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세상, 즐거운 책읽기! 다림 세계 문학 016 프랑스 문학
|
서로 교차되어 들려주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여름 캠프 이야기
세르쥬 페레 특유의 냉소적 시각과 유머의 결합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작품들을 작품 해석력이 뛰어난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는 ‘다림 세계 문학’ 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출간되었다.《하염없이 내리는 비》의 작가는《당나귀 귀》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세르쥬 페레이다. 어린이들이 갖는 어두운 내면을 거침없이 냉소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 유머를 담아 내는 것이 세르쥬 페레 작품의 특색이다.《하염없이 내리는 비》에서도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지닌 아이들의 독특한 심리 묘사가 밀도있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여름 캠프에 가게 된 남자 아이의 이야기와 여자 아이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나오는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여름 캠프’라는 한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두고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른 두 아이의 시각으로 접하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세상을 향한 소리 없는 외침 - 남자 아이 이야기
‘해도 해도 너무 한다. 나는 그냥 비를 맞았다. 사방에서 천둥이 치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았다. 카약을 두는 창고까지 천천히 걸어와 제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한 번 웃어제꼈다.’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숲까지 페달을 밞아 댈 것이다. 숲에 이르면 난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처럼 지쳐 쓰러질 달릴 것이다. 그리곤 늑대처럼 울부짖을 것이다.’
-남자 아이, 열한 번째 이야기-
남자 아이는 세상이 싫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별 열정이 없는 외톨이이다. 주변의 관심을 끄는 아이도 아니고 관심을 끌고 싶지도 않다. 매사에 무덤덤하고 시큰둥할 뿐이다. 남자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굳이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 소심하여 쭈뼛거리는 아이는 아니다. 단지 감정 표현이 서툴 뿐이다.
이런 남자 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여름 캠프에서 카약을 타던 뚱보의 익사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다. 순식간에 남자 아이는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로 아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남자 아이는 사람들의 거북한 시선들을 무시한다. 캠프 보조교사들의 형식적인 관심에도 무감각하게 대응한다. 가뜩이나 오기 싫었던 캠프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와 함께 더욱 우울해지고 만다. 우울함은 사색으로 이어져 그 동안 묻어 두었던 집안 문제나 자신의 고민들을 끄집어 내어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해결점은 없고 물음표의 연속일 뿐이다. 쌓아 두었던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남자 아이는 내리는 빗속에서 감정을 폭발시킨다.
열정의 외줄타기 - 여자 아이 이야기
‘산에서든 바다에서든 여자 애들과 남자 애들은 어떻게 된 것이 똑같았다. 어쩜 하는 짓이 그리도 같은지 온갖 방법으로 서로를 꼬시느라 척이라는 척은 다한다.’
-여자 아이, 첫 번째 이야기-
‘나는 걔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처지를 이용하거나 잠시 으스대면서 식당에서 영웅처럼 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애는 달랐다. 오히려 정반대로 굴었다.
그 애는 모든 애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자,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여자 아이, 세 번째 이야기-
여자 아이는 서로를 힐끔거리며 세상에서 외모가 전부인 양 구는 또래들의 모습이 한심하게만 느껴져 어울리기는커녕 꼴도 보기 싫을 지경이다. 모든 것에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고, 좋아하는 것에 확실한 조건이 있어서 발견하기만 하면 주변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열정을 다 쏟아 부을 수 있는 아이이다. 하지만 엄마의 과잉보호와 사팔뜨기라는 콤플렉스는 여자 아이의 독선적인 면모를 더욱 부추긴다.
지독하게 경멸하는 캠프에 엄마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지만 익사 사건 이후 감정이 급변한다. 주인공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 눈에 포착되면서 캠프는 엉망이지만 남자 아이를 보기 위해 끝까지 남으리라 다짐한 것이다. 주인공 남자 아이는 운동을 잘하지도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지만 세상과 담을 쌓은 듯한 모습이 여자 아이들 관심 끌기에 혈안이 된 보통의 남자 아이들과는 다르게 보인다. 그런 점이 여자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자 아이는 캠프파이어 사이로 남자 아이의 얼굴을 훔쳐 보기도 하고 자청해서 우편물 배달도 하면서 남자 아이의 눈에 들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 아이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기도 하고 사소한 기회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비를 맞으며 나무 뒤에 숨어서 남자 아이를 바라보는 여자 아이의 열정은 하염없이 내리는 비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비장하게 보낸 익명의 고백 편지 작전까지도 무산되어 버린다.
