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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옥자 시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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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스크랩 2010` 신춘문예 당선시 (중앙일보)
손옥자 추천 0 조회 66 10.09.01 10: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박성현    시인  

 

              1970년 서울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건국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문학박사)

 

             2009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

 

                       건국대, 서울교대 강사

 

                       서울교총 근무 

 


 

당선작

 

폭염

 

아버지가 대청에 앉자 폭염이 쏟아졌다.

족제비가 우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맑은 바람에

숲이 흔들리면서 서걱서걱 비벼대는 소리라 말했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멸치칼국수가 함께 풀어졌다.

땀을 말리며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의 눈을 훔처본다.

여자의 눈을 쳐다보면 눈이 뽑힌다는

아랍의 무서운 풍습을 말한다. 석류가 터질 때

아버지는 다시 아랍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빗장을 단단히 해우고 방을 나오지 않았다.

세밑까지 어머니는 화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기다리면 착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게는 마음이 없고, 문도 없었던 겨울이었다.

 


 

한낮

 

  버스가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멈췄다. 된장국 냄새가 솔깃하다. 골

목을 돌고, 다시 골목 끝으로 가면, 저편에 집 한 채 기우뚱 있다. 연

산홍이 피고, 떨어졌다가 다시 피는 5월에도 그 집은 비스듬히 서

있다.

 

  녹슨 파란색 철제 대문을 지나면 텃밭 같은 마당에 큰 개 한 마리

햇볕을 쬐고 있다. 몇몇 노승이 한 세월을 돌아가면서 입고 다녔던 장

삼처럼 곱게 펴져 있다. 시멘트 담 가까이 돋아난 풀잎이 흔들린다.

허기진 마음이 풀잎을 따라 바닥으로 잠긴다. 풍경 소리가 난 듯했

으나 바람이 항아리를 울리고 간 소리다. 항아리에는 된장이 익어간

다. 대청마루에 모시적삼을 입은 노부부가 나란히 세모잠을 잔다.

수백 년 전의 기억은 모조리 잊히지만 한낮에는 늘 되살아났다.

 

  우체부 김씨가 등기소포를 가지고 초인종을 누른다.

 


 

    봉화 가는 길

 

            1

 

   빈 항아리에 바람이 스친 것처럼 그 표정이 밝았다

   둥근 벽을 퉁기면 진동하는 바람은 그 근원을 모른다

   또한 끝을 알 수 없으나 헛꽃에 불과할 뿐이다

   둥치미를 한 입에 마신 탓에 이가 시렸다

   박씨는 나무못을 깍으면서 날카로운 쪽을 창으로 겨누었다

   창밖의 겨울 속에 두 개의 달이 떠 있다

   언 흙 위에 서리가 내려 박히는

   그리하여 속으로만 불이 번져 뜨겁게 타들어가는 겨울

   각각의 달빛은 두 개의 그림자에서 다시 솟아롤랐다

   박씨는 가물어가는 목에 탁주 한 사발을 퍼붓고

   나무못을 거두어 품에 넣는다

   빈 항아리에서 다시 바람이 찼다

 

            2

 

   소한이 지나고 큰눈이 내렸다

   사위는 백색으로 들끓고 있었다

   날이 저물자 아랫동네 정 영감이 불쑥 문을 열었다

   겨울에 죽은 자들이 이 산을 넘지 못한다

   비린 청어구이와 탁주를 나눠 먹는 동안 박씨는 정 영감을 어림잡

았다

   부처님이 계시는 절이나, 사람을 뉘는 관이나 찬바람 막기는 마찬

가지네

   박씨는 모든 집이 관이고, 또 모든 관이 집이라고 말한다

 

   오동나무 결을 고른다

   톱이 닿는 자리마다 오동나무는 살을 선뜻 내 준다

   허연 톱밥이 발등에 쏟아진다

   폭이 넓어 완만하게 쓰러진 것은 아래에 단단히 두고

   경사가 급한 것은 결을 따라 세운다

   오동나무에 쇠를 박아서는 안 되네

   죽은 기운이 산 기운을 파고들 때 나무 등골에 붙은 숨은 멎는 것

이네

   정 영감은 탁주 몇 사발에 취한 듯 몸을 불끈거렸다

   박씨는 혀를 끌끌 찼다. 암만 숨이 거둬진 몸이라도

   마음이 남아 있는 한 사람이네. 정 영감은 누울 자리를 보다가

   문득 붉은 이를 보이며 환히 웃기 시작했다

 

           3

 

