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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생명 그리고 인간
-사진작가 김철수 論
강 경 호
1.
사진작가 김철수는 194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다. 교육계에 뛰어들어 현재 광주 조봉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일찍이 사진에 입문하여 사진 찍기를 좋아했으나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6년 〈광주펜타사진클럽〉 회원으로 입회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오랫동안 리얼리즘에 빠져 있었다. 사실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사진의 정직성과 기록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갖지 못하거나 소외된 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삶을 드러내는 것이 사진작가의 책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소부는 물론, 노동자, 광부 그리고 시장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모습에서 삶의 의지와 더불어 위로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위무하는 것에서 보람을 찾고자 했다. 물론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도 담아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성실하고 참되고자 하는 따스한 마음의 발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변화를 시도한다. 즉 그는 자연에 대해 새롭게 눈뜨며 섬세하게 그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자연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것은 시시때때 변하는 색과 형태, 그리고 그 위를 흐르는 선이었다. 아침과 낮, 저녁, 그리고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자연의 모습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마치 인상파 화가인 모네가 추수가 끝난 들판에 놓인 짚가리를 태양이 직각으로 떨어지는 해질 무렵에 여러 개의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렸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빛의 양이나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대상에서 사진가 김철수는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포착하거나 이를 자신의 생각대로 재구성하기에 이른다. 특히 사진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작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확고하다. 그것은 화가들이 사생을 나가 스케치해 온 그림에 대해 그림 속의 대상을 빼거나 새로 넣어 화면을 재구성 하듯이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풍경에 대해 컴퓨터에서 인위적으로 조작하여 자신의 생각을 투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빛의 예술인 사진예술을 실험하는 사진작가 김철수의 구체적인 사진기법을 살펴보자. 전경의 피사체를 까맣게 빛으로 태워버려 화면을 간결하게 한다. 일상처럼 정직하게 사진을 찍는다면 전경이 살아나게 된다. 그런데 김철수는 그 전경을 하나의 매스(덩어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실제의 풍경은 사라지고 작가의 생각이 투사되어 그의 마음속의 풍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시각화된 내면의 풍경은 우선 강렬하게 다가온다. 명암의 대비가 연출하는 그 강렬함은 보는 이들을 그 화면 속으로 단숨에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는다. 즉 그의 이러한 사진은 바라보는 사람들을 화면 속에 빨아들이는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이때 전경의 풍경들은 고유의 모습들을 감추고 오직 검은 형태에서 장중한 느낌과 그 무거움 위를 흐르는 선을 보여준다. 한편 전경의 검은 풍경을 감싸고 있는 환한 배경은 오직 전경의 풍경에 시선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반대로 때로 김철수의 작품은 전경의 배경을 환하게 살리고 그 배경을 까맣게 태워버리기도 한다. 이른바 콘트라스트의 교차로 인해 풍경이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작품들이다. 이러한 그의 사진 기법 역시 배경을 단순화시키고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화면에서 클로즈업 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김철수의 관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빛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느낌을 시시각각 포착한다. 그는 어느 한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특히 그가 즐겨 찍는 현상은 해가 떠오르기 전의 순간들이다. 많은 작가들이 바다 위나 산 위에 떠오르는 순간을 주로 찍지만 김철수의 사진에서는 일출의 모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꽃으로 비유하자면 일출은 이미 만개해 버린 꽃과 같은 것으로 피어나기 직전의 꽃이 주는 느낌을 좋아한다. 해가 뜨기 직전의 모습은 맑고 깨끗하고, 경건하다. 그리고 신성하기 때문에 붉은 빛으로 세상을 가득 물들인 일출 직전의 사진을 즐겨 찍는 것이다. 이 때에는 온갖 사물들이 제 이름을 찾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온갖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색조가 하늘과 땅을 물들이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바다 위나 산 위에 치솟아 오를 때쯤이면 모든 사물들은 태양의 빛에 의해 사물의 존재가 왜곡되고 태양만이 우뚝 빛나기 때문에 사진 작가는 가장 고요하고 순수한 태초의 시간인 일출 직전의 시간을 이미지로 포착하는 것을 즐겨한다. 더불어 일몰의 시간에도 관심을 보인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고요와 같은 순간이 보여주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가장 순수한 사색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진 작가 김철수는 특히 봄빛을 좋아한다. 봄이 주는 상징적 의미인 ‘희망’ 또는 ‘재생’의 의미를 내포한 까닭이다. 겨울이 지나 찾아오는 봄빛의 화사함을 좋아한다. 그것은 칙칙한 겨울 풍경 위로 새로 찾아오는 신생의 빛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사진작가 김철수는 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인간의 삶의 모습들에서는 보다 섬세하게 사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물들의 눈빛이나 표정에서 인물들의 삶의 현실과 내면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그 동안 소외계급들의 삶의 모습을 드러낸 데 비해 최근에는 노동의 신성함을 담아내는데 몰두하고 있다.
