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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젊은 시’라야 한다.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많은 일반인은 시조라고 하면 조선시대에 쓰여 진 고시조로 알고 현대시조가 있는 줄도 모른다. 시조는 늙은이들이 목청을 돋우어 길게 뽑는 조선시대의 창(唱)이라고 생각하고 고전음악이나 고전무용과 같은 부류로 이해한다. 많은 청소년은 시조가 현대문학의 한 장르인 줄은 모르기 때문에 시를 좋아해도 시조는 외면한다. 자유시만 시인 줄로 알기 때문에 시조가 시의 한 장르로 자유시보다 어렵고 가치 있는 ‘정형시’라는 사실은 한참 설명을 해 주어야 겨우 이해한다.
현대시조가 싹튼 지 10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대다수 국민은 고시조만 생각하고 시조는 늙은이들의 시라고 오해하는 것은 현대 시조가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큰 흠과 모자람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오늘날의 시조는 정형시의 모습을 잃어 자유시와 비슷하고 뚜렷한 특색이 없다.
이것은 바로 시조시인들이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은 결과이다. 정격시조는 어렵다고 파형, 변형 시조를 즐겨 쓰며, 시조가 아닌 사이비시조를 시조라고 우기며, 앞서 가는 체 괴상한 형을 만들어 자랑하고 자기변명이나 늘어놓으니, 시조는 넓은 세상으로 나서지 못하고 시조시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맴돌고 있다.
둘째, 시조의 내용을 자유시와 비교하여 보면 많은 작품이 어딘지 모르게 늙은이 냄새가 나고 톡톡 튀는 맛이 없다.
인생, 늙음, 세월, 죽음 등을 입에 담고 과거를 뒤돌아보는 회한, 그리움, 애통, 농촌, 고향 등에 집착하며, 평범하고 상투적인 시어를 나열해 놓고 무슨 큰 철학이나 발견한 듯 우쭐대고, 일반 독자는 전혀 감동을 하지 않는데 시인들끼리 서로 과대평가해주고 거기에 만족한다.
21C의 도시생활, 세계화, 지하철, 디지털 영상,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등등 쭉쭉 뻗어 나가는 현대생활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시조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는
(1) 전통 시로서의 ‘시조’ 개념보다 현대시로서의 ‘정형시’ 개념에 무게를 두고
(2) ‘노인들끼리 주고받는 시’가 아닌 ‘젊은 독자를 의식한 젊은 시’를 써야 할 것이다.
이하 최근의 시조현장을 둘러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11.9월호
시조 8편 중 정격시조는 [인생](신영자) 한 편뿐이다.
[울돌목에 서서](金承奎), [어스름이 깔릴 때](이진숙), [비](이명희), [정방폭포](최재남) 등 4편은 깨진 음보가 있어 정격이 아니며 [민들레 사설](손영옥), [고목 진 나무](신길수), [문](김미정) 등 3편은 깨진 음보는 둘째 두고 수의 구별조차 없는 변형시조이다.
인생
신영자
옥비녀 곱게 꽂은 언약의 귀밑머리
한 생전 굴레 속에 매만져 올린 세월
찬바람 사립문 소리
임의 발길 헤이나.
모시옷 가다듬어 시린 정 여미운 채
통한의 눈짓으로 서둘러 떠난 세월
겨울 밤 다듬이 소리
설움 되어 울린다.
이팔청춘 꽃피던 세월 다 보내고 어렵게 한 생애 살다가 먼저 간 배우자를 그리며 쓸쓸함을 달래는 여인의 모습을 잘 그려 낸 정격시조이다.
그러나 [옥비녀] [모시옷] [사립문 소리] [다듬이 소리] 등은 50대 연령층만 되어도 본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옛날 물건이며 옛날 소리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읽고 진한 감동을 하기는 어렵겠다. 현대시조가 독자층을 넓히고 자유시처럼 널리 읽히기 위해서는 우선 내용이 ‘젊은 시’라야 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시조형식은 나무랄 데 없으나 내용 면에서는 60대 이상에서만 읽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고목 진 나무
신길수
저 산을 오르면서
치솟은 하늘/ 보면서
세월 묶어/ 세워 논
퇴락의 거목인데
온몸은/ 상처난 역사되어
애만 태워 놓는다.