   오동나무는 단단하게아물었다

   오를 때마다 어깨가 이울었지만, 산을 넘어야 자리가 있다

   무순이 가지런히 솟아 있는 밭이랑에 날벌레가 분주했다

   산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지만, 길은 더디게 났다

   얼큰 취기가 오른 사람들이 서둘러 발을 디뎠다

   마음이 먼저 산을 넘었으므로

 

   비탈길은 어지러웠다

   사람들은 가쁜 숨을 쉬었다

   산은 사람들의 이마 위로 높은 바람을 흘려보냈다

   오늘 안으로는 길을 낼 수 있을까

   이가 닳은 괭이를 만지듯 천천히 오동나무 이음매를 살폈다

   늦은 봄이 얇고 긴 숨을 내 쉬었다

   상여를 멘 사람들이 발을 옮기다 말고 산등성에서 멈췄다

 

   갑자기 청어구이가 먹고 싶었으나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치명적 오후, 도플갱어

 

  지하철이 멈추고 물이 흔들렸다. 사건의 전개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속 20km로 달리는

  사물이 정지했을 때는 반드시 배후가 있다. 인과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좋다. 사건의

 

  배후에서 12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라디오는 분주히

  희망곡을 준비한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학생과 벨트를 파는

  상인이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다. 태양은 사선으로

  걸쳐 있다. 당신은 겉옷을 벗어놓고, 클라이언트가 말한 것을

  정리한다. 당신의 손가락은 지느러미처럼 파닥거린다.

  빠르게 틱 탁탁 텍 톡*틱 탁탁, 가끔 하품을 하며

  마우스로 □를 누른다. 지하철 오른쪽에 떠 있던 갈매기가

  수직으로 낙하한다. 상인은 샘플을 들고 학생 앞을 지나간다.

  누구도 벨트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여기서 사건이 급정거한다.

 

  관성에 따라, 지하철의 사물은 왼쪽으로 쏠린다. 상인은

  벨트를 움켜쥔 채 넘어진다. 2초 간격으로 학생이

  이어폰을 뺀다. 간격 조정으로 급정거했습니다. 안전한 차 내에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스피커는 말한다. 스피커 밑에서 당신은

  노트북을 떨어뜨린다. 부레에 사이렌이 가득 찬다.

  사건은 다시 30분 전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압구정역에서 지하철 패스를 사고 있다. 지하철 역사에는

  가로 1m 세로70cm 정도의 수족관이 있다. 수족관이 

  일렬로 늘어서서 움직인다.

  회전목마처럼 당신의 눈은 상하의 일정한 리듬을 탄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면서 수족관 내부의 물고기를 본다.

  수족관 너머 H백화점 여름 시즌 광고물이 흔들린다.

  갈매기가 수직으로, 혹은 대각선으로 꺾인다. 당신의 머릿속은

  클라이언트가 쏟아낸 텍스트로 가득?, 텍스트의 기포가 터질

  20km로 전진하는 수족관이 한강 철교 위에서 급정거한다.

  수족관이 수족관에 부딪힌다. 당신의 보고서는 커피로 얼룩진다.

  결재판에 박힌 클립과 압핀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관성에 따라 소족관의 물이 다시 오른쪽으로 몰렸다.

  당신은 보고서를 반으로, 또 그 반으로 찢는다. 당신은 왼손으로

  의자를 집고, 오른손으로 수화기를 들어 전화기를 후려친다.

  짧은 정지음이 울린다. 사건은 모스 부호처럼

 

  끊어진다. 비탈은 비탈로 이어지며, 비탈에서 멈춘다.

  그 가속은 당신의 심장박동수와 비례한다. 손톱만 한

  몰고기 떼가 수족관을 역류한다. 입을 틀어막는 물고기 속에서

  당신은 바람과 온도를 잃어버리고 만다. 상인은 놀라고,

  당신을 피해 다른 수족관으로 간다.

 

  아주 잠시 수족관이 흔들렸을 때

  당신은 무슨 상상를 하고 있었는가.

 

      *장정일의 시. 「틱 탁탁 텍 톡」

 


 

게임

 

  당신이 구둣발로 점을 찍을 곳은 이페이지 마지막 문장. 그러니

까 문장둘의 맨 아래, 오른쪽 끝이다. 보통 문장은 왼쪽 맨 위에서

시작하지남, 당신은 5분 후, 문자이 모드 끄나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에서, 내게로 와야 한다.

