하셨을까?
지금 영의 세계로 들어가보니 사람이 5개체로 지어져있는데
그중 육체라는 개체만 죽는 것이었다. 4개체는 영원히 존재하고.
영어성경에는 '옷을 지어 입히시고'가 'garment of skin'이라고 되어 있다.
'skin'이라는 뜻은 사람의 피부, 살갗, 살가죽 사람·동물의 외피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이라고 되어 있다. 'garment'는 입히다라는 뜻이다.
나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인데 동물을 죽여서 만들어서 입히셨나 했다.
영의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육체하고 다른 질인 동물하고 같은
질의 표피를 만들어서 입히신 것이었다. 동물처럼 죽어야 했기에.
동물처럼 입힌 옷 때문에 영의세계를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다.
(욥기 19:26) "And after my skin has been destroyed,
yet in my flesh I will see God;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아멘.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창조주)과 사람(자율)=사람(제작자)과 로봇(자율)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하나님의 사람 창조는 복잡하다. 쇠붙이로 로봇을 만든
사람의 제작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
물론 로봇을 만드는것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어렵다.
그렇지만 그 굉장히 어려운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초월한 것이다.
사람 창조는.
자율을 발휘해서 말을 들어야 하는 로봇이 '불순종'의 시스템을
발휘하니까, 제작자인 사람이 이 로봇을 부수고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공장에 들어가서 시스템을 고치고 있는 중이다.
우리로 따지자면 이것이 '인생'이다.
제작자인 사람이 사람처럼 스스로 반응하는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 로봇에게 전기를 통해서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니라
제작자인 그 사람의 생명을 나눠주어서 그 로봇이 움직이고 스스로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로봇이 불순종의 시스템을 발휘했을 때 죽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작자인 사람도 같이 죽어야 하기에.
하나님과 사람과도 이렇게 영이 연결되어 있어서 사람의 영까지
죽이실 수가 없으시다고 하신다. 육체만 고치면 된다고 하신다.
'불순종 시스템' 고치기 위해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이 그저 쇠붙이로 만들어진 로봇이라면 시스템을
고치느라고 해부하고 다시 조립하고 할 때 아프지 않을텐데
사람은 신기한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고치실 때 아프기도 하고
눈물도 흘리고 화도 내고 도망도 가려고 하고 죽기도 한다.
칩하나 꺼내서 프로그램을 다시 손봐서 집어넣고 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그렇다. 어떻게 반응하나 테스트 하시기 위해서
우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불순종의 시스템을 고치시기 위한 인생을 사는 것인데 얼마나
하나님을 향하여서 긍정적으로 반응을 하느냐,
부정적으로 반응을 하느냐 등 다양하게 보신다.
안 믿는 자들에게서 보시는 것은 이웃과의 관계이다.
선하게 대하느냐 악하게 대하느냐.
믿는 사람들에게서 보시는 것은 교회를 어떻게 섬기느냐,
주의 종을 어떻게 섬기느냐, 성도들간에 어떻게 섬기느냐,
예배를 어떻게 드리느냐, 기도를 어떻게 드리느냐,
찬양을 어떻게 부르느냐, 예물을 어떻게 드리느냐,
말하는 것이 진실이냐,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느냐, 전도를 잘하냐, 성경을 읽냐 등으로 살펴보시는데
총체적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선하게 유지하면서
사느냐, 남이 잘 되도록 도와주면서 사느냐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순종을 계속 시험 하신다
(출애굽기 16:4 하반절)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아멘.
사람이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다른 것 다 먹어보고 하나님께서
먹지말라고 하신 '선악과' 그거 하나 남았는데 그것마저도 먹어보고
싶어하던 차에 타락한 천사로 마귀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 마귀를
시켜 테스트 해보라고 하셨다.
로봇 제작자인 사람이 사람처럼 스스로 살 수 있는 로봇을 만들어 놓고
이 로봇이 스스로 제작자인 사람의 말에 순종하나 불순종하나 테스트
해보았다로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사람 것이다. 먹지마라"
지금도 과학자들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려고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안 먹었다고 오리발 내밀 수도 있었을텐데
불순종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되어있었나보다.
(창세기 3: 9~10)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멘.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계속 시험하시는데
직접하시지는 않으시고 마귀를 시키신다.
그것이 마귀의 참소로 시험이 허락되는 것이다.
(야고보서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시는데
'악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라서 그렇다. 하지만 사람인
예수님으로 오셨을 때는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셨다.
사람에게 허락하신 시험을 하나님 자신에게도 허락하신 셈이다.
이 부분도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힘들도록 감당하셨다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 너무하십니다" 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불순종시스템'을 고치시기 위함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직접 삶의 현장으로 오셔서 사람에게 허락된 고통이나
가난이나 죽음이나 그 모든 것들을 몸소 체험하시고 가셨다.
TV에서 보면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중에서 '그런 일을 어떻게 해!'
할 정도로 지위가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극도로 어려운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최소의 수고비를 받는 프로그램을 보았을 것이다.
그 정도도 우리가 볼 때는 인격이 훌륭해 보인다.
그것도 우리보다 더 힘들도록 다 겪으시고 가셨다.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스스로 순종만 발휘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인지 직접 감당하시면서 보여주셨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길'이 기도도 드려야 하지만
마귀 귀신도 쫓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가셨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두렵고 떨리는 존재의 이름이라서
함부로 부르지를 못했다. 선지자나 랍비라 할지라도.
하나님아버지께서 이놈의 마귀가 사람들에게 계속 불순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보시고 직접 오셔서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을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야! 마귀야! 우리 아빠 이름이 '예수'다. 꺼져!"
그렇게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이름 대신에.
마귀 귀신을 이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이름이 '예수'다.
아무리 예수 이름을 사용해서 마귀 귀신을 이길 힘을 주셨어도
나는 이 땅에서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땡깡도 부리고 있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시다.
이 땅에 태어난게 억울하다면 할 수 없지만 그 부분도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보아야 알 것 같다.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는.
마귀 죄성을 이기는 무기 '40일 금식기도' 본을 보이심
하나님이신 예수님 일지라도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위해서 미리 40일 금식기도를 하셨다.
목사님 중에서는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분이 있겠지만
극소수일 것이다. 평신도 중에는 누가 40일씩이나 금식하겠는지.
나는 생각도 할 수 없다. 40일 동안 안 먹는다는 것은.
'3일 금식'도 미리 겁먹고 안하겠다고 했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신다고 하실지라도 선뜻
"제가 40일 금식기도 하겠습니다" 할 사람이 있는지.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원에서라든지 교회에서라든지
기도드리면서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 뜨거운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같이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은
생각을 안해보려고 한다.
"40일 금식기도 나도 했다"고 할 사람이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더 힘들도록 감당하신 것이다.
나는 그동안 쌓인 마귀와 귀신들을 털어내기 위해 겨우
한달에 한번 '하루 금식'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의 참소를 통해 시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유 없이 테스트 하시지 않으시고
마귀의 이유 없는 참소(시험)도 없다.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한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참소를 허락하셨는데 아주 세밀하게
참소해도 되도록 허락하셨다. 인생을 다듬어 가시기 위함이시다.
사람이 '불순종'을 선택했다는 것은 '내 맘대로 살고 싶다'를
선택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율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아멘.
마귀가 인간에 대해 '참소'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이시기 때문이다.
마귀는 아무 것이나 마음대로 참소하지 못한다.
'죽음까지 가는 징계' 참소 범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다.
욥의 재산까지 치는 징계, 욥의 몸까지 치는 징계, 목숨은 건지는
징계 등 하나님께서 정하신다.
만약 하나님 허락 없이 마귀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시험하고
공격하고 잡아먹고 한다면 하나님의 존엄성이 없어진다.
막대기=마귀=참소=하나님아버지의 '자동 회초리'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양육한다고 '회초리'를 들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회초리로 자녀를 때릴 때는 "네가 몇 대 맞을 짓을 했단다"
하면서 부모가 직접 회초리를 들고 때리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사용하시는 회초리(막대기=마귀=참소=
하나님의 징계)는 그 '회초리 자체'가 자동으로 인간들의 죄를 찾아내고
혼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테스트도 한다.
죄성을 발휘하도록 건드려도 보는데 '선'을 선택하는지 '악'을
선택하는지를 보기 위함이다.
