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의도 죽고 손권도 죽고
사마의는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하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에 손권도 세상
을 떠납니다. 한편 위의 조예는 병이 깊어져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사마의를 불러들이고 태자
조방, 대장군 조상, 시중 유방 등을 가까이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 239년 서른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에 조상은 모든 일을 사마의와 상의하여 처리했지만 얼마 안 가서 자신의 세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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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직에 심어 놓고 권력을 독차지하자 사마의는 병을 핑계 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지냈습니다.
사마의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매우 음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조씨를 4대 째 보좌하며 두
번에 걸쳐 정치에 큰 역할을 합니다. 모두 그의 가시적인 행동에 미혹되어 그를 자신들의 심복이라
여겼고 조조도 그에게 속은 적이 있습니다. 사마의는 병권을 빼앗긴 후 낙향을 하였고 조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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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마의를 의심 하여 형주 자사 이승으로 하여금 그를 살피게 하고 이승이 그를 방문 했을 때,
그는 자신을 찾아 온 이유를 알고 관을 벗어 산발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 하녀에게 자신을
부축하게 하고, 나는 이미 늙은데다가 병까지 심해 곧 죽을 것 같소. 당신이 내 두 아들을 잘 살펴
주면 좋겠소. 사마의는 말을 마치고는 침대 위에 누워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금방이라도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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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듯이 병이 위중한 척 꾸며 댔고 이에 조상은 사마의를 의심치 않고 황제 조방을 모시고 세
명의 아우 및 심복 부하들과 함께 조예가 묻힌 묘에 제사를 올리고 큰 사냥을 하러 성 밖으로
나섰습니다. 이에 사마의는 즉시 부하들과 성 안으로 가서 조상의 진지와 무기고를 점령하고
궁전도 장악했습니다. 결국 사마의는 조상과 그 형제 및 일당들을 모두 죽이고 그 삼족까지 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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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사마의가 승상이 되어 위나라의 권력을 독차지했고 그의 두 아들도 무소불위
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 했습니다. 사마의는 251년 병이 악화된 끝에 세상을 떠났고 황제 조방은
그 아들 사마사를 대장군에 봉하고 사마소를 표기장군에 봉합니다. 한편 동오의 손권도 일흔 한 살
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252년). 손권이 죽었다는 소식에 사마소와 사마사는 왕창, 호준,
관구검 등에게 각각 10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동오를 공격했습니다.
위 황제 조방 사마사에 폐위되다
사마사는 황제를 폐위시키고 동생 사마소와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가 세상을 뜨니 위
나라의 권력은 사마소에게 집중됩니다. 제갈각은 여러 달에 걸쳐 신성을 공격했지만 승기를 잡지
못하자 결국 동오로 퇴각하고 말았고 이후 제갈각은 공포 정치를 펼치면서 전횡을 일삼으니 관리
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고, 손준이 계책을 내어 황제가 베푼 연회에 참석한 그를 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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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위나라를 협공하자는 제갈각의 편지를 받은 강유는 항복한 하후패와 함께 20만 대군을
일으켜 진군에 나섭니다. 사마소는 강유에게 패했고 사마소는 철롱산으로 달아났습니다.