 

  허공에 세운 계한이 아닌가, 당신은 고개를 기울이면서 내게 묻지

만 , 그것은 아니다. 단지, 당신은 4분 12초 후에, 이문장들이 끝나

는 그곳에서 출발하면 된다. 내가 쓴 문장의 처음-당신이 구둣발로

점을 찍을 곳은-으로 오면 되는 것이다. 냉장고 사용 설명서를 낭독

하듯, 나는 당신에게 이 게임의 규칙을 모두 말한다. (당신은 체서

고양이의 표정을 짓는다) 자, 그럼......준비되었다면.

 

  당신은 첫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을 쓴다; Nowhere Man, *들리

나요? 그 전의 문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공허하게, 당신은 이 시

에서 존재하는, 그러나 아직 없는 문장을 (1분 28초) 상상한다.

간은 언제나 두 개의 극 속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충돌 속에서.

 

  내가 쓰는 문장과 당신의 걸음이 급격했으므로, 시간은 가속된다.

1분 남짓 남았다. 당신은 초조하다. 문자이 어떻게 충돌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루한 눈싸움. 당신은 다시, 문장들의 마지막 구두점으

로 간다. 어찌되었건 내가 쓴 문장보다 50초 빠르다. 미래, 외 시

간 속에서 당신은 이 게임의 종착지를 묻는다. 26초 동안 나는, 당신

과 나는 문장과 문장의 극 속에서 소멸할 것이다,고 쓴다. 244초 후,

나는 당신이 쓴 두 번째 문장이가 내 문장의 바리케이드 앞에 선다,

비로소.

 

      * 비틀즈의 노래 제목 

 


 

밀항, 목소리의 외부*

 

당신은 밀항선에 타고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 단지, 당신은 밀항선에 타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그 상황을 

거부한다고 해도 이 텍스트 내부에서는 불가항력이다. 나는 당신의

어쩔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 텍스트의 첫 문장 '타고 있

다'를  '숨어 있다'로 고친다.

 

  당신은 밀항선에 숨어 있다; 숨어 싱다는 사술어는 얼마나 많은 주

어를 거느리는가. 그럼으로써 당신은 추방자, 밀수꾼, 혹은 반국가

단체의 수뇌부가 된다. 당신이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밀항선의 선장은 당신의 밀항을 도왔고,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받

았지만, 당신을 모른다(선장이 그 이유를 알아서는 안 된다). 선장이

당신을 모른다고 말 할 때, 당신은 밀항선에서도 외부가 된다. 해와

달을 볼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당신은 시간의 일부다. 당신ㅇ르 증

명할 수 있는가. 무든 질문은 우문愚問이다. 이제 죽음도 불확실하

다. 죽음은 하나의 출생증명서, 확인되지 않은 죽음에 과거는 없다.

밀항선은 끊임없이 경로를 탐색하면서, 존재했던, 혹은 존재하지 않

은 당신을 흔든다.

 

  지금 당신은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외부다.

 

   

        

 

  다시, 텍스트는 이어진다; 길고 지루한 땀이 흐른다. 폐의 공기가

느슨해지면서, 밀항선의 온도는 예민해진다. 최소한의 물과 빵에도

곰팡이는 쉽게 뿔리를 내린다. 당신은 서 있거나 누워있다. 누워 있

거나 서 있어도 비좁은 원통형의 공간에서는 똑같다. 오줌과 똥이,

처음 며칠 간 당신을 비틀었던 멀미에 얹혀 있다. 섞여 있다, 왜냐하

면 바다는 결코 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상황이 두렵고 짜

증스럽다, 당신은 선장에게 말을 한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누군가

강제로 나를 이곳에 가뒀다. 선장은 듣지 못한다,목소리가 분절되

지 않기 때문이다. 선장은 당신을 국가에서 추방된, 반국가 단체의

수뇌부, 마약을 밀매한 범죄자로만 알고 있다. 선장은 전형적인 텍

스트의 내부도, 법칙이다.

 

  나는 이 텍스트를 서울의, 어느 지하철 역사에서 쓰고 있다. 당신

이 이 밀항선 밖으로 나가겠다면, 이 텍스트를 찢어라. 당신의 주민

등록번호는 말소될 것이며, ID, 여권번호도 그렇게 될 것이다. 당신

에게, 나는 국가, 종교와 죽음의 미덕까지 지울 수 있다. 기억하는

가, 밀항선에서 당신은 말하고 있었으나, 당신의 목소리가 분절되지

않는다고 나는 썼다. 당신의 입은 없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 코에 스며드는 냄새 또한 없다.

