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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끼와 까투리
개풍(凱風)-산들바람
凱風自南(개풍자남) : 산들바람 남쪽에서 불어와
吹彼棘心(취피극심) : 저 대추나무 새싹에 스치니.
棘心夭夭(극심요요) : 대추나무 싹 무럭무럭 자라니
母氏劬勞(모씨구로) : 어머님의 노고가 생각난다.
凱風自南(개풍자남) : 산들바람 남쪽에서 불어와
吹彼棘薪(취피극신) : 저 대추나무 줄기를 스친다.
母氏聖善(모씨성선) : 어머님은 성스러움
我無令人(아무령인) : 우리는 모두 불초자식들
爰有寒泉(원유한천) : 차가운 샘물이 있어
在浚之下(재준지하) : 준 마을 아래쪽으로 흘러가니
有子七人(유자칠인) : 아들 일곱을 두시어도
母氏勞苦(모씨로고) : 어머님은 고생 하시네
晛睆黃鳥(현환황조) : 곱고 귀여운 꾀꼬리
載好其音(재호기음) : 지저기는 소리 듣기는 좋아도
有子七人(유자칠인) : 아들이 얼곱이나 있어도
莫慰母心(막위모심) : 어머님 마음을 위로하지 못 하였네
하늘과 땅이 친분을 두텁게 한 후 이어 온갖 것은 번성했다.
그 가운데 귀한 것은 사람이오, 천한 것은 짐승이다.
날짐승이 삼백이면 이것 쫓는 들짐승도 그 정도는 되었다.
그 중에서도 한 화상(畵像)을 골라보면,
의관은 오색이 찬란한 날짐승인데 별호는 꿩이라고 했다.
산과들에 사는 짐승들은 모두가 사람을 멀리하여 울창한 숲이나
푸른 골짜기의 낙락장송(落落長松)을 정자삼아
안팎마을의 뒷밭은 식탁으로 생각하며 살아갔다.
그러다 관 포수(官砲手)와 사냥개에 걸핏하면 잡혀가서
영의정(領議政), 판서(判書)에서부터 크고 작은 수령벼슬아치와
다방 골 어진 센님에 이르기까지 싫도록 장복(長服)하고
빛 좋은 것은 골라내어 사령기(使令旗)의 살대치례와
안방의 먼지 털이며 두루 여러 가지로 쓰이니 그 공덕이 적지 않았다.
한평생 숨은 자치와 좋은 경치만 골라서 구경하려고
흰 구름 벗겨 흐르는 산머리를 훨훨 날라 올라가니
날쌘 보라매가 빙빙 돌며 넘보고,
장대든 몰이꾼은 여기저기서 외치며,
냄새 맡는 사냥개는 이리 뛰고 컹컹, 저리 뛰고 컹컹,
억새풀 포기와 떡갈 나뭇잎을 뒤적뒤적 찾아드니
살아 날 길이 망연하여 사이 길로 돌아가자
수많은 포수들이 총을 메고 둘러섰다.
눈보라치는 이 추운겨울에 배고픈 이네 몸이
어디로 가야 목숨을 유지한단 말인가?
구사일생으로 몸을 피한 후
어느 날 푸른 산 따뜻한 햇볕은 받으며
마을 뒷밭 넓은 들에 혹시 콩이 있을까 하여 갔다.
이때 장끼의 몸치장을 보면 당홍두루마기에 초록 궁초 깃을 달아
흰 동정 받쳐 입고 주먹 같은 옥으로 만든 망건 관자에
열 두자 장목깃대 한 팔에 잡은 풍채가 장부의 기상 부럽지가 않았다.
까투리는 누빈 속저고리에 폭마다 잘게 누벼 아랫도리 갖추어 입고
아들 아홉, 열두 딸년 앞세우고 어서가자, 바삐 가자
넓은 들에 퍼져가며, 널랑은 저골 줍고, 날랑은 이골 줍자.