한편 위나라의 곽회는 강유의 영채를 공격하여 사마소를 구했지만 강유가 쏜 화살에 맞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마소는 강유를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고 강유는 하후패와 함께 한중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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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습니다. 사마사와 사마소는 무소부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황제의 권위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
습니다. 사마사는 황제가 자신들을 토멸 하라는 황제의 비밀 혈서는 찾아 대신들을 죽이고 즉시
궁궐로 들어가 장황후를 흰 비단으로 목 졸라 죽이게 한 뒤 황제를 폐위 시켰습니다. 그리고 조비의
손자 조모를 황제로 등극시키니 254년의 일이었습니다. 병이 위중해진 사마사는 동생 사마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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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 전권을 넘기고 25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편 사마소는 대도독이 되어 황제에게 보고 하지도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하며 제위를 찬탈 하려는 마음까지 먹게 되었습니다.한편 동오에서는 승상
손준이 죽고 손침이 실권을 쥐고 있었으니 황제 손량은 허수아비 신세였습니다. 제갈탄의 제의에
응한 손침은 7만 명의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공격했지만 크게 패했습니다. 제갈탄은 문흠, 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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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양 등과 사마소와 대적하러 나섰지만 크게 패하여 수춘성으로 달아났습니다. 동오에서 원군을
이끌고 온 문흠은 제갈탄에게 군사들을 성 밖으로 내보내 식량을 아끼고자 하자 제갈탄은 화를
내며 문흠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를 본 문앙과 문호는 위나라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수춘성
안의 민심이 크게 흔들렸고 결국 사마소는 종회의 의견에 따라 총공격을 감행하여 수춘성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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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제갈탄은 달아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한편 동오의 대장군 손침의 전횡이 극에 달하자
황제 손량은 전기에게 밀서를 내려 손침을 죽이게 했고 전기의 어머니 즉 손침의 누이의 밀고로
탄로 나고 이일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손량을 폐위시킨 뒤 손권의 여섯째아들 손휴를
황제로 등극시켰습니다. 손침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제위를 찬탈할 뜻까지 내비치자 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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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손침과 그 일당 수백명의 목을 베었습니다.한편260년 봄에 위나라에서는 사마소의 전횡을
참지 못한 황제 조모가 스스로 호위군사 수백 명을 이끌고 사마소를 치려 하자 사마소의 부하
상제의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마소는 황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척 하며 도리어
성제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황제를 시해한 죄로 처형시켜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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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조의 손자 조환을 황제로 등극시켰습니다. 한편 제갈량의 뜻을 이어 강유는 여러 번
출정하여 승리했으나 환관 황호의 농간으로 황제가 철수를 명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황호는
자신에게 아첨하여 높은 벼슬을 얻은 우장군 염우를 대신 내보내려고 했던것입니다. 강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강유는 황제를 만나 황호가 농간을 부리고 있음을 아뢰고 황호를
죽일 것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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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유선은 황호를 불러 강유에게 절하여 사죄하게 하고 죽이지는 않았다. 강유는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마소는 등애와 종회로 하여금 각기 다른 길로 촉한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강유는 위나라의 침공 사실을 황제에게 보고했지만 황제는 황호의 말만 믿고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종회는 정군산에 제갈량의 묘가 있고 하후연이 죽은 산임을 알고 제갈량의 묘 앞에서 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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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렸습니다. 그날 밤 종회는 제갈량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백성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자
깃발에'保國安民' 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전군 앞에 세우게 하고 군사들에게 함부로 백성을 죽이지
말라고 엄하게 명을 내렸습니다. 등애가 마천령이라는 깎아지른 듯한 고개에 도착했을 때 등애의
휘하에는 군사들이 2천명 밖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군사들이 바위 절벽을 뚫지 못하자 등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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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들에게 무기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리게 한 뒤 자기부터 몸을 털가죽 옷으로 감싸 절벽
아래로 굴러 내려갔고 털가죽 옷이 없는 군사들은 밧줄로 몸을 묶어 나뭇가지를 붙잡고 매달리면서
절벽을내려갔습니다. 마천령을 넘은 등애는 유강성을 지키던 마막의 항복을 받고 부성까지 함락
시켰습니다. 촉한 군사들은 등애가 어떻게 마천령을 넘어 왔는지 크게 놀라 당황했고. 다급한 소식
이 전해오자 황제 유선은 자신의 사위이고 제갈량의 아들인 제갈참을 불러 군사 7만을 주어 막게
합니다.
