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펜문학 강좌 자료 2013년 7월 19일 (금) 14:00
나의 삶과 문학 (내가 걸어온 문학의 길)
최춘해
Ⅰ. 문학의 길을 향한 첫 걸음
1. 나의 데뷔작
쓴맛을 본 끝에 태어났다
신문에 신춘문예 광고가 나면 마음이 들떠 있었다.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섭섭하기는 해도 태연한 척 할 수 있었으나 몇 차례 떨어지고 나니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곁에서 보고 있던 처가, 실망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KBS 방송국에 투고를 해서 채택이 되어 원고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아동문학가로 데뷔 하는 것만이 내 꿈이었다. 이원수 윤석중 한정동 김영일 박홍근 박목월 김성도 김진태 등 아동문학가들이 여간 존경스럽지 않았다. 그 중에도 이원수 씨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다.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담임 선생님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하듯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이원수 씨의 모든 것을 다 닮고 싶었다. 말 한마디, 행동하는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존경스러웠다. 선생은 소주를 좋아하셨다. 소주는 싸고 맥주는 비쌌다. 선생님을 대접하고 싶은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한 배려라고 느꼈다. 또 시상식이나 총회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식사나 축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얼굴 모습이나 태도가 조금도 가식이나 권위 같은 걸 느낄 수 없었다. 관료들의 오랜 습성인 덕치덕치 쌓인 권위로 덮인 얼굴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얼굴 모습에서부터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쩌면 그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생각되었다. 나도 선생님과 같은 문학가가 꼭 되고 싶었다. 절실한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중에 느꼈다. 내가 당선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도 당선될 만한 작품을 못 썼다. 당선 작품이 나오기까지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스스로 더 다부지게 다짐을 했다. 선배들의 시집,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평론집 등을 열심히 읽으면서 작품 쓰는 일에 정성을 모았다.
날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글감을 찾았다. 기나긴 세월을 말 없이 자릴 지키고 앉아 있는 산등성이를 걸으면 무슨 진리라도 캐어보고 싶고, 눈에 띄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생물이나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이 간다. 산꼭대기에 오를 동안은 꿈을 펴보기도 하고 시의 경지에 묻혀 보기도 한다.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발아래 펼쳐져 있는 들판을 관망하고 높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푸른 꿈을 키워간다. 나의 데뷔작 ‘시계가 셈을 세면’도 등산길에서 글감을 얻어 정리되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도/셈을 셉니다.//똑딱똑딱/똑딱이는 수만큼/키가 자라고/꿈이 자라납니다.//지구가 돌지 않곤/배겨나질 못합니다./별도/달도 돌아야 합니다.//씨앗도 땅속에서/꿈을 꾸어야 합니다.//매운 추위에 떠은 나무도/잎 피고 꽃 필, 그리고 열매 맺을/꿈을 꾸어야 합니다.//시계가 셈을 세면/구름도 냇물도/흘러갑니다.//가만히 앉아 있는 바위도/자리를 뜰 꿈을 꿉니다.//시계가 셈을 세면/모두모두 움직이고/자라납니다.
나는 등산을 하면서 이른 봄 묵은 잔디에 속잎이 나서 조금씩 더 푸르게 덮여 가는 것, 묵은 가지에 물이 올라 새순이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것, 산봉우리에서 햇살을 내뿜으며 솟아오르는 해님,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들판을 달리는 냇물은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날마다 보아 왔다. 또 바위 위에 올라앉아 책을 읽으면서 이 바위도 언젠가는 주춧돌이 되거나 석수장이 손으로 사자 모양으로 다듬어지거나 할 것을 생각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향상하고 발전한다는 걸 늘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위의 작품은 <한글문학>에 제1회 추천 작품인데, 다른 두 작품과 함께 조유로님이 추천했다. 당선 완료 작품 ‘이른 봄’은 다음과 같다.
암탉이 알을 품듯/봄님이/온 세상을 품고 있다/안개 낀 아침.//닭의 체온으로/보송보송 예쁜/ 병아리가 깨이듯//봄님의 품안에서/병아리처럼 그렇게 예쁜/연둣빛 새싹이 깨일 테지.//보슬보슬 내리는 안개비는/새싹의 젖줄//새싹이 눈을 감고/강아지처럼 젖을 빤다.
심사를 하신 이원수님은 다음과 같이 추천의 말을 썼다.
최춘해님의 ‘이른 봄’을 추천한다. 임의 동시들은 이미 적지 아니 보아왔고 기대도 걸어 온 나였지만 이번 작품은 특히 귀여웠다. 아침 안개를 알을 품은 암탉처럼 느끼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안개비를 새싹의 젖줄로 보고 “새싹이 눈을 감고/강아지처럼 젖을 빤다.”고 한 끝 연에서 이 동시는 뛰어난 시의 광채를 보게 해 주었다. 최님은 그의 생활 시들에서 내용의 동화나 소설 다움에서 떠나 시 다운 내용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나의 기대를 만족시켜 준 것 같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입상 작품 (1967년) 겨울 땅속 최춘해 겨울 땅속은 엄마 같은 마음
찬바람에 감기 들까 봐 개구릴 불러 들이고 뱀도 씨앗도 모두 불러 들였지. 겨울 땅속은 선생님 같은 마음
그 많은 나무와 풀들이 때를 가려 잎 피고 꽃필 줄 알고 알맞게 자랄 줄 알게 해주네.
김정길, 제해만과 함께 당선작 없이 세 사람의 작품을 입선으로 뽑았다.