알알이 콩과 팥은 주울 때, 사람의 공양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하늘로 머리를 둔 온갖 것은 저마다 타고난 녹이 있으니
한번 배불리 먹는 것도 재수라고 점점 주워 갈 때
난데없는 붉은 콩 한 낱이 동 그만이 놓여있었다.
장끼가 하는 말이
「이크! 그 콩 한번 소담하다. 하늘이 주신 복을 내 어이 마다하겠느냐?
내복이니 먹어보자.」
까투리 장끼의 말을 받아 하는 말이,
아직 그 콩 먹지 마오,
눈 위에 사람의 발자국이 있으니 수상한 자취가 역역하오.
앞뒤를 살펴보니 입으로 호호불고 비로 싹싹 쓴 자리에
아무래도 무슨 잔꾀가 있음이 분명하니 그 콩은 먹지 마오.
장끼란 놈 받아서 하는 말이 네 말이 정작미련하다.
동지섣달 바람차고 첩첩이 쌓인 눈이 곳곳에 덮였으며,
이산저산 봉우리에 나는 새 없고 모든 길에
발길이 막혔는데 무슨 사람 자취가 있다고 하나.
까투리 그 말 받아 다시 하는 말이
듣고 보니 그럴듯하나 지난밤 꿈이 크게 불길하여 하는 말이니 알아서 하오.
장끼가 하는 말이
내 간밤에 꿈을 꾸어서 황학을 잡아타고 하늘에 올라가
옥황님께 문안드리니 산림처사로 봉하고 큰 창고 속의 콩 한 섬을
내게 주셨는데, 오늘 이 콩이 바로 그 콩이 아닌가?
옛글에 말하기를 주린 사람은 달게 먹고
목마른 사람은 잘도 마신다. 하였는데 내 주린 배를 채워 보세나.
까투리 하는 말이
그대 꿈이 그러하나 내가 그 꿈을 해몽하면 그지없는 흉한 꿈이오.
늦은 밤 첫 잠들어 꿈을 꾸니 북망산 그늘에 궂은비 내리며,
쌍무지개가 갑자기 칼이 되어 당신 머리를 댕강 베어 내려쳤으니
당신이 죽을 흉한 꿈이오. 제발 그 콩을 먹지 마오,
장끼라는 놈 하는 말이
그 꿈 염려 마오.
춘당대(春塘臺) 알성과(謁聖科)에 문관으로 장원하여
임금이 내린 꽃 두 가지를 머리위에 꽂고
장안에 큰길을 왔다 갔다 할 꿈이니 과거나 힘써보세.
까투리 또 하는 말이
한밤중에 꿈을 꾸니 천근들이 무쇠 가마를 머리에 쓰고
당신이 끝없는 푸른 바닷물 속에 그만 풍덩 빠져 나 혼자
그 물가에서 대성통곡을 하였으니 당신이 꼭 죽을 꿈이오.
부디 그 콩 먹지 마오.
장끼라는 놈 하는 말이
그 꿈 더욱 좋다. 명나라가 다시 일어날 때 구원병을 청하면
이 몸이 대장이되어 머리위에 투구를 쓰고 압록강을 단숨에 건너가
중원 뜰을 다스리고 승전대장이 될 꿈이 분명하오.
까투리 하는 말이 그것은 그렇다 치고 사경에 또 꿈을 꾸니
노인이 높은 자리에 앉고 소년들이 잔치를 베푸는데
스물 두 폭 구름차일을 바쳐 든 장대가 우지끈 뚝딱 부러지며
당신과 내 머리를 덮어씌워 답답해서 죽을 뻔했고
새벽녘에 꿈을 꾸니 낙락장송이 뜰 안에 가득하고
삼테성과 태을성이 은하수를 들렸는데 그중에 한 개의별이
뚝 떨어져 당신을 향해 떨어 졌소.
삼국시대 제갈 무후께서도 오장원에서 운명하실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합디다.
장끼라는 놈 하는 말이
그 꿈 염려 말라, 차일을 덮어씌운 것은 청산에 날이 저문 오늘밤을
화초병풍과 잔디장판에 풀포기 베게삼고, 취 잎으로 요를 깔고
갈잎으로 이불삼아 덮고, 당신과 내가 이리저리 뒹굴 꿈이오.