그 세밀한 죄 값으로 귀신들이 쌓이는 것인데, 영의세계에서 보면
마귀나 귀신들이 하나님의 막대기라서 그런지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지가
않는데, 만약에 티끌이나 태산이 된 마귀나 귀신들이 육의 세계에서
느껴질 때는 ‘파란만장한 인생’이 펼쳐지게 되며 죽음까지 가는 질병이
걸릴 수도 일을 정도로 무서움의 대상들이 된다.
왜 그렇게 인생을 무섭게 몰아가시나 생각해보니 그만큼 사람이
하나님처럼 강하다. 말로 해서는 안될 만큼 고집스럽다.
죄를 다스릴 줄도 모르면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나님께 터치하시지 마시라고 한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그 자동회초리, 하나님아버지께서 다스리시고 계신다.
성경말씀의 말씀들이 살아있어 운행하시고 있다
하나님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시는데 창조도 말씀으로
하셨다. 이 부분도 생각해보니 사람도 컴퓨터를 만들었는데 키보드로
'명령어'를 치면서 하는 단계에서 '음성인식'으로 하는 컴퓨터를 연구하고
있다. 물론 나온 것이 있지만 계속 발전단계에 있다.
과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몰라도 그렇게 하나님을 쫓아가고 있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아버지께서 사람들을 테스트도
하시고, 징계도 하시는 모든 명령어들이 말씀으로 프로그램이 다 되어
있다면 그 '명령어 자체'가 살아있어 움직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반응하면 저렇게 하고 하면서 인도하시고, 다스리시고,
몰아가시고, 도와주시고, 혼내시고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성경말씀이 하나님아버지의 말씀이시다. 살아서 움직이신다.
이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히브리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아멘.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소설책 읽듯이 하지 말라
이 세상의 선의 기운과 악의 기운이라는 것은 성경말씀에 나와 있는
축복의 말씀과 저주의 말씀인데 그 말씀 자체들이 살아 있어 이 세상을
운행하시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기도드리는대로 기운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그 기도대로 이루어 주시고 있다.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부터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쓰시는 회초리인 이 막대기라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맴매 수준의 나무 막대기가 아니라 마귀. 귀신들인 것이다.
회초리도 살아있다. 성경말씀에서는 화(저주)의 말씀이시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일이나 가정일이나 나라일이나
사건들은 우연은 없는 것이며 다 하나님의 역사하심 속에 들어 있다.
누구의 기도를 쓰셨느냐, 누가 복을 받을 것이냐,
누가 화를 당할 것이냐에 따라 그 주변의 일들까지 달라지는 것이다.
인생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경말씀을 읽을 때 소설책 읽듯이 글로 읽지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다.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면 말씀자체의 기운이 내게 와서
깨달아지게 하는 것이다.
말씀 구절 그대로 기도를 드리면 말씀의 살아있는 기운이
나에게 와서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것이다. 지혜와 명철에 관한
기도라면 나에게 들어 오셔서 나의 지혜와 명철이 되실 것이다.
좋은 인격에 관한 기도라면 나의 인격에 들어오셔서 나의 인격이
되실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기도는 기다리실 것이다.
하나님아버지는 얼마나 멋있고 대단하신 분이세요?
이 글을 쓰면서 영의세계가 이미지로 재조명되고 있다.
얼마나 웅장하고 멋있는 느낌인지 모른다.
영의세계의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무한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구정도의 크기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
하늘 크기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된다.
멋있는 천사들도 다니고 어두운 마귀들도 다니는데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각자 자기 맡은바 일을 처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리 저리 운행하면서.
하나님아버지는 얼마나 멋있고 대단하신 분이세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요. 생각이 안 되요.
사람의 수준보도 조금 나은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아버지의 위대하심과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그 말 자체가 어디까지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아버지께서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신경쓰시고 계시나요?
그렇게 사람들이 대단한 존재들인가요? 하나님께는요?
기도 드리고 살면 액스트러 인생길이 막아진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기도를 드리고 살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쁜 사건에 액스트러 인생으로 끌려들어가는 일이 막아진다.
▲ 1990년 7월 = 무슬림의 연례 행사인 하지 기간 중요 축제인 이드 알 아드하 도중
사우디아라비아 케카 인근 알-무아이셈 터널에서 순례객들이 몰려 1426명 사망.
▲ 1994년 5월 = 사우디 자마랏 교량 인근에서 순례객들이 악마를 상징하는 바위에
돌을 던지다 압사사고 발생해 270명 사망.
▲ 1998년 4월 = 사우디 하지 순례 중 119명 순례객 압사.
▲ 2001년 5월 = 아프리카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경찰이 난동을 부리는 축구 팬들에
최루가스를 발사, 대피하던 관중 126명이 압사.
▲ 2004년 2월 = 사우디 자마랏 교량 인근에서 순례객들이 악마를 상징하는 바위에
돌을 던지다 압사사고 발생해 125명 사망.
▲ 2005년 1월 = 인도 마하라시트라주의 한 사원에서 힌두 순례객 265명 압사.
▲ 2005년 8월 = 이라크 바그다드의 티그리스강을 가로지르는 교량 위에서 폭탄이
설치됐다는 루머로 시아파 교도들이 몰리면서 최소 1005명 압사.
▲ 2006년 1월 = 사우디 자마랏 교량 동쪽 입구에서 순례객들이 돌을 던지는 의식을
행하던 중 362명 압사.
▲ 2006년 2월 = 필리핀 마닐라의 한 체육관에서 인기 TV 쇼를 보려는 관중들이
몰려 71명 사망.
▲ 2006년 8월 = 예멘 남부 이브주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의 선거
유세 중 관중 51명 압사.
▲ 2006년 9월 = 인도 서부 조드푸르의 차문다 사원에서 압사 사고 발생해 147명 사망.
▲ 2009년 3월 =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의 아비장에서 말라위와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앞두고 관중들이 몰리면서 최소 19명 사망.
▲ 2010년 7월 = 말리의 팀부쿠에서 무슬림 축제 마울루드 도중 26명 사망, 40명 부상.
▲ 2010년 11월 =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물축제 도중 관중 몰려 최소
339명 압사, 329명 부상.
이외에도 많은 사건 속에 파묻혀서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과 사람의 '악의 성품'은 질이 다르다
세상의 선의 기운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의 '선의 성품'이라면,
세상의 악의 기운을 다스리시는 분은 하나님의 '악의 성품'이라고 하신다.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악의 성품이 있을까?" 하고 물어보면
거의 다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악이 없는
분이시라고 한다. 무조건 선하시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령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인간에게 나타나는 선과 악의 성품이 그런 것인데 질이 다르다고 하신다.
인간에게 나타나는 악은 남에게 피해를 주고 못 되게 만드는 것인데
악을 다스리지를 못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신다.
화나는 대로 욕하면서 퍼부어대고 절제를 못해서 살인도 저지른다.
하나님께 존재하는 악의 성품은 불순종의 인간들을 다스리실 때
사용하시는 무서우신 성품이라고 하신다.
무슨 사랑의 하나님께서 지옥도 만드시고 인간들을 죽이시냐고
하면서도 무서우신 성품까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출애굽기 15: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아멘.
(레위기 2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아멘.
(에스겔 6:12)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아멘.
만약에 하나님께 '악의 성품'이 없으셨다면?
이렇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징계하신다는 말씀이 신구약을
통해서 많이 있는데 그 '진노하시는 성품'이 '악의 성품'이신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 '악의 성품'이 없으시고 '선의 성품' 만 있으셨다면
타락한 천사들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타락한 천사들 대신 창조된
사람들 존재의 필요성이 없었을 것이고, 사람이 창조되지 않았다면
성경도 필요 없게 된다.
하나님의 삶이 다른 식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어디서 누가 살던지 무조건 평화롭게 사는 삶.
하지만 이제 인생들의 '불순종의 악의 성품'이 다 제하여지고
천국에서 하나님께 자율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자율로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 영들을 사랑하면서 살 때의 평화로움은 너무 좋을 것이다.
이 땅에서 악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그 악 때문에 인생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들었고 눈물투성이었고
질병투성이었고 고통투성이었다는 것을 겪은 사람일수록
천국의 평화로운 삶은 그렇게 값지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는다
인간은 그 악의 성품이 '묻지마 식'의 살인까지 저지르는데
'내 맘대로' 살고 싶고, 내 뜻대로 되어야 하는데 세상이 안 따라주고,
남들은 잘 되는데 나는 안 되는 것 같고, 남하고 비교해 보니 내가 너무
열등해 보이고,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기보다 쉽게 벌어서 쉽게 쓰고
싶어서인데 이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기 때문에 생기는
나쁜 인격이다.