2. 상주글짓기회,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 시절
상주는 ‘삼백의 마을’ ‘감이 열리는 마을’ ‘동시의 마을’ 등의 별명이 있다. 누에 고치, 곶감, 흰 쌀 세 가지의 흰 색, 즉 흰 옷을 입은 우리 민족의 순수성을 나타낸 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하다가 나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현득 김종상 같은 동호인을 만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상주에서는 글짓기회가 있었는데, 회원들이 글짓기 지도를 활발히 해서 상주 아이들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쉼없이 발표되었고 백일장이나 현상모집에서도 두드러지게 많이 입상되었다. 그리고 윤석중 선생의 안내로 상주 아이들의 작품을 서울에서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그 작품으로 <동시의 마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윤석중 선생은 상주를 ‘동시의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다. 이때 글짓기 지도 교사들은 글짓기 지도를 하는 목적이 단순히 글을 잘 쓰게 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을 지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글짓기 지도에 열성을 다 했다.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글짓기 지도를 하기도 하고 자비로 아이들을 대구 서울 등 외지의 백일장에 인솔해 가기도 했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노는 날에도 아이들 작품을 싣는 어린이 신문을 등사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주읍에서 글짓기 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상주읍에서 8km 떨어진 사벌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이 멀어서 중간에도 만나야 될 만큼 회원들이 보고 싶었다. 글짓기회에서는 글짓기 지도 방법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각자의 작품에 대한 합평도 했다. 당시에 전국 아동문학 교단 동인회가 있었는데, 내가 간사를 맡았다. 이 회에는 회장도 없고 간사가 모든 일을 맡아서 했다. 전국의 교단에서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자기의 작품을 회원 수만큼 등사를 해서 간사한테 보내면 간사는 회원 수만큼 <은방울>이라는 작품집을 만들어 회원에게 우송을 했다. 전 달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함께 실었다. 21호(1965년 7월 1일 발행)와 28호(1965년 12월 1일 발행)는 인쇄판으로 내었다. 서문은 이원수 고문님이 썼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지자 중앙일보사에서 최종률 기자가 취재하러 내가 근무하는 사벌초등학교에 왔었다. 중앙일보 문화면에 전면 특집 기사(1966년)로 실었다. 최종률 기자는 내가 거처하는 사벌초등학교 사택에서 하루 밤을 묵어서 갔다. 상주 글짓기 회원과 교단아동문학 동인회 회원을 만난 것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내가 매일신문에 등단을 하던 1967년에는 대구시가 경상북도에 합쳐져 있을 때였다. 매일신문 신춘문예 심사를 이재철, 김성도, 김진태 세 분이 해마다 심사를 했다. 전 도에서 아동문학에 등단을 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의 숫자밖에 되지 않았다. 신현득, 김종상, 허동인, 강청삼, 권태문, 김한규 등이다. 문학 단체로는 1957년에 창립된 대구아동문학회 하나뿐이었다.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이 창립회원이었다. 대구아동문학회에서는 동인지를 발간했다. 창간호<달뜨는 언덕>을 1958년에, 2호<꽃과 언덕>을 1959년에, 3호<오손도손>을 1966년에, 4호 <나무는 자라서>를 같은 해에 발간했다. 이 회에 들어가서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회원은 원화여중고 교원과 계성고등학교 교원이 많았고, 신송민, 신현득, 김선주, 허동인 등 초등학교 교원들이 함께 활동했다. 김태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회에 들어오려고 했으나 거절 당했다. 등단을 해야 입회 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태문은 김정일 등과 별도의 문학 단체를 결성했다. 그것이 오늘의 영남아동문학회이다.
이때 한 주일에도 몇 차례씩 만난 사람은 신현득이다. 신현득이 칠성초등학교 근무할 때 칠성초등학교 근처 어느 오두막집 셋집에 찾아갔다. 저녁 식사 시간이다. 식량이 없어서 콩나물이 더 많게 섞인 보리밥을 대접 받았다. 아마 불청객이 갔기 때문에 부인은 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양식이 모자라 허덕이던 때에 내가 왜 찾아가서 꼽사리를 끼었는지 후회가 된다. 신현득이 칠성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는 칠성학교 근처 막걸리 집에서, 대구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근처에 옥이 집이 있었는데, 늘 그 술집에서 만나 막걸리를 먹으며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에도 수 차례 만났었다. 우리가 만나면 가는 집이 정해져 있다. 염매 시장 안에 돼지 국물 집, 학원서점 옆의 가보세 등이다. 권기환, 이천규, 김선주 등 우리 또래끼리 만날 때는 <가보세>는 안 간다. 가보세는 맥주 양주를 파는 집이라서 술 값이 비싸다. 그래서 김성도, 이재철 등 귀한 분을 모실 때만 가보세에 갔다. 김진태 윤운강 정휘창 이응창 박인술 등 선배들이 있었지만 대접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서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술값은 서로 내려고 다투었다. 신현득의 고집을 못 이겨서 내가 질 때가 많다. 평소에도 정의감이 강해서 비뚤어진 것을 그대로 두고 못 본다. 향촌동 어느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두 청년을 봤다. 우리 둘은 거기에 끼어들었다. 신현득이 경우에 어긋난 사실을 따질 때 나도 신현득을 두둔했다. 그랬더니 그 건장한 청년 둘은 우리들 목을 졸랐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뒤에 오래 목이 아팠었다. 뒤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은 향촌동의 유명한 깡패라고 했다. 그만하기를 다행이라고 했다.
상주에 있을 때 이야기다. 이무일, 김종상, 이천규, 강세준 권태문 등이 글짓기 지도와 작품 쓰기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자주 모였는데, 다 친하게 지냈지만 그 중에서도 이무일과 나는 가장 가까운 사이었다. 이무일은 나보다 나이가 7살 아래이지만 격의 없이 지낸다. 남녀 사이에 연애를 할 때, 만나도 자꾸 만나고 싶은 것처럼 동성간인데도 자꾸만 곁에서 보고 싶었다. 이무일은 상주초등학교에 근무하고 나는 사벌초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우리 집에서 마음 턱 놓고 허리띠를 풀어 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아무 거리낌없이 속에 품은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술을 마셨다. 아마 너댓시간은 흘렀을 것이다. 막걸리도 한 말쯤 먹었을 것이다. 드디어 속에 들어갔던 술이 되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동안 먹었던 술이 속에서 새끼를 쳐서 배가 되는 양을 토해냈다. 온 방에 술이 그득했다. 술을 입에도 못 대는 처가 방에 그득한 술을 처리하느라 땀을 뺐다. 우리 둘은 그런 뒤에 더 가까워져서 이무일이 작고하기 전까지 사뭇 가까운 사이로 지냈었다.
고구려의 아이
신현득고구려의 엄마는 아이가 말을 배울 때면 맨 먼저 '고구려'라는 말을 가르쳤다.다음으로'송화강'이란 말을 가르쳤다.아이가 꾀가 들어 이야기를 조르면 고구려의 엄마는 세상의 온갖 이야기 중에서살수 싸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세상의 많은 장수 중에서을지문덕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세상의 여러 임금 중에서광개토왕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아이가 커서 골목을 뜀박질하게 되면고구려의 엄마는요동성 이야기를 해 주었다.고구려 사람은겁내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그리고 엄마는 요동성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다시 엄마는아버지가 물려준 활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가 물려준 칼과, 창과, 갑옷과아버지가 물려준 투구를 보여 주었다.그리고이 칼은, 이 투구는 , 이 갑옷은, 이 창은 모두 네가 아버지께 물려받듯이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물려받아 나라를 지키고, 할아버지는 그 아버지께 물려받아 나라를 지키고, 그 할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께 물려받아 나라를 지키던 것이라 일러 주었다.밖에는 아버지가 타던 말이 울고 있었다.아이는 밥 한 끼 먹고 와서 활을 한 번씩 당겨 보았다.칼을 한 번씩 들어 보았다.투구를 한 번씩 써 보았다. 날마다 들어 보는 칼이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날마다 써 보는 투구가 조금씩 작아지는 것이었다.아이는 제가 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그리고지금엔 이 칼이 힘에 겹지만아버지만큼 크고 보면바늘같이 휘두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지금은 이 투구가 내겐 크지만아버지만큼 크고 보면 제 머리에 꼭 맞을 게라 생각했다.아이는어서어서 크고 싶었다.얼었던 송화강이 풀릴 때마다 새해가 오곤 하였다.강가의 버들잎이 질 때마다한 해가 가곤 하였다.아이는 몇 살인가엄마는 날마다손을 꼽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은그 아이가 말을 타고 뜰 앞에 나와 있었다.아이는 아버지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아버지의 갑옷을 입고, 아버지의 칼을 차고,아버지의 창을 들고,아버지의 활을 메고 있었다.“어머닛!어머니 요동으로 갈 테어요.”“얘야 그 칼이 아직 네겐 무거울 텐데?”“좀 무겁지만 싸울 순 있어요.”“얘야 그 투구가아직은 클텐데?”“좀 크지만 싸울 순 있어요.”“전동에 화살은 준비되었니?”“다 준비 되었어요.”“그 칼은 다시 갈았니?”“날을 세워 갈았어요.”“그래 가거라내 아들아!”고구려의 아이는 끝없는 벌판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그리고하늘이 움직여라 고함을 쳤다.“우리는 커 가는 나라 고구려다!고구렷!”