(2수중 둘째 수)
형식 면에서 깨진 음보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 표현상의 오류도 여러 군데 눈에 뜨인다.
[고목 진(나무)]은 [고목이 된]이 적절하며, [치솟은 하늘]은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하늘은 솟은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애만 태워 놓는다]는 [애만 태운다]가 되어야 자연스럽다. 글자 수를 맞추려고 억지로 2자를 늘여 놓으니 오히려 어색하여 예술적 가치가 떨어진다. 글답게 쓰자니 자수가 맞지 않고 자수를 맞추자니 글이 안 된다. 진퇴양난(進退兩難), 그래서 시조가 어려운 것이다.
(2) 11.10월호
8편의 시조작품 가운데 정격인 수(首)가 포함된 연시조가 있지만 완전한 정격시조는 찾아볼 수 없다.
[부표에 대하여](김보안), [백령도 기행](변인숙), [가락시장에서](박용하), [편지](김인자), [납의(衲衣)를 깁다](이원식), [노생지몽(老生之夢)](백원용) 등 6편은 깨진 음보가 많다. [시조, 그맛](이도현)과 [포개진 밥그릇](박해자)은 깨진 음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의 구별도 없는 자유시이다.
포개진 밥그릇
박해자
서둘러 설거지하다 두 그릇이 한 몸 됐어
번갈아 냉온수를 안팎으로 부어 봐도
비웃듯 뒤뚱거리다가 제자리로 들어갔지
남편에게 쑥 내밀자 매운 맛 몇 번 보더니
못 이긴 듯 슬그머니 품었던 정 내보인다
부딪혀 멍들면서 저토록 정들었나 3434
나, 그대 가슴에 터를 잡고 살고 싶어라
하루 세 번 부딪히는 일상의 연속이라도
내 안에 꼭 끼어 있는 당신의 상처 뺄 수 있다면.
깨진 음보가 많고 수의 구별이 없는 자유시이다. 그것도 모자라 셋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 종장 둘째 마디는 4자로 못 박아 시조가 아님을 확실히 하였다.
내용 면에서는 부부간의 정을 포개진 밥그릇으로 비유하여 묘사한 다음 자신의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시적 논리가 분명하지 않고 표현이 애매하여 시적 화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선뜻 알 수가 없다.
노생지몽(老生之夢)
백원용
3.맞아야 하는 노년
외롭게 깊어 가는 시침(時針)은 또닥이고
맥반석 온기 찾아 느슨해진 마디마디
살아온 혼신(魂神)이더라 돌아보는 세월아.
(3편중 셋째 시편)
형식은 완벽한 정격시조이다. 그러나 내용은 노년의 정신적 외로움과 육체적 쇠락을 한탄하는 현대판 탄로가(歎老歌)이다. 작자가 고령임을 알 수 있고 ‘늙은 시’의 냄새를 풍기므로 젊은 독자들이 싫어한다.
(3) 11.11월호
시조는 겨우 5편이 실렸는데 그나마 정격시조는 1편도 없다.
[일번 국도](조병기), [존재의 새](박자방), [홍시](김병환), [순천만에서](김분조) 등 4편 모두 깨진 음보가 많고 [연리지](한상목)는 깨진 음보뿐만 아니라 수의 구별도 없다.
일번 국도
조병기
가로수들이 마주보며 소곤대고 있었다
목포 발 신의주 행 기적 소리가 듣고 싶다고
도라산 돌고 돌아도 녹슨 철길이 숲 속에 묻힌다
사천강 넘나드는 철새들이 비웃는다
강 건너 저쪽 지척인데 오가지도 못하는 비정
지구 땅 어디를 가 봐도 이런 까탈은 없다
갈라진 산과 들녘이 무슨 볼거리라고
쉴새 없이 모여든 지구촌 사람들 앞에
변명도 그만/ 긴 세월이/ 너무/ 부끄럽다./ 5424
거의 모든 음보가 깨져 있어 정격시조는 고사하고 셋째 수 종장 첫 구 3.5도 안 맞아 시조라고 볼 수가 없다.