(창세기 3:18~19 상반절)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아멘.
사람의 불순종으로 땅도 저주를 받아 좋은 것을 내지를 못한다.
사람이 많은 수고를 해야 자기의 먹을 것을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돈을 버는 것 같지 않은 사람도 있다.
옆으로 다 새나가기 때문이다. 무언가 알지 못하는 법에 걸려서라도.
농촌이나 어촌이나 산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얻어지는 수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얼굴에 땀이 흐르도록 일해야
얻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일한 만큼 얻는다.
아무리 좋은 회사를 다녀서 월급을 남보다 많이 받는다 해도
공짜로 받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잠도 못자고 놀지도 못하고
일하면서 받는 월급이다. 땀을 흘려야 한다.
하나님은 이유없이 사람들을 죽이시지 않으신다
(로마서 13: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
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아멘.
하나님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인간이나, 우상숭배를 일삼는 인간이나,
악을 행하는 인간들을 징계차원에서 죽이실 수도 있으신데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않으셨다. 까닭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구약시대에는 이 징계가 사람들 보이는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이
많았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 바로바로 징계의 무서우신 성품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심은 대로 거두리라'의
법칙에 의해서 죄가 쌓이면 징계가 임하게 되어 있다.
전도서 8:11에는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다" 고 말씀하고 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형님에게는 바로바로 징계하셨다
구약시대에는 속쇠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와도 죽었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제사를 잘못드리면 그 자리에서 죽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모세에게 대항한 고라 자손들을
땅이 입을 열어 그들의 모든 것을 삼켰으며, 전염병이나
염병이나 각종 징계로 죽은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여리고 성 점령 후에 전리품을 감춘 아간 집안도 돌 맞아 죽었다.
소달구지에 법궤를 실고 가다가 소가 뛰자 법궤를 잡은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 법궤는 4명의 제사장들이 앞 뒤에서
어깨에 메고 가도록 명하셨었는데 자기들 편하자고 소 수레에
실고 가다가 하나님의 명을 어긴 것에 대해 처벌을 받기 위해
소가 무언가 보고 놀라서 뛰게 되었다. 소를 잡았으면 살았으려나
모르겠지만 어쨋든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의 명을 어기면 죽임을
당했다.
출애굽하면서도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죽임을 당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의 징계가 바로 임했다.
무서우신 성품을 그대로 발휘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지금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관리 안에 다 들어 있다
지금의 우리를 보면 그렇게 바로바로 징계가 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성경의 법'대로, '심은 대로 거두리라 법'
대로, 마귀가 만들어 놓은 '미신'의 법대로 적용이 되고 있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이나 할 것 없이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고 높은 자리에 있고 낮은 자리에 있고, 부자고, 가난하고, 실직당하고,
좋은 학교도 못 나오고, 질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자살로 죽고,
사형당해서 죽고, 대형사고로 죽고 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거의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지라도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드리면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
(시편 98: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아멘.
(이사야 10:2)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아멘.
우리는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생각하고 그저 "인생" 하면서 지내서
몰라서 그렇지 사실은 하나님의 관리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들은 '극'에 달하신다
'사랑의 성품'이 극에 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오셔서 '죄성'에
대한 그 무서운 형벌까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면서 '인내의 성품'이 극에
달하시는 하나님께서 기절도 안하시고 직접 당하시고 가신 것이다.
회개할 것들이 느낌(죄성)까지 계산하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진노와 질투의 성품'이 극에 달하셔서 지옥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땅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는데 사람이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면서 그 다스림의 권세를 마귀에게
빼앗겼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악의 성품'이 '심은 대로 거루리라'의
법칙을 적용시키시면서 그 마귀까지 다스리신다.
(욥기 1: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아멘.
(욥기 1:1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아멘.
하나님도 알고 나도 알고 마귀도 알아야 싸움에서 이긴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조건 기도만 드리면 되는 것 같지만, 물론 기도 드리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지만 나부터도 항상, 사소한 것까지, 먼지만큼 작은 일들까지
기도드리면서 살지를 못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마귀에게 모르고
당할 때가 있다. 그래서 마귀를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 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알고 적을 알아야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뜻이다. 우리가 나도 내 자신을 제대로 모르고
하나님도 제대로 모르고 적인 마귀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싸워볼 수나
있을까.
나도 싸울 줄도 모르고 온실 속 화초처럼 신앙생활 해왔는데
기드온용사 훈련 때 기도의 군사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 지를
성령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셨다. 이것도 대표격이다.
누구나 적용하면 그대로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게 하시고 계시다. 이 글을 읽고 자기의 존재나,
기도의 삶이나, 생활에 적용하면서 살면 나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한다.
자유의지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성품'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테스트를 하셨을 때는 사람의 자율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하셨다. 타율로서가 아니라 자율을 원하셨다.
지금도 몰래카메라를 이용해서 내 남자친구가 어떤 예쁜 여자가 꼬셔도
안 넘어 가고 나를 선택하는지를 보기 위해 테스트해보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의 다 넘어간다고 한다.
한 두명 정도가 안 넘어 간다는데, 내 남자친구가 안 넘어 갔을 때의 기쁨이란
평생을 갈 것 같다. 얼마나 고마울 것이며 내가 그렇게 그 남자친구에게 대단한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전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사람들도 하나님 닮아 테스트해보는 것을 좋아하나보다.
이 자율성이 '자유의지'라는 것인데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성품'이다.
사람들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하나님만큼 강한데 어디에 매여
있는 것을 싫어한다.
나는 기드온용사 훈련 들어가기 전 처절하게 회개하면서
나의 의지와 나의 삶을 100% 다 드리겠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도 받으시고 지금의 나를 관리하시고 가시는데
이 의지가 얼마나 내 뜻대로 하고 싶은지 하나님의 뜻을 거두어
달라고 할 정도다.
드린 것은 드린 것이고 삶에서는 내 맘대로 살고 싶다.
적용하기가 힘들다.
'하나님의 완벽하심'을 닮은 사람은 '호기심'으로 나타내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기 때문에 호기심이 있으신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볼 때 이런 것도 창조하셨나? 할 정도로 못하시는 것이 없으시고
안 만드신 것이 없으실 정도인데 그 성품을 닮은 사람은 그것을
'호기심'으로 나타내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 보면, 오래 살고 싶은 인간들이 자기의 복제품을
만들어서 병든 곳을 교체하면서 생명을 연장시키면서 오래 살려고 했는데
'호기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결국은 그 호기심이 발동한 복제품
인간에 의해 원본 인간이 죽임을 당하고 복제품들이 구해진다.
"우와! 하나님, 이런 것도 만드셨어요? 그럼 이런 것은 없나요?" 하면
벌써 그것도 만들어져 있다. 무엇이든 없는 것이 없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없는 것이 무엇인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게
종류별로 완벽하게 만드셨다.
'오션월드'라는 바다속 다큐를 보면 저런 것은 무엇에 쓰려고 만드셨을까
할 정도로 별의 별 물고기들과 생물들을 만드셨다. 성령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종류대로 만드시느라고 그러셨다면서 자랑하신다.
하나님의 창조 원본을 사용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스스로 만들도록 허락하셨다.
호기심을 발동하면서 만드는데 기가막힌 것은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하면 그런 것들이 존재하고 있고 나중에라도
만들어지고, 좋게 조성이 되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신
하나님아버지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인간이 능력이 있고 뛰어난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원본은 만들 수가 없다. 공기, 쌀, 해, 달, 별, 사람, 동물들, 새들,
물고기들 등 수도 없이 많다. 아기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얻을 수 있다.
그 원본들을 이용해서 우리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창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와 같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처럼 살아계시고"
"우리처럼 생기셨을 것이고" "우리처럼 이렇게도 하셨을 것이고"
"우리처럼 이렇게" 라는 말을 해가면서 하나님을 말한다.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하나님을 닮아서 사람들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운동도 하고, 위트와 개그도 있고, 영화도 만들고, 왕처럼 정치도 하고,
돕기도 하고, 컴퓨터도 만들고, 로보트도 만들고, 인공위성도 만들고,
로케트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먼지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셨다.
아무리 사람이 아기로 태어날 때 '무' 상태로 태어난다고 하지만 장성하여서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누군가 나를 만드셨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부모가 나를 낳았다"만 생각하지 그 위로 쭉 올라가 볼 생각을 안해서
그렇다. 가 볼생각도 안하지만 가더라도 귀찮아서 가다가 만다.