흙손 엄마
김종상
메밀꽃도 지고
벼이락 머리 숙이면
엄마는
밭머리에서
아침 해를 맞고
저녁 해를 보낸다.
언제나
흙손을 털고
지친 허리 펼 때면
주름진 골짝마다
산그늘이 내리고
어느 산골에서
부엉이 운다.
산비둘기 날아 넘은
고개 저 멀린
큰 마을 넓은 길도
있다더란데
배고파 기다릴
아기 생각에
부풀은 젖가슴을
한 손으로 누르면서
엄마가 달려 넘는
돌너덜 꼬불길
Ⅱ. ‘흙’ 연작시
대봉 도서관 주관 저자와의 만남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의문
1. 선생님은 흙의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흙을 소재로 다루게 된 이유나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2. 흙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선생님의 생각을 들려주시겠습니까?
3. 선생님은 흙 연작시를 80여 편 발표했는데, 주제별로 분류하여 대표되는 작품 1편씩 들 어서, 그 작품을 어떻게 썼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4. 요즘 어린이들은 대부분 도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흙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서 흙을 소재로 쓴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재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까?
5. 앞으로도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저자의 답변이 될 내용
‘흙’을 소재로 쓴 작품
최춘해
1. 흙을 소재로 다루게 된 이유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랐으며 흙과 더불어 살았다. 나도 흙의 한 부분이다. 봄에 새싹이 돋고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흙이 신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동심의 원초적 생각인 물활론의 눈으로 흙을 보게 되었다. 흙을 소재로 동시를 썼다. 연작으로 썼다. 그때가 1979년 세계 아동의 해이다. 문교부와 한국일보사 공동 주최로 세계 아동의 해를 기념하여 동시 동화 현상모집을 하였다. 시․도 대회를 거쳐 전국 대회로 이어졌다. 흙 연작 동시 8편을 투고하여 전국 대회에서 동시 부문에 금상을 받았다. (동화부문에는 김종상) 그 뒤부터 흙을 연작으로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연작을 쓰면서 지구를 살리는 데도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지구가 오염 또는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품을 쓰는 사람이 당면한 절실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흙이란 것은 ‘암석이 부스러져 된 분말’이라는 사전적인 뜻의 흙이 아니다. 토양(土壤), 대지(大地), 자연(하늘, 바다, 강, 동식물) 등을 모두 포함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흙은 뿌리, 어머니, 고향 등 여러 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넓은 의미의 흙을 작품으로 승화시키자는 것이다.
흙을 사랑하는 것은 고향을 지키는 것이요, 전통을 살리는 것이다. 순수해지는 것이요, 이웃끼리 정다워지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베푸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느긋하게 참고 순리에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내거나 억지스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고 있다. 농산물 개방으로 앞으로는 농촌을 더 많이 떠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흙과 점점 멀어지고 인심도 각박해지고 있다. 흙을 멀리하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간접으로라도 흙을 겪게 하기 위해서 흙을 소재로 쓴 문학 작품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을 앞장서서 써 보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2. 흙이란?
흙을 한자로는 토양(土壤)이라고도 쓴다. 土자는 초목이 땅 위로 나올 때 싹에 흙이 묻어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壤자는 土변에 襄(도울 양)자를 붙인 글자이다. 곡식을 길러 주고 농사짓기에 도움이 되는 부드럽고 고운 흙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흙은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랑과 봉사의 뜻이 있다.
목숨을 가진 모든 것들이 태어나서 살아가도록 해 준다. 봄에 밖에 나가보면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목숨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온갖 벌레와 동물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 동안에 품안에 안고 있다가 따뜻한 봄이 돼서 제대로 살아갈 만할 때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흙은 모든 생물을 감싸 안아 준다. 그 많은 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다 대 준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한다.
또 흙은 정직하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는 콩이 나지 절대로 팥이 나지 않는다. 부지런한 농부한테는 풍성한 곡식을 거둬들이게 하고 게으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곡식이 잘 되게 하지 않는다. 땀 흘려 일한 만큼만 보람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흙의 한 부분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아간다. 하늘, 산과 들, 강, 바다, 동식물 등, 이런 자연을 숨 쉬며 그들이 주는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말없이 수많은 이치를 끝없이 가르쳐 준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슬기를 얻고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운다. 사랑을 배우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배운다. 여기서 흙이라고 한 것은 흙 한 가지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인데,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흙이란 뜻이다.
그러면 세계의 철학자, 시인, 작가들은 흙에 대해서 어떤 명언을 남겼는지 알아보자.
1) 흙에 대한 명언(어록)
○ 만물은 흙에서 나고 흙으로 돌아간다. (크세노파네스/斷片)
○ 농부에게 있어서는 흙-땅은 그대로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종교였다. (이무영李無影/ 흙에 눈에)
○ 너희에게 초자연의 희망을 말하는 자를 신뢰하지 마라. 그들은 생명의 경멸자일 뿐 아니라 빈사자 (瀕死者)들이다. 대지에 반역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죄를 짓는 것이다.
(F.W.니이체)
○ 인간은 푸른 초목 속에서 맑은 창공을 바라다보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 들의 반려(伴侶)로서 태어났으니까 대지 위에 설 때 그때야말로 인간이 전 인격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F.라이트)
○ 대지는 책보다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A.생텍쥐페리/인간과 대지)
○ 착하게 산다는 것은 자연에 따라서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L.A.세네카)
○ 자연은 인간에게 소요되는 바를 공급해 준다. (L.A.세네카)
○ 자연에 강제성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일이다.
(에피큐로서/斷片)
○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A. 단테)
○ 자연은 견고하다. 그 보조(輔助)는 정확하고 예외는 극히 드물고 법칙은 불변이다.