별이 떨어져 보인 것은 옛날 헌원씨 큰댁마님이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아 튼튼하고 늠름한 아들을 낳았으니
견우와 직녀를 칠월칠석에 서로 만나는 것이라.
당신 몸에 태기가 있어 귀한 자식을 낳은 꿈인데
앞으로도 그런 꿈은 만이 꾸도록 하시오.
까투리 하는 말이
첫닭이 울 때 꿈을 꾸니 색동저고리에 물색치마를 이 몸이 단장하고
푸른 산 푸른 물가에서 노는데 난데없는 삽사리가 흰 이빨을 악물고
와락 달려들어 발톱으로 덮치니 응급 결에 놀라
갈데없어 삼밭으로 달아날 때 작은 삼대는 쓰러지고
굵은 삼대는 춤을 추며 짧은 허리 가는 몸매에 감겨들어 이 몸이
필시 과부가 되어 상복 입을 팔자가 분명하니 제발 이 콩을 먹지 마오.
장끼란 놈 벌컥 화를 내며 두발로 이리차고 저리 차며 하는 말이
꽃 같은 얼굴에 달빛을 짊어진 이 요사스런 년아!
기둥서방 마다하고 외간남자 즐기다가 그것도 오래 살지 못하고
굵은 동아줄로 결박하여 이 거리 저 거리로 북치며 조리돌려
삼목을 씌워 치도곤을 맞을 꿈일 게다.
그런 꿈을 다시 꾸어봐라 정강이를 꺾어 놓을 테니.
까투리 하는 말이
기러기 북쪽으로 울며날 때 갈 곳을 물어 나는 것이 장부의 조심이요.
봉황이 천 길을 떠오를 때 좁쌀은 먹지 않는 것이 군자의 체통 때문인데,
당신께서는 비록 작은 짐승이나 군자의 본능을 받아 체통을 지키시오.
백이숙제의 충성심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장자방의 지혜는 사병벽곡(謝病辟穀)하였는데
그대도 이를 본받아 부디 그 콩만은 먹지 마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네 말이 무식하다. 예절을 모르는데 체통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
안자, 도학님의 염치로도 서른밖에 더 못 살았고
백이숙제가 충성심 때문에 수양산에서 굶어죽고
장량은 사병벽곡으로 적송자를 따라갔으나 체통도 부질없다.
먹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으뜸이다.
보리밥을 문숙이 달게 먹고 중흥천자가 되었고,
홀어머니 식은 밥을 한신이 달게 먹고 한나라의 대장이되었으니
나도 이 콩 먹고 크게 될지 누가 알겠느냐?
까투리 하는 말이
그 콩 먹고 잘된다는 생각 말고 내 말 먼저 들어 보소
잔디 찰방수망(察訪首望)으로 황천부사(黃泉府使)마다하고
청산을 아주 하직할 테니 내원망은 부디 마오.
고서에 이르기를
고집 너무 부리다가 폐가 망신한 이가 몇 명이나 있는 줄 아오?
옛날 옛적 진시황의 몹쓸 고집, 부소의 말 듣지 않고
민심소동 40년에 그 자식 대에 나라 잃고,
초패왕의 어린고집 범증의 말을 듣지 않다가 팔천제자 다 죽이고
얼굴을 들지 못하는 개죽음이 있었고,
굴 삼녀의 옳은 말도 고집으로 듣지 않다가 진무관에 굳게 갇혀
가련하게도 빈산에 홀로 우는 신세 될까 두렵기만 하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콩 먹고 다 죽을까? 옛글에 보면 콩 태자(太子)든 이 마다
오래살고 귀하게 되더라.