2.
이제 보다 구체적으로 김철수의 사진세계를 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동안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 그의 작품세계는 앞에서 밝힌 것처럼 빛의 양을 통해 조절하는 화면구성일 것이다. 전통적인 사진에 대한 이해를 떠나 작가가 인위적으로 화면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반영되는 작품의 모습을 띈다.
「적막 그리고 빛」은 밤 바닷가의 바위섬을 찍은 사진이다. 자연스럽게 밤 바닷가를 찍으면 피사체가 어둡게 나타나겠지만 전경의 바위가 마치 금분을 바른 듯한 모습으로 환하게 눈부시다. 이는 해안경비를 위해 군인들이 비추는 불빛에 나타난 바위의 모습으로 우연히 이를 목격한 작가가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즉 작가가 인위적인 불빛을 이용한 것으로 작가의 생각이 개입된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는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사진작품이 되었다. 마치 바위에 금색을 칠한 것 같은 효과를 연출하고 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영화에서 보았던 황금덩어리를 연상시킨다. 이 작품이 주는 환타지적인 느낌을 작가의 의도에 의해 연출하게 된 셈이다.
「수채적 풍경」은 일출직전의 풍경사진이다. 먼 곳에 위치한 하늘은 온통 핏물처럼 벌겋게 타고 있다. 그런데 이 붉은 하늘이 더욱 강조된 것은 온통 전경을 차지한 피사체를 까맣게 그을린 까닭이다. 특히 거의 검은색 하나로 전경의 뾰족한 바위를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감상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원경의 붉은 하늘로 향하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이렇듯 전경을 까맣게 태우고 원경을 밝게 살린 화면 구성은 김철수의 작품에서 자주 눈에 띈다. 즉 「할미바위 환상」, 「서정적인 풍경」 연작에서 이러한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서정적인 풍경·4」는 화면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섬 형상을 배치했는데 색깔을 죽이고 검은색으로 단순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하늘은 붉은 색 톤으로 역시 단순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피사체의 전경에는 파스텔톤의 색깔이 마치 안개처럼 흐르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이 작품에 환타지 요소를 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의 공간이 현실이 아닌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서정적인 풍경·3」도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다. 전경을 까맣게 태워 나무의 줄기를 단순화시켜 평면적으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후경에 저녁 노을이 펼쳐져 있다. 즉 노을을 배경으로 화면 전체에 온통 커다란 나무들로 배치한 것에서 까만 나무 줄기에 시선이 집중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특히 얽히고설킨 나뭇가지의 느낌은 신비스럽기조차 한다. 또한 강한 생명력을 떠오르게 한다.
「할미바위 환상」 역시 전경을 까맣게 태워 화면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즉 화면 하단 절반을 분할하여 하단에 나무가 자라는 바위섬 형상 둘을 배치하고 그 상단부에 일출 직전 높은 구름이 있는 하늘을 배치하였다. 특히 구름이 주는 마티에르가 대기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데 그 느낌이 중후하다.
이렇듯 전경을 까맣게 단순화시키고 후경에 풍경의 색깔을 배치한 작품들은 「서정적인 풍경·2」, 「서정적인 풍경·4」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이 작품들은 명암의 대비를 통해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이 전경을 까맣게 단순화시키고 후경을 사실적으로 살렸지만 「서정적인 풍경·1」 같은 경우는 오히려 후경을 까맣게 태우고 전경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살린 경우이다. 복잡해질 수 있는 화면을 최대한 절제하고 주제를 선명하게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명암의 대비를 잘 활용하고 있는 작품은 「숨결」에서도 나타난다. 이끼 낀 계곡의 바위로 흘러내리는 시원스러운 물줄기로 화면을 가득 채운 이 작품은 초록색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바위에 강한 명암을 주어 하얗게 내리를 물줄기가 더욱 힘 있고 선명하게 하고 있다. 더불어 초록이 주는 싱그러운 느낌과 어우러져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있다.