우주 만물 속에도 ‘선’과 ‘악’의 기운이 존재하고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만드셨을 때
그 우주 만물 속에도 선과 악의 기운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불순종하므로 악의 기운이 발휘되게 되었다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1:12)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아멘.
동물들이나 물고기들이나 새들이나 육체로 존재하는 것들은
다 선과 악이 존재케 만들어졌다. 창조 때는 초식으로 만드셨고
선만 발휘되게끔 되었었는데 아담이 불순종하므로 땅도 저주를
받아 육체를 가진 만물이 선과 악이 동시에 발휘되게끔 되어서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었다. 육식 식물도 있다.
육체의 성분이 그런 것이었다. 좋은 성분과 나쁜 성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
아담이 대표 격이다. 아담의 타락이 만물의 타락으로 연결되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보면 강자가 살기 위해서 약자를 죽이는
생태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 강자만 살면 안되기
때문에 천적관계를 적용시키셨다.
"사람은 천사다" 동물 같은 상품이나 물건이 아니다
인간들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이는 악까지 드러나게
됐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면서 이 악의 성분을 발휘하게 됐는데
그 후로 죽여도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까지 주면서
희열을 느끼면서 죽이는 상태까지 이르른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 감정도 없다. 남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사람도 어떤 상품이고 내게 이득을 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성폭행이나 인신매매나 장기매매나 음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큰
징벌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오라고 하신다.
이렇게 악을 사용해서 돈을 벌려고 한들 내손에 취해지는
것은 없다. 당장 법으로 걸리지 않아서 잠깐 돈이 내 손에
있다고 느껴지겠지만 결코 그 죄인의 것이 되질 않는다.
(시편 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른지 알지 못하나이다" 아멘.
육체가 괴롭힘을 당하고 성폭행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인신매매나 장기매매를 당하고 할 때 영의 세계에서
그 육체의 4개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두려워서
떨고 있을까?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까?
마귀의 괴롭힘에 사로잡혀서 울고 있을까?
안 믿는 육체의 영은 마귀의 협박에 울고 있다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 때 잠깐 성령하나님께서 모션으로
보여주신 것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육의 세계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의 세계에서 영들은
마귀가 지옥으로 같이 끌고 가려고 하는 그 협박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영들이 허다한 것을 알려주셨다.
"네 육체가 하나님도 안 믿고 그렇게 나쁜짓을 하고 살고 있지?
너는 조금 있으면 죽을텐데 지옥에 나랑 같이 갈 것이란다"
하면서 비웃고 조롱하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무리지어서.
영의세계에서 보여질 때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한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넓은 운동장 같은데서
그 한 육체를 위주로 마귀들이 원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그래도 그 육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불륜도 저지르고 살인도 저지르고 지금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악을 행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그 영들은 그 육체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마귀들의 모습을 보면서 질려하면서 울고들 있었다.
영들은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기 싫어서 울고불고 하는데 육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육체의 원죄로 육체는 이 땅에서 죽고 썩는데
그 영은 천국으로 갈 수 있냐, 지옥으로 가냐의 선택의 길이었다.
육체의 삶이.
하나님을 믿는 육체의 영은 무릎 꿇고 기도드린다
(야고보서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며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아멘.
하나님을 믿는 육체에게도 마귀들이 똑같이 협박하고 있는데
그 영들은 무서워하긴 해도 무릎 꿇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드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만하면 천국 갈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나를 바꿀 생각도 안하고 봉사도 안하고 교회일도 귀찮아하고
말씀도 제대로 안 듣는 자들의 영들은 자고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아무 것도 안하고 있었다.
그러면 성령하나님께서는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고 계속
부추기시고 명하시고 계시지만 영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그대로 있었다.
그것이 이 땅에서는 아무리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정신 차리고
제대로 신앙생활 잘 하자고 외쳐도 끄덕도 안하고 있는 육체와 같았다.
교회가 구제와 기도에 전념 "교회 가면 살 길이 열린다"
교회는 부자가 되어서 가난한 삶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전적으로 나서서 도와야 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 일하셔도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교회만 찾아가면 살 길이 열린다는
것을 영적으로도 느껴야 하지만 육적으로도 알게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구제'와 '기도'에 전념하라고
하시나보다. 오죽하시면 안 믿는 자들이라도 서로 돕고 사는
선행을 좋아하신다고 하신다.
나는 정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담대하게 간증할 수 있다.
아무리 거지가 될 수 있는 운명이었다고 해도 하나님께
죽기살기로 기도를 드리면서 예배를 드리니까 풍족한 삶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로 왔어도 톱니바퀴가 새롭게 움직이느라고 생기는
시간적 잠깐의 고통은 있다. 끝까지 견디면 이루어진다.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로 찾아가야 할지 모르지만
생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 밑바닥까지 갔다면, 죽을만큼
괴롭다면, 그렇게 사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교회를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면서 살면 반드시 살 길이 열린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의 어려움을 사람들에게 자존심이 상해서 말하기
싫다면 오직 하나님께 죽기 살기로 기도드려라.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기도의 도움도
받고 생활적으로 전교인이 나서서 돕도록 요청하기 바란다.
그러면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보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광고를 하시고, 돕자는 요청이 있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도와야하겠다.
사람은 '천사 같은 존재' 인간은 '동물 같은 존재'
5개체 중 혼자 죽어야 하는 이 육체가 자기의 죽음을 얼마나
싫어하고 얼마나 오래 살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다섯 식구 중 나 혼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안다.
"그런 육체를 살기 힘들다고 스스로 죽이지 마세요"
영화 '아일랜드'에서도 보면 복제품 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음이
앞에 왔을 때는 혼신을 다해서 살아갈 길을 찾는 것을 본다.
그래서 복제품이라도 원래 인간까지 죽이고 살려고 한다.
그만큼 죽기 싫어한다. 육체는.
진시황제도 죽기 싫어서 그토록 불로초를 찾았던 것이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는 사람의 육체의
위대함은 제하여졌다. 천사로서의 기능을 상실당한 것이다.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을 사전에서는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
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사람은 천사 같은 존재'이고 '인간은 동물 같은 존재'이다.
"니가 사람(아담)이냐! 이 인간아!"
웬수 같은 사람을 말할 때 '사람'이라고 안한다. '그 인간'이라고 하지.
이 말에서도 창조와 진화가 나온다.
사람들도 종류별로 다양, 하는 일들도 종류별로 다양
사람은 위대함이 제하여졌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이라는 학문도
만들어내고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문명도 발달시키고 있다.
그만큼 사람이라는 존재가 대단한 존재이다.
지금 별 볼일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초라하게 살아야 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 때는
누구나 다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사이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서로서로
돕고 사는 인간 관계를 원하신다.
모든 만물이 종류별로 있듯이 사람들도 종류별로 존재케 하셨는데
하는 일도 위정자들이나 의사나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나 약사나
교사나 사업가나 연예인이나 주부나 직장인이나 청소부나, 농촌에서
어촌에서 산촌에서 등 여러 가지 종류별로 일 하도록 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위함이나 남을 위함이나 서로 잘 되기를 원하는 일을
선택하느냐, 나 하나 편하자고 남을 괴롭게 하고 악을 행하고자
하느냐는 자기 할 탓인데 이럴 때는 죄성을 많이 발휘하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인생을 마귀가 쥐고 갈 수도 있다.
사람은 생김새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다. 그것을 '인생'이라고 한다.
동물 같은 '그 인간'이 되지 말고 천사 같은 '사람'이 되자.
컴퓨터가 대단한 것인가? 그 컴퓨터도 사람이 만들었다
사람의 대뇌의 기능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대단한
존재로 만드셨는데 우리가 동물처럼 살아야 하나?
대뇌는 전체 뇌 무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으로서 좌우 두 개의
반구로 이루어져 있다. 대뇌는 부위에 따라서 대뇌피질, 대뇌수질, 대뇌핵 및
변연계로 구성되어 있다.
대뇌반구의 표층을 이루는 두께 2~4mm정도의 회백질을 대뇌피질이라 하는데,
주름이 많이 잡혀 있어 호두알 같은 모양이다. 대뇌피질에는 약 140억 개의
신경세포가 밀집되어 있으며, 표면에 평행하게 6층으로 배열되어 있다.
