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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 6차
<아나지고개~원적산~만월산~만월산터널>
○ 홀로
○
○ 거리/시간 : 5시간 35분
<만월산에서 바라본 계양산(오른쪽)과 걸어온 정맥길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모습>
지도는
<주요 지점별 산행 시간/거리>>>>
가까운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남으로 발길이 갑니다.
비교적 서울에서 쉽게(?)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정맥길.
그러나 도심지를 후비고 다녀야 하고 깊은 자연의 맛은 떨어져 재미는 반감되지만
이번은 어떨 지 기대하고 갔니다.저번 구간에서는 재미가 있었는데,,,
갔다 온 결론은,개스로 시야가 트이질 않고,전망도 별루였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만월산 정상에서 보았던 전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굴포천 이후 계양산을 지나 만월산 까지 걸어온 정맥길들이,봉우리와 봉우리들이 어깨동무하듯이
연결되어 사진 한 컷에 담겨지더군요.
긇어질 듯 가늘게 숨을 쉬며,산자분수령의 원칙을 위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이어진 정맥길을 보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기 >>>>>>>>>>>>>>>>>>>>>>>>>>>>>>>>>>>>>>>>>>>>>>>>>>>>>>>>>>>
집에서
오늘이
텐년텐월텐일텐시,,,,팔자가 텐이다.
한짝 스틱펴고 모자쓰고,,,
오늘 가스가 끼고 햇빛이 제법 따갑게 느껴진다.
아나지고개 반대 방향 반대편 내리막길로 좀 내려가니 바로 육교가 있다.
지난번에 어둠이 깔릴 때 못 보던 육교가 보인다.
아나지고개에서는 가로지른 경인고속국도가 가로질러 놓여 있어
이를 넘어 가자면 이 육교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부평역에서 12번 버스를 타고 아나지고개 정거장 지나 도착한 조광아파트 정거장
오늘의 출발 지점.
아나지고개는 뒤에 있지만 사진 앞(아나지고개 반대 방향) 쪽에 있는 육교로 건너야 경인고속도로를 횡단할 수 있다.
아나지고개 모습
계양구효성동과서구 가정동으로넘어가는경인고속도로의고개
여름철장마에 급류로흘러내려 "원적산"을들이받으니물이휘돌아큰웅덩이(池沼)가생겨이곳에
기러기떼가항상서식하여안하지(雁下池)라부르게된것이 "안아지"로불러왔다.
또 다른 안아지의 어원이 주막집 주모 이름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 아나지로 표기한 것도 연철되어 변형된 것이라는 결론??
경인고속도로를 가로질러간다.
육교를 넘자 왼쪽이 공원이고 오른쪽은 산책길 그리고 정면 앞에는 아파트 들어가는 길,,,표지기는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 공원 쪽으로 갔다 다시 뒤돌아와 아파트로 들어간다.
아파트를 지나자 차량통행이 많은 아스팔트 도로가 가로 지르고 있다.
그 건너편 앞산 정면이 정맥길인데 절개지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돌아 가야 하는데,,,
복불복이다 생각하고 왼쪽으로 가니 신호등이 있고 버스 정류장도 있다.
공장건물들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마자 개념도에 있는 JY정공 건물도 있지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올라갈 길이 보이질 않는다.
낮은 우측 산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골목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이쪽 저쪽 골목을 찔러본다.
헛품만 판 체 더 안쪽으로,,,
막다른 건물 끝쪽 근처 오른쪽으로 채소밭이 보이고 산으로 들어가는 흔적이 보여 올라친다.
올라가다 길이 없어지는 듯하지만 분명 정맥길과 만난다고 확신하고 올라치니 일반등산객이 편한 등로로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길도 없는 곳을 낑낑 올라왔는데 저 사람들은 가파르지도 않는 넓다란 등로를 산책하듯이 다니고 있다.
시작이 잘못된 모양이다.
그래도 길은 찾았다.
공원에서 빨간 열매가 익어 매달려 있다.
육교를 넘으면 바로 있는 아파트 안쪽으로
아파트 앞에 있는 포장도로와 버스정류장
왼쪽은 공원 오른쪽은 개념도상의 JY정공이 있는 공장지역
개념도상의 JY정공
우측 산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길이 없어 우왕좌왕
공장지역 골목 깊숙히 들어와
약간 억지로,힘들게 찾은 정맥길
원적산을 목표로 잡고,,,
오늘은 진행을 좀 빨리 하기로 한다.
