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시조
- 생존 연도 : B. C. 69 ~ A. D. 4
- 재위 연도 : B. C. 57 ~ A. D. 4
- 활동 분야 : 정치
- 주요 활동 : 신라 건국. 서라벌에 금성을 쌓고, 금성에 궁궐을 지음.
아주 오래된 옛날, 지금의 경주 부근에서 사람들이 여섯 마을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허촌의 촌장이 양산 밑의 나정이라는 우물 근처에서 말이
일러 준 대로 큰 알을 얻었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습니다.
이를 신기하게 여겨 집으로 데리고 가서 길렀으며, 박처럼 생긴 알에서 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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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성을 박 씨라 하고 온 세상을 밝히라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라고 지었답니다.
그 뒤 박혁거세는 매우 총명하고 씩씩하게 자랐기에, 여섯 마을의 촌장들은 그의
출생을 신기하게 여겨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13세 때 왕으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그리고는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으며, 왕을 거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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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는 왕위에 오른 후 기원전 53년에 알영을 왕비로 맞이했습니다.
알영은 모량리에 있는 알영이라는 우물가에 나타난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는데,
성품이 어질어 박혁거세와 함께 백성을 잘 다스렸다고 합니다.
박혁거세는 기원전 37년에 서라벌에다 금성을 쌓았으며, 기원전 32년에는 금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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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을 지었습니다. 이때 낙랑이 신라에 쳐들어왔으나, 들판에 곡식이 그대로
널어져 있는 것을 보고 도덕을 잘 지키는 나라라고 하여 스스로 물러갔답니다.
이처럼 박혁거세는 알영과 함께 신라를 잘 다스리다가 61세에 세상을 떠났고
죽은 후 지금의 경주시 탑동에 있는 오릉에 묻혔습니다. 오릉은 다섯 개의 작은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2015.7.16.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