각 층을 구성하고 있는 신경세포는 피질의 부위에 따라 모양, 크기, 배열 등이 다르다.
대뇌피질은 감각, 운동의 최고 중추이자 이성행동을 주관하고 있으며, 각 부위마다
다른 기능을 맡고 있어 운동영역, 감각영역, 연합영역으로 나눈다. 각각의 기능은
중추 간의 연락을 통하여 종합된다.
대뇌피질 아래에는 대뇌수질이 위치하여 대뇌피질의 각 영역을 연결한다.
유수신경섬유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흰색으로 보이며, 신경섬유는 다발을 이루어
대뇌피질의 여러 중추를 연결한다.
대뇌수질 안쪽 깊숙한 곳에는 한 무리의 핵들이 위치하는데, 이를 기저핵이라고 한다.
대뇌핵은 신경세포들이 모여 있는 회백질 덩어리로서 대뇌피질과 척수를 연결하는
운동로, 감각로의 중계소 역할을 한다.
변연계는 대뇌반구의 안쪽과 밑면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행동의 동기와
감정 상태에 관련된 기능을 하며, 대뇌피질의 의식적, 지적인 기능과 뇌 간의
무의식적인 기능을 서로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뇌간·척수계는 정신활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운동신경에 대한 조절작용으로
몸의 건강, 즉 ‘살아 있다’고 하는 생명유지를 자기 조절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대뇌변연계는 ‘살아 있다’는 정적(靜的)인 생명현상 위에 서서 ‘당당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즉, 개체유지와 종족보존을 위한 식욕과 성욕, 그리고 집단욕 등의 본능적 욕구와
이들 본능적 욕구를 훌륭하게 충족시키면서 개체와 종족보전을 위한 정동(情動)의
마음(쾌감·불쾌감·노여움·두려움)이 대뇌변연계에서 만들어져서, 이것이
본능행동과 정동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경우 간뇌의 일부인 시상하부는 본능적 욕구와 정동의 마음을 일으키거나
정지시키기 위한 정보감수의 기능을 맡고 있고, 편도핵과 중격핵은 본능행동이나
정동행동을 나타내기 위한 지령이 보내어지는 신경로의 중계소이다.
신피질계는 ‘잘 살아가는’ 적응행동과 ‘멋지게 살아가는’ 창조행위의 통합계로서
작용하고 있는데, 특히 인간에서는 창조행위를 하게 하는 곳으로 전두엽의 전단부에
있는 전두연합령(前頭聯合領)이 매우 분화 발달되어 있다.
신피질은 전두연합령과 그 이외의 영역으로 나누어 보면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정신활동의 분업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뒤쪽의 영역은 전자계산기의 역할로
정보처리와 운동발현의 기능을 나타내는 곳이다. 피부감각·청각·시각이라 표시된
자리에서는 감각을 일으키고 측두엽에 있는 기억의 기전(機轉)에 들어가서
지각이해·인식 등의 정보처리기능을 나타내 주고 있다.
앞쪽 운동의 패턴이라 쓰여 있는 곳에서 그 뒤쪽에 있는 운동신경세포로
운동지령을 내보내는 명령서가 작성되어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신피질에서는 단지 정보처리나 운동발현의 구실뿐만 아니라
사고·창조·의도·정조 등의 고차적인 정신기능이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담당하는
곳이 전두연합령이다.
인간의 특징의 하나인 언어중추는 바와 같이 3개가 있는데, 후언어령(後言語領)에서
말을 이해하고 전언어령(前言語領)과 상언어령(上言語領)에서는 말을 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운동이나 감각에 대해서는 좌우의 신피질은 반대쪽의 몸을 지배하고 있지만,
고차적인 정신활동은 주로 왼쪽 신피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신피질계에서
이루어지는 통합작용을 위한 정보는 간뇌 속의 시상을 통해 신피질로 보내지고,
통합의 결과로 오는 운동지령은 대뇌핵을 통해 보내진다.
하나님께서 대뇌 하나만해도 이렇게 기가막히게 위대하게
만드셨다. 그것을 인간은 연구해서 밝혀내고 있다. 똑똑하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별을 따라하려고 만들었는데 '인공위성'이다.
원본하고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대단한 인간들이다.
우리는 컴퓨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단한 컴퓨터를 사람이
만들었는데 원래 사람은 컴퓨터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대단한 존재다.
사람은 악의 성분이 발휘되게 됨으로써 육체의 질이 하나님과 달라졌다.
왜냐하면 때가 되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동물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나'라고 하는 '권혁미' 자체가 '기록장치'이다
인간의 오감은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으로, 이것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량을
정량적으로 나타낸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량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 다음이 귀이고, 나머지 감각 기관은 이 2개의 감각에 비해 아주 미미하다.
어쨌든 눈과 귀를 통해 대량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는데,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폐기되어 버리고, 최종적으로 뇌에 인식되는 것은 1초 동안에 100비트(숫자나 문자,
예를 들면 언어나 문장 해독의 속도에 대응하고 있다)에 불과하다.
과학자가 밝혀 놓은 인간에 대해서는 대량으로 받아들여진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니까 거의 대부분이 폐기되어 버린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영의 세계를 가보면 나의 혼, 나의 영, 나의 육체, 나의 의지,
나의 생각(정신) 이 개체들을 통해서 기록이 아주 미세하게 다 되어
있다. 넘치는 것은 '무의식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지 폐기처분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록천사'가 와서 우리의 행함을 기록한다고 해서 무언가는
기록해서 하나님께 보고를 드리고 무언가는 기록을 안 하고 하는 줄
아는데 사실은 우리의 5개채를 통해서 전부 기록이 되기 때문에
느낌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하는 모든 것들, 그냥
'나 자체가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내가 혼자 생각한 것이나
내가 혼자 있을 때 한 일들이나, 말이나, 무슨 '척' 한 것이나, 진심이
아닌 것이나, 어쨋든 다 알고 계시는데 내 머리에 용량이 넘쳐서
나는 기억을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정말 다 들쳐내신다. 꼼짝마라다.
"설마~ 내가 그렇게 은밀하게 지은 죄, 세상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그 생각의 죄까지?", "설마가 사람잡는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마음에 꺼림칙한 것이 있으면 빨리 뉘우치고 반성하고 회개하고
돌이키길 바란다.
내가 보기에도 그 정도면 큰 죄가 아닌 것 같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정도는 생각할 것 같고, 말할 것 같고 하는 것들인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느낌의 죄까지 내 마음에 전달이
되는데 죄송해서 미친다. 우리 사람이 볼 때는 별 것 아니다.
우리는 행위책에 기록하시고 들여다 보시면서 "너는 이런 죄를
지었구나" 하실 것 같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서면 내 눈으로
지은 죄, 내 입으로 지은 죄, 내 생각으로 지은 죄들까지
모든 것들이 자동으로 고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쉽게 말해서 내 머리 속에 있는 칩 하나 빼가지고 가시면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돌이키고 회개'하고
했을지라도 이 땅에서는 죄성이라는 것 때문에 기억이 되기도 하고
괴로워 하기도 하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그 부분은
지워져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이시다.
그것이 '회개의 은혜'이다.
기도는 죄성을 많이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는
죽어서 지옥에 가봐야 아는데,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 기본적으로
'기도'라는 것을 드리게 되는데, 이 기도가 죄성을 많이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많이 드릴 수록 많이 발휘하지 못하고 조금밖에 못하거나 안하거나
하면 죄성이 그만큼 많이 발휘되게 되어서 시기, 질투, 잘란척,
험담, 이간질, 화, 싸움, 불륜 등 지금 존재하고 있는 악함들이
조금씩이라도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성경을 안 읽으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격이고
성품인 줄 모르기 때문에 자기 성격이나 인격을 그대로 드러낼 수가
있다. 그래서 교회를 다녀도 "하나도 변하지도 않았네. 니가 믿는
그런 하나님은 안 믿는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 구절 그대로 기도를 계속 드리면
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이 나의 것으로
흡수되어져서 사람들에게나 하나님께 칭찬 받는 인격과
성격으로까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악을 발휘했던 대로 마땅한 지옥에 가서 보응 받는다
이 땅에서 육체가 죽는다는 것은 악을 발휘했던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죄성이 남아있는데 그것마저 지옥에 가서 털고 씻고 와야 하는데
지옥이 무조건 똑같이 무서운 곳은 아니다. 천차만별로 되어있다.