촉한은 멸망하고
촉한의 황제 유선은 부하 장수들이 모두 적의 공격에 쓰러지자 위나라에 항복했고 낙양으로 끌려
가 안락공에 봉해져 편히 생활했습니다. 제갈첨은 등애의 대군에 밀려 포위당했고 화살까지 맞아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고 이 광경을 본 제갈상이 적진으로 달려들었지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급보를 접한 황궁에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했고 황제 유선은 항복문서를 쓰게 하여 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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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보내고 강유에게도 항복 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강유는 황제의 명을 받고 종회의 진영으로
가서 항복했고 종회와 의형제의 관계까지 맺었습니다.강유는 종회에게 반역할 것을 권했고 종회는
사마소를 역적으로 지목하여 함께 토벌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종회의 부하 구건이 성도 밖의
위나라 군사들과 연락하여 반역을 알렸고 종회는 기습 공격에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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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강유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합니다. 압송되던 등애는 풀려나 성도로 돌아오다가 아들
등충과 함께 등애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전속의 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편 촉한이 멸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동오의 손휴는 육손의 아들 육항으로 형주목을 삼아 지키게 하고 손이로 하여금 남서
지역을 정봉으로 하여금 장강 연안을 지키게 하여 위나라 침공에 대비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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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마소는 낙양으로 끌려 온 유선에게 안락공으로 봉해 편히 살게 해주었고 환관 황호는 나
라를 망친 죄를 물어 능지처참에 처했습니다.
사마염 황제되어 천하통일을 이루다(265년)
사마소가 중풍이 들어 쓰러지고 병세가 위중해진 끝에 세상을 떠나자 사마염이 뒤를 이어 진왕이
됐습니다. 왕이 된 사마염은 칼을 차고 조환앞에 나아가 황제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협박합니다.
황제는 눈물을 흘리며 사마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침내 조환은 사마염에게 제위를 넘겼고
황제가 된 사마염은 국호를 晉으로 정했습니다( 2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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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동오에서는 손휴가 세상을 떠나고 손호가 264년에 제위를 이었습니다. 손호는 흉폭하고
주색에 빠져 간신을 총애했으며 충언을 하는 신하를 죽이고 화려한 궁궐을 세우게 했습니다.
양호와 육항은 적군이면서도 각자의 경계를 철저히 지키며 존중했습니다. 술과 약까지 주고받기
까지 하면서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됩니다. 손호는 육항에게 진군을 명하지만 육항은 무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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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쓰지 말고 굳게 지키는 것이 좋다 하자 손호는 육항의 지휘권을 빼앗고 벼슬을 깍은 뒤 그
자리에 손익을 임명합니다. 정봉과 육항이 세상을 떠나고 손호는 잘못을 범한 관리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등 잔인한 짓을 일삼았습니다. 사마염은 드디어 두예를 대도독으로 삼아 대군을 이끌고
동오 공격에 나섰습니다. 진나라 군사들은 거칠 것이 없이 밀려왔고 동오의 승상 장제와 심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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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장상도 항복하고 말았다. 진나라 군사들이 입성
했음을 안 손호는 스스로 몸을 결박 지어 진나라 장수 왕준 앞에 나가 항복했습니다.
사마염은 손호를 귀명후에 봉하고 공이 있는 장수들의 벼슬을 더하고 상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천하는 진나라에 의해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그리고 유선은 271년에, 조환은 302년에, 손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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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년에 각각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공을 다투고 천하를 손에 넣으려 쟁패하던
난세의 한 단락이 이렇게 해서 끝이 났습니다. 280년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을 달성한 무제
사마염은 27개의 제후국을 세우고, 사마씨 집안사람들을 왕으로 삼아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291년부터 각 나라의 왕들은 제위를 차지하려고 다투기 시작했고 진나라는 16년 동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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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이 싸움 때문에 빠르게 몰락해갑니다. 결국 진나라는 불과 36년 동안 지속되다가 316년에
유목민들에 의해 멸망당했다고 진나라가 멸망 후 오호십육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2016.5.5.thu.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