백운역 근처 어딘가 산행을 마치고 소래포구로 가 볼 계획이다.
134봉인 듯한 곳을 지나자 오르막 길에 삼거리가 있는 돌탑이 보인다.
돌탑에서 좌측 오름길,,,24번 송전탑을 지나고
철마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철마정에 관한 안내판도 있다.
좀 더 진행하니 원적산(196m)이 나온다.
원적산 정상은 넓고 산악회,인천시 동리장 연합회에서 설치한 두개의
삼각점(?)인 듯한 것이 볼품없이 설치되어 있다.
둘레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5분여 쉬다 다시 내려간다.
원적산 삼각점 우측에 있는 길로 내려간다.
표지기는 볼 수가 없지만 어렵지 않다.
바로 앞에 165봉우리(개념도에는 철마산이라 표기되어 있으나,,,)가 보인다.
낮게 보이던 165봉이 점점 내려 갈수록 높아져만 보인다.
원적산에서 15분 걸어 내려와 6차선 포장도로가 도착한다.
새사미아파트,세일고교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고 왼쪽으로 횡단보도가 있다.
어디로 올라가야 할 지 몰라 앞 산만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려온다.
내려오는 쪽으로 가 보니 새사미 아파트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작은 철제 사다리가 놓여 있다.
정맥길 들머리 치곤 참 초라하고 궁색하다,,,
길은 이렇게 넓고 편한길이다.
개념도 상의 삼거리,돌탑있는 곳.여기서 좌틀
이 구간은 정말 송전탑이 많다.
송전탑 길 = 정맥길
철마정
산은 원적산인데 정자 명칭은 철마정,,,
어딘가 뭔가 이상타.
원적산
맨 왼쪽 보이는 산이 오늘의 종착지인 만월산인 듯
원적산 지나 있는 무명봉
여기에 있는 삼각점이 원적산 삼각점 보다 더 중요한가 보다.
원적산 지나 있는 무명봉에서 바라본 165봉
개념도에는 철마산이라 적혀 있다.
한남정맥의 고개는 이런 포장된 도로가 많은 것 같다.
왼쪽 횡단보도 건너 새사미아파트 정문으로 가면 저 앞산 들머리가 있다.
새사미아파트 정문
산길은 또렷하다.
올라가는 사람은 없고 내려오는 사람들만 있다.
점심시간.
올라가는 길에 사과 한알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올라간다.
언제 올라가나 했는데 별 힘들이지 않고 165봉에 도착한다.
삼각점이 있지만 많이 훼손되어 방치되어 있고 정수리엔 연못처럼 움푹 파여있고 철제봉 하나 설치되어 있다.
165봉엔 왼쪽길과 오른쪽길이 있는데 정맥길은 오른쪽,,,
165봉에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할메산에서부터 계양산을 비롯해서 걸어 온 길들이 확연하게 보인다.
끊어진 듯,끊어진 듯 보이는 그 산줄기가 연결,연결하여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참 신기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오늘 이 구간의 고도는 기껏해야 해발 100~200 정도의 낮은 산들이 많다.
고도는 높지만 더 높은 봉우리가 옆에 있다는 지리적 악조건(?)때문에 풋대접 받는 봉우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리 낮고 볼품없는 산이지만 오늘도 내일도 사람들이 찾아 올 것이다.
정맥 산줄기라는 이유로 그나마 대접을 받는 셈이다.
이 부근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 샛길이 많다.
송전탑도 많고,,,하늘이 어수선하다.
사람도 격이 있지만 도시도 격이 있다 생각한다.
인천도 역사와 대도시에 걸맞는 품격있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165봉 좀 지나니 이곳은 총 맞을 수 있고 책임 못 진다는 경고판이 보이고 5분 더 지나자
송전탑 하나 지나고 송전탑에서 2분 후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보니 가야 할 방향을 송전탑들이 알려준다.
작은 돌이 널부러진 등로를 조심해서 내려오니 길이
상당히 넓고 편해지면서 남녀 등산객들의 소리가 들린다.