내용 면에서도 국도와 철도를 혼동하고 있다. 1번 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의 자동찻길이지 철도 호남선+경의선이 아니다. 국도에 무슨 기적소리가 있고 녹슨 철길이 있는가? 시의 제목은 국도인데 내용은 철도를 묘사하고 있다. (참고: 2번 국도; 전남 신안~부산광역시, 3번 국도; 경남 남해~자강도 초산)
(4) 11.12월호
시조 8편 중 [가을독백](김남환)과 [저녁 강](하영필)은 수의 구별도 없는 변형시조이다. [벗은 나무](이일향), [가을 길](전현하), [백로와 까마귀에 대하여](진성열), [옹기](서정교), [세한도(歲寒圖)](김종화) 등 5편은 정격에서 벗어나 깨진 음보가 있는 파형시조들이다.
아래와 같은 작품도 시조라고 나와 있다. 12 음보에서 1 음보쯤은 없어도 되는 줄 아는지 실수로 빠졌는지 알 수가 없다.
대리(大理)에서
이희춘
풍화설월(風花雪月)이/
사람보다/ 흔한 땅/ 543
사바도 심심하면
달빛으로 떠오르고 3444
바람도 고즈넉하면
꽃으로 내리는 땅 3534
(3수 중 첫째 수)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11가을호>
시조 14편 중 정격시조는 한 편도 없다. 3장 6구 12음보의 기본 틀을 벗어난 사설시조 [오늘의 운세](오영빈)와 [지지미 원피스](이태순) 및 수의 구별이 없는 [목련꽃 연가](강성호) 등 3편은 제쳐 놓고 나머지 11편을 살펴보면,
[차를 들며](정하경), [빈자리](정표년), [우리 집 삼악장(三樂章)](김옥중), [딸](경규희), [항목.2](채명호), [얄미운 잡초](채윤병), [돌탑](이후인) 등 7편은 매 수 한 두 음보 깨졌으나 3.4조 또는 4.3조를 유지하여 운율이 맞는 비교적 정격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이에 비하여 [울릉도](김길순), [함께하는 이유](이솔희) 등은 3 또는 4의 자리에 2, 5 심지어 6자가 들어 앉아 운율이 깨져 있어 시조 정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대조적인 나머지 2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비교하여 보고 끝으로 이달에 실린 [계간평]의 잘못을 지적한다.
(A)
달빛 산조
김민정
너와 나
전생에서
옷깃 몇 번 스쳤을까
발목 시린
여울목
몇 번이나 건넜을까
아득한
세월을 베면
거기 솟는
하얀 피.....
형식은 한두 곳 정격을 벗어났으나 율이 맞아 읽는데 불편은 없다. 그러나 달빛을 보고 ‘너’를 생각하는 추상적인 작품으로 시적 화자가 청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한 내용이다.
(B)
요즘 비둘기는
김선호
비뚤기라 불러야겠다.
그 맘보 보아 하니
아무데나 배설하고 메어박는 소리나 하고
귀엽다
오냐오냐 하는 사이
참 많이도 엇나갔다
평화의 전도사로
찰떡궁합 금슬로
칭송 자자하고 부러움 한몸에 사더니
세상이
비뚤어진다고
시류에 편승하다니!
형식은 정격에서 크게 벗어나 2, 4, 5, 6 또는 8자가 함부로 남의 자리에 들어앉아 있어 정격의 운율이 깨지고 읽기에 껄끄럽다.
내용은 비둘기의 못된 행동을 보고 비뚤기라고 욕하며 비뚤어져 가는 세상을 한탄하는 심정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A)와 (B) 중 어느 작품이 높은 점수를 받을까? 형식과 내용 중 어느 곳에 무게를 두어야 할까? 시조잔치에서 (A)는 찬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만 (B)는 회초리를 맞고 쫓겨나야 할 것이다.
[잘못된 계간평]
[결정적 제목을 위한 퇴고의 응축](한분순)은 전 호(계절문학 2011여름호)의 시조를 평한 계간평의 글인데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 작품을 명작인 양 띄워 준 잘못이 있다.
