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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호네농가
 
 
카페 게시글
함께크는가족 스크랩 귀농과 아버지 자리-장영란님 글 퍼옴
산골이 추천 0 조회 182 07.11.09 19: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아버지 자리
(전원생활 6월호)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가 뿌옇게 끼였다. 일하러 나가기 뭣해 남편 머리맡에 놓인 책을 읽었다. 프랑스 뫼니에가 쓴 <부모와 아이들>이었는데, 이혼한 가정의 아이 중 54%는 아버지와 만나지 않으며, 24%는 아버지와 아주 가끔 만난단다. 가만 따져보니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운 현대 사회에서 남성 역시 참 어렵지 싶다.
  전에는 사회가 아버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아버지가 비록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딴살림을 하더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아버지 노릇하는 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딸을 팔아먹고, 자식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으니……. 그렇게 집안에서만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 그 자리가 지금은 어떤가?
  도시에서 사오십 대 아버지들. 사회에서 유능한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온힘을 거기 쏟아 붇는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쉬고만 싶다. 아이들은 제 엄마와 학교가 잘 키우니 그걸 지켜보고 전해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이 모두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아이들에게 아버지 자리는 어디 있는가?  
  엄마들은 사회생활을 하더라도 아이가 자기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되도록 빨리 퇴근해 한시라도 아이와 함께 있으려고 종종댄다. 어디를 가도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데 익숙하고, 밤에 잠을 자도 아이와 기운을 나누며 잔다. 두 가지를 함께 하려니 때로는 피땀을 흘릴 만큼 힘들 때도 있지만 엄마 노릇을 하기 위해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기운을 불어넣는다. 자기 자신에게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온몸으로 느끼기에.  
  아버지들은 시간이 있어도 아이와 함께 지내기가 어색한가 보다. 아이가 어리면 그 뒤치다꺼리인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이 낯설어서일까.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 눈치가 많이 보인단다. 어느 아버지는 집에서 쉴 때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면 밖으로 나갔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들 눈치가 보인다고 부랴부랴 직장을 다시 구했다.    

  귀농을 하면 식구가 함께 지낸다. 도시서는 생활도 방도 따로따로였다가 귀농초기에는 한 방에서 오그리복작 지내기도 한다. 귀농 초에 다들 어려움을 겪는다. 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몸살을 안 할 수 있겠는가! 한번도 안 해 보던 일, 낯선 사람들과 문화……. 사람이니 늘 좋은 모습만 보이지는 않겠지만, 좋든 나쁘든 아이들과 아버지는 늘 함께 살며 새로운 가정질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가장 보람찬 일을 꼽으라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돌아와 준 일이다. 아이들은 제 아버지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알게 된다. 방이 뜨뜻한 건 아버지가 땔감을 해서 군불을 지펴주어서고, 감자를 먹으며 제 아버지가 어떻게 농사를 지었는지 안다. 제 아버지가 삽질을 하면 아이들도 따라서 해 보고, 제 아버지가 망치질을 하면 망치를 따라 눈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자기도 해 볼 날을 기다린다. 전에는 남편과 내가 이야기를 하고, 나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했는데, 차츰 아이들이 제 아버지와 할 이야기가 늘어났다. 그만큼 아이들이 아버지를 찾을 일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남편이 아이들과 가까워지니 집안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혼자 하던 일을 둘이 맞잡고 하니 여러모로 좋다. 전에는 남편과 뜻이 안 맞아 부딪치면 큰애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곤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린 거다. 이대일이니 남편이 내 말을 들어줄까? 오히려 남편은 소외감을 느끼고, 내게서 허점이 나오기를 기다려 자기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남편이 아이와 친해지는 만큼 자기 자리에 안정감을 느끼는가 보다. 내가 뭐라면 귓등으로도 안 들리지만, 같은 말도 아이가 하면 귀에 들린단다. 엄마 노릇을 잘 하고 있다는 게 내게 삶에 자신감과 활기를 주듯, 남편도 그렇다는 걸 실감한다. 전에는 남편이‘남의 편’인 것 같았다. 남편이 아버지 자리를 되찾으니 ‘내편’이 된다.      
  인제에 사는 양손이네는 우리보다 더 극적이다. 귀농하기 전에 남자아이 양손이는 제 아버지를 싫어했단다. 도시서 직장 생활할 때 그 집 아버지는 한번도 집에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비록 직장에서는 아무리 유능하다 한들,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행이 양손이네 아버지는 이건 아니다 싶어 새로운 삶을 찾아보기로 했다. 귀농을 결심하고 인제로 귀농을 했다.
  귀농을 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힐 때까지도 아버지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었단다. 산골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일을 하고 또 하고. 그러다 양손이가 제 아버지와 친해지는 계기가 생겼다. 자그마한 황토방을 하나 짓는데, 아버지가 아들 양손이와 함께 일을 한 거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여섯 시간도 일을 했는데, 그때 양손이 나이가 열셋일 때이니 힘겨웠을 법한데도 열심히 따라했나 보다. 양손이가 그 과정에서 부쩍 자란 거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할말도 많아지고, 가까워졌단다.
  돈과 환경으로 자식을 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아버지 자리. 남녀동등의 시대. 이제 아버지 자리는 사회가 주는 게 아니다. 어느 아버지가 어린 딸을 흙집에서 살게 하고 싶으셨나보다. 혼자 시골로 내려가 여러 달에 걸쳐 흙집을 지었단다. 그 이야기를 듣던 우리 큰애가 “아이들은 그저 함께 있어주기를 바라는데. 어른들은 그걸 몰라.” 여러분의 아이는 아버지에게 무얼 바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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