아직 방향표시가 표기되지 않은 방향표지목을 지나고 앞에 인근 주민들의 텃밭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군부대 출입구가 보이고 우측으로 범양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여기가 장고개이다.
언뜻보기에 그저 동네 마을 사람들의 텃밭처럼 보일 뿐이다.
군부대에서 만든 하수로 같은 시설을 건너야 한다.
하수로라도 물길을 건너는 것 듯해서 마음에 내키지 않아 얼릉 건너 갈길로 간다.
165봉 오르면서 바라본 무명봉(왼쪽)과 원적산(오른쪽)
저 멀리 오른쪽에 계양산이 보이고 반시계방향으로 걸어온 정맥길들이 보인다.
165봉에서
개념도에는 이곳도 철마산이라 적혀있는데
철마산이 3군데나 있다.
문화관광부 산하 비영리단체인 부평문화원의 자료에는
장명이고개~아나지고개에 있는 철마산은 천마산(221m)
만월산과 비루고개 사이에 있는 철마산은 금오산(202m)
이라는 자료가 있다.
그러면
진짜 철마산은 어디일까?
이곳인가???
온통 철마산이니,,,정리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의 진짜 이름은???
송전탑이 너무 많고 어수선한 느낌
산불감시초소에서
가야 할 길들을 송전탑이 알려준다.
장고개 전경
벌겋게 드러난 흙길 따라 좀 가다 우측 산길로 접어 들자마자 정자와 운동 시설이 있는 곳이 나타난다.
호봉산 0.7km 동인천여중 0.6km라 쓰여진 방향표지목도 있다.
시장기가 돌지만 주변이 어수선해서 그냥 패스
3번 송전탑을 지나고 하니 오른쪽 직진 평탄한 길과 왼쪽 올라가는 길 두 갈래가 나온다.
좌측으로 호봉산 가는길이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호봉산???
지도를 보니 30번 송전탑과 136봉이 있는 곳이다.
136봉이 호봉산이라 표기한 것이다.
정맥길에 살짝 벗어나 있는 136봉으로 가 보기로 한다.
잠시 올라가니 송전탑이 나오고 왼쪽으로 삼각점이 있는 곳을 올라간다.
136봉,호봉산이다.
다시 송전탑으로 내려가 왼쪽길로 내려가자 원정맥길과 다시 만나고 5번 송전탑을 지나자 마자
오솔길 같은 좁은 흙 길이 나온다.
구루지고개.
장고개와 구루지 고개,,,
개념도나 사람과 산에 나온 것을 보면 제법 큰 길인 듯 보이지만 실체로 작은 오솔길 정도이다.
직진해서 또렷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계단 오르막길이 보이고 계단 오르막을 올라가
위를 쳐다 보니 송전탑이 보인다.
지도상의 2번 송전탑이다.
정말 오늘 송전탑도 많기도 많다.크기도 크고,많고,,,
6번 송전탑 볼려면 오른쪽 오름길인데 그냥 쉬운 왼쪽길로,,,
6번 송전탑에서 길은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돌면서 넓고 편한 산길이 이어진다.
내려가는 넓은 길로 따라가면서 우측 쪽으로 눈길을 자주 보낸다.
왜냐 하면 지도를 보니 정맥길은 우측으로 꺽여지기 떄문이다.
내려가는 길에 우측으로 작은 샛길이 보인다.
지도를 보며 이리저리 맞춰보니 우측의 작은 샛길이 정맥길이다.
사방을 보니 나무 위로 표지기가 여러개 달려 있다.
아까는 안보이더니,,,,@#$@%
우측의 좁지만 또렷한 길,돌부스러기가 있어 미끄러운 길,,,
내려가는 도중 소나무가 있고 적당한 그늘이 있는 곳에서 점심상을 차린다.
도시락과 막걸리 한통 다 비우고 후식으로 사과와 배 한점,,
지난 추석 설악에 갔을 때 마등령에서 만났던,산행 경력 30년이 넘었다는 분들,,,’
아무리 산이 좋고 어쩌고 해도 우리는 입이 즐거워야 한다’는 말이 생각이 난다.