이 땅에서 악을 발휘했던 대로 마땅한 곳에 가서 보응 받는 것이다.
보응 받는다는 것은 ①내가 이 땅에서 발휘했던 그 죄성이 그렇게
나쁜 것이구나를 처절하게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을 안 믿었던 사람들이 살면서 나라법을 어겼든, 사람에게
지었든, 하나님께 지었든 회개하지 않고 죽었을 경우에 해당되며
믿는 사람들일지라도 회개하지 않고 죽었을 경우에도 해당된다.
진실하지 못한데서 오는 죄가 가장 많은 것 같다. "진심이냐"
그리고 ②사람이라는 것이 원래는 천사였구나를 알게 된다.
사람이 그저 적당히 살다가 죽으면 끝이 아니라 천사라는 것을
알면 자기의 존재성이나 타인의 존재성을 귀히 여기게 된다.
동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자신이 스스로 죽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육체를 죽이기 위한 형벌일지라도
내가 나를 함부로 죽여도 안되고, 내가 남을 함부로 죽여도 안된다.
나의 의지가 나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고, 나의 의지가 남의 육체를
죽이는 것이다.
나도 천사이고 타인도 천사인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숨처럼
귀히 여기신다. 사람이라는 천사들을.
나의 자녀를 천사라고 생각해보라. 그렇게 구타로 키우고,
구타로 죽이고, 힘든 삶으로 인해 같이 죽고 할 수 있나.
다른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해보라.
그렇게 상품처럼 팔고, 죽이고 할 수 있나.
세상에는 마귀도 종류별로 있는데 한패인 귀신들도 있다
천사처럼 사는 사람에게는 '인권'이라는 말이 해당이 되지만
동물처럼 사는 인간에게는 '인권'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마귀처럼 사는 인간에게는 더더욱 '인권'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그렇게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고 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쇠뇌시키면 안된다. 마귀는 그렇게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동물 같이
여기면서 '묻지마'식의 범죄를 저질러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데
이런 것도 내 이성으로, 내 의지로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인생이 육의 세계만 있으면 어떻게 거절하면서 살아보겠는데
영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마귀가 영의 세계에서 나의 영에게
계속 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선악과를 갖고
꼬시기 때문이다. 나쁜 것도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다.
마귀들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악함으로 존재하는 종류들인데
범죄하는 마귀, 불륜을 일으키는 마귀, 싸우게 하는 마귀, 하나님을
못 믿게 하는 마귀, 이간질 시키는 마귀, 험담하는 마귀, 전쟁마귀
등등 없는 종류가 없을 정도로 각종 마귀들이 잔뜩 있다.
죄성에 속해 있는 모든 마귀들이 있다.
거기에 마귀들과 한패인 귀신들도 있다.
육의 세계에서 단호! 하면 나의 영도 단호!
영의 세계에서 마귀들은 사람들의 영들에게 "이런 것은 어떠냐?"
"저런 것은 어떠냐?" 하고 꼬시고 다니는데, 그 사람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돈의 욕심이 많은지, 색욕이 많은지, 권력욕이 많은지.
게을러서 일하기는 싫고 큰 돈은 벌고 싶은지. 남의 떡이 커보이는지.
이런 것들이 나의 성격이고 인격인양 착각하게도 만든다.
내가 원래 그런 줄 알고 산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 못 고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살면 이런 착각하고 있는 것들이 고쳐진다.
육의 세계에서 나의 의지가 "나는 그런 것은 딱 싫어!"
"남에게 죽었다 깨나도 나쁘게 할 수 없어!"
"내가 벌은 만큼 쓰면서 살거야!"
"불쌍한 이웃을 도우면서 살아야 해!" 하고
옹골지게 고집을 부리고 살면 영의 세계에서 나의 영이 마귀의
꼬심에 넘어가지 않고 "싫어!!" 하고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다.
"나의 육체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절대로 하지 말자. 오히려
남에게 도움을 주자. 나의 영아, 마귀의 그 어떤 꼬심에도 넘어가지
말고 "딱 싫어!!" 하고 거절하자. 죽을 때까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마귀는 한번 꼬시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면서
이것 저것으로 꼬시는데 육의 세계에서 단호한(결단)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을 거절하면 저것을 가지고 온다.
그래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계속 거절하면서 살아야 한다.
'죄성'이라는 것이 '마귀'라는 것인데 거절한다고 해서, 쫓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를 드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 결단도 무너질 날이 온다.
마귀가 끈질기게 달라붙기 때문인데 베드로도 장담만 하고 결단만 하고
기도는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했다.
마귀가 너무 싫어서 치를 떨어야 떨어져 나간다.
그렇지만 또 온다. 자꾸 온다. 계속 그렇게 사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도움을 요청하면서 살아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의 기운이 민다
그것이 나의 의지가 하는 일이다. 나의 의지가 강해야 한다.
옳은 일에. 그러면 육의 세계에서도 나타나는데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 의인 같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게 된다.
"하나님아버지, 저의 의지가 하나님아버지 뜻에 합당하게
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마귀의 꼬임에 절대적으로 넘어가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 땅에는 선(긍정적)의 기운과 악(부정적)의 기운이 존재하는데
내가 선하고 긍정적이면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나를 밀어주고,
내가 악하고 부정적이면 악하고 부정적인 기운이 밀어준다.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해서 어떻게 사느냐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천국도 가고 지옥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고 기도드리면서 산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면 그 부모의 집에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찾아내지도 않았다면.
평상시 하나님이 없다 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 하고
내 주먹만 믿으라고 했다면 천국에 갈 자격이 있을까?
악이 최고로 발휘되면 마귀 같이도 된다. 성품이 악해진다는
뜻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없다 하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선이 최고로 발휘되면 천사 같이도 된다. 성품도 세상에
그렇게 착할 수가 없고, 남을 돕는데 자기의 삶을 바칠 정도로
헌신적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고
인정하고 살아가는 삶이다.
창조시 아담에게 주신 DNA 누구에게나 다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라는 사람을 만드시면서 그 DNA속에 온 인류적으로
지금 현재 나타나고 있는 특성이나 생김새나 특기나 재능이나 모든 것들을
다 넣어주셨다. 한 사람 당 똑 같이 다 들어 있다.
'누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냐', '교사의 가르침에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친구가 무엇을 하나', '누가 무엇을 하니까 좋아보여서
나도 그 일을 하고 싶으냐' 등 자라면서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추구하고 쫓아가는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일을 할 수 있게 이
세상의 기운이 미는데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기운이시다.
내가 그 일에, 그 공부에 몇 퍼센트의 욕심을 내느냐에 따라 성공 비율이
달라진다. 그래서 과학자도 나오고, 판사도 나오고, 교사도 나오고,
연예인도 나오고, 사업가도 나오고, 정치가도 나오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일들을 하는 것이다.
물론 유전 암호 알파벳 하나가 잘못 되어서 기형아가 나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기형아가 내가 이대로 주저 앉아 죽을날만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향해 돌진해 갈 때 선의 기운이 밀기 때문에 성공하는
날이 오는데 멀쩡한 인생들보다 훨씬 우월한 삶을 이루는 것을 본다.
자기가 그만큼 죽기 살기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럭저럭 사는 사람들은 그만큼 노력을 안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멀쩡한 나 같은 사람도 피아노를 연습하기 싫어서 못치는데
손가락 두개를 가지고도 죽기 살기로 노력한 사람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악기 연주자가 되는 것을 본다. 이 세상은 자기 하기 나름인 것이다.
그렇지만 기도 드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런 일을 해볼래?"
하고 소스를 제공해 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나 교회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그 봉사했던 일로 세상의 직업으로까지
연결해 주시기도 하신다.
선으로 달려가는 길은 하나님의 선의 기운이 밀어준다고 생각하면 되고,
악으로 달려가는 길은 마귀가 밀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무언가를 선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었을 때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냐면, 나는 그 길을 선택한 것이지만 그 일이 성공되도록 밀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씨를 뿌렸지만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당장 가뭄을 주시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선생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도 나쁜 데로도 이끌 수 있다
범죄가 성행하는 것은 일은 조금하고 많이 벌어서 많이 탕진하고
싶어서이다. 이 땅의 법칙은 '심은 대로 거두리라'이기 때문에
그런 범죄는 반드시 잡히는데 회개하지 않으면 그 인생은 끝이다.
그 회개하지 않은 범죄로 지옥까지 가기 때문이다.
동물 같은 사람이라서 죽어서 썩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사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간다. 반드시.