옛날 옛적 천황씨는 일만 팔천 살을 살았고,
태호복희씨는 타고 난 성품이 훌륭하여 십오 대를 물려 살았고,
한고조 당태종은 풍진세상을 바로잡아 그 임자가 되었으니
오곡, 잡곡, 백곡 가운데 콩 태자가 제일이라
궁해 빠진 강태공은 그런대로 여든까지 살았고
시중천자 이태백은 고래를 타고 하늘에 오르고
북쪽하늘의 태을성은 별 중에 으뜸이니,
나도 이 콩 달게 먹고 태공같이 오래살고
태백같이 하늘에 올라 태을선관(太乙仙官)될까 하는 도다.
까투리 혼자 경황없이 물러서니 장끼란놈이
콩 먹으러 들어갈 때 열두 장목 펼쳐들고 살래살래 고개 조으며,
차츰 차츰 들어가서 반달 같은 부리로 꽉 찍으니
두 곡괭이 동그라지며 머리위에 치는 소리가 났을 때는
이미 장끼는 덫에 걸리고 말았다.
까투리 하는 말이
저런 꼴을 당할 줄을 마쳐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의 말을 듣지 않아 집안 망하고
계집 말 안 듣다가 몸 망치는 줄을 어찌 몰랐던가.
그때 장끼는 마을뒷밭에 머리 자락 풀어놓고 뒹굴면서
가슴을 치고 일어나 앉아 잔디 풀을 쥐어뜯으며,
애통해서 두발로 땅을 치며 아파하니,
아홉 아들과 열두 딸, 그리고 친구와 벗님네들도 불쌍하다
의논들을 하여 조문애곡 하니 가련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울음소리만 빈산에 가득했다.
까투리 슬퍼하며 하는 말이
빈산에 달빛 밝아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 더욱더 서럽구나.
통감에 이르기를 약은 입에 써야 병에 이롭고
충신의 말은 귀에 그슬려야 바르다 하였으니
당신도 내말을 들었으면 저런 꼴을 당했겠소.
답답하고 불쌍하오. 우리부부 좋은 금실 누구 들어 말하겠소.
슬퍼서 통곡하니 눈물은 흘러서 못이 되고
한심은 비바람이 되어 몰아치니 내한평생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오.
이때 장끼는 덫에 걸려 고통스러운 음성으로 하는 말이
애라 이년요란하다. 후환을 미리 알면 산에 갈사람 누가 있느냐?
앞서 미하고 뒤지면 때를 놓치는데 죽을 놈이 말없이 죽느냐
사람의 죽음도 맥으로 안다고 하는데 나도 죽지 않을까 맥이나 짚어주오
까투리 이곳저곳 맥을 짚어 보며 하는 말이
위 맥은 끊어지고 간 맥은 서늘하고, 사지 맥은 걷어지고 명맥은 떨어지오.
아이고! 이게 웬 일이오, 원수로다, 원수로다, 고집불통이 원수로다.
장끼란 놈 하는 말이
맥은 그렇다 치고 눈의 정기나 살펴보오. 동자부터 온전한가.
까투리 한숨 쉬고 살펴보며 하는 말이
인제는 속절없네, 저쪽눈동자는 첫새벽에 떠나가고,
이쪽눈동자는 지금 떠나려고 파란 보에 봇짐 싸고
곰방대 붙여 물고 길을 떠날 채를 하고 있소.
애고 애고 이내팔자 이다지도 기박한가? 상부(喪夫)도 자주 한다
첫째 낭군 있었다가 보라매에 빼앗기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가고,
셋째 낭군 얻었다가 살림도 못해보고 포수에게 맞아죽고,
이번 낭군 얻어서는 금실도 좋거니와 아홉 아들에 열두 딸을 낳았으나
시집장가 못들이고 목구멍이 원수이지.
콩 한낱 먹으려다 저 꼴이 웬 말인가.
속절없는 이별이 분명 하구나. 아이고, 데고 이네팔자 험악하다.
불쌍해라 우리낭군 나이 많아 죽었는가?
병이 들어 죽었는가? 망신살이 뻗혔는가?
원수 같은 고집 살이 내 남편을 잡아가니 어찌하면 살려낼꼬?
앞뒤에 서있는 자식들은 누가 키우며,
뱃속에든 유복자는 해산구원을 누가하나.