입이 즐거워야 인생이 즐거워지는 나이가 됐나 보다,,,
나도 먹을 때가 즐거우니,,,ㅎㅎㅎ
지도에도 없는 호명상 정상,,,
변화가 진행 중이다.
호명산 갈림길
구루지 고개 전경
구루지 고개를 오르면 2번,6번 송전탑을 지나고
저 넓은 길에서 우측 좁은 길로,,,길이 잘 안보여 알바 주의.
약 50분의 점심 시간을 마치고 일어나 몇 발 옮기니 앞이 확 터진 곳이 나온다.
고등학생인 듯한 두 명의 학생이 전망이 좋은 곳을 차지하고 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
젊은 그 시절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그 소중함도 모르고 지나갔는데,,,
친구와 음악이 있었지만 그 젊음 속에 산 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도전적인 반항적인 기질이 강한 젊었을 때와 지금의 산의 의미는 사뭇 다르리라,,,
모든 것이 때가 있음을 너무도 늦게 알았음인가.
10분도 채 안돼 왕복 6차선 도로로 내려온다.
백운공원 옆 도로에 와서 보니 저 앞으로 낮은 산이 보인다.
그 낮은 산 쪽으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전철 선로가 밑에 있는 다리에서 왼쪽 멀지 않은 곳에 백운역이 보인다.
신호등 건너 낮은 산으로 올라가니 송전탑이 나오고 5분 더 진행하니 운동시설이 보이는 넓은 공터가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원만한 운동은 해도 될 정도로 넓은데 사람은 없다.
공터를 지나자 흙길 임도가 가로 지로고 있다.
직진 할까,왼쪽으로 갈까,오른쪽으로 갈까 하다 나의 선택은 왼쪽 편한길.
넓고 편한 길로 10분도 안돼 또 넓은 포장도로가 나온다.
왼쪽에는 중성골드빌라와 오른쪽에는 판다아파트가 있는 골목이 보이고 그 골목 끝에 낮은 산이 보인다.
그 산으로 방향을 잡고 골목길을 올라간다.
산 들어가기 전에 대한 불교 화엄사 약사사 250m,신명여자고등학교 450m이라고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된 것이 보인다.
산으로 들어가니 오른쪽길과 왼쪽길이 나오고 사람들은 대개 오른쪽으로 간다.
나의 선택은 왼쪽,,,좀 올라가 보니 만월산 배수지공사장이 나온다.
좀 더 올라가자 약간 붉은 색이 도는 암석으로 된 봉우리에 송신탑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전망이 좋고 한적하다.
점심 식사 장소로 딱인 듯,,,잠시 전망을 즐긴다.
개스로 계양산이 희미하게,지금까지 걸어온 정맥길이 한 눈에 펼쳐져 보인다.
좀 더 가니 만월산 정상.
이곳에 삼각점이 있는데 삼각점이 좀 색다르다.
세모꼴 철제 각파이프 밑에 설치해 두었다.
그리고 진행 방향 왼쪽으로 인천시민공원묘지.
미관을 고려하지 못해 너무 휑하고 보기가 흉하다.
만월산 정상에서 10여분이 채 돼기도 전에 팔각정이 나오고
팔각정 지나 산책길 같은 오솔길을 잠시 가자 송신탑이 나온다.
송신탑에서 잠시 더 진행하자 세갈래 길이 나온다.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오른쪽으로 APT,,,왼쪽으로는 글씨가 지워져 잘 알아볼 수 없다.
왼쪽이 정맥길이다.
왼쪽으로 내려가자 앞에 포장된 넓은 도로가 나오고 벽산아파트도 보인다.
가야 할 길은 앞에 있는 산이지만 도로로 만들어진 절개지 때문에 우측으로 길게 내려갔다 다시 왼쪽으로 도로 따라 올라 가야 하는 곳이다.
우측으로 길게 내려오는 곳에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점심 식사한 뒤 출발할려고 몇발 옮기니 앞이 탁 터진다.
바로 앞 송전탑 다음 송전탑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송전탑 오른쪽에 백운 공원이 있고 송전탑 앞 도로 꺽여지는 부근에 전철 선로가 밑에 있다.
백운역은 왼쪽 대주 아파트 바로 밑 부분에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저 학생들을 보면서 잠시 옛 생각에 젖어 든다.