시조 [물위에 뜬 판화](김정희) 중 [진양호 상류에서 살고 있는 수달피가]는 있을 수 없는 시구임에도 불구하고 평자는 결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래성에 새겨진 수달피의 발자국을 향해 ‘음각한 판화에 새긴 그림’으로 작품을 형상화시켰다. 둘째 수에서는 수달피가 한가롭게 놀고 간 뒤의 발자국...](가을호 P407)으로 호평하였다.
시조의 작자는 물론 평자마저 ‘수달피’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글을 쓰고 평하였다. (참고: 수달피는 수달의 가죽임.)
(2) [현대시조]<11가을호>
현대시조단에 실린 80여 편의 신작 중에서 특히 수(首), 장(章)의 구별이 제대로 안 된 변형시조와 깔끔한 정격시조를 2편씩 골라 본다.
매미 소리 1
-세레나데
정순량
밤에도 줄기차게 굉음을 내지르는
말매미 팔십 데시벨(dB) 본능적인 세레나데
암컷을 유혹해야 하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매미로 날기 위해 수년을 기다리다
열흘 남짓 한살이에 유전자를 대물림하려
오늘도 햇살 달구며
구해하는 매미 소리.
첫째 수(수라고 할 수도 없지만)의 종장과 둘째 수의 초,중장을 가까이 묶고 다른 장들은 멀리 떼어 놓았다. 자유시라고 해도 연(聯)을 짓는 데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3장 6구가 뚜렷해야 하는 시조에서 이유 없이 이리저리 떼다 붙여도 되는지, 어느 책에 있는 시조정형인지 물어보고 싶다.
해바라기
김종기
향양(向陽)의
젊으신네
날캉한 여름철에 3434
크노라고
청청靑靑타. 43
황금빛
웃음보를 34
제대로 마구 터트리면 324
천상까지
시끌타. 43
정격시조와는 천리만리 거리가 멀다. 3장은 어디 가고 6구의 구별은 어떻게 하는가? 아무리 하여도 꿰맞출 수가 없다.
한자표기 또한 문제다. 무슨 이유인지 ‘향양(向陽)’은 괄호에 넣어 표기하고 ‘청청靑靑’은 괄호를 벗겼다. 한자는 괄호에 넣어야 맞을 것이다. (참조: 국어기본법)
백일홍
이동림
마음이 깊어지면 몸피를 한 겹 벗고
눈빛이 젖어오면 꽃불로 피워 올려
숨어 운
지난 여름은
백날 동안 붉었지.
1자의 가감도 없는 깔끔한 정격시조이다.
날이 갈수록 묵은 껍질을 벗으면서 긴 여름 동안 남모르는 고통을 참아가며 불 피우듯 붉은 꽃을 피워 올린 백일홍은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미소微笑
김두만
가녀린 눈과 입술 젖은 맘 길라잡이
이울진 정감일랑 면면이 떠오른다
눈감은
초승달 미소
피어나는 보름달
등걸에 움 트듯이 우러난 푸른 마음
토라진 발자췬데 말문도 열었어라
과거사
소원한 세월
다시 잇는 정겨움
2수 연작이면서도 수의 구별이 뚜렷하고 1자의 가감도 없는 정격시조이다.
첫째 수에서 초승달이 보름달로 피어나는 듯한 미소를 보여주고 둘째 수에서 멀어졌던 과거를 이어주는, 말하는 미소로 환치시켜 정감을 더해 주고 있다. 제목의 한자표기 잘못은 옥 (玉)의 티이다.
3. 기타 문예지의 작품
월간 [한맥문학]<2011년 12월호>
이집트 여행 중에
이진숙
마법처럼/
시간이 멈춰버린/ 룩소의/ 거상들/
나일강/ 펠루카*에서/ 밤의 정경은/
신비와 환상이다/
역사는/
흐르고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도/
(3수중 셋째 수)
억지로 3장 6구에 맞추어 보았지만, 어느 모로 읽어도 시조리듬이 아니다.
내용은 세계화시대에 어울리게 외국의 풍물을 작품화하고 있지만 기행시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인명, 지명, 외국어 단어 등을 나열하는 것은 가보지 아니한 독자들에게는 도깨비 헛기침에 불과하다. 경험을 공유하지 아니한 일반 독자가 읽어도 이질감이 없이 가슴에 와 닿는 시라야 한다.
