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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듣지 않은 것에서 ...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모든 불행은 듣지 (청종치)않은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듣다, 뜯지 않다, 혹은 청종하다, 청종하지 않다, 순종하다, 순종하지 않다, 준행하다, 준행하지 않다,”등의 표현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듣지 않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역사는 한마디로 불순종의 역사이고, 여호와의 말씀을 지독하게 듣지 않은 백성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에서 “듣다.”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듣다”라는 단어는 “행동하는 것”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는 것입니다.
히브리적인 개념에서 듣는 것은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것과 연결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듣는 것은 행동하는 것과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깊이 듣는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마음의 동요와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행동이 수반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듣고 깨달았다고 하면서도, 변화된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것은 인식적인 차원에서 판단이나 하고 있는 것이지 진정으로 들은 것이 아니다 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적인 개념에서 진정으로 듣는 것은 행동을 수반하기 때문에 듣는 문제는 필연적으로 순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순종하는 변화된 행동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으로 들은 것이 아니다 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설교를 제대로 듣는다든가, 강의를 제대로 듣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라는 “거룩한 땅"에 서는 행위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발을 벗을 줄 아는 경청자만이 참으로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듣는 다는 것은 마치 상담 교사가 대화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듣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 듣는 것은 진정한 듣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듣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진심으로 듣는 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휘장 가운데를 지나 거룩한 지성소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을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듣기는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몸에 밴 나쁜 습관과 자연적인 성향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간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거룩한 자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듣기는 자신의 생각이 먼저 죽어야 하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듣지 않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인류는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듣지 않으려는 것으로 드러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락 후 가인과 그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고, 노아 당대에 타락한 인류가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다 는 말씀입니다.
레26:14-39절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청종치)않는 자들에게 저주가 임할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은 민14:22-23절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시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않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결단코 약속한 땅, 가나안 땅을 보자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5:6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에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 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광야생활 사십년은 말씀을 듣지 않은 것에 대한 징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저주를 자청하는 것이며, 듣지 않는 것 자체가 불행의 시작이다 는 말씀입니다.
혹시 마음속으로 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닌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 속에서 오는ㄹ 설교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사탄의 음성으로 세뇌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은 듣지 않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요8:47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요일4:6절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즉 사람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나님의 음성(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은 사탄의 음성을 들을 뿐이다 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속했거나, 성령을 받은 사람들만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즉 사람의 말을 듣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신18:19절은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아니 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박을 것이요
삼상12:15절은“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렘17:23절은“그들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호9:17절은“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리니 저희가 열구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행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가장 기본적으로 성경의 어느 구절도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고 인간의 언어나 말을 빌리지 않고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지 사람을 무시하고 혹은 전문성을 무시하고 역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룩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 공동체가 아닌 영들의 나라로 가거나 그들이 상상하는 실재하지 않는 그들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그 세계로 가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자식이다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사람들이 소홀이 대하도록 호도하고 문화명령을 불순종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는 것입니다.
진정한 듣기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상상하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의미와 실재를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은 감정과 눈물이 묻어 있을 수 도 있고 땀과 엄청난 댓가가 담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중심을 가지고 듣지 않는 것은 악한 행동이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말하는 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악은 비현실적인 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에 존재합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악은 자신 속에 존재하는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빛을 싫어하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듣지 않으려고 하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이 귀찮아서 회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닫고 다른 사람을 피하며 듣지 않으려고 하고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병든 자아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오직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정확히 듣지 않는 것이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고 남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듣지 않는 것이 사탄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올바로 듣는 것은 자세가 있습니다.
1. 듣는 자세(태도)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듣는 것도 표현입니다. 단정하지 못한 태도는 잘못된 듣기입니다.
3.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본심은 마지막에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4.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드러나는 상대방의 심리적인 움직임도 함께 보고 들어야 합니다.
유능한 사람은 이러한 듣기에 강하다고 합니다.
이승철의“듣고 있나요”에덴의 동쪽 테마곡
끝내 우린 스쳐가나봐/ 기억넘어 서로를 지워야 하나요/ 내게 사랑이 준 깊은 상처는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 매일 아픈 그리움 속에/ 가슴 텅빈채 살아도/ 그대를 사랑했던 일/ 그것만은 죽어도 나 후회하지 않아요/ 그대가 보고 싶을 때/ 그저 한 번씩/ 니 이렇게 남 모르게 울면 되요/ 잊지말아요 그대여 잊지말아요/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사랑해요/ 그대 지금 듣고 있나요
그대 내게 올 수 없어도/ 아직은 이별은 아니죠/ 온 길을 돌아 언젠가 내게 돌아오려고 떠나는 길일 테니깐/ 그대가 보고 싶을 때 미칠 듯 보고 싶을 때/ 그저 한번씩/ 나이렇게 남모르게 울면되요/ 잊지 말아요 그대여 잊지 말아요/ 내가 늘 그대 곁에 있음을 /사랑해요/ 그대 지금 듣고 있나요/ 언제라도 그댈 기다릴께요/ 먼저 그대가 날 잊는다 해도/ 오호 사랑하니깐/ 내가 더 사랑하니까/ 그대 눈물도/ 외로움도/ 내가 다 가져갈께요/ 울지 말아요 그대여 울지 말아요/ 세상이 그대를 슬프게 해도/ 사랑해요/ 그대지금 듣고 있나요...
만약 여러분이 이 노래 가사를 통해서 이승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었다면 이승철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그 여인에 대한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들었을 것입니다.
듣는 것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것은 소리를 통해서 전달되는 마음을 듣고 거기에 나의 마음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듣게 되면 공감대가 형성되고 올바른 뜻에 따라 공감된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통해 표출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듣기가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노력합시다.
듣는 훈련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잘 듣지는 것이 진정한 축복의 시발점입니다.
모든 불행은 제대로 듣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존중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올바른 태도로 듣기를 배운다면 진정한 인생이 보일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귀를 회복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 어떻게 알았지? 감탄--
미세하게 변화하는 상대의 표정과 몸짓 등을 읽어내는 감각을 갖추었다
대화를 진행하면서 상대가 어떤 신체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체크한다.
본능적인 떨림, 움직임.등 - “비언어적 언어”= 태도가 말을 하는 것이다.
ex) tv 드라마
볼륨을 완전히 줄임
다양한 행동들을 면밀하게 관찰(줄거리, 예측, 파악함)
재방송을 통해 예측과 직감이 80%이상 맞을 때까지 노력하면 능력을 갖출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