태극기 있는 골목으로 나왔다.
오른쪽 건물이 부평도서관
백운역이 보인다.
46번 도로
개념도 상의 중성골든 빌라와 팬더아파트(오른쪽)
만월산 배수지 공사 현장
만월산을 오르면서
저 멀리 인천대교가 보이지만 사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지나온 정맥길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만월산 정상
여기서 좌측길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지점.
다음 구간 진행할려면
백운역에서 20번 버스를 타고 여기로 오면 될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차를 기달려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여러가지 다른 잇점도 있는 것 같다.
버스 정류장에 가 보니 백운역에서 출발하는 소래포구가는 20번 버스가 여기도 있다.
여기서 바로 집으로 갈려면 20번버스를 타고 백운역으로 가면된다.
하지만 오늘 소래포구로 가 볼 계획,,,
만원 버스를 타고 소래포구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하필 오늘 소래포구 축제가 있다고 한다.
날 잘못 받았다.이런 곳은 빨리 벗어나는 것이 최상.
간단하게 일을 보고 강남역 가는 좌석버스 있는 곳으로 가서 집으로,,
그런데,,,
집에 와서 디카를 찾으니 없다.
지금은 중고시장에 4만원도 안돼는 디카이지만 정이 든 디카인데,,,
좌석버스 타기 전
분명히 좌석버스 정류장 사진 찍고 배낭에 분명히 넣어 두었는데,,,
다음날 사무실에 와서 혹시나 하고 좌석버스 사무실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
야~~~~~~~~호!!!!!!!!!!
그러나 찾았다는 기쁨을 만끽하였지만
연안부두 끝 부근까지 가서 찾아 올 생각하니
어~~~~~~~~휴,,,,
<아나지고개~산행 참고 사항 >>>>>>>>>>>>>>>>>>>>>>>>>>>>
○ 전체적으로 볼 때 표지기가 거의 없고 샛길들이 많아
알바 위험이 늘 있어 알바 주의
○ 알바 주의 구간
- 아나지고개에서 육교를 넘자 마자
왼쪽 공원,직진 아파트 길,오른쪽 산책길(?) 세갈래길이 나옴
- 세갈래길에서 왼쪽 공원쪽으로 좌틀,공원에서 우틀하여 진행à
포장도로à 행단보도 건너 앞에 있는 JY정공이 있는 공장 건물 지역
- JY정공 우측산 : 정맥길 (길이 없어 잠시 헤맴)
- 정맥길만 찾으면 그 이후는 길이 또렷
샛길이 많으나 길 찾기는 별 어려움이 없지만 주의 진행
○ 원적산에서 우측길à원적산 지나 나오는 봉우리에서도 우측 나무 계단
(바로 앞에 철마산이라고 표기된 165봉이 바로 보임)
à 도로(세사미아파트,세일고등학교 버스 정거장) 건너
새사미아파트 입구 오른쪽 작은 철제계단
○ 165봉(개념도에 철마산이라 표기되어 있는)에서 좌측길과 우측길 중 우측길이 정맥길
○ 구루지 고개 à 2번,6번 송전탑을 지나 우틀(알바 주의)
일반 산행길은 넓고 직진길이고 정맥길은 잘 보이지 않아 주의
○ 장고개,구루지 고개는 비포장 작은 소로
<교통편 / 소요경비 >>>>>>>>>>>>>>>>>>>>>>>>>>>>>>>>>>>>
갈때: 집/전철 à 부평역/20번 버스 à 아나지고개
올때: 산행종료지점(개념도상의 sk주유소)/20번 버스 --> 소래포구/좌석버스--> 강남역/9900번 좌석버스-->집
<소요경비> 약 1만원 <전철 1회,좌석버스 3회,일반 버스 2회,잡비 기타 포함>
<인터넷 펌 자료 >>>>>>>>>>>>>>>>>>>>>>>>>>>>>>>>>>>>>>>>>
부평의 황굴(日新洞)에서 만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비루고개(別離峴)"라 불러오고 있는데 모든 옛 지도에는 성현(星峴)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 "비루고개"는 예로부터 한양 서울에서 인천도호부로 통하는 유일한 국도로,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이 이 고개를 거쳐 인천 문학산 줄기의 "사모지 고개(三呼峴)"를 넘어서 송도의 능허대(凌虛臺) 동쪽 한나루(大津)에서 배를 타고 중국의 산동반도를 향하여 떠났다고 한다.