내가 조금 벌어서 조금 쓰면서 사람 같이 살면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그것이 싫어서 한탕주의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범죄가
생기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런 범죄들을 재조명 한다고 영화화하면서 보여주는 것은
새로운 범죄나 그 범죄를 모방하는 범죄를 낳는 것 밖에 안 된다.
(야고보서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아멘.
선생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데로 이끌 수도 있고 나쁜데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에 더 큰 심판과 더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데,
영화감독도 좋은 선생과 나쁜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좋게 하는 영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따라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을 따라하게 된다.
죄성까지 털수 있는 회개의 능력 '예수님의 십자가'
그리고 ③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죽기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 죄성 마저 이 땅에서
털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죄성까지 털 수 있는 회개의 능력이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그래서 회개가 그렇게 좋은 것이다.
뉘우치고 반성하고 돌이키고 회개하고.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 때 회개기도 시간에 영의 세계에서는
무엇을 하는지를 여쭤보니 천사들이 나의 영의 더러워진 곳을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씻어주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로 목욕을 시켜주시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했다. 어쨋든 회개를 한다는 것은 나의 영의
더럽혀진 곳을 씻김 받는 것이다.
안 믿는 자라 할지라도 지었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고
돌이키고 하면 용서해 주신다.
이럴 때는 지옥에서도 윗층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로보트 같으면 중앙처리장치에서 시스템을 바꾸면 되는데
사람은 하나님처럼 만들어져서 칩에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율을 사용해서 회개하고 돌이키고 뉘우치고
반성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마귀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는 '나의 생각개체'
그리고 영의 세계에서 보니 일상생활에서 마귀가 나의 생각개체를
향해 나쁜 생각, 더러운 생각, 불평 불만의 생각, 시기 질투의 생각,
누구를 정죄하는 생각 등 가지가지들을 마구 던져서 붙이는데
생각개체는 어떤 대항함도 없이 그냥 당하기만 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스스로 "에이 안돼" 하면서 털어버릴 수도 있지만
얼마나 미세하게 계속 던져지는지 털다 털다 지쳐 나중에는
나쁜 생각인지, 안 좋은 생각인지, 시험들 수밖에 없는
생각인지도 모르게 된다.
이런 것들은 기도를 통해서 씻겨지는데 마귀는 계속 던진다.
나의 생각의 크기가 아무리 커져도 날라다닐 수 있는 마귀는
공중으로 돌아다니면서 계속 나쁜 것들을 던지면서 나의 생각을
공격한다. 만약 이런 것들을 털어버리지를 못하고 때처럼 늘러
붙어버리면 생각이 힘들어서 주저 앉아버리는데 그때가 육의
세계에서 보면 어떤 사건을 통해 시험들어버린 상태였다.
그래서 결국에는 한방에의 기도를 드리게 됐는데 그럴지라도
계속 잊지 않고 그런 방어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아버지, 마귀가 공격하는 더러운 생각, 나쁜 생각,
쓸데없는 생각, 정죄하는 생각 등 모든 나쁜 것들이 무시되게
도와주시옵고, 차단시켜 주시옵고, 혹시 미세한 것들의 공격을
받는다면 반사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아멘"
이라고 기도를 드리도록 훈련받았다.
"나의 생각아! 오직 성령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거라"
그리고 나의 생각을 너무 사랑해 주면 안 된다.
그것이 육의 세계에서 보면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내가 내 생각이 옳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생각과 비교해서
같은지를 판단해 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좋아하면 그것이 영의 세계에서
보면 나의 의지가 나의 생각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너무 사랑하게 되면 생각이 누워서 싱글벙글 계속 웃으면서 뒹굴고
까불고 다니는데 나중에 가면 나의 의지의 말을 안 듣게 되고 나의
생각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려고 하는 경향이 생겨서 생각이 통제가
안 되는 경우까지 가게 된다.
영의세계에서 보니 나의생각이 마귀가 던지는 나쁜 생각들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나중에는 생각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생각을 이쁘다고 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해주게 됐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의생각도 자기를 좋아한다니까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다가 계속 의지가 사랑한다고 하니까 나중에는 생각이
나의 의지의 말에 말대꾸를 하면서 말을 안 듣는 상황까지 갔었다.
그것이 육의 세계에서는 목사님이 아무리 설교를 하셔도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말씀에 맞춰서 나의 생각을
바꿀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것이다. 내생각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아! 오직 성령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거라.
나의 정신아! 성령하나님을 향하여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이라고 기도드리면서 살도록 훈련받았다.
왜 사람을 만드셨나요?... "같이 지내려고 그런단다"
"왜 이런 사람을 만드셨는데요?" 라고 질문도 해보았지만
같이 지내시려고 하셨다는데는 할 말은 없었다.
우리도 우리 편하자고 로봇청소기를 만들었는데
로봇청소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왜 우리를 만들었냐?"고
한다면 "로봇이 무슨 말이 많니? 힘든거니까 로봇을 시키지.
아무말 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하렴" 하지 않겠나?
그렇다고 로봇청소기를 없애지는 않는다.
더 발전시켰으면 시켰지.
사람도 보면 자기랑 비슷한 인형을 갖고 놀다가,
밧데리를 넣어 움직이는 장난감을 더 좋아하고,
더 나아가 살아있는 강아지 등을 갖고 놀면 더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율스럽게 대하는
존재가 필요하셨다고 하신다.
우리도 만약에 사람처럼 말을 하거나, 시키는 것을 잘 하거나,
나랑 놀아주거나, 아기도 돌봐주고,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친구 같은 로봇이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고 같이 살려고 하겠나.
그것도 내 말만 듣고, 또 모든 사람이 다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갖고 있다면 자랑하고 싶어서 못 견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사람과 결혼해서 사람을 낳는다.
로봇은 로봇과 결혼해서 로봇을 못 낳는다.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창조 작품인지 알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같은데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영화는 괜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벌써 있었다는 것도 있고,
앞으로 되어질 일도 먼저 만화로나 영화로나 만들어지는데
기가 막히다. 어떻게 그렇게 영화대로 세상이 되어가는지.
컴퓨터도 과연 그런 컴퓨터가 나올까? 하지만 나중에는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 연구하고 있다고.
공중에 날라다니는 자동차도 언젠가 나올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을 보면.
영화에서도 보면 인조인간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인조인간'이 사람 같은데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님 같은데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초라한 존재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하신다.
무엇이든지 죽어서 없어진다는 것은 불쌍한 것
인조인간이라 할지라도 죽을 때는 사람이 죽는 것처럼 얼마나 불쌍한지
모른다. 일반 로봇을 폐기 처분할 때도 불쌍하고, 타고 다니던 자가용을
폐차시키는 것도 불쌍하다.
무엇이든지 죽어서 없어진다는 것은 불쌍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육체가 죽는 것을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기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령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 보존이 된다.
이 죽어 없어진 육체를 부활시켜서 생령으로 남아있는 영들에게
입혀주어야 하는데 그 순종만 발휘할 수 있는 육체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으로 오셔서 '십자가 순종'으로
'더 이상 순종이 없다'는 본을 보이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늘로 그대로 올라가심으로 우리에게 순종만 할 수 있는
육체를 입혀주실 수가 있게 되었다.
아담이 타락의 대표 격으로 만물의 육체도 타락으로 연결되었었는데,
예수님께서 완전 순종의 대표 격으로 만물의 육체도 원래대로
회복으로 연결되게 되었다.
(히브리서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아멘.
그때가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하실 때라고 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아멘.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아멘.
사람이 죽는 것은 잠자는 것이다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보면 사람이 죽는 것을 잠을 잔다고 한다.
생령은 하나님께 소속되어 있고 육체는 이 땅 속에 묻혀서
썩는데 그것을 잠잔다고 표혔하셨다.
왜냐하면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부활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영의 세계에서 나의 존재는 '영' '혼' '육체' '생각' '의지'로
개체가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고 '의지' '생각(정신)' 으로 분리되어
있을 수도 있다. 5개체로 분리될 때는 기도시간이고,
일상생활 때는 2개체(3개체)로 분리되어 있다.
영의 세계에서 5개체를 육의 세계로 비유했을 때 아빠, 엄마, 딸,
아들, 막내아기 이렇게 사랑으로 똘똘 뭉친 '다섯 식구' 중
누군가 '육체'인데, 그것이 '아빠'라고 했을 때 4식구는 영원히 사는데
'육체인 아빠만 죽는다'는 것이다. 그 가족은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는 안 죽고 영원히 사니까 좋다고 하겠는가?
