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야 물렀거라, 황가오리 나간다
넉달만이었다.
“아, 황가오리가 잡혔답니다.”
함께 근무하는 김성현 차장이 핸드폰으로 연락해왔다. 강진으로부터 방금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드디어 오늘 황가오리를 먹게 되는구나!
지난 3월초 “황가오리가 나오는 때가 되면 꼭 만나자”고 강진사람들과 약속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제 철이 시작되었단다. 한 여름 뒤끝이 이어지는 9월무렵까지 잡힌다고 했다.
‘천년의 비색(翡色)’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강진만이다. 그 강진만의 색깔을 청자에 담아왔다고 이 고장 사람들은 자부하고 있다. 그 만큼 강진만은 청자 빛을 담고 있다.
가우도에서 잡혔다고 했다.
소 멍에 같이 생겼다고 해서 가우도(駕牛島)란다. 섬을 기준으로 강진만 양쪽을 보면, 한쪽이 도암면으로 800미터, 다른 한 쪽이 대구면으로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그 사이에 섬이 있다.
전화가 걸려온 그날, 아침에 잡힌 황가오리는 오후에 광주에 도착했다. 큰 물 통에 잠겨서 트럭을 타고 왔다.
![가오리수정1[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25B0%25A1%25BF%25C0%25B8%25AE%25BC%25F6%25C1%25A41%255B1%255D.jpg)
▶황가오리 두 마리다. 50센티미터 자를 대었으니, 폭이 족히 60센티미터는 될 것 같다. 빨간선 안에서 보듯 주둥이가 뭉툭하다. 뾰족한 홍어와는 다르다. 누런 빛이 감도는 색이다. 횟감으로 올리기 직전이다. 권경안
하나는 22㎏, 또 하나는 20㎏. 길이도 상당했다. 50㎝자를 놓은 것보다 더 컸다. 가오리가 날면서 어부를 덮치면 죽는다는 말이 과히 틀린 말은 아니겠구나 여겨졌다. 가오리가 갑자기 ‘스텔스’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 싶었다.
색이 누렇다 해서 황가오리. 도감을 보았더니 홍어목 아래 색가오리과에 속하는 노랑가오리였다.
강진에서 학교를 나온 송영석씨가 이날 황가오리를 요리했다. 광주상무지구 김대중컨벤션센터 바로 앞에서 흑송복집을 하고 있는 요리사이다.
한 손으로 들기에 버거운 큰 접시에 회를 올렸다. 네모지게 썰었다. 선홍색 점들이 박혀 이채로웠다. 홍어목이므로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다. 회로 썰어내도 외양은 홍어와 흡사했다.

▶그날 아침에 잡은 황가오리가 저녁에 횟감으로 올려졌다. 쫄깃 쫄깃하게 씹는 맛이 좋다.
묵은 김치도 준비했다. 고춧가루에 기름에 소금도, 톡 쏘는 마늘까지.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초. 막걸리를 발효해서 만든 식초였다.
가오리는 홍어와 달리 쏘는 맛이 없다. 몸속 요소가 분해되면서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는데, 가오리는 이것이 거의 없다. 잡은 날, 오후 횟감으로 냈으니 발효할 틈새도 없었다.
황가오리는 쫀득하게 씹는 맛이 일품. 그래서 쏘는 맛과 알싸한 맛을 내는 초에다, 묵은 김치와 마늘에 된장까지 였으니 오묘한 맛을 입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크게 썬 횟점을 여러 양념과 함께 한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 넉달을 기다린 보람은 컸다. 옆자리에서도 연신 가오리 맛을 격찬하고 있었다. 한 동석자는 “된장에 찍어야 제맛”이라고도 했다.
홍어는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아가씨들은 남도태생이라도 좀 꺼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그 같은 냄새가 황가오리에서는 없고, 대신 양념으로 알싸하게 쏘는 맛을 내게 해주니 함께 간 여직원들도 젓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자, 한잔!”
여기에 유달리 흰색을 띤 강진산 막걸리를 연신 들이켰다. 한 입 가득, 여러 맛을 내는 양념과 회를 ‘우물 우물’하다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고, 순서를 거꾸로 해서 술 먼저 마시고 회를 들기도 했다.
좌석에 있던 이가 초장맛을 칭찬하자, 송 주인장이 아예 막걸리 식초병을 가지고 왔다.
“옛날 부뚜막에 소주병에 막걸리를 담아놓고 초를 만들었지 않은가요. 그 부뚜막 온도가 초를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거든요. 옛날 시골 어머니들 이 초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었어요.”