사신을 전송하는 가족과 친지들은 서울에서부터 따라와 "비루고개"에서 이별을 나누고 그래도 정을 못 잊어 헤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사모지 고개"까지 따라와서 멀어져 가는 사신에게 크게 세 번을 불러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고 해서 삼호현(三呼峴)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한다.
그러나 부평의 별리현(別離峴)은 모든 옛 지도를 살펴 봐도 찾을 수 없는 지명인데 다만 「대동여지도」에 성현(星峴)이라고 적혀 있어 눈길을 끌게 한다.
또한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작한 5만분지 1 지형도에는 "성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부천군 부내면 리에서 남동면 만수리 새골(鳥谷)로 넘어가는 해발 120m 정도의 얕은 고개로 나와있다. 이곳을 현재의 지도에는 "비루고개"로 표시되어 있으니 별리고개(別離峴)와 통하는 땅이름이고 "별리고개"를 한문으로 표기할 때 배곶이(船串)를 배나무꽃(梨花)으로 했듯이 "별리고개"가 「별고개」로 착각해서 「성현」으로 표기한 것으로 느껴진다.
또, 일설에는 비류(沸流)가 미추홀에 비류국을 세울 때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 「비류고개」라 한 것이 변하여 "비류고개"가 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안아지 고개
- 기러기의 안하지인가? 주모이름 안아지인가? 아흔번째 골짜기 九十峴 - 산곡 청천동의 뒷산인 원적산이 남북으로 갈게 자리잡아 남쪽 끝은 장고개 (場峴. 장끝고개)이고 북쪽 끝의 철마산과 이어진 계양구 효성동과 서구 가정동으로
넘어가는 경인고속도로의 고개를 "안아지 고개"라 부르고 있다.
"안나지"라 하였음은 청천(淸川)의 발원지인 "도둑굴" 물이 여름철 장마에 급류로 흘러 내려 "원적산"을 들이 받으니 물이 휘돌아 큰 웅덩이(池沼)가 생겨 이곳에 기러기떼가 항상 서식하여 안하지(雁下池)라 부르게 된 것이 "안아지"로 불러왔다.
"도둑굴"은 "철마산" 동쪽과 중구봉 서쪽 사이의 깊은 골짜기로 조선조 말기까지 도적 때의 소굴이었기에 "도둑굴"이란 지명이 생겼다. 이 도적들은 어찌나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졌는지 정부로 수송하는 세미(稅米)를 덮치고 행인을 괴롭혀 큰 두통거리였는데 고종 22년(1885)
왜정 때 일본군 포병대는 병참(兵站 : 지금의 산곡4동 아파트자리)에서 이 "도둑굴" 깊은 산골짜기를 향하여 대포를 쏘는 연습을 하여 포탄이 떨어지던 곳이기도 하다. 또 일설에는 한말에 갯말(원창동)의 전조창(轉糟倉)의 세골을 서울 경창으로 운반하여 갈 때 이 고개를 넘어가고 이 고개에 주막이 있어 "도둑굴"의 동정도 살필 겸 모두 이 주막에서 쉬어갔는데 그 주모의 이름이 안아지(安阿只)여서 이 주모의 이름으로 해서 "안아지"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그리고 또 이르기를 중종때 김안로가 "원테이 고개"와 "무너미 고개"를 뚫다가 실패하고 이 고개를 뚫으려고 고개 밑을 파서 큰 웅덩이가 생기어 안하지(內河池)라 한데서 "안하지"가 되었다고도 전한다. 또한 규장각(奎章閣)에 보존되어 있는 부평부 지도에는 이고개를 구십현(九十峴)으로 되어 있다. 이는
도적떼가 들끓던 으슥한 산골이 불과 백 년 만에 고속도로와 산업도로에 줄을 이은 자동차 행렬과 고개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징매이 고개
- 징메이 고개는 매를 징발해서 송도 서울 가는 큰 길목 -
계양구 계산동에서 서구 공천동으로 넘어가는 계양산 주봉 서쪽의 고개를 "징매이 고개(