(J.W.괴테)
○ 신과 자연은 완전히, 서로 똑같은 두 개의 위대한 힘이다. (J.C.F. 실러)
○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C.V. 린네)
○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연에는 오류가 없다. (J.드라이든 / 우화)
○ 자연은 말이 없다. (노자 老子)
3. 최춘해의 연작시 ‘흙(1-82)’ 주제별 분류
① 어머니(또는 할머니)를 상징한 작품- 1, 2, 3, 4, 5, 6, 25, 26, 28, 29, 34, 36, 40, 48, 73, 75 모두 16편
② 신비,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 - 7, 10, 18, 33, 38, 41, 44, 52, 54, 56, 58, 60, 64, 65, 67, 68, 69, 71.74, 78, 79, 80, 82 모두 23편
③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 8, 9, 11, 13, 16, 19 모두 6편
④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상징한 작품 - 12, 45, 모두 2편
⑤ 고통을 받아 안는 신을 상징한 작품 - 14, 53 모두 2편
⑥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 - 15, 21, 35, 39, 42, 66, 70, 76, 77, 81 모두 10편
⑦ 순리를 지키는 신을 상징한 작품 - 17, 46 모두 2편
⑧ 안식처임을 상징한 작품 - 20, 42, 50, 51, 72 모두 5편
⑨ 농부(또는 사람)를 상징한 작품 - 22, 23, 30, 31, 32, 35, 37, 47, 49, 55, 57, 59, 61
모두 13편
⑩ 고향을 상징한 작품 - 24, 27, 43, 모두 3편
신비,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어머니를 상징한 작품과 농부를 상징한 작품이다. 네 번째가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으로, 이상은 각각 10편이 넘었다. 그 다음이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안식처, 고향, 뿌리, 고통, 순리를 상징한 작품 순이다.
주제별로 작품 한 편씩만 들어보겠다.
① 어머니(또는 할머니)를 상징한 작품
흙(2)
흙은 너무 지쳐서/겨우내 잠을 잔다./북풍이 몰아쳐도/곤하게 잠을 잔다.//살갗은 얼어도/품속 개구리 씨앗들을/제 체온으로 다독인다./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흙의 버릇이다./풀뿌리 하나라도/감기 들까 걱정이다.//입춘 무렵 흙은/잠이 깨어도/자는 척 누워 있다./품속 어린것들/선잠 깰까 봐.
* 농촌에 살다가 도시 대구로 처음 이사를 와서, 단칸방에 아이들 셋이 엄마와 함께, 곤하게 잠자고 있는 걸 보면서 흙과 연관을 지어 써 보았다. 흙도 어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② 순수성을 상징한 작품
흙 18
가까운 나무가 눈을 뜬다./산들이 일어나서 꿈틀거린다./산의 품에 안겼던/산짐승과 산새들/잠긴 목소리를 고른다./꿩은 어제보다/목청이 더 다듬어졌다./골짝 물은 제 갈 길을/찾아서 흐를 줄 안다.//산새소리, 산짐승 소리/골짝 물소리……./새벽마다 맑은 소리/들으며 사는 산은/언제나 싱싱하다./세월은 흘러도/새벽마다 젊어진다.
* 산골짜기에서 살면서, 새벽에 일어나 산이 좋아 산을 오르며 산짐승 소리, 산새 소리, 물소리들이 순수함을 느꼈다. 산은 더욱 싱싱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도 산이 더 젊어지는 것은 새벽마다 맑은 소리를 듣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어울려 있는 자연이 신비스럽다고 느꼈다.
③ 토속 신을 상징한 작품
흙 8
우리 할머니 살아 계실 때/눈 다래끼가 나면/땅속에 티를 찾아 빼 주셨다.//햇살이 맨 먼저 와 닿는 데서부터/해 뜨는 쪽으로/내 나이만큼 걸음을 세어 가서/땅속에 숨은 티를/용케도 찾아내셨다//땅속에 티가 빠지면/내 눈이 시원하다./내 눈 다래끼도 없어진다.//날을 받지 않고/매흙질이라도 하고 나면/누구든 한 사람은 앓았다./흙의 비위를 거스렀기 때문이다.//이럴 때 할머니는/손이 닳도록 빌어 주셨다.//할머니는 지금/흙과 한 몸이 되어서/마음 편히 누워 계신다.
* 내가 어릴 때 할머니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애쓰시던 모습이 머리에 박혀 있었다. 흙을 신으로 섬기며 흙과 더불어 살면서 가족의 건강을 위해 손이 닳도록 빌던 할머니 마음이 곧 흙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④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상징한 작품
흙 45
제 갈 길을 찾은 강물/저 바위가 저렇게 닳도록/오로지 한길로만 흐른다.//한 우물을 파라는/강물의 말씀//삼십 리 읍내장/나룻배를 건너/발이 부풀도록 걸어 다녀도//밤낮으로 흘러 주는/강물이 고마워/붙박이로 사는/낙동강변 횟골 주민들.//잉어, 뱀장어, 가물치, 은어……./갖가지 물고기를 품어서 키우는/엄마 같은 강물의 마음.//강물 같은 마음으로/인정을 나누며/대를 이어/강 마을 횟골에서만 산다.
* 불편한 오지의 낙동강변 횟골 주민들이 대를 이어 붙박이로 사는 것은 갈 길을 찾은 낙동강 강물의 말씀 덕일 것이다. 한 우물을 파라는 강물의 말씀을 나도 들을 수 있었다. 인정을 나누며 사는 것도 갖가지 물고기를 품어서 키우는 엄마 같은 강물의 마음을 닮아서일 것이다. 자연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와 같은 마음을 가르쳐 준다고 느꼈다.
⑤ 고통을 받아 안는 신을 상징한 작품
흙14
가슴을 터놓고/궂은 일, 서러운 일/다 받아들인다.//밤이 오면/어두움을 받아 안고/날이 새면/햇빛을 받아 안는다.//봄날 새싹들의/발돋움하는 소리도 듣고/살을 에어내는 추위에/손끝이 아려 울부짖는/나무들의 소리도 듣는다.//서러운 달빛 이야기도/논 물 속으로 받아 안는다./즐거운 이야기보다/괴롭고 어두운 이야기들을/더 많이 품고 있는 흙/걱정이 쌓여서/땅속은 비좁다.
* 고통을 받아 안는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와 석가여래가 고통을 받아 안았기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있다. 그보다는 못하지만 우리 둘레에도 온갖 허물과 원망을 도맡아 받아 안고 살아가는 맏며느리나 단체의 중역들이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어렵게 사는 이들을 위해 궂은 일 험한 일을 도맡아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흙도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⑥ 한 가족임을 상징한 작품
흙․15
마당에 나가면/산들이 빙 둘러선다.//내가 태어나던 날도/그랬을 것이다.//쓸쓸한 날이면/불러서 말벗이 돼 주고/어쩔까 망설이다가/마당에 나가면/용기를 북돋아 준다.//길을 가다가/등산을 하다가/어려운 고비에 이르면/엄숙한 자세로/굵직한 목소리로/끈기가 있어야 한다고/타일러 준다.//내가 상을 받은 날은/함박으로 웃어 주었다.