4.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11.8월 심사위원: 오승철·오종문(집필 오종문)
<장원>
얼음새꽃 (유영선)
구름처럼 덮인 자리 새하얀 눈 고요하다// 오롯이 오른 가지 저 환하게 솟은 꽃!//
찬바람 숨을 멈추고// 세상 일시 정지한다.//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해고자 김진숙 씨// 35미터 크레인 위 활짝 피워 올린 꽃잎//
오늘밤 저곳의 달빛,// 한없이 일렁이겠다.//
나는 춥고 무서워 문밖 얼씬 못하는데// 저토록 얼음 발에 단호하고 촘촘한 결기//
꽝 찍힌 허공의 저 낙관(落款)// 살아 뛰는 맥박이여.//
<차상>
아버지 중천 (이병철)
칼바람 속에서도 마당 깊은 집이었다 둥글// 게 떠올랐던 결 여린 햇살이었다//
뜨겁게 부둥켜안은 타향살이 언덕길//
링거병 내려놓고 아쉬움 다 접어두고 봄날// 의 우듬지에 남겨놓은 푸른중천
흐려진 옛 그림들이 구름으로 흐른다//
잔잔히 원 그리며 갈앉은 조약돌처럼 물 위// 에 떠다니는 공기방울 말씀처럼//
내 몸을 잡아당기며 날아오른 종다리//
<차하>
뻐꾸기 울음 (김갑주)
실안개 푸는 산이// 딸꾹질을 해댄다///
마음 속 나룻배는// 삐걱삐걱 노를 젓고///
강물에 // 해 잠기도록// 오가는 이// 없음에///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35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가 항의 농성하는 장면을 미화한 작품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특정인의 돌출행동은 영웅시될 수도 있고 범죄시될 수도 있다. 이런 극과 극의 민감한 시사문제를 작품화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글을 쓴 작자는 물론 이런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은 스스로 자질과 이념적 성향을 내 보이고 문학을 빙자하여 자기주장을 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상한 예술을 저속한 정치 시사 문제로 떨어트린 것에 다름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시사문제는 일회용 컵과 같아 몇 달 후에는 잊히며, 작품은 아무리 잘 써도 긴 세월 명작이 될 수 없고 곧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차상작은 시조형식을 깨고 독특한 행갈이로 남의 시선을 끌려고 하는 역겨운 작품이다. 운율이 안 맞음은 둘째 두고 우선 자연스럽게 읽을 수도 없다. 시조이기 이전에 글이라야 하고 글이기 이전에 말이라야 한다. 말이 되지 않은 것이 시조가 될 수 있는가? 읽기도 어려운 글에 ‘아름다움(美)’이 있는가? 이 글을 쓴 작자와 이 글을 뽑은 심사위원의 심미안 (審美眼)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차하작은 한 구가 정격에서 벗어났지만 운율이 맞아 읽기에 불편이 없다. 시적화자는 뻐꾸기 울음이 안개 속 푸른 산의 딸꾹질 같고, 인적이 없는 고요한 강에 삐꺽삐꺽 노 젓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한다. 초여름의 조용하고 싱싱한 푸른 산 뻐꾸기 울음을 잘 그려 낸 작품이다. 형식과 내용 어느 모로 보나 장원작과 차상작보다 백배 낫다.