3.
사진작가 김철수의 관심은 사진 고유의 특징인 빛의 양을 조절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생명성에 그 시선이 머무르기도 한다. 「영취산 진달래」는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인 영취산 진달래꽃이 화면에 가득하다. 이른 봄날 가장 먼저 온 산에 색깔을 입히는 진달래꽃의 신비로운 조화에 겨우내 칙칙했던 느낌을 떨쳐버린다. 마치 인간의 몸속에서 흐르는 생명의 근원인 핏빛이 생명의 욕구를 꿈틀거리게 한다. 자연이 지른 생명의 불에서 우리는 자신을 연소시키는 불의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분홍색이 주는 부드러운 느낌과 옅게 푸르른 하늘색 톤이 만나 신생의 계절인 봄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봄」 역시 그 주제가 ‘생명’이다. 복숭아꽃이 만발한 과수원이 펼쳐져 있는 작품인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벌과 나비가 잉잉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봄날의 따스하고 한가한 햇볕이 느껴지기도 한다. 봄에 피는 꽃들이 희거나 분홍색으로 강하거나 억센 색깔이 아닌 것에서 부드러운 봄의 생명력을 전해준다.
「무등의 5월」은 진달래와 철쭉이 어우러진 산정의 풍경을 담고 있다. 이들 꽃들이 보여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봄날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멀리 펼쳐진 산을 배경으로 신록과 더불어 어디선가 뻐꾹새가 한나절 울어댈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에서 봄날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반해 「지리산의 5월」에서는 죽은 것과 살아있는 것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더욱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즉 봄날 지리산에 피어있는 진달래와 그 곁에 죽어있는 고사목의 어울림은 생과 사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특히 죽어있는 나무를 어두운 색조로 배치한 것에서 죽음과 생명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준다.
생명성을 강조한 김철수의 작품은 무수히 많다. 이삭이 팬 초록의 보리밭과 그 위로 분홍으로 타오르는 자운영 꽃밭을 담은 「5월의 훈풍」과 「수채적 풍경·1」, 「5월의 지리산·2」, 「백두의 봄」, 「마이산의 봄」 등이 그것들이다. 이 작품들은 주로 봄날의 풍경들을 포착한 것으로 꽃을 통해 생명력을 드러내 놓은 경우이다. 생명의 결실은 꽃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산지의 가을」, 「백무동의 가을」, 「자유를 향하여」 연작은 가을 단풍과 새떼의 군무에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주산지의 가을」은 노랗거나 빨간 단풍이 무르익은 풍경을 배경으로 고목이 있는 호수의 모습이다. 물안개가 일어나고 있는 듯한 호수 위로 온통 단풍이 얼비춰 화면 모두가 불타는 듯하다. 마치 혼신의 힘으로 자신을 불태우는 생명들에게서 생명의 향연을 벌이는 것 같은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지난 여름 날의 무성함이 알맞게 결실을 맺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색깔을 다 보여주는 나무들의 숨결을 살아있는 것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이며 향연이다. 특히 호수 물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고목은 그 동안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갔을 수많은 세월을 읽게 한다. 그래서 깊게 패인 고목의 구멍에서 거칠게 살아온 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을 볼 수 있다.
「자유를 향해서」는 작품의 제목이 관념적이다. 즉 지금까지 살펴본 작품들은 「주산지의 가을」, 「봄」, 「지리산의 5월」처럼 현상적인 어떤 풍경을 보여주었지만 `자유’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정신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그 가치가 어떤 존재를 실존하게 하는 것으로, 곧 ‘생명’을 뜻한다. 즉 살아있음에 생명이며, 그 생명은 자유를 가질 때만이 존재하는 진정한 생명이기도 하다. 「자유를 향하여」 연작은 갈대밭이 있고 바다가 있는 그 위로 수만의 새떼가 움직이고 있는 작품이다. 일사불란하게 하늘을 날고 있는 새떼는 하나의 경이이고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떤 센서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수많은 새떼가 마치 하나가 움직이는 것처럼 흐트러짐 없이 움직이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길을 비상하고 있는 데에서 순수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고귀한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4.