* 산은 늘 내 둘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우울할 때는 위로를 해 주고 기쁠 때는 함께 즐거워해 주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⑦ 순리를 지키는 신을 상징한 작품
흙․17
동산에 먼동이 턴다./오늘도 새벽닭이 울어 준다.//오늘은 춘분/해마다 맞는 날이다.//올해도 어김없이/복숭아꽃, 살구꽃은 필 게고/개구리도 울어 줄 게다./흙은 사랑의 손길로/보리 싹을 보듬어 줄 게고/나무가 목이 마르면/하늘은 비를 내려 줄 게다.//올해도 물은/높은 데서 낮은 데로/흐를 것이다./병아리 귀여운 모습을/얼른 보고 싶어 해도/3 주일을 품고 있어야/껍질을 벗는다./장독간 난초 싹이 보고 싶어/마음을 서둘러도/제때가 돼야/밖으로 내보내는 흙.
* 내 마음이 아무리 조급해도 자연은 내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자연은 절대로 순리를 어기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⑧ 안식처임을 상징한 작품
흙 20
해님이 하루 일을 마치고/서산 넘어 갈 때면/들에서 일하던 농부도/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간다.//하늘을 날던 새들도/둥지를 찾아들고/해를 향해 가지를 뻗쳤던/나무와 풀들도/흙으로 마음을 돌린다.//풀밭에 고삐 매인 염소도/집으로 돌아가고파/매해해-/소리를 지른다.//집으로 돌아가는 건/즐거운 일/지금은 모두가/집으로 돌아가는 시각//날마다 돌아가는 집은/잠시 머무는 여관/긴 여행을 마치면/마지막엔/흙으로 돌아간다.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행복하다. 하는 일이 고돼도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즐겁다. 흙은 안식처인 집이 된다.
⑨ 농부(또는 사람)를 상징한 작품
흙 22
햇볕 굶주려/속 살 못 채운 벼 이삭/핏기 잃은 얼굴로/하늘 향해 고개 꼿꼿이 들고/뜨거운 햇살 내리기를/목마르게 기다립니다./오늘도 구름이 덥혔습니다./온 여름 하늘을 가리고도/벗겨질 줄 모르는 구름.//제비들이 전봇줄에 모여 앉아/강남 갈 의논을 하고/성급한 코스모스가/풀죽은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가을 풀벌레 소리 들리면/조바심이 납니다.//하느님!/지금부터라도 구름을 거두시고/햇살을 내려주소서/무서리가 내리기 전에/속살을 채워 주소서/과일 알알이/단물이 들게 하소서.
* 일조량이 모자라서 곡식이 제대로 익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농부들은 애타게 햇볕을 기다렸다. 곡식을 안고 있는 흙도 농부 못지않게 곡식과 과일이 익게 해 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⑩ 고향을 상징한 작품
흙 43
고향이 나를 손짓하여/되찾는 흙/어머니처럼/덥석 안아 주는 흙/더워 오는 가슴.//흙의 품안에 안긴/할아버지 할머니/편안하고 만족스러운 듯//이웃도 일가친척 인정도/엷어졌다 두터워졌다 하는데/한결같은 건 고향 흙뿐.//한낱 풀씨, 한낱 솔 씨도/뜨거운 사랑으로/안아 키웠구나./새로 태어난 빽빽한/소나무, 감나무, 밤나무들이/손을 흔들어 반겨 준다.
* 객지에서 살다가 고향에 가니 낯익은 산과 들, 나무와 풀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고향 흙을 밟으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위에 들은 작품들은 좋은 작품이라고 든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보기를 들었을 뿐이다.
4. 전망
흙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흙이 있는 농촌이 배경이 되어야 하는데, 농촌 아이들은 별로 없고, 거의 도시 아이들이다. 도시 아이들은 흙과 더불어 살지 않기 때문에 흙을 소재로 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가 없어 외면당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또 지금은 농작물의 종류도 달라졌고 농사짓는 방법도 바뀌었다. 사는 방법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흙)을 소재로 쓴 것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건져 올린 작품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단테가 자연은 신의 예술이라고 한 것처럼, 자연은 예술품이 생산될 수 있는 원천이라고 볼 때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자연을 소재로 쓴 작품을 많이 읽게 되면 자연을 사랑하고 서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
Ⅲ.수상 작품
제3회 방정환 문학상 심사기
금년부터는 문학상 운영위원회 측의 새로운 결정에 따라 예비 심사 조건에서 연령이나 등단 연도 등을 배제하였다. 예심위원들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본지 자료실에서 그 동안 수집한 88년 이래 발행된 각종 개인 작품집들 중에서 권영상, 김삼진, 김정일, 문삼석, 박경종, 신현득, 엄기원, 염근수, 오순택, 장수철, 조유로, 최일환, 최춘해 등 제씨의 동요 동시집13종, 동화, 소설집 21종을 심사 대상으로 선정하였으나 동극부문과 평론 부문은 해당작이 없어 유보하기로 하였다. 예심위원들은 이것들을 모두 정독하고 토론을 거쳐 다음 작품을 추천하였다. 동요, 동시집 -문삼석 <바람과 빈 병> 최춘해 <뿌리 내리는 나무>
심사 소감
최춘해 시인의 <뿌리 내리는 나무>는 그의 회갑 기념으로 펴낸 시선집으로서 그의 시 세계를 조망하는 데 아주 효과적으로 꾸며진 것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이미 알려진 대로 근본(뿌리)을 소중히 여기는 데(찾기, 알기, 지키기) 있다. 특히 연작시 ‘흙’은 그의 평생 대표작이며 우리 동시사에 기리 남을 수 있는 명시편으로 꼽힐 수 있는 작품이다.
