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破字)
파자破字는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치거나 하여, 글자를 맞추는 놀이를 말한다. 탁자(拆字)라고도 한다. 생(生) 자를 풀어, 소[牛]가 외나무 다리[一] 위에 서 있는 자라 하는 따위다. 어미가 갓 쓰고 조개 줍는 자는 실(實) 자다. 나무 위에 서서 보는 자는 친(親) 자다. 이런 파자를 이용하여 한자를 재미있게 학습하는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또 한자 놀이에는 한자의 모양이나 뜻을 빗대어 묻고 답하는 방법도 있었다.
들기 좋고 놓기 좋고 먹기 좋은 자는 달 감(甘) 자라 하는 것이나, 집 안이 고요한 자는 아들 자(子) 자라 하는 것 따위다. 감(甘) 자는 양쪽 손잡이가 있어 들거나 놓기 좋고, 맛이 달콤하니 먹기가 좋아 그렇고, 아들이 자면 집 안이 고요하니 그렇다는 뜻이다.
삼국지에, 동탁이 운을 다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동요가 나온다. 아이들이 천리초하청청(千里草何靑靑) 십일상부득생(十日上不得生)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이 또한 그 속에 파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천리초는 동탁(董卓)의 董[千+里+艹]을 파자한 것이고, 십일상은 동탁의 卓[十+日+上]자를 파자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천리초는 얼마나 푸를꼬? 십일을 더 살지 못 할 것이네'의 뜻이지만, 기실은 동탁은 열흘을 더 못 살고 곧 죽을 것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이와 같은 파자와 같은 놀이를 통하여, 그 어려운 한자를 재미있게 익히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글 전용 시대인인 오늘날도, 이 파자 수수께끼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진서를 잘 안다고 뽐내며 보통 사람을 얕보는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에게 평소 무식하다고 핀잔을 자주 당하던 사람이, 복수를 하고자 파자 놀이로 시험을 걸었다. "입 구(口)에 점 복(卜)을 한 것이 무슨 자냐?"고 물었다. 한자에는 그런 글자가 없다. 그러니 제 아무리 유식한 선비라도 답을 할 수가 없어, 그게 무슨 자냐고 되물었다. 이 사람 왈, 선비가 그런 쉬운 글자도 모르고 그렇게 뽐내었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그건 '마' 자"라고 하였다. 속은 것에 분한 선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한 번만 더 문제를 내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그 사람은, "또 물어도 모를 텐데." 하고 능청을 떨면서, "여섯 륙(六) 자 밑에 한 일(一) 자 한 것이 무슨 자냐?"고 물었다. 선비가 퍼뜩 답하기를, " '츠' 자 아니냐?"고 하였다. 그러자 이 사람이 점잖을 빼면서, "설 립(立) 자도 모르는 놈이 무슨 선비라고……." 하는 것이었다.
또 이 파자를 이용하여 점을 쳤는데, 이를 파자점 혹은 탁자점(拆字占)이라 한다.
임신한 두 부인이 아들인지 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치러 가니, 점쟁이가 초初 자를 내보이며 짚으라 하였다. 한 부인은 초(初) 자의 왼쪽, 의(衣) 자 부분을 짚고, 또 한 부인은 오른쪽, 도(刀) 자 부분을 짚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의(衣) 자를 짚은 여인에게는 딸을 낳을 것이라고 하고, 도(刀) 자를 짚은 여인에게는 아들을 낳겠다고 하였다. 옷을 만드는 것은 여자의 몫이니 딸을 낳겠다고 하고, 칼은 사나이가 전장에서 휘두르는 것이니 아들을 낳겠다고 한 것이다.
또 사내 두 사람이 점을 보러 가니, 점쟁이가 일(一) 자를 보여주며 짚어 보라 하였다. 한 사람은 一 자의 첫머리를 짚고, 한 사람은 一 자의 끝 부분을 짚었다. 그러자 점쟁이가 말하기를, 먼젓번 사람은 사(死) 자의 첫머리를 잡았으니 죽을 것이라 하였고, 두 번째 사람은 생(生) 자의 끝 부분을 잡았으니 살 것이라 하였다. 다 같은 一 자지만 한 사람에게는 사(死) 자의 첫 획을, 다른 한 사람에게는 생(生) 자의 끝 획을 적용하여 운을 점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점이란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아닌가 싶다.
점쟁이가 말하는 운을 믿을 건 못된다. 그러나 운 자체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어떤 이는 운이라는 말만 하면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다. 또 운명론은 약한 자의 변명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70평생을 살아보니 운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미국의 어느 공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75%는 운이고, 25%는 노력의 결과라고 하였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도 있으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을 상도 싶다. 팔자라는 말이 있다. 우리 조상들이 수없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가 담겨 있는 말이다. 옛말 틀린 데가 없다는 말과 같이, 선조들이 턱없이 지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
성인들 또한 인연 또는 업(業)이라는 가르침으로, 또는 하늘의 뜻이라는 말로 그 진리를 일깨웠다. 우리를 속이려고 아무렇게나 지어낸 말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아도, 시작한 일이 의외로 어렵잖게 잘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그것을 두고 때와 여건을 맞추지 않았거나, 방법이 틀려서 그렇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상책이었다. 그 시와 때와 방법이란 것 자체가 인력으로 가늠할 수 없는 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에도,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란 말이 있다.
이로 보면, 운은 운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 생각한다.
어부들은 하나같이 고기가 잡히고 안 잡히고는 용왕님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 안 잡히면 내일 잡힐 것이라 생각하면서 편안한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유익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