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00년, 피타고라스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모든 직각 삼각형은 밑변의 길이를 제곱한 것과 높이의 길이를 제곱한 것을 더하면 빗변의 길이의 제곱이 되었던 것이다. 간단히 말해 a2+b2=c2.
그런데 ‘피타고라스 정리’로 알려진 이 정리가 실은 동양에서 먼저 발견되었다는 사실! 이 정리의 동양판 이름은 ‘구고현의 정리’이다. 중국의 진자가 ‘구고현의 정리’를 발견한 것이 약 3000년 전, 멀리 그리스에서 피타고라스가 그의 정리를 발견하고 증명해낸 것이 약 2500년 전이므로 동양 쪽이 약 500년 앞선 것이다.
감쪽같이 서양의 지적 유산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피타고라스의 정리’(이하 ‘구고현의 정리’로 통일합니다.)가 동양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니, 무척 상쾌한 소식이다. 중요한 것은 ‘구고현의 정리’가 인류 문명의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문명으로부터 전파된 것이 아니라 각각 독자적으로 발견한 것 같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약 3500년 전에 쐐기문자로 만든 수학책에도 이 정리에 대한 것이 나와 있으며, 인도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을 흥미롭게 생각한 「한국 과학사」의 저자 김용운 씨는 만약 지적인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한다면, ‘구고현의 정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지구인의 지성을 알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왜 인류의 4대 문명들이 모두 ‘구고현의 정리’를 발견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독자적으로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각 문명들에 ‘구고현의 정리’가 몹시 필요한 지식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구고현의 정리’가 직각삼각형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함축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공식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고현의 정리’를 이용하면 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로 나머지 한 변의 길이도 알 수 있고, 세 변의 길이를 알면 그 삼각형이 직각삼각형인지의 여부도 따질 수 있다. 따라서 대공사나 건물을 지을 때 직접 측량하지 못하는 거리를 구할 수도 있고, 큰 구조물들을 수직으로 똑바로 세우는 일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서양수학 일변도인 현재와는 달리, 과거에는 문화권마다 ‘구고현의 정리’를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특히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와 중국의 「주비산경」을 비교해본다면,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정리를 증명하고 일반화하려 했고, 중국에서는 정리를 만족하는 세 가지 수의 쌍, 그 중에서도 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의 숫자들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에 주목했다. 동양과 서양에서 기하학의 경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동양은 기하학도 양적인 문제로 생각했다.
그리스 기하학의 특징은 순수 기하학적 요소들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동양의 기하학은 기하학적 문제도 양(量)적인 문제로 생각하여 방정식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기하학의 경향성이 그대로 각 문화의 전체적인 수학관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땅 넓이를 계산하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그리스인은 기하학적으로 그 문제를 다루려고 하고, 동양인은 방정식을 세워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원리 기하(幾何)란 중국의 수학책에서 관용어로 쓰인 말로, 흔히 ‘問爲圓周幾何?(원둘레는 얼마냐?)’와 같이 쓰였다. 즉, 중국에서 기하학이란 양(量)의 문제를 따지는 학문이며 幾何?(양이 얼마냐?)라는 물음에 대한 기초이론이 되는 셈이었다 .
동양은 유용한 기하학에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의 기하학이 점점 일상생활에의 이용과 관계없이 순수한 추상의 세계로 나아갔던 것에 반해, 동양수학은 생활에 유용한 기하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마테오 리치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본」을 중국에 번역하여 내어 놓을 때, 중국어판 제목은 「명리탐(命理探)」이었고, 머리말은 다음과 같았다.