심사위원 : 신현득(위원장) 박경요 김종상 이재철
제17회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작품> 1984년 10월빈 새둥지 아침 숲속 흙 산비탈의 참나무 빈 새둥지 최춘해 아기새가 떠나간 보금자리엔 따슨 얘기들이 흥건히 괴어 있다. 알에서 아기새가 태어나기까지 피를 말리며 온몸으로 알을 품고 있던 어미새. 내 배는 고파도 먹이는 아기새 부리에 넣어 주고 보송보송한 털 파란 하늘이 괸 말간 눈동자 동글동글한 샛노란 노래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그것만을 보람으로 여기던 어미새. 아기새는 자라서 어디론지 떠나가고 외로운 어미새는 친구 찾아 나들이 간 지금 빈 새둥지엔 찬 바람이 썰렁하다. 아침 숲속 최춘해 솔잎에서 나온 싱싱한 바람으로 마음의 티를 닦아낸 산새들. 맑게 닦인 목소리가 굴러 나온다. 높은 산 숲속을 지나온 햇볕은 더 밝고 더 따스하다. 솔숲 바람에 닦인 하늘은 더 맑다. 숲속 아침 공기는 코가 찡한 박하 냄새. 어둠이 걷히면 하룻밤 못 본 사이가 서로 반가워서 눈짓으로 몸짓으로 숲속 식구들 인사를 나눈다. 차 소리,기계 소리가 없는 여기서는 목소리가 부드럽다. 산새가 지저귀어서 더 고요하다. 낮 닭이 울어서 더 고요하다. 송아지 울어서 공기가 더 부드럽다. 굽이치는 낙동강 꼬부랑 오솔길. 높았다 낮았다 한 산봉우리. 가지런하지 않아서 더 어울린다. 나무는 가지를 뻗고 싶은 대로 뻗고 칡 넝쿨은 가고 싶은 대로 산을 긴다. 흙 최춘해 돌아간 해 늦가을 흙은 지쳐서 쓰러졌었다. 한 송이 꽃, 한 포기 풀 곡식 낟알 하나라도 품속에서 태어난 건 다 아끼고 싶었다. 기름기가 다 마를지라도 더 넉넉하게 젖꼭지를 물려 주고 싶었다. 지친 채 누웠어도 가물에 못견뎌 쭉정이로 돌아온 풀씨가 가슴 아팠다. 산비탈의 참나무 최춘해 주욱주욱 널씬하게 곧게 자랄 것이지 이리 굽고 저리 굽고 보기 싫은 혹부리. 못난 나무라고 흉을 봤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여름 버티다 못 배겨 참나무는 쓰러졌다. 딛고 섰던 푸석돌이 와르르 무너졌다. 돌틈 사이사이 뻗친 실뿌리 어렵게 살아온 자취. 돌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려다가 허리가 굽었다. 그러다가 혹이 달렸다. 땀도 무던히 흘렸을 게다. 지금 참나무는 쓰러진 채 뿌리를 공중에 허위적거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다.
<당선 소감>
오늘 아침 해 더 환한 것 같아
해마다 때가 되면 다른 사람의 작품을 세종아동문학상 후보로 추천해 왔지만 정작 내가 수상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꿈만 같아서, 오늘 아침 해가 더 환한 걸 느낀다.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은 여태의 작품을 칭찬하기보다 앞으로의 채찍일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내 목소리를 정리하여 더욱 정진해 보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상을 마련해 주신 한국일보와 심사위원 세 분께 감사 드린다.
Ⅳ. 아동문학 강의 10년 동안의 행복
1. <혜암 아동문학 창간호 서문>
큰 꿈을 품고 꾸준히 활동해주기를
최 춘 해
먼저 창간호가 나오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 창간호를 계기로 혜암 아동문학회가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출발인 만큼 꿈이 부풀어 있고, 의욕도 넘칩니다. 새싹이나 어린이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듯이 이 회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모임입니다. 가정에서 자식을 기르다가, 또는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어린이들을 올곧게 자라게 하자면 질 좋은 읽을거리가 있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아동문학에 발을 들여놓은 분들의 모임입니다. 자신의 명예나 출세 또는 돈벌이를 위한 수단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어린이를 위해 좋은 글을 쓰겠다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습니다.
작년 7월에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 강좌 수강생을 모집하여 8월초에 면접을 하고 한 달 동안 준비 기간을 거쳐 9월 1일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아동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7월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다부진 각오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작품을 보는 눈도 높아지고 작품도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수준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나, 기대한 것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집니다. 등단을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5월부터 투고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아동문예 문학상 당선이 2명, 아동문학평론 신인문학상 당선이 3명 나왔습니다. 아직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망설이면서 투고를 안 하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습니다.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 강좌에서 늘 강조해 오던 첫째 어린이 편에 서서 작품을 쓴다. 둘째 서정을 중요시한다. 셋째 의인화 자체를 동심으로 여긴다. 넷째 어린이들의 삶이 있는 작품에 관심을 둔다. 다섯째 동심의 바탕에서 문학성과 교육성의 조화를 이루게 쓴다. 등의 작품을 빚는 방향은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졸업을 한 뒤에 이 모임은 더욱 활성화되리라 짐작이 됩니다. 의욕이 왕성할 뿐만 아니라 끈끈한 정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얼굴이 보고 싶어 만나지 않고는 못 견딜 것입니다. 다달이 연수도 하고 시화전도 열고, 회보 발간, 작품집 발간 등 다채로운 활동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 아동문학을 꽃피울 많은 시인, 작가들이 이 모임에서 나오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앞으로 우리 나라 아동문학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큰 포부로 그치지 말고 꾸준히 활동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 동안 세계아동문학사와 아동도서사, 동화 감상 교재 등을 제공해 주신 신현득 박사, 그리고 <아동문학 교실>을 도와주신 그루사 이은재 사장님과 구연동화 연구소 이금자 선생님께 고마운 인사 올립니다.
2004년 6월 일
2. <혜암 10호 머리말>
행복했던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동문학교실 강의를 한 10년은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다. 2003년 그루출판사에서 개강을 할 때가 엊그제 같은 데 잠깐 사이에 10년이 흘렀다.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사회에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다. 국록을 받고 사회의 도움을 받아 잘 살았으니 나도 남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동문학 강의뿐이다. 평생 아동문학을 했으니 아동문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안내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강좌를 열어 보려고 복지회관 도서관 등 여러 곳에 강의할 장소를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루 출판사 이은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자기 출판사에서 해 보라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바로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 수강생 모집 기사 보도 자료를 매일신문 영남일보 조선일보 대구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 보냈다. 신문에 기사가 실리자 이외로 수강신청이 많이 들어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여간 즐겁지 않았다. 휘파람을 불며 강의 준비를 했다. 신현득 교수께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강의 하던 교재를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세계아동문학·아동도서사』, 『동화작품집』복사한 것을 보냈다. 동시 감상 자료는 내 나름으로 만들었다. 정서법은 1988년 한글맞춤법이 개정될 때 문교부에서 발행한 『편수 자료』를 활용했다. 연간 계획을 만들고 월간 계획을 만들어서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 카페에 올렸다. 감상 자료는 문제를 만들어서 과제를 주고, 매주 작품 동화나 동시를 한 편 이상 써오게 했다. 또 매일 일기를 써서 검사를 맡게 했다. 일기는 문장력을 기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동시 동화 감상과 작품 합평을 한 주일씩 바꿔서 했다. 사전 찾기 지도와 정서법, 시점, 원고지 쓰기, 원고 교정법 등 기본적인 것부터 상세하게 지도했다. 우리들의 마음가짐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우리는 정으로 산다. 둘째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셋째 계속하면 열매를 맺는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사랑이 있으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들이 쓰는 작품에도 사랑이 바탕에 깔려야 독자들이 감동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낯선 얼굴들이 서먹하게 만났지만 날이 갈수록 정이 들어서 졸업을 할 때는 정든 얼굴 정든 목소리를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10년을 지나고 나니 등단한 사람도 많고 책을 내서 세상의 주목을 받는 작가도 여러 사람이 되었다. 수료생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전국 신인 중견작가들 가운데서 한 사람 뽑는 문학상도 받았다. 기대 이상으로 우수한 작가가 많이 나오게 돼서 여간 기쁘지 않다.