운림초당 넓은 뜰에 백년 초를 심어두고
백년해로 하자더니 3년이 못 지나서 영영이별 하게 되었구나.
저렇게 좋은 푼신 언재다시 만나볼꼬,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이 진다고 한탄마라
너는 명년 봄이 되면 오겠지만
우리 낭군 지금가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민망하다. 민망하다.
이내 홀몸이 민망하다.
한참 통곡을 하는데 장끼라는 놈 한쪽 눈을 뜨고,
자네 너무 서러워말게,
낭군 죽은 네 가문에 장가든 내실수가 분명한데 이말 저말 하지마라.
죽는 놈은 다시 살아나지 않음으로 다시보기 어려우니
나를 굳이 보려거든 내일 아침밥 일찍 먹고 덫 임자 따라가면
김천장(金泉場)에 걸렸거나 그렇지 않으면 감영도나 병영도나 수령도의
창고에 걸리든지 봉물 집에 앉혔든지
사또밥상에 오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혼인집 폐백 건치가 될게다.
내 얼굴 못 보아 서러워말고 자네 몸 수절하여 정열부인(貞烈婦人)되어주게
불쌍한 건 이내신세 우지마라, 우지마라, 내 까투리 우지마라.
애매한 자부의 간장이 나녹는다.
네 아무리 서러워하나 죽는 나만 불쌍하다.
장끼란 놈이 죽기 전에 마지막 힘을 다해 버럭버럭 기를 쓰나
살길이 전혀 없고 털만 쑥쑥 다 빠졌다.
이때 덫 임자 탁 첨지는 망을 보다가 쥐가죽 외투를 우그려 쓰고
지팡이를 들고 허위적 허위적 달려들어 장끼를 빼어들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춤을 추며 하는 말이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남산에 푸른 골짜기에 물 먹으로 네가 왔나?
남산에 활짝 핀 복숭아꽃 즐기려고 네가 왔나?
먹는 것에 너무 욕심이 많으면 몸 버리는 줄 모르고
콩 하나 먹으려다 녹수청산에 뛰놀던 너를 내손으로 잡았구나.
산신님께 지성 드려 네 처자식을 다 잡아버리겠다.
장끼의 비뚤어진 혀를 빼내어 바위위에 얹어 놓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아까 놓은 저 꿩 틀에 까투리 마져 치게 하여 주옵소서
산왕대신님 전에 비나이다.
꾸뻑꾸뻑 절을 하고 나서 탁 첨지가 산을 내려간다.
까투리는 탁 첨지가 가고난 후 바위위에 얹힌 털을
울며불며 찾아다가 칡잎으로 소렴하고
댕댕이로 매장하고 원추리로 명정 써서
소나무에 걸어놓고 밭머리 사태 진 양지쪽에 산역하여 하관하고
산신제와 불신 제를 지내기 위하여 제물을 차릴 때에
가량 잎에 이슬을 받은 제주(祭酒)와 꿀밤으로 점심차라고
도토리 찬 삼아 담아놓고 소 새 대로 수저삼아 일가친척 불러다가
형편대로 그럭저럭 차려놓고 의관 좋은 두루마기는 초헌관이 되었고
물찬제비는 접빈객이 되어있고 말 잘하는 앵무새는 진설을 맡아하고
따오기가 꿇어앉아 축문을 읽었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까투리 감소고우
현벽 장끼학생부군 형귀둔석 신반실당 신주기성
복유전령 사구종신.
따오기 목청은 침통했다.
이때 마침 상을 물릴까 말까 주저할 때
소리 개 한 마리가 날아다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굽어보고 하는 말이
어느 놈이 맏상주냐? 내가 한 놈 데려 가겠다.
하고 달려들어 두발로 꿩 새끼 하나를 툭 차 가지고
하늘 높이 떠서 층층절벽에 올라앉아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리며
하는 말이 감기로 앓아누워 한 열흘 주렸는데
오늘에야 천하에 맛좋은 끼니를 얻었구나.
문어, 전복, 해삼 찜은 재상의 제일미요.
