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데. 얼마나 엉망진창 날림으로 지었으면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이 저런 식으로 폭삭 무너져버릴 수가 있나 그래.」
「글세 말야. 명색이 콘크리트 건물인데 건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군. 저건 돼지가 장화 신고 지나간 군대의 국처럼 시멘트가 장화 신고 지나간 모래건물이었어.」
「응, 바로 그거야. 우리가 여기서 그냥 보아도 푸석푸석해 보이는 게 시멘트 배합기준이 전혀 안 지켜진 게 표가 나잖아.」
「언젠가는 이런 대형사고 터질 줄 알았어. 원칙과 기준을 무시하고 무작정 군대식으로 적당적당, 빨리빨리로 몰아댔으니 결과가 뻔하잖아. 기세좋던 ‘부르도자’ 시장님께서 결국 자기 부르도자에 치이셨어.」
두 기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옆에 서서 원병균은 묵묵히 아파트 붕괴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기자의 말마따나 콘크리트 강도가 얼마나 약했던지 무너진 5층 아파트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원병균은 여러 가지 상황을 세밀하게 살피면서 말을 잃고 있었다. 산비탈은 45도가 족히 될 만큼 경사가 심했다. 그런 급경사에 단층짜리 주택도 아니고 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세운 것이다. 최신 장비나 최신 기술이 있더라도 신경 쓰고 조심해야 할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모든 자재들을 등짐으로 져올리고, 콘크리트 반죽도 삽으로 적당적당 해치우는 형편에 그런 난공사를 한 것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평지보다 몇 배 더 강하고 튼튼하게 공사를 하도록 규정을 정하고, 감시했어야 한다. 그러나 산동네마다 솟아오르는 시민 아파트들이 너무 졸속이고 날림이라는 비판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르도자’ 시장은 그런 우려와 비판을 그야말로 불도저처럼 깔아뭉개며 일을 몰아붙여 왔던 것이다.
조사단의 긴급진단에 따르면 서울 시내 서민 아파트의 3분의 1 정도가 날림공사로 붕괴 위험이 있다는 거였다. 공사가 그처럼 날림이 된 원인은 다 짐작했던 대로 업적 과시를 위한 성급한 사업 추진에다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겹쳐져 있었다. 시멘트 배합 상태가 정상의 2분의 1밖에 안 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예정된 기일 안에 아파트를 준공시키려고 얼음이 얼어붙는 강추위 속에서도 시멘트 작업을 몰아붙였던 것이다.
공무원들이 잇따라 쇠고랑을 차는 모습이 신문마다 실리면서 그 사건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청장이나 그 밑의 과장 정도만 쇠고랑을 찰 뿐 정작 시정의 총책임자인 시장은 자리를 물러나는 것으로 그만이었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은 인구 집중으로 인해 교통과 주택난이 심각했습니다. 박정희는 당시 부산시장이었던 김현옥을 서울시장으로 임명했는데, 그는 '불도저'라는 별명만큼 재임기간 동안 엄청난 양의 건설공사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는 박정희의 경제개발정책에 부응하여 서울을 현대화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지만 또한 부실공사로 인한 폐해도 많았습니다. 결국 그는 부실공사로 인한 와우아파트 붕괴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