10년을 되돌아보면 한 마디로 무척 즐거운 나날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강의 시간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30분 전에 도착해서 수강생들을 맞이했다. 수강생들 얼굴이 보고 싶어서 일찍 가지 않고는 못 배겼다. 어서 월요일, 화요일 강의 날이 다가오기를 약속한 애인처럼 기다렸다. 수강생들이 써낸 동시, 동화 작품을 읽고 평과 지도 말을 쓰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즐겁게 썼다. 귀찮다거나 짐스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차츰 작품이 향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내 글이 향상된 것보다도 더 기뻤다. 또 수강생이나 수료생 가운데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뽑히거나 우수 도서나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받은 것 이상으로 들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10년 동안 계속되었으니, 나는 그 동안 참 행복했었다.
이제 행복했던 생활도 6월로 끝이 난다. 7월부터는 수강생을 못 만난다. 강의 날을 앞두고, ‘0월 0일은 정다운 얼굴 만나는 날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세요. 우리는 정으로 산다.’는 문자메시지도 이제는 보낼 떼가 없다. 강의를 시작하는 첫마디로 ‘한 주일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인사를 하면 반가운 모습, 정다운 목소리, 해맑은 눈빛으로 ‘예’하고 화답해 주던 얼굴들을 볼 수가 없다. 월요일, 화요일이면 시계 바늘처럼 가방을 챙겨서 나오던 그루사 강의실에도 이제는 나올 필요가 없다. 이심전심으로 배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정을 주고 싶어 하던 얼굴들이 눈앞에서 멀어졌다. 세월이 원망스럽고 나이가 원망스럽다. 그러나 10년 세월이 나를 행복하게 했을 뿐 아니라 보람 있는 세월이었기에 하느님께 고맙게 생각한다.
수료생 중에 문학으로 빛을 본 분이 많은 것도 보람이지만, 고전이나 선배들의 문학 작품을 감상하면서, 또는 일기를 쓰고 자기 작품을 쓰면서 세상을 보는 마음의 눈이 밝아졌다. 그래서 약자를 위로해주고 남을 배려해주는 등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 즉 사람답게 살아가는 인생관을 갖게 된 것이 또한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생활 방법을 바꿔야겠다. 강의하던 시간을 책 읽는 시간, 작품 쓰는 시간으로 바꿀 작정이다. 그러면서 수료생들이 좋은 작품을 쓰기를 기도하고, 혜암아동문학 교실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돕고 싶다. 좀 더 일찍 강의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 동안 나를 행복하게 해 준 혜암아동문학회원, 난방비, 온방비, 전기세 한 푼도 받지 않고 강의 장소를 마련해 주신 이은재 사장님. 수강생을 모집할 수 있도록 기사를 내 주신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신문사, 교재를 알선해 준 신현득 박사 등 여러분께 머리 숙여 고마운 말씀 올립니다.
2013년 6월 15일
최춘해
2013년 오늘의 동시 문학상
2013.07.16. 11:39 http://cafe.daum.net/cmchoi18/DInx/1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박승우
꽃씨 / 박승우 씨앗은 비밀을 숨기고 있나 봐요. 단단한 몸속에 무엇을 숨겨 두었길래 저렇게 입을 꼭 다물고 있을까요? 채송화 씨앗도 봉숭아 씨앗도 자신의 모습을 꼭꼭 숨기고 있네요. 하지만 비밀 많은 채송화, 봉숭아 꽃씨도 아직은 채송화도 봉숭아도 아니에요. 그냥 작은 꽃씨일 뿐이지요. 꽃씨는 혼자서는 비밀의 열쇠를 열 수 없나 봐요. 흙이 안아주고, 비가 만져주고 햇볕이 따뜻하게 데워줘야지만 비밀의 문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니까요. 흙과 비와 햇볕이 열어 준 비밀의 문으로 초록, 노랑, 빨강, 보라… 예쁜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네요. [당선소감] 두렵다. 어린 아이들의 눈이 두렵고 어른들의 생각이 두렵다. 무엇보다 내가 두렵다. 내게 동심이 남아 있는지 의문스럽고 좋은 시를 쓸 수 있을지 두렵다. 부끄럽다. 동시를 쓰기 시작한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많은 작품을 쓰지도 못했으며, 많은 작품을 읽지도 못했다.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데 덜컹 당선이 되었다. 동시를 쓰고 싶었던 것은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은 퇴행 의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동안 늘 따뜻함이 그리웠고 다정함이 그리웠다. 흙과 풀과 꽃 냄새가 그리웠고 천진한 눈과 목소리가 그리웠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안고 시작하는 길이다. 먼저 내 마음속에 잃어버린 동심을 찾고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 내 시의 토양이 되어 준 나의 유년과 흙, 풀, 꽃, 별…… 그리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동시를 지도해주신 최춘해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부끄러운 작품에 장미꽃 한 송이를 얹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심사평] 600여 편의 응모 작품에 대한 심사 관점을 ‘소재 선정의 참신성’, ‘시적 메시지의 적절성’, '시적 표현의 독창성’, ‘동시로서의 눈높이’ 등을 중점으로 하였다. 먼저 응모 작품 전체를 개괄적으로 읽으면서 심사 관점에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한산월·현경미·곽재하·김미숙·이윤경·이현주·이윤진·고하늘·박미선·박승우 씨 등 열 분의 작품을 뽑았다. 다시 열 분의 작품 전체를 몇 차례 거듭 읽으면서 최종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현경미 씨의 ‘사과에게’, 곽재하 씨의 ‘겨울나무가 딱따구리에게’, 이윤경 씨의 ‘사과나무’, 박승우 씨의 ‘꽃씨’ 등 네 편이었다. 현경미 씨의 ‘사과에게’는 시의 구조가 매우 짜임새가 있었으며 표현의 독창성도 돋보였으나, 시적 메시지가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치우친 것이 흠이었다. 그리고 곽재하 씨의 ‘겨울나무가 딱따구리에게’는 시적 메시지는 뚜렷하나 독자의 공감대 형성과 시적 표현에 있어 함축성이 부족한 것이 결점이었다. 이윤경 씨의 ‘사과나무’는 시 내용 속의 아버지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시적으로 형상화 한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시의 메시지가 동시의 주독자인 오늘날 어린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과 지나치게 비약된 비유의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박승우 씨의 ‘꽃씨’는 우리의 생활에서 흔한 소재로써, 다소 진부하지만 동시의 주독자인 어린이가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적절한 메시지를 담아서 표현한 시적인 형상화에 마음이 끌렸다. 또한 ‘꽃씨’의 주변 환경인 ‘흙’·‘비’·‘햇볕’ 등 자연 사물 사이의 이치를 조화롭게 관계지운 것과 안으로 품고 있는 ‘꽃씨’의 신비로움을 적절하게 나타낸 시적 표현이 매우 돋보였다. 그리고 박승우 씨가 같이 보내 온 다른 열편의 동시도 오늘날 우리들의 삶과 함께하는 친근한 소재들로, 그것을 다루는 시적인 형상화가 전반적으로 뛰어났다. 따라서 박승우 씨의 ‘꽃씨’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계속 정진하여 훌륭한 동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한다. 권영세(아동문학가)
200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현경미
창덕궁에서
현경미
왕의 정원
이곳에 서면 모두가 왕이다
왕이 되고 싶은 참새
바람도
휘, 정원을 돌아 나간다
육백 년 전 바람은
돈화문 드나들며
무슨 생각했을까?