전초, 자반, 송엽주는 수재 중에 제일미요.
십년일경 해궁도(海宮挑)는 서왕모의 제일미요.
기나긴 봄날 약산 주는 상산사호 제일미요
절로 죽은 강아지와 꽁지 안 난 병아리는 연장군의 제일민데
크나 작으나 꿩 새끼하나 생겼으니 주린 김에 먹어나 보자!
소리 개 너울너울 춤을 추다가 아차하고 돌아보니
꿩 새끼는 바위아래 떨어져서 자취도 없이 숨어버렸다.
속절없이 물러 앉이 소리 개는 탄식하며 말을 한다.
삼국의 명장 관운장도 화룡도 좁은 길에서 조조를 놓쳤으니
이는 큰일을 미루어 생각한 일이었으며,
험악한 연장군도 꿩 새끼 놓쳤으니 그도 또한 착한 마음씨라
자손들이 훗날 크게 될게로다.
태백산 깔 까마귀 북악을 구경하고 도중에 허기를 만나
요기하러 까투리에게 조상하고 과실 나누어 먹은 다음 탄식하며 말했다.
그 친구 풍신 좋고 심덕이 좋아 오래 살줄 알았는데
붉은 콩 하나 못 참아서 비명횡사하다니 가련하고 불쌍하오.
우리야 그런 콩 보아도 먹지 않소.
장끼마누라님 들어보소. 옛말에 이르기를
장사나면 용마 나고, 문장나면 명필난다 하였으니
그대가 속 썩는 줄 알고 내 오늘 여기 와서 삼물조화 맞았으니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며 물 본 기러기 물고기를 두려워하겠소.
임자행세와 내 가문 당신이 잘 알 테니 우리 둘이서
자수성가 할 셈치고 백년동락하면 어떻겠소. 하니
까투리 한숨짓고 하는 말이
아무리 보잘 것이 없어도 삼년상도 못 마치고
개가하여 가는 법은 어떤 예문에서도 못 보았소.
옛날에도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고 하였으며,
계집은 언제나 난군을 따른다고 했으니 임 마다 따르기야 하겠소.
이 말을 듣고 깔 까마귀가 큰소리로 말했다.
임자말이 나를 웃기는군. 시전개풍장(詩傳凱風章)에 이르기를
유자칠인(有子七人)하되 막위모심(莫違母心)이라 하였으니
사람도 일곱 아들을 두고 개가하여 갈때는 탄식한 말이라 하니
하물며 임자 같은 미물이 수절이라니 당치 않는 생각이오.
이때 부엉이 들어와 조문하고 까마귀를 돌아보고 말했다.
몸뚱이도 검거니와 부리도 형편이 없구나.
어른이 들었는데 일어나지도 않고 버릇없이 앉아만 있느냐?
까마귀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달려들었다.
건방진 부엉아! 눈이 우묵하고 귀가 쫑긋하면 어른이냐?
내 몸이 검다고 웃지 마라. 거죽이 검다고 속조차 검겠느냐?
문득 산그늘을 지나가다가 이내 몸 이런꼴로 검게 되었으나
내 부리보고 웃지 마라.
남월왕 구천이도 내입과 방울하나 삼시세끼로 먹여주고, 제후 왕이 되었단다.
네 감히 옛글을 몰랐으니 어른이 무슨 얼어 죽을 어른이냐.
네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 한참을 이렇게 다툴 때
푸른 하늘에 외기러기가 떠들다가 성큼 내려와서 목을 길게 느리고
좌우를 살피며 말했다.
너희들 무슨 수작들이냐?
한나라 소자경이 북해에 19년을 갇혔을 때
고국의 소식을 몰라 편지 한 장 말아다가
한천자께 내손으로 바쳤으니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더 어른이다.
네 까짓 것들이 무슨 얼어 죽을 어른이냐?