 

  그리고 나는 밀항선을 블라디보스토크에 정박시킬 것이다. 대설

전의 새벽이 좋겠다. 당신은 선장에게 선원복과 여권, 출입국증명서

를 받는다. 당신은 준비된 승합차에 오르고, 광장으로 간다. 정확히

2시간 후 광장의 카페-mory에서, 나는 당신이 위조된 서류와 러시

아제 권총을 받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비밀은 지켜지거나 말소된

다.

 

  당신이 이름을 가질 때, 내가 일방적으로 강요한 침묵의 카르텔은

깨진다. 당신은 모든 상황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단

순해진다.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베끼고 있다.

 

       * 배수아, 「북쪽 거실」중 「목소리의 내부」변용.

 


 

어느 날 바람이 사라졌다

 

   어느 날 바람이 사라졌다.

   이것은 한 낱 어린애의 기짓말이나 신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대기는 멈추었으며, 구름은 딱딱해졌고, 자외선은 더욱 팽창

했다.

 

 

         *

 

   바람이 사라진 도시는 빙하기를 방불케 했다. 

   군대가 제일 먼저 도시로 질주했다.

   발케이드 너머 시민들은 고통으로 무기력했다.

   산소와 하수도가 썩어갔고, 도처에는 악취와 고름이 들끓었다.

   생존은 일상이 되어, 누구도 삶을 긍정하지 못했다. 죽음은

   창문을 닫기도 전에 찾아왔다.

 

   학자들은 포럼을 조직하고 수많은 가설을 쏟아냈지만

   아무도 그 원인을 밝혀낼 수 없었다.

   한 종교 지도자는 가혹했던 출애굽을 기억해야 한다며,

   달의 뒷면에 세워진 거대한 십자가를 봤다고 주장했다. 원인은,

   "사람의 마음에 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학자와 사회학자들의 견해는 달랐다.

   "시간의 백안 白眼이 열리고, 메트로놈처럼 규칙적으로 움직일 때,

미래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시간의 빅뱅이 멈췄다는 것이다.

 

   바람이 아무 곳에도 없었으므로, 바람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폭발

했다.

   바람이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바람을 본 적도 없었고 만질 수도 없지만, 나뭇잎은 그 형

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바람의 형상을 만들었다.

   모래나 물결의 무의, 수증기가 흔들리는 풍경, 피사의 사탑이 진

동하는 모양, 혹은 숲과 거대한 석상, 빌당과 수사자의 등뼈가 흔들

리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도 바람의 형상을 볼 수 없었으므로 조각가들은, 바람이 진동

한 물체의 무늬를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흉흉했던 소문은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일상은 간단한 수식처럼 쉽게 풀릴 듯 했다.

   정부 관료들의 주장에 따라 가장 높은 산에 거대한 장치를 만들

고,

   인공수정을 하듯 바람을 만들었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인공바람

   사람들의 텅 빈 지갑 속으로 떨어졌다.

   인공바람을 만드는 발저소의 주식이 급등했다.

   인공바람의 자본은 집중되었으며, 극소수의 사람만이 부를 차지

했다.

   인공바람은 손끝마다 메스를 달고, 조처에 불안정한 문양을 만들

기 시작했다.

 

   문양에서 검은 물이 흘렀고, 학교와 공장은 문을 닫았다.

   도시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빌딩은 철의 옷을 입고 환부를 가렸다.

   나무와 바다가 다실 말랐다.

   경제적인 이유로 밤에는 발전소의 불이 꺼졌다.

   자물쇠는 더욱 크고 튼튼해졌으나, 밤은 누구의 친구도 아니었다.

   감각은 벼랑 끝으로 갔다. 사람들은

   오늘 자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어느 날 바람이 사라졌다.

   꿈을 꾸는 자의 심장은 딱딱해지며, 말(言)은 폐허로 변할 것이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당선소감

 

   문 밖에는 햇빛이 울창하다. 햇빛의 비늘을 들추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을 만졌으나 흩으지며 사라졌다. 바람과 어긋난 것이다. 못내 아쉬

운 마음이다. 저 문을 들고 나는 것은 바람뿐일까. 그것이 궁금하여 신

문을 접고 밖으로 나간다. 바람은 온갖 모양으로 거리를 떠다닌다. 살

구나무에서 꽃이 피고 질 때도 바람은 제 속살을 들이밀고, 녹슬어가는

자전거에도 바람은 있다. 그 바람을 보는 내내 눈이 아프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승의 온갖 냄새를 맡는다. 도처에 냄새가

있다. 냄새는 바람 속에서 길을 내고,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냄새의 끝

에 가만히 손을 댄다.