(2) 11.9월 심사위원: 오승철·오종문(집필 오종문)
<장원>
바늘心書(심서)-화타, 윤정에게 (송가영)
아들아, 네 바늘을 함부로 쓰진 마라// 그것은 편견에 찢긴 마음을 감쳐 매고//
고통과 아픔에 막힌 가슴혈을 뚫는 것// 침통(鍼筒)을 열기 전엔 가만히 눈을 감고//
심장의 고동소리가 네 몸 속 핏줄 따라// 손끝에 전해져 오는 경견함에 귀를 대라//
몸져누운 신경들이 하나 둘 일어설 때// 들어보렴, 흰 가운을 부여잡는 저 숨소리를//
겨울을 딛고 일어선 봄꽃들의 환호성을// 새벽 별밭 우러르며 한 땀 한 땀 세상을 톺은//
어미의 피맺힌 손이 꽃으로 받들었던// 오롯한 그 바늘임을 잊지 마라, 내 화타야//
*심사위원 심사평:
장원작 ‘바늘심서’는 인술의 길에 들어 선 아들에게, 환자를 치료할 때 중국 전설의 명의 화타(華陀·145~208)를 흉내 내지 말고, 함부로 침을 사용해 사람 목숨을 가벼이 하는 의술이 아닌 명의가 되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차상>
반디, 하늘을 날다 (박찬덕)
돌 틈 비집고 나온 풋내기 딱정벌레// 높새바람 휘저을 때 살긋하게 기울어도//
등불 켠 그의 몸짓은 가볍고도 청명하다// 하루살이 모두 잠든 빈 하늘 그 자리로//
가슴 환하게 열고 조근 조근 밝혀가며// 한 생애 가 닿을 기슭 이제야 마중 간다//
덜 여문 반딧불이 까만 밤을 헤매는데// 달빛 가득 흘러내려 가늘 길 보듬어 주어//
걸어온 발자국마다 호롱으로 불 밝힌다//
<차하>
탱화 (이재환)
노을은 낙화가 밀고 가는 붉은 수레//
이울던 빈 가지에 화폭을 걸어 놓고//
서천을 당기던 목불// 산문 밖을 나선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깨진 음보가 많고 수의 구별이 없는 1연 12행의 자유시이다.
내용은 한의사가 된 아들 윤정에게 의술을 바로 펴라는 어머니의 사적인 편지이다. 시라기보다 산문이며 특정인에게 보내는 당부의 말이다.
심사위원들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화타를 흉내 내지 말라고 하였다는데, 이는 정반대의 틀린 해석이다. 바늘을 잘 써서 화타가 되라는 간절한 소망을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다.
차상작 또한 깨진 음보가 많고 수의 구별이 없는 1연 9행의 자유시이다.
반딧불이가 밤하늘을 밝혀 가는데 달빛이 가득히 내린다고 한다. ‘까만 밤’인데 무슨 ‘달빛 가득’인가? 반딧불은 달빛이 없는 깜깜한 밤이라야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다. 시적 논리가 맞지 않다.
차하작은 2음보가 깨져 있고, 첫째 구와 둘째 구는 따로 서지 못하는 큰 흠이 있다. 시적 표현은 돋보이나 초장의 ‘노을’, 중장의 ‘화폭’, 종장의 ‘목불’이 같은 것인지, 아니면 서로 어떤 관계인지 분명하지 않아 초점이 흐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식과 내용 모두 장원작 또는 차상작보다 좋다.
(3) 11.10월 심사위원: 오종문·이종문(집필 오종문)
<장원>
코스모스 (김경옥)
긴 장대 끝 올려놓은 보라색 칠보 그릇//
종일/ 햇살 한 공기/ 바람 한 접시/ 공양하며//
손 모은 그 아린 가슴 대우주를 받든다.//
<차상>
가장(家長) (조 안)
일곱 식구 끼니를 마련하는 메콩강// 줄 타는 그 남자 급류 위를 지나간다//
아득히 사라지는 경계 출렁이며 오고 간다.//
자칫 미끄러지면 강의 제물이 될 텐데// 한 발씩 옮기는 걸음 간절한 기도 같다//
허공을 그러잡고 가는 경건한 저 몸짓.//
팔뚝만한 물고기 어깨에 둘러메고// 되짚어 오는 길은 저승을 넘어선 길//
하루치 목숨 던 자리 흰 웃음을 담는다.//
<차하>
산국 (김인숙)
바람이 흘리고 간 무심한 그 한마디// 새들의 날갯짓에 덩달아 춤을 춘다//
내 마음 뿌리내린 곳 비탈진 땅 한 뙈기//
가을을 뒤흔들며 거센 바람 지나가도// 꽁무니에 붙은 바람 풀섶 다 깨워놓고//
노랗게 피워 올린 길 향기로 퍼 나르고//
자잘한 꽃송이가 온 산을 기어가며// 돌 틈을 비집고 벼랑도 올라간다//
가늘고 휘어진 가지 오체투지 벽을 넘다//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단수이지만 12음보 중 4음보가 깨져 파형시조가 되었다.