그러자 한 마디씩 거들었다.
“맞아, 그랬어.”
옆에 있던 또 다른 이는 “우리 어렸을 적 막걸리 받아오라고 하면, 살짝 마시던 그 소주병이네”라고 했다. 보니 ‘보해소주 25도’ 1.8리터였다.
“술 마시고 난 다음 막걸리 식초를 조금 마시면, 몸에서 발생하는 노폐물과 기운을 없애줍니다. 특히 짜게 드시는 분들에게서는 염기를 빼주어요. 요즘 소주에 홍초를 타서 바로 드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렇게 드시는 것 보다 나중에 한번에 마시는 것이 좋아요.”
주인장은 막걸리 식초를 만들어서 직접 쓴다고 했다. 가장 좋은 상태는 60일 가량 걸려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조금 있자, 가오리 찜이 나왔다. 젓가락을 대니 결에 따라 살결이 따라 일어났다. 엷고 은은하면서도 씹히는 느낌을 주었다. 역시 간장과 식초, 깨, 고추가루가 버무려진 양념이 고기맛과 어울리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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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오리를 찜을 해서 냈다. 양념과 함께 한 입에 넣고, 막걸리 한 잔 하면 그만이다.
가오리의 간장인 애도 나왔다.
“두 점씩 드세요. 그 정도가 제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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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가오리의 애다. 고춧가루 소금에 살짝 찍어서,한 입에 넣으면 끝이다.
그냥 ‘흐물 흐물’한게 입에 넣어 씹고 말 것도 없었다. 혓바닥에 얹혀져 있다가 바로 목을 타고 내려갔다.
“요새 며칠만에 잡은 거래요. 이제 철이 시작되었는데, 어쩌다 잡히기 때문에 강진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귀물’이죠.”

▶한 참석자가 황가오리를 맛있게 먹는 비결을 얘기하자, 시선을 한 데 모아 경청하고 있다. 가운데 보해소주병에 막걸리 식초가 담겨져 있다.
가오리는 흔히 홍어와 대비된다.
홍어목에 전기가오리과, 수구리과, 가래상어과, 홍어과, 색가오리과, 흰가오리과, 나비가오리과, 매가오리과가 있다.
홍어과에도 바닥가오리, 저자가오리, 광동홍어, 무늬홍어, 깨알홍어, 홍어, 참홍어가 있다. 그러니 보통의 경우 가오리와 홍어는 쉽게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얼핏 보면 그 집안의 고만고만한 놈들이다. 황가오리는 이런 전설도 갖고 있다. 조물주에게 대들다 소가 벌을 받아서 가오리가 되었다고 한다. 소가 조물주에 밟혀서 납작하게 되었다는 것. 조물주나 소나 서로 열을 많이 받았는 모양이다. 노랑색인데가 몸집이 크다 보니, 황소와 연결지었을 것 같다.
이날 황가오리가 잡힌 곳이 소 멍에를 닮았다는 가우도였으니, 한 옛날 조물주에게 밟힌 황소였는지도 모르겠다.
![황가오리스캔수정2[2].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25C8%25B2%25B0%25A1%25BF%25C0%25B8%25AE%25BD%25BA%25C4%25B5%25BC%25F6%25C1%25A42%255B2%255D.jpg)
![황가오리스캔수정3[1].jpg](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chosun.com%2Fweb_file%2Fblog%2F406%2F906%2F1%2F%25C8%25B2%25B0%25A1%25BF%25C0%25B8%25AE%25BD%25BA%25C4%25B5%25BC%25F6%25C1%25A43%255B1%255D.jpg)
▶홍어와 황가오리다. 위 그림이 홍어, 아래가 황가오리다. 주둥이가 홍어는 뾰족하고, 황가오리는 뭉툭하다. 몸집도 홍어는 마름모꼴이고, 황가오리는 그 보다 둥근 모습이다.
*자료그림 출처=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5,2003,248과 274쪽.
가오리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떠오른다.
전라선 기차가 마을앞 섬진강변으로 오르 내리는 곳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섬진강을 나룻배로 건넜다. 우리마을에는 내가 열네살 때, 혼자 살던 청년 뱃사공이 떠난 뒤 나룻배가 없어졌다.
그러자 소나무로 강심에다 파일을 박듯이 해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다리를 임시방편으로 만들었다. 그 다음에는 전봇대로 박았다. 그 위에 철판을 깔았으니 잠수교였다. 어머니는 그 다리를 건너 읍내 시장을 오갔다. 그 때 가끔씩 사오던 것이 가오리였다.