사진작가 김철수의 작품은 자연을 찍은 것들로 산·바다·나무·꽃·하늘 등이 그의 작품의 소재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인간의 문제에 대해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노동」 연작과 「시장」 그리고 「눈빛」과 「표정」 연작은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은 애정과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1」은 제목이 말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염전에서 소금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 작품은 흑백사진으로 화면 전체가 흑백톤으로 처리되어 있어 색깔이 가진 불필요한 메시지를 차단시키는 효과를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흑백의 대비로 인해 하얀 소금의 모습이 돋보여 그 주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흑백사진의 강점을 잘 살린 「노동·2」 역시 자칫 시끄러워질 수 있는 화면을 눌러 절제되고 담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노인이 새끼줄로 무엇인가 작업을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일에 진지하게 몰두해 있는 인물의 표정으로 인해 더욱 그 작품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3」은 노부부로 보이는 두 인물이 죽세품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인물의 뒤에는 그들이 만든 죽세품들이 높이 쌓여 있어 이들의 노동을 짐작하게 한다. 햇살 좋은 날 처마 밑에 앉아 부부의 모습에서 이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도 어림잡게 한다.
또한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감자·가지·깻잎·도라지·취·대파 등 농산물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그들의 일상과 삶을 엿볼 수 있다. 특별한 기교도 없이 아주 평범해 보이는 시장 한 구석의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사실 그대로를 가감없이 포착했기 때문에 더욱 진정성에 있어 보이는 것이다.
앞의 작품들은 피사체와의 적당한 거리에서 인물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찍은 사진들이다. 그러나 「눈빛」과 「표정」의 작품들은 작가가 피사체와 가까운 거리에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들이다.
「눈빛·1」은 두 소년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클로즈업시켰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들의 표정은 이방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오른쪽 화면에 철조망이 있고 그 철조망을 소년이 잡고 있는데 소년의 얼굴엔 상처자국이 있고 소년들은 땟국이 질질 흐르고 있다. 손톱엔 때가 끼어 있어 이들이 빈민가의 소년임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형형하게 바라보는 소년들의 눈빛에서 그들이 가난하지만 기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살아온 삶의 여정을 짐작하게 해준다. 두 눈 부릅뜬 소년들과 철조망, 그리고 상처가 암시하듯 이 작품은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순수한 소년들의 만만치 않은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눈빛·2」 역시 화면 전체에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다. 청년의 강렬한 눈빛과 물병이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게 해 준다. 특히 인물의 얼굴 중앙에 드리워진 철조망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의 여정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인물의 강한 눈빛과 물병이 암시하듯 앞의 작품처럼 생명에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표정」들은 인물들의 순수한 내면을 엿보게 한다. 카메라를 인식하고 있다는 데에서는 같은 상황이지만 인물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순수하게 드러내놓고 있다는 데에서 앞의 작품들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표정·1」의 인물은 여성으로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해맑게 뜬 두 눈과 꼭 다문 입이 수줍어 하면서도 순수한 소녀의 맑은 심성을 엿보게 한다. 특히 이 작품은 인물의 머리를 과감하게 트리밍하여 눈과 입을 화면 전면에 내세워 그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표정·2」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국적을 뛰어넘어 가장 때 묻지 않은 인간의 마음을 읽게 한다. 땟자국이 흐르는 아이의 옷에서 그가 처한 현실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러나 아이의 해맑은 웃음은 현실을 초월한다. 초롱초롱한 눈과 치아를 드러낸 채 미소짓는 어린아이의 표정은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됨을 말해주는 작품이다.
5.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김철수의 작품은 빛의 양을 조절해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작품들에서 작가의 실험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관심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기 위해 미세한 자연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그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참다운 삶의 진정성을 발견한다. 더불어 다양한 인간의 눈빛과 표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포착하기도 한다. 실험정신과 더불어 삶을 통찰하고 있는 김철수의 작품은 사진예술의 본령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강경호의 미술평론집 <영혼과 형식> 중에서
강경호 미술평론집
영혼과 형식
2009년 11월 10일 인쇄
2009년 11월 14일 발행
지은이 | 강 경 호
펴낸이 | 강 경 호
인쇄・기획 | 도서출판 시와사람
등 록 | 1994년 6월 10일 제 05-01-0155호
주 소 | 광주시 동구 금동 8-1번지
전 화 | (062)224-5319, 227-5319
팩 스 | (062)225-5319
E-mail | jcapoet@hanmail.net
ISBN 978-89-5665-262-7 03810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