지금 우리들도 타인이라고 해도 병들어 죽거나 사고로 죽었다고
했을 때 받는 충격은 너무 크다.
지금도 TV에서 소말리아 해적떼에 인질로 잡혀 있는 아빠들로 인해
가족들이 나와서 울면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뉴스를 본다.
가족 중 하나라도 인질로 잡혀 있을 때 잠을 잘 수가 있나 먹을 것을
제대로 먹을 수가 있나. 인질에서 풀려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고
풀려나기를 고대하는 것처럼.
나의 개체들도 육체가 부활될 때까지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죽고 나면 '영' '혼' '생각' '의지'가 '육체' 안으로
다시 들어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4식구가 아빠가 살아나서 다시 5식구가 될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동물들도 하나님의 작품이라 위대하다
어른이나 아기까지 다 천사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귀하고
이쁠 수가 없다. 이렇게 살도록 만들어진 천사들.
동물 같은 존재가 절대로 아니다. 동물들이 워낙 뛰어난 것
같아서 그렇다.
왜냐하면 대단한 사람들을 상대로 존재해야 하는 동물들이기
때문에 동물들조차도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졌다.
대단하신 분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이라서 다들 대단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작은 존재라고 해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생김새 하나하나,
색상조차도 우리말로 형용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정밀하고
아름답다. 모기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모기 죽이는
것도 신경 쓰인다. 자꾸 피 빨아먹고 간지럽게 하고 귀찮게 하니까
죽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마귀가 진화론을 만들어 놓고 동물이 진화 되어서 사람이 됐다고
해놓고 사람들이 다 그 말에 현혹되어서 나는 동물 같은 존재인가
보다 하게 만들어 놓았다.
동물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천국가나?
개나 고양이나 애완견들이 교회 가서 예배드린다고 해서,
기도 드린다고 해서 천국 갈 수 있다고 누군가 말하면 난리가 날 것이다.
이단 삼단 해가면서. 어떻게 동물이 천국을 가고 구원을 받느냐고.
그럼 동물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천국 갈 수 있나? 생각해봐야 한다. 천사니까 죽어서도 천사가 되어서
하나님께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육체만 죽을 뿐이다.
영들은 살아서 하나님께 간다. 나중에 이 육체도 부활시켜 주신다.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서 입혀주실 것이다.
천국에서도 이 육체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새 제품.
천국에서도 영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는데 이 육체를 따로 입혀
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렇게 믿는다.
살아있을 때 천사가 아니면 죽어서도 천사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은 인간이고 죽어야 천사가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성령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형벌을 받고 있어서 그렇지 천사라고 하시면서
지금이 천사가 아니면 죽어서도 천사가 아니라고 하신다.
범죄자가 감옥에 갔다고 해도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죄인일 뿐이다. 죄를 지은 사람. 지금의 사람들이 죄를 지은 천사다.
그래서 범죄자라고 해도 사람이니까 인권을 운운하는가본데
그냥 사람인 것이지 사람으로서의 권리는 없다고 본다.
죄 값을 다 치루고 나와야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주어진다.
사람이라는 천사가 죄를 지어서 이 땅에서 살다가 죽는
형벌을 당하고 있지만 그 형벌을 당하고 죄 값을 치루고
나면 천사로서의 권리가 주어질 것이다.
구약에 '에녹'도 살아있는 채로 들림 받았다고 되어 있고,
엘리야 선지자도 불병거 타고 살아있는 채로 하늘로 올라갔고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살아있는채로 올라갔다고 해서 천국에서도 '인간'이나?
아니라고 하신다. '아담이라는 천사'라고 하신다.
이 부분은 우리는 아직 안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어쨋든 죽지 않고 하늘로 가셨다는데야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믿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죽어야만 천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도 천국에 가면
천사가 되는 것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들이 동물보다 조금 나은 존재라고 한다면,
동물은 영이 없기 때문에 죽어서 땅에 들어가 썩고 없어지는
존재인데 그 동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죽어서 어떻게 천국에 올 것이냐?"고 하신다.
(전도서 3: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아멘.
죽어서든 언제든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존재가 천사인데,
꼭 천사가 따로 있고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사가 아닌
'인간'이 천국에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하신다.
사람(아담)이라는 종류의 천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될 천사.
(고린도후서 6:13)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아멘.
위에 있다고 종 부리듯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섬김'
(히브리서 1:13)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아멘.
우리는 이 말씀으로 천국에 있는 천사나 우리에게 파견된 모든
천사들을 우리가 종 부리듯이 부리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종으로 부리시는 천사들인데, 우리가 형벌을 받고
있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우리를 보호해 주고, 인도해 주고
도와주라고 보내심을 받은 존재들이라고 하신다.
물론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서 얼마나 큰 상을 받느냐에
따라서 직급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변두리에 가서 사는
영들에게까지 천국에 존재하고 있었던 천사들이 무조건
종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내가 기드온용사 훈련 때 잠깐 알았던 것인데 그때 믿어지지
않아서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지만, 천국의 아주 끝자락
변두리에는 정말 이 땅 왕궁의 무술이들처럼 위의 존재들을
섬겨주어야 하는 일을 하는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 땅에서 엄청난 부를 누리면서 교만하도록
섬김을 받은 존재들이었던 것 같다. 천국이 필요없다고 하면서.
이 부분은 느낌으로 알아졌다.
천국 변두리라도 좋사오니 하지 말라신다
나도 평상시에는 "지옥에만 가지 않는다면 천국 변두리라도
좋사오니 지옥만 가지 않게 해주세요" 라면서 살았었는데
성령하나님께서 "그럼 천국 끝자락은 이 땅의 무술이처럼
윗 존재를 무조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종처럼 해드려야 하는
계급인데 거기에 갈 것이냐?"고 하시길래 "아! 거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곳에서 조금 위요. 중간지대요. 부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은 중간에서 살고 싶어요" 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땅에서는 무조건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고
예배 드리고, 기도 드리고, 예물 드리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해서 천국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고 살아야지
변두리라도 좋사오니 하면서 안일하게 살지 말라하신다.
'사람' 위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다" 인정해야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들도 무조건 서로 도우면서
섬기면서 살라고 하는 것이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종 부리듯이 부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천사는 참으로 귀중한 존재들이다.
이 땅에서 알지도 못하는 인생을 살면서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는 목숨처럼 귀중한 존재들이라고
하신다.
'불순종의 시스템'을 고침 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사람 위에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순종시스템으로
바꾸실 수가 있으시다고 하신다.
(시편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아멘.
(예레미야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아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시기에 그렇게 기다리시나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 동물처럼 죽어 없어지는 그렇게 하찮은
존재였다면 하나님께서 무엇하시려고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그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겠나?
사람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라면 지금도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데리고 가시려고 그렇게 일하시고 계시겠나?
사람인 우리가 볼 때 사람이 별거아닌 것 같은데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소중하시기에 그렇게 기다리시나...
(마태복음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아멘.
(누가복음 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아멘.
이 글을 읽으면서 참 판타스틱한 영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판타스틱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인데 하나님께서는 오죽하시랴
완벽한 판타스틱이다.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천국에 있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컴퓨터도 못 만드시고 우주선도 못 만드시는데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 말라신다. 동산에 나무 몇 그루 심어 놓으시고 사시는 분이
아니시라고. 수억개의 은하계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이심을 명심하라 하신다.
인간은 무한개의 별 중에 한 개나 제대로 가보았을려나 모르겠다.
인간은 그 많은 별 중에 하나 정도 탐사해 보려고 로켓을 쏘아올리고 있다.
별의 숫자가 어떻게 되나 인터넷을 뒤저보니 대략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선 태양과 같은 항성은 우주에 2천억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에는 별이 약 10억개 정도 있다고
하더군요. 자그럼 계산해 봅시다 ^-^;
10억 x 2천억 = 2000000000000000000000 (암산으로 하느라 틀릴수도 ^^)
정도 됩니다만. 아직 우주는 미발견된 곳이 많으므로 이것도
신빙성 없는 자료이고 발견된 곳에서도 지금도 별이 없어지고 생기고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는 무한이죠 ^^
결론은 10억 x 2천억 = 2000000000000000000000 이 정도 된다는 소리입니다.
이것도 인간의 과학을 통해서 겨우 밝혀낸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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