평소에는 갈치나 명태가 주된 거리였다. 가오리는 무침으로 먹었다. 모처럼 별미로 즐기셨던 것 같다. 그 때 아버지는 가오리 무침에 소주나 막걸리를 들었다. 매운 고추맛과 시큼한 초맛은 어린 시절 나에게도 혀의 감각을 가끔씩 불러 일으켰다.
무더운 여름철, 땅은 햇볕 아래 달구어지기 마련. 뜨거운 바람이 밭고랑을 타고 가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농사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오리 회무침은 그런 힘겨운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잠시나마 느껴보는 탈출이요, 위안이었을 것이다.
가오리 무침은 나에게는 고향,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남도의 말로 ‘짠한’ 마음이 일기도 하고, 가끔은 가슴 ‘먹먹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가오리는 서해와 남해에서 잡힌다.
하지만 남도에서는 동부인 섬진강과 전라선, 지리산자락 동네에서 주로 먹는다.
반면 홍어는 서부인 영산강과 호남선이 오르내리는 곳에서 주로 먹는다. 잔치음식으로 동부에서는 가오리를, 서부에서는 홍어를 주로 올려왔다. 가오리는 전라선을 타고, 홍어는 영산강을 따라 올라와 퍼진 것이리라.
그 가오리와 홍어에 남도인의 애환이 실려있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의 시름을 고기 한 점에 막걸리로 달랬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빠질 수 없다. 유난히 희게 빚은 막걸리가 미각을 일깨웠다. 강진에서 빚은 '설성 동동주'다.
첫댓글 다음에는 '삼식이를 아시나요'를 기대해주샴.
친구들, 태풍으로 시작한 한 주, 잘 보내시길.....
흐미~~진짜 맛나겠네..횟감 썰어논거 보니 쫌 다르긴하네이~
밑에 홍어와 가오리 몬양새 비교한거보니 확 차이가 나그만~ㅎ
소주댓병에 막걸리..그 우게 병마개(솔잎~?) 정말 옛추억 팍팍~묻어 나네그랴~글고봉깨 경안친군 막걸리도 매니아
인가벼~글제~?ㅎㅎ
병마개는 솔잎이라네...막걸리도 좋아하구 말구.
우리 가족은 항상 남도여행을 꿈꾸고 살고 있다. ㅠㅠ
광주에 살았을 적엔 몰랐던 그 오묘한 맛들을 처음에 인천에 올라와 김치를 담그려니 마른고추를 물에 불리고 참쌀과 함께 팔팔끓인 멸치젓과 온갖 양념들을 넣은 김치통을 가지고 채소집에 가서 고춧물을 갈아야 하는데 광주에선 흔하디 흔한 기계가 없어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매기를 3년~~ 결국은 고춧가루로 버무린 2% 부족한 채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전라도지만 홍어와 친하지 않은 탓에 가오리찜을 더 좋아했던 난 지금도 가오리찜을 보면 밥을 과하게 먹곤 한다. 저녁엔 나주 영산포의 토하젓갈을 초록마을에서 발견해 사와서 김이 솔솔 나는 따뜻한 밥에 얹어서 맛있게 먹었다...
인천과 좀 연이 있다네
부평역, 항동과 용현동, 주안동...친구들도 있고...인천의 명물 물텀벙에는 쏘주가...
1982년 10월의 마지막 밤, 난 그날 인천에 있었다네...현대화 소품들이 걸려 있었던 그 카페..
어렸을 적에 우리 아버지가 곡성장에 들르곤 할때면 간혹 밥상에 오르기도 했지. 여수서 기차편으로 올라온 각종 해산물중 한가지로....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시골 잔치에는 어김없이 가오리채라고 해서 즐겨 먹었던 기억이 요즘은 곡성장에도 칠레산 홍어가 등장했지만 , 암튼 친구는 홍어에 가오리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고 글을 통하여 구별법 까지....
어머나.. 용현동 물텀벙은 소문만 들었고 실지로 맛있는 맛집은 송도에 있는 성진 아구찜이야. 지난 겨울에는 친한 전라도 출신 동료 6명이 우리집 집들이에 오기 전에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보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전라도 가오리찜에 비하리요~~우리집에 와서는 소래포구에서 미리 준비해 둔 벌교 참꼬막을 맛나게 삶아서 먹었고 나이가 들수록 어렸을 적 먹었던 음식들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