고려 충렬왕은 몽고의 원나라 황제의 딸 제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해서 원나라에 자주 드나들었고 원래 기질이 호탕한데다 원나라의 수렵행각을 본받아 재임시 매사냥을 즐겨 부평고을에 다섯 번이나 행차했다고 한다. 송도서울에 있는 국영매방(鷹房)을 "징메이 고개"로 이전했으니 그 매방이 있던 곳이 "징메이 고개" 정상에서 서쪽 50m 지점에 있어 그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6차선 도로확장공사로 흔적마져 없어지고 말았다. 매(鷹)가 사냥을 하는데도 우리나라산 "해동청 보라매"가 가장 뛰어났다고 하여 몽고인 원나라까지 소문이 퍼져 이 곳 매방에서 징매(徵鷹)을 해서 "징매고개"라 한 것이 "징메이 고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3) 천마산을 철마산이라 하고
서구 가정동(개경주), 심곡동(기피울) 계양구 효성동(새별이) 사이에 걸쳐 있는 높이 226.7m의 산을 「철마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 철마산(鐵馬山)은 서쪽 골짜기에서 용마가 났기 때문에 용마골(龍馬谷)이라 불러왔고, 그 본디 이름은 천마산(天馬山)이다. 그리고 이 산 중턱의 바위에는 꼭 말발자국처럼 움푹 움푹 패인 흔적들이 남아 있어 이 바위를 마제석(馬蹄石)이라 하고 이 산을 마제봉(馬蹄峰)이라고도 부른다.
「천마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산 밑 개경주(가정동) 마을에는 고려말 합천이씨(陜川李氏)가 많이 살고 있었다. 조선조 초기에 명문이던 합천이씨 문중에서 뜻밖에도 장사 아기가 태어났다. 이 장사아기는 태어난 지 불과 한 이래 만에 걸음을 걸었고 이상하게도 양어깨에 날개까지 달려 방안을 날아 다녔다 한다. 이를 본 이기장사의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이런 장사(壯士)나 이인(異人)이 나면 나라에서 후한을 염려하여 그 집안 일족을 모두 죽여 없앴기 때문에 그 부모는 그것이 두려워 비록 마음이 아팠지만 장사아기를 다듬이돌로 눌러서 죽이게 되었다. 그러자 이 아기장사는 휙 날아서 천장에 붙었다.
그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그 아기장사를 기어코 붙잡아 내려서 다듬이돌로 누르니 아기장사는 숨을 껌벅거리며 한사코 발버둥을 치는데, 이때 뜻밖에도 별안간 용마가 나타나서 그 집주위를 맴돌며 구슬프게 울어댔다. 그러다가 아기장사가 숨이 끊어지자 그 용마도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산을 용마가 있던 산이라서「천마산(天馬山)」이라 부르게 되었고 신성시하였다.
이러한「천마산」이 1916년 조선총독부의 세부칙량(稅賦則量) 때 철마산(鐵馬山)으로 도면에 표기하므로써 「천마산」이 「철마산」으로 둔갑된 것이다. 옛 고지도를 보면 이 철마산에 이웃한 추곶산과 원적산은 표기되어 있어도 천마산으로 표기한 것이 없으니 다만 구전되어 온 산이름일 것이다. 이 때 칙량기사는 마을사람들에게 산 이름을 물으니「천마산」이라 한 것을 철마산으로 잘못 듣고 그대로 적어 넣어 오늘의 모든 지도에 철마산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요즈음 발행한 인천시 도면에 부평구의 산곡·청천동과 서구의 가좌·석남동 사이에 있는 원적산을 철마산으로 표기하고 또, 부평구 일신동과 남동구 만수동 사이에 있는 금마산(錦馬山)을 철마산으로 표기하여 부평지역에 철마산을 3개나 만들어 놓아 이를 구별하기 위해 "북철마산","중철마산","남철마산"이란 산이름을 붙이게 된 것은 한참 모두 잘못된 것이다.
투명성으로 믿음을 찾는 IMF시대에 작으나마 내고장의 산이름이 왜곡되어 문화유산이 바르게 전승될 수 없다면 큰 잘못이며 이를 방치한다면 그 산신령의 노여움 또한 클 것이다.