‘기하학자는 주로 사물의 구분을 관찰한다. 그 구분이란 분할하여 수로 나타낸다면 사물이 얼마나 많은가(幾何)를 말한다. 또 합성해서 측도로 한다면 사물이 얼마나 큰가(幾何)를 나타낸다. ’
마테오 리치는 동양인들이 기하학에 대하여 ‘수와 측도의 기본’ 또는 ‘기계를 만드는 기법’ 등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중국인의 구미에 맞는 서문을 쓴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으로 간 사신을 통해 「기하학원본」을 들여왔다고는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정평이 났다고 한다. 양과 유용성을 생각하는 수학관을 가지고 있는 조선의 수학자들에게 논리와 추상으로 쌓아올린 수학책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후에 중인(中人) 수학자들을 중심으로 창조적인 기하학 연구가 활발하게 행해졌지만, 당시 동양 최고의 연구이기도 했던 이상혁의 기하학 책의 제목이 산술관견(算術管見)이었던 것만 보아도 큰 패러다임의 변화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혁 스스로가 산술(算術)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끝내 기하학을 양(量)의 학문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반대로 만약 그리스에 동양의 수학책이 전해졌다면 그들도 역시 매우 난감해 했을 것이다. 동양의 수학책은 기하학적 문제도 양의 문제로 생각하고 대수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보통이었으므로 대수적 문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방정식의 풀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음수 개념이 나오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동양인들은 음양사상을 문화적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양수가 있으면 음수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쉬웠지만 서양인들은 18세기가 되도록 음수의 개념이 나오면 짜증부터 냈다고 한다. 수학가가 되기를 꿈꾸었던 프랑스의 문학자 스탕달은 마이너스 개념을 끝내 이해 못해서 수학을 포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동양 기하학의 기본도형은 원과 사각형
그리고 동양 기하학은 원과 사각형을 기본도형으로 삼았다.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떡보와 사신’에서 이런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떡보와 우리나라를 시험하러 온 중국 사신이 압록강에서 만났다. 떡보는 나라에서 내려준 다섯 양푼의 네모난 떡을 두둑이 먹고 기분이 좋은 참이었다. 멀리서 사신이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보이자, 떡보는 둥근 떡을 먹었냐는 질문인가보다 하고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보였다. 사신은 놀랐다. 하늘이 둥글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땅이 네모나다는 것까지 안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니 틀림없이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 사신은 아주 코가 납작해져서 공손하게 떡보를 대우하였다.
우리나라 구고현 정리의 출발은 둥근 하늘과 네모난 땅에서부터
지금까지 살펴본 동양수학의 특징을 바탕으로 동양판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구고현의 정리’를 착실하게 사용해 왔다. 우리가 신라시대부터 천문학의 기본 교재로 삼았던 책이 중국의 「주비산경」인데 , 이 책이 기본으로 삼고 있는 원리가 구고현의 정리였다. 구고현의 정리에서 ‘구(勾)’는 직각 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 가운데 짧은 변을, ‘고(股)’는 긴 변을, ‘현(弦)’은 빗변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을 생각하며 「주비산경」의 제1편에 나오는 다음의 말을 살펴보자. ‘구를 3, 고를 4라고 할 때 현은 5가 된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여기서 제시된 (3,4,5)의 숫자쌍은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수 중 하나라는 걸 쉽게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구’를 3, ‘고’를 4, ‘현’을 5로 하는 숫자쌍을 선택했을까? 이것은 동양 기하학의 기본도형이 원과 사각형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원지름이 ‘1’일 때의 원둘레 ‘3’을 ‘구’, 한 변이 ‘1’인 정사각형의 둘레길이 ‘4’를 ‘고’에 대응시킨 것이다. 나머지 한 변은 자연스럽게 ‘현’이 된다.
동양인이 유독 3,4,5의 숫자쌍에 주목했다고 해서 그것이 피타고라스 정리의 특수한 예만 알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2+b2=c2 라는 명제의 보편성은 오히려 실용적인 입장에서 보면 의미가 없으므로, 그보다 활용도가 높은 수치에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다.
「주비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응용문제도 있다.
“막대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태양의 직사광선으로 막대의 그림자가 생기는 거리가 6만 리이다. 그림자의 끝에서 태양까지의 높이를 8만 리라고 할 때 막대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얼마인가?”
이 문제는 <32+42=52>의 형태를 바탕으로 <62+82=102>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구고현의 정리를 일반적인 경우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그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구고현 정리와 첨성대
구고현의 정리는 우리나라의 건축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건축물을 수직으로 세우거나, 직접 측정할 수 없는 거리를 계산하는데 사용하였고, 건축물의 균형미를 살리는 데에도 이용하였다. 특히 「주비산경」이 천문학의 기본을 이루고 있던 신라시대의 건축물 첨성대는 ‘천장석의 대각선 길이 : 기단석의 대각선 길이 : 첨성대 높이=3;4;5’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1. [우리 겨레 수학 이야기] 도서출판 산하/ 안소정 2. [한국 과학사] 스포츠 서울/ 김용운 외 3. [한국 수학사] 수학과 인간사/ 김용운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