   또한 소리도 있다. 고추가 붉게 말라가는 소리, 나무그늘이 펼쳐지는

소리, 감자가 주춤주춤 꽃을 밀어내는 소리. 나는 소란스러워진다. 많

은 소리가 한꺼번에 멈출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귓속에 담

아 두었던 두툼한 소리의 책들을 꺼낸다.

   시가 되지 못하는 말은 없고, 시가 아닌 말도 없으므로 세상은 시로

가득하다. 내 안에 길을 내고 나를 관통했던, 모든 이름들을 하나씩 부

를 것이다. 그 이름들이 형상을 가지고 불쑥불쑥 자라도록, 나는 더욱

낮아지고, 치열할 것이다.

   늘 내 등의 밭을 가꾸시는 부모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람과 냄새, 소

리가 시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김영철 선생님, 말이 익을 수 있

도록 기다려주신 고창운 선생님과 김진기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

고 글과 삶을 나눈 건대 글꾼 친구들과 이안 형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무엇보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이문재 선생님과 장석남 선생님께 감

사 드린다. 시에서 났으니, 나는 시에서 피고 질 것이다.

   오늘은 나의 아내, 변영수에게 희고 눈부신 꽃을 바쳐야겠다.

 


 

 심사평

 

           시적 내공 엿보인 작품세계,

       펄떡이는 자기 색깔 키우길

 

   신인들의 작품을 앞에 놓고 있으면, 회를 뜨기 위해 펄펄 뛰는 생선

을 도마에 올려놓은 기분이 되곤 한다. 벅찬 의욕에 덤비고는 있으나

쉽게 어찌 해볼 수 없는 경우다(끝내 생선회를 뜨는 사람은 아니므로

오해 마시길!). 난감할지언정 싱싱한 비린내는 정신적 활기를 북돋우는

농염한 매력이므로 문제는 늘 생선의 선도에 있게 마련이다.

   본심에 올라 온 시들에 대한 첫인상은 한꺼번에 막 출현된 '양식 생

선'들 같다는 의견이었다. 미리 수요를 예측하고 있는 듯한, 적당히 시

류에 맞춘 패턴이 눈에 거슬렸다. 제각기 자라온 작품들, 가두리의 흔

적이 없는 '자연산 활어'가 점점 드물어진다고 진단했다. 거듭 살피는

과정에서 오래 아가미가 멈추지 않는 시들이 남았다. 이해강. 박성현

두 분의 시였다. 이해강 씨의 장점이 박성현 씨에게는 없었고 박성현

씨의 장점이 이해강 씨에게는 없어서 선뜻 택일하기가 어려웠다.

   이해강 씨는 응모작들이 모두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다. 문제의식도

건강했고 대상을 장악하는 힘과 언어 감각도 기성시인 못지않았다. 그

런데 지나치게 안정적이라는 것이 흠결로 지적되었다. "바람의 마찰음

이 신음소리를 내며 조여진다 엎질러진 담쟁이 넝쿨을 끊으며 흰 점이

맹렬하게 뚫리고 있다"(「터널」)와 같은 수사의 과잉도 단점이었다. 신

인은 도약대를 밟고 뛰는 존재이므로 그만큼의 새로운 높이가 필요함

을 새겨주시길 바란다.

  반면 박성현 씨는 지나치게 "다양"했다. 「소행성B1023」과 같은 SF

적 요소에서부터 「봉화 가는 길」같은 전통 서정시에 이르기까지 스펙

트럼이 넓었다. 소품에서부터 장시에 가까운 호흡까지 보여주고 있어

잡식성 어류의 왕성한 소화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습작

기가 매우 성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편편마다 내구력도

뛰어났다. 지면에 발표되는 두 작품이 얼핏 서정 소품으로 보일지 모르

겠으나 박씨가 갖고 있는 시적 역량이 의심되진 않았다. 이번 당선이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좌고우면하자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본심에 오른 응모작 대부분이 최근의 시적 유행에 편승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가두리'를 스스로 어떻게 벗어나는가에

집중해야 하며, 과연 '벗어났는가'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해야 할 필요

가 있음을 밝혀둔다. 모여서 길러지는 가두리는 결코 바다가 아니다.

넓고, 깊고, 큰 바다는 가두리 밖에 이다. 마지막으로, 이해강 씨의 응

모작을 최종적으로 내려놓을 때 매우 안타까웠다는 사실을 밝히며, 권

혁찬. 정수연 씨에게도 정진을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 이문재.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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