4) 원적산도 철마산이라 했고 원적산(165m)은 남으로는 장고개(場峴)이며 북으로는 안아지고개(九十峴) 사이의 부평구와 서구를 경계한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산이다. 이 산은 우리나라 산경표에 원적(元積)으로 명시되었는데 원(怨)이 쌓여 원적(怨積)이 변한 것이라고도 전한다.
중종 때 경인운하를 팔 적에 원테이고개의 암벽 때문에 실패하고 북쪽의 안아지고개를 또 파다가 역시 실패하여 그 사이에 있는 산은 원한이 쌓인 고로 「원적」이라했다고 전하는 것은 근거가 없으니 지나친 과장으로 보인다.
'인천땅이름학회'
금마산도 철마산이라 했다.
소래산 북쪽 줄기의 부천의 앞 산은 소가 누운 것과 같다 하여 와우산(臥牛山)이라 했는데 왜정 때 이곳 작은 봉우리에 일본사람들이 신사(神社)를 세우고 산이름을 성주산(聖柱山)이라 고쳐 불렀다. 이 산줄기가 동서로 길게 뻗어 와우고개와 하우고개를 이루고 남쪽은 마니골(
이 산은 옛 부평도호부 안산이므로 이를 드높여 향안산(香案山)으로 옛 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이 "거마산" 서쪽줄기는 비루고개(星峴)을 거쳐 금마산(201m)에 이루고, "금마산"의 주맥은 서쪽으로 "주안산"인 만월산에 이어지고, 또 북쪽 줄기는 부개봉을 이루어 서쪽으로 길게 뻗어서 그 남쪽은 「큰골」을 이루어서 고려 때 수도하던 개국사(開國寺)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시립공동묘지」가 되고 있다.
이 "금마산"과 부개봉은 옛 지도에도 없어 이를 찾느라 한참 고생을 했는데 "금마산"은 「국립지리원」발행, 지형도에 나와 있고 또 본현의 대인걸
이 "금마산"을 1994년 인천직할시가 발행한 관할도에 철마산(鐵馬山)으로 표기되어 새로운 "철마산"이 또 생겨 이곳에 "철마산"이 셋이 되어 「남철마산」이란 말이 나오게 까지 되었다. 한 고을에 같은 철마산을 3개씩 방치할 것이 아니라 "북철마산"은 "천마산(天馬山)"으로 고쳐 주고 "중철마산"은 "원적산(元積山)"으로 ,"남철마산"은 "금마산(錦馬山)"으로 바로잡아 주어야 될 것이다.
원통산→주안산→만월산으로 바꾸었다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187.1m)는 옛 인천부 주안면(朱雁面)에 소재한 주안산(朱雁山)이다.
왜 주안산이라 했는가? 이 산의 흙과 돌이 모두 붉은 빛이라 주(朱)자와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하여 안(雁)자를 붙이어 주안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1861년에 간행된 고산자의「대동여지도」에는 한문 표기에 「雁을 岸」으로 바뀌어「朱岸山」으로 되어 있다. 이 주안산을 주산으로 한 지봉이 서해바닷가를 휘돌아 해안에 접하고 있었으니 朱岸山이라 함도 그리 잘못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元積山을 元寂山으로 옛 지도에 표기되었듯이 우리가 불러 온 모든 이름은 우리의 낱말에서 비롯되어 온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니 한자를 논할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이 만월산은 한일합방 후 인천지방의 지지조사에 의하면 「인천부 주안면 원통산(元通山, 上十井里 東尾)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986년에 발간된「한국지명 총람」에 「원통산-선유산, 간석동과 만수동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87m, 신선이 놀았다고 함」이라 기록되어 있다. (중략)
이 "주안산"을 부평사람들만이 "원통산"으로 불러 온 것이 아니라 옛고지도를 살펴본 즉, 거의 모두가 "원통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선 영조 36년(1760)에 발간된「여지도서」그 후의「광여도」,「지승」,「해동지도」,「경기지」,「기전읍지」와 근세인 「부평부지도」(1872), 「부평군읍지」(1899)에 모두 원통산(元通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원래의 산 이름은 원통산(元通山)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부평문화원>
사니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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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산행 코스는 자장구 타구 다니면 조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