연못에 사는 물오리란 놈 일곱 번을 상처하고 아들 딸 하나 없이
후처를 구하는데 까투리가 낭군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혼도 아니 하고 혼인채비를 차려놓고 기러기 앞장세워 길잡이를 삼아
활기 좋은 황새를 후행으로 정하고 맵시 있는 호반 새로 전진하인 삼았다.
이날 호반 새 들어서며 큰소리로 말을 했다.
까투리 신부 계시오, 오리신랑 들어가십니다.
까투리 울다가 하는 말이
아무리 가부가 만만한들 궁합도 안보고 억지혼인을 하려고 하오.
오리가 이 말을 받아서 하는 말이
과부와 홀아비가 만나는데 예절보고 사주 보겠느냐?
신부신랑이 만나 같이 자면 궁합은 보나마나지.
오늘밤에 냉큼 식을 올리게나.
두성바지가 서로 만나니 백복이 절로 쌓인 것이네.
어서 여러 말을 말고 준비를 하게나.
까투리 웃고 대답했다.
당신도 남자라고 음흉한 말은 제법하시네요.
오리란 놈 하는 말이
이내호강 들어 보오, 너른 물 가운데 집을 짓고 오락가락하면서
은비늘 번쩍이는 좋은 생선을 마음대로 먹으니
천지간에 좋은 신수 물밖에 또 있는가?
까투리 하는 말이
물에 사는 것이 신수가 좋다 해도 육지에 사는 팔자만 같겠소.
넓고 넓은 들에 오락가락 노닐다가 층층이 절벽인 높은 산에 올라가서
사방의 푸른 바다 구경하고 춘삼월 황금 같은 꾀꼬리는 버들가지를
왔다 갔다 하고 봄바람에 앵두꽃 피는 밤, 소쩍새 슬피 울어 풀 나물
작은 짐승에 이르기까지 마음이 산란하니 그것 또한 좋기도 하거니와
팔월 한가위에 들국화피고 오만가지 실과를 주어다가 앞뒤로 노적하고
장끼의 좋은 보석 스스로 우는 소리에 뒤따르면
물속에 사는 당신 신수가 좋다 한들 육지에 사는 우리팔자를 당하겠소.
오리가 그 말을 듣고 점잖게 앉아있으니
그 곁에 조문 왔던 장끼란 놈이 쓱 나서며 말했다.
이내몸이 한가롭게 혼자 사는 지가 삼년이 되었으나 마땅한 혼처가 없더니
오늘 그대가 과부되자 내 조문 와서 하늘이 정한 배필을 하늘이 도와 우리들
이 짝을 지어 아들만 낳아 장가들여 며느리를 얻어 백년해로하고자 하오.
까투리 그 말 받아 하는 말이
죽은 낭군을 생각하면 개가하기 박절하나 내 나이를 꼽아보면
늙지도 젊지도 않은 중년이라 네 숫 맛 알고 살림할 나이인데
오늘 그대 풍신보고 수절할 마음 아예 없고 공연히 흔들리오.
허술한 홀아비가 이곳, 저곳에서 청혼하나 왕손님만이 좋은걸 어찌 하겠소.
옛말에 이르기를 서로서로 맞아야 따르게 마련이니
까투리가 장끼신랑을 따라가는 것이 의당한 일이니 날 데려가오.
장끼란 놈 끽끽 푸드득하더니 벌써 이성지합 되었으니
청혼하던 까마귀, 부엉이, 물오리는 무안하여 훨훨 날아갈 때
여러모로 수고하던 문상 일꾼들도 모두 자리를 떠났다.
감정새는 호로록, 호반새는 주루룩, 방울새는 따랑, 앵무새, 공작,
기러기, 왜가리, 황새, 맵새, 모두 자기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때 까투리 새 낭군 앞세우고 아홉 아들 열두 딸년 뒤에 세우고
눈바람 무릅쓰고 푸른 숲속으로 돌아가서 명년삼월 봄이 되면
아들딸 다 시집 장가보내고 자웅이 쌍을 지어 이름난 산과
강가에서 노닐다가 시월이라 십오일에 내외가 큰물에 들어가
조개가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이 이르기를 치수대합(雉水大蛤)이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