결국 계속된 폭우로 캠프 일정이 단축된다. 여자 아이는 돌아가는 길에 엄마의 차 안에서 차창에 입김을 불어 해 그림을 그린다. 의미 있는 캠프를 보내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애정을 담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끝내 여자 애 마음을 모른 채 떠나는 남자 아이 눈에는 이마저도 비 내리는 구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외된 어느 한 곳에서 자아와 마주하는 어린이들의 자화상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또래 아이들과 관심사가 다르고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는 두 아이들의 내면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여 주고 있다. 세르쥬 페레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의 냉소적인 시각은 아이들이 반드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생각하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비틀어 준다. 작가는 아이들이 정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비판적이고 현실적인 시각을 거침없이 그려 낸다. 냉소적인 시각의 틈새에 들어가 있는 유머스러움은 익살스러운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은 사실적인 어투와 어우러져 주인공의 내면에 쏙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두 주인공 각각의 열두 번째 이야기들 속에는 그들이 내뱉는 조롱과 비판, 고민에 대한 거침없는 독백이 담겨져 있다. 주인공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에서부터 공상 가득한 사랑 이야기까지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라면 한 번쯤은 겪는 내면으로의 외줄타기를 시작한다. 감정에 대한 서투름과 두려움도 있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들을 부여잡고 끙끙거리기도 하고 주변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두 주인공을 통해서 풀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외톨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사춘기 아이들의 고민들을 이야기 하고자 했을까. 주변과 소통이 부족하여 자신의 내면에 더욱 집중되어 있는 주인공들의 독백 형식이 갖는 효과에 더욱 힘을 실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 주는 고민들의 내용은 특별나거나 색다르지 않다. 보통 아이들도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 두는 고민의 내용들로 채워져 있기에 결국 두 아이의 이야기는 여느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고민들 중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그들이 내뱉어 주는 고뇌와 조롱, 성장의 고백을 통해 하염없이 뭉쳐가는 고민들을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두 아이의 이야기 속에서 삶의 비애에 대한 통찰까지도 느껴 볼 수 있다. 어이없게 카약이 뒤집혀 익사한 친구가 있음에도 살아 있는 사람은 캠프 일정에 맞춰 그저 다시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어긋난 삶이라도 계속해서 삶은 이어진다는 것을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표현한 것이다. 캠프가 끝나면서 모든 일들이 잦아든 것 같지만 두 주인공에게 이번 여름 캠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캠프였다. 그 동안 점점 높게 쌓여만 갔던 마음의 벽이, 한없이 안으로만 파고들어 갔던 자기 안의 깊은 수렁이 이번 캠프에서 순간이나마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익사 사건과 캠프 기간 동안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계기가 되고 있지만, 실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두 아이가 품고 있었던 그들만의 사랑과 꿈이 더 깊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여자 아이 이야기에서 보여 준 해 그림을 마무리로 비 오고 난 뒤에 해가 뜨듯이 삶이 언제든지 희망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작품은 암시하고 있다.
▶저․역자소개
글쓴이 세르쥬 페레
1946년에 프랑스 남서부의 닥스에서 철도원의 셋째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작사가가 되고자 했지만 한 소설가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작품 《당나귀 귀》가 인정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모두 여덟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세르쥬 페레의 작품은 주로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마음을 강렬한 이미지로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다. 세르쥬 페레는 현재 카리브 제도의 셍 바르텔레미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린이 베르트랑 비타이유
1948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968년까지는 메트 페닝겜 아틀리에에서, 1971년까지는 에콜 슈페리에 데 메티에 다르에서 그림 공부를 했다. 그 후 영화제 홍보 및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한편 청소년 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있다. 베르트랑 바타이유는 주로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사용하여 작업을 한다.
옮긴이 장석훈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리옹 2대학에서 철학, 불문학, 심리학 세 가지를 공부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면서 외국의 좋은 책을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한다. 지금까지《세계 어린이와 함께 배우는 시민학교》시리즈와《에스키모 아푸치아크의 일생》《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말》《얘들아, 안녕》등 70여 권의 외국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