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삼국지 29
제갈량은 10만 개의 화살을 구할 수 없었다
[삼국지연의] 제46회에서 주유는 제갈량의 지모가 뛰어나서 언젠가는 자신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기해 여러 번 제갈량을 제거하려고 한다.
어느 날 주유가 제갈량에게 열흘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준비하라고 요구하자 제갈량은 그 자리에서 승낙하며 3일이면 충분하다고 장담했다.
주유는 내심 기뻐하며 제갈량에게 군령장을 내리는 한편, 군 내에 있는 장인들에게 일부러 시간을 끌어 납기일에 맞추지 못하게 했다. 이것을 구실로 제갈량을 죽이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제갈량은 태연했다. 다만, 은밀히 노숙에게 이렇게 부탁할 뿐이었다. 즉, "배를 20척 준비해 그 배에 각각 병졸 30명씩을 태워 푸른 장막을 치게 할 것, 배의 양측에 볏단을 천 개씩 나란히 늘어놓을 것"등이었다.
3일째 되는 날 새벽 장강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제갈량은 노숙을 배 안으로 불러, 20척의 배를 긴 밧줄로 서로 연결하고는 안개 낀 강을 거슬러 북상했다. 날이 샐 무렵 배는 조조의 군영 가까이에 다다랐다. 제갈량은 배를 일렬로 나란히 세우고, 일제히 북을 치면서 함성을 지르게 하고 자신은 노숙과 술을 마셨다.
조조는 이 소식을 듣고 복병이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며 만여 명의 사수를 동원해 활을 쏘게 했다.
조조 군이 손 화살을 다 받은 제갈량은 뱃머리를 반대로 돌리도록 명령해 또 화살을 받게 하고 나서는 안개가 걷히는 것을 기다렸다가 즉시 후퇴하도록 했다. 20척의 배 양측에 나란히 놓아둔 볏단에 화살이 가득 꽂혀 있었으므로 10만 개의 화살을 제갈량은 간단히 손에 넣은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안 주유는 "공명의 기지묘계는 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다."며 감탄했다.
여기에서 제갈량은 명백하게 이 계획의 입안자이며 실행자로 그려져 있으며, 수백 년 동안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그러나 실제로 제갈량이 기지로써 화살을 빌렸다는 이야기는 역사서에는 나오지 않으며, 이야기 자체에도 결점이 있는데, 그 결점은 다음과 같다.
만 단 이상의 볏단이 필요하다
각각의 배에 볏단을 천 단 이상 싣고자 한다면 20척에는 2만 단 이상의 볏단이 필요한데, 볏단 하나의 무게를 다섯 근(한 근은 약 5백 그램)으로 치면, 10만 근 이상의 볏짚이 필요하다.
게다가 20척의 배에 둘러치는 장막의 양도 상당한데, 과연 이 정도의 재료를 노숙이 그날 중에 준비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그 사이에 얼마만큼의 인력이 필요했을까? 그리
고 노숙에게 이 정도의 많은 인력과 배를 조달할 권한이 정말 있었는지, 설령 조달할 수 있었다 해도 주유 몰래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삼국시대 쾌속선의 길이는 20장(1장 2.25미터)을 넘지 않는다
수, 당대의 대형 용선이나 대형 선박은 20장을 넘지 않는다. 천여 개의 볏단을 양쪽에 나란히 놓아두려면 한쪽에 적어도 5백 단이 필요하다. 볏단 한 개의 직경이 최소 0.5척(1척은 22,5센티미터)으로 하면 5백 개의 볏단은 25장(56.25미터)의 길이가 된다. 이보다 작으면 볏단이라 부를 수 없고 활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면 삼국시대에 이런 길이의 배가 있었을까? 또 이 정도 길이의 배를 쾌속선이라 부를 수 있었을까?
20척의 배를 긴 밧줄로 서로 묶는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
배의 길이를 25장이라고 가정하면 전체 길이가 적어도 1.65킬로미터가 된다. 이런 긴 배를 나란히 해서 서에서 동으로, 또 동에서 서로 방향을 바꾸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또 장강의 강폭이 그 정도로 넓었을까?
설령 방향을 바꾸었다 해도 이에 필요한 시간과 조조 군 만여 명의 사수가 화살을 쏘는 데에 필요한 시간(15-16개의 화살을 쏘는 것만으로 15-16만 개가 된다)은 서로 일치할 수 없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지략으로 화살을 빌린다는 것은 제갈량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대의 [삼국지평화]에도 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여기에는 화살을 빌린 주인공을 주유로 바꾸어 그를 칭송하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도 간단하고 조잡한 것으로 보아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유가 행한 일일 수도 없다.
그러면 기묘한 꾀를 써서 화살을 빌린 사실은 있는 것인가?
정사의 <손권전>을 보면, 건안 18년(213) 손권과 조조가 유수에서 대치했을 때를 배송지는 [위략]을 이용해 이런 주를 달고 있다.
"어느 날 손권이 큰 배를 타고 적의 정세를 시찰하려 가자 조조의 군사들이 활을 마구 쏘았다. 그런데 그 때문에 꽂힌 화살의 무게로 배가 기울어 전복될 지경이었으므로 손권은 배를 돌려 반대 쪽으로 화살을 맞게 했다. 그러자 화살의 무게가 골고루 흩어져 배가 안정되었고, 그때에야 물러날 수 있었다."
기묘한 꾀로 화살을 빌린 이야기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적벽대전 이후의 일이었고, 실행자 또한 제갈량이 아니라 손권이었다. [위략]에 기재되어 있는 손권의 이야기는 그만큼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의 자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의 역할을 과장하고, 손권에게 일어났던 일을 제갈량으로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5년이나 앞당기고, 지점을 환남의 장강 지류에서 적벽으로 옮겼으며, 받은 화살의 양을 크게 늘린 데다가 다른 이야기 적지 않게 덧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