낙선재 꽃 계단
꽃담 너머
누구라도 서 있을 것만 같다
덩그러나
건물만 나겨놓고
옛 사람 모두
어디 갔나?
역사가 부른 거야
분명, 심심했던 거야
“무엇에게나 배우며 살것” [동시-창덕궁에서]당선소감 2007-01-02 일 11 면기사 6학년 졸업 무렵, 담임선생님께선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재능이 있으니 졸업 후에도 글공부를 열심히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때 그 말씀의 영향력을 나는 지금껏 실감하고 있다. 내 아이, 새해와 고은이를, 교회학교 아이들을, 글쓰기 공부방 아이들을 만난 것처럼 나는 동시를 만났다. 동시는 맑고 투명한 것이 내가 만난 무수한 아이들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점점 가까이 다가가 얘기하고 웃고 떠드는 일이 즐거워졌다. 그래서 늘 동시를 생각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요 며칠은 그랬던가? 외롭고 쓸쓸하기도? 외로움아, 쓸쓸함아, 너희도 때론 나의 좋은 친구지. 당선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 얼굴들이 많았다. 돌아보면 스스로 나됨이 아니라 함께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기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심사하신 선생님, 대전일보 관계자님, 성실한 삶의 본을 보여주신 혜암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어디서나 무엇에게나 배우며 살겠습니다. 낮에 해와 밤에 달같이 절 돌보시는 주님, 감사드려요. 함께 기뻐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압축미ㆍ해석력등 뛰어나” [동시-창덕궁에서] 심사평 2007-01-02 일 11 면기사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의 격차가 매우 심했고, 독자인 어린이가 아닌 어른의 눈으로 대상을 관찰한 시들이 많아 아쉬웠다. 그러나 다음 5편의 작품은 이번 동시 부문의 큰 수확이었다. ‘넓게 넓게 모인다’(최효순)는 시어를 다루고 시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능력이 뛰어났다. 아빠가 생일 선물로 넘어지는 법을 선물했다는 ‘생일선물’(선단)은 ‘자존심’, ‘기술’ 등 몇몇 시어가 거슬린 것을 제외하면 주제가 탄탄하고 형상화하는 기법이 뛰어났다. ‘몸에 좋은 건 달다’(이숙경)는 문답 형식으로 쉽고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러나 ‘씀바귀’를 먹는 대상으로 인식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른봄’(이무완)은 산속에 있는 ‘코딱지만한 아기별 꽃’을 나비는 어떻게 알아냈고 찾아왔을까라는 테마를 형상화시킨 따뜻한 시다. 그러나 소박함이 결점으로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현경미씨는 작품 11편을 냈는데, 모두 시의 형상력과 해석력이 돋보였다. 특히 ‘편지’와 ‘창덕궁에서’의 작품도는 뛰어났다. ‘편지’는 가슴을 활짝 열게 해주는 느낌으로 마치 햇살 한 묶음을 받아든 기분의 시였다. 시어를 조탁하는 신선한 기술과 하루 동안의 화자의 삶이 부녀간의 정으로 잘 형상화됐다. 그러나 ‘편지’를 제치고 ‘창덕궁에서’를 선정한 이유는 역사의 흥망성쇠를 재미있게 풀어낸 상상력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시가 갖는 본질인 시적 압축미와 대상에 대한 해석력 역시 뛰어났다. <심사위원 권영상>
2012.06.22. 12:05 http://cafe.daum.net/chchoi18/576B/552
2012.06.22. 12:05 http://cafe.daum.net/chchoi18/576B/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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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드디어 셋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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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내어 운다.
크게 움직입니다.
잘 보는 동주가.
나도 날마다 물어봅니다.
들어주고 바라봅니다.
고민이 있어요.
예전엔 하루에만 수백 통의 편지를 먹던 때가 있었어요.
연말이면 정말 배탈이 날 지경이었어요.
나를 찾는 사람은 아이에서 어른까지 구별이 없었답니다.
거리에서도 제일 돋보였거든요.
요즘도 더러 배부를 때가 있긴 해요.
정 담뿍 담긴 편지 한 통이 훨씬 맛 나는 것 같아요.
갈수록 힘이 빠져요.
쪼르륵 배곯는 날만 늘어나니 말이에요.
거리에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마다 자꾸만 외롭답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낸 응모작들을 기대에 찬 눈으로 읽었다. 그러나 좀처럼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뒤늦게 몇 편이 눈에 들어와 안도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 수준이 낮았다.
눈에 들어온 '우체통'(김미경) '시오리 자연교실'(박민) '전용 비행기'(홍지민) '급식표'(정나라)는 소재나 표현,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다른 응모작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 네 편 가운데 '전용 비행기' '급식표'는 '우체통'이나 '시오리 자연교실'에 비해 시의 내용이나 깊이에서 부족함을 보여 일단 제외했다.
남은 두 편 가운데 '시오리 자연교실'은 시의 화자인 시골 아이가 오 리나 되는 등굣길을 오가는 도중에 스스로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을 차분하게 진술한 작품이나, '우체통'보다는 내용이 단조롭고 구성이 느슨해서 시적 밀도가 떨어지는 게 흠이었다.
한 가지 언급해 둘 것은, 당선자의 응모작 중 한 편이 의외로 태작이어서 심사자에게 불안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당선자는 이 점을 꼭 유념해 주었으면 하며, 정진을 바란다.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평소처럼 무심히 지나치려다 나도 모르게 번호를 눌렀다. 놀랍게도 발신처는 매일신문사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금방 반응하는 성미가 아니라 당선 소식을 참 담담하게 들었다. 당선 소감을 쓰는 지금에야 조금 실감한다. 앞으로 이 일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다. 내내 한 번씩 웃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동시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가끔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때가 있다. 덩달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당분간 이 신기한 녀석을 졸졸 따라다녀야 될 것 같다.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시험에 합격한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만 않다. 부족한 게 많다. 더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지 싶다. 언제나 듣기 싫은 얘기들 잘 들어주는 뚱! 수고했다. 나에게 일어난 특별한 일이 우리 가족한테 조금이라도 행복 촉매제 노릇을 하길 바란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첫댓글 선생님, 이번 출판 기념회가 종강이셨습니까? 늦었더라도 갔어야 할 일인데...
잘 살아오신 흔적들 위에 다시 움트고 꽃피우는 모습들을
말없는 흙 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 보실 선생님, 순수한 동심을 사랑 하시는
정말 훌륭한 시인으로 그리고 스승으로 사표가 되셨습니다.
많은 이들과 함께 드리는 사랑과 존경 속에 늘 건강하시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