[긴 장대 끝 올려놓은]은 자수를 줄이기 위해서 [에]자를 빼고 억지로 구겨 넣은 어색한 시구이다. [장대] 자체가 [긴 막대기]인데 긴(長)을 불필요하게 거듭하여 오히려 율을 깨었다. [장대에 올려놓은]으로 족하지 않을까?
차상작 또한 깨진 음보가 많고 [하루치 목숨 던 자리]는 오타 같기도 한 의심스러운 시구이다.
차하작도 깨진 음보가 더러 있을 뿐만 아니라 끝수 종장 [(오체투지 벽을)넘다]는 동사의 원형이므로 시 몸체의 현재형과 어울리지 않아 작품성이 떨어진다.
(4) 11.11월 심사위원: 오종문·이종문(대표집필 이종문)
<장원>
준치 할아범 (강송화)
모하비 넓은 사막 모로 뛰고 에돌아서// 제 맘대로 뒹굴다가 가는 뿌리 내린 나무//
숭례문 코언저리에 건어물점 차렸다//
살피꽃밭 갓돌 위에 쥐포 몇 개 얹어 놓고// 진짜배기 명품 굴비 한 봉지가 단돈 천 원//
때 절은 차림표 들고 준치 영감 졸고 있다//
팔도에서 모인 동전 오늘 사는 이야기들// 다비 든 국보보다 내가 낫다 뽐을 내며//
어물전 장마 도깨비 강여울을 건너간다//
<차상>
쉼표 (김미진)
황금 나락 순산하고 수더분히 누운 빈 들// 갈 길 다 달린 이의 푼푼한 미소 번진다//
다음 번 잉태를 기다려 동안거에 드는가//
가래 떡 같은 긴 잠을 배부르게 맛보며// 하얀 눈 모피 입고 망각 속에 살이 찐다//
모내는 봄 들판에게 온 몸 활짝 내주려고//
숨비소리 쉼표 모아 빚어진 온쉼표를// 바로 지금 찍는다, 마침표로 오인 말고//
목 타는 저 숨결 살리는 사막 위에 마중물로//
<차하>
고향 (최근수)
잡목 우거진 숲속 호롱불 초가 몇 채// 달님 별님 머리 꽂아 혈맥 곧은 청송골짝//
새소리 이슬로 굴려// 새벽 밝힌 초록 하늘.//
아침 놀 당겨 올려 불붙은 앞산 뒷산// 쏟아내는 햇살들 옥빛으로 눈을 뜨면//
해맑은 산새 몇 마리// 수다 떠는 토담길.//
동구 밖 덤불 사이 반나절을 벗어나면// 시오리길 소달구지 하루 해 기울 무렵//
누렁이 우렁찬 기척// 워낭소리 날 부른다.//
세상의 한 가운데 서녘 별빛 포근한 밤// 천만세 피운 행복 별별 웃음 가득찬 방//
풀어낸 소원 하나씩// 주고받는 고향집.//
* 필자의 작품평
3편의 당선작이 모두 정격을 벗어난 파형시조이다.
장원작은 미국의 모하비사막에서 살다가 와서 남대문 갓돌 위에 쥐포 몇 개 얹어 놓고 팔며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귀한 [준치]가 끌어 올린 제목의 상승이미지와 값싼 [쥐포]가 끌어내린 둘째 수의 하강이미지가 맞지 않아 충돌하고, 대다수 독자에게 생소한 모하비사막을 작품에 동원한 것이 엉뚱하다.
차상작은 추수가 끝나고 새봄이 오기까지 한가로이 쉬고 있는 들녘을 묘사한 작품이다. [수더분히] [숨비소리] 등 일상용어가 아닌, 사전 깊숙이 사장되어 있는 단어를 끄집어내어 사용하는 것은 작자가 어휘실력을 과시하여 존경을 받을 것 같지만, 오히려 독자를 밀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차하작은 호롱불, 토담 길, 소달구지 등이 등장하는 1960년대 이전의 고향 농촌마을을 묘사하고 있다. 고향을 주제로 한 상투적인 작품은 신물이 나고 신세대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흥미를 잃게 한다. 시조일수록 ‘젊은 시’라야 독자층을 넓힐 수 있다.
(끝)
* 현대시조 2011 겨울호에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