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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 시집「남탕으로 목욕 가는 여자」 평설
경쾌한 어법과 발랄한 상상의 언술방식들
공광규(시인)
김정인의 시집 원고를 읽어 가면서, 그동안 시 읽기의 경쾌함을 가져다주는 시인이 누구였던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금방 생각나지 않았다. 드물다는 얘기다. 한국 시의 제제들이 인생의 소외와 실패와 감회를 느리고 알기 어려운 문장으로 읊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시인들의 운명도 그렇게 되어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내 씁쓸하였다. 그래서 우리 시인들이 지금 놓치고 있는 부분들이 이런 경쾌한 시 쓰기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오래 하게 되었다.
물론 시는 인생을 고백하는 것이고, 인생이라는 것이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는 만큼 온갖 시련과 실패와 모욕도 함께 따른다. 자신과 관계된 가족이 있고, 가족에서 확장된 사회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형이상의 자아가 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관계를 통과해가면서 일어나는 서정적 충동을 기록하는 것이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김정인의 개인사에 대한 서정적 충동의 기록인 시들을 살펴보면 우리 문단이 잃어버리고 있는 경쾌한 어법을 구사하고, 발랄한 상상으로 자아를 찾아가며, 이런 언술방식의 자장 안에서 자전적인 가족일화를 가족애로 형상하고, 사물에 대한 육체적 비유와 자본화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문명과 사회현상에 대한 이지적 비판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김정인의 시 가운데 <유월 나비>는 경쾌한 어법의 절창인데, 생활에서 제재를 끌어왔으면서도 표현이 재미있고 내용이 밝다.
두터운 벨벳 커튼을 걷어내고
연노랑 꽃무늬 흰 레이스 커튼으로 바꿔 걸었다
꽃핀으로 양쪽 귀퉁이를 살짝
집어 올렸더니
한 마리의 큰 나비가 생겼다
팔락거리는 날개 사이로
하늘과 매실나무, 대추나무, 칡넝쿨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살짝 창을 열었다
꼬리치는 살랑 바람이
데리고 온 새소리
호로록 짹짹째잭 라포록 라포록
자리다툼을 하는 새들로
방안까지 시끌벅적하다
뜻밖의 나비가 데려와 그린 풍경
유월아침 식탁에 초대된 손님들이다
- <유월 나비> 전문
계절이 바뀌면서 커튼을 바꾸어 다는 생활일상에서 제재를 채집한 시이다. 독자는 가정주부로 상정되는 주인공의 속도감 있는 행위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한 마리의 큰 나비”를 만나는 정서적 충격을 받게 된다. 이런 충격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 즐거움은 이미 독자들이 경험한 나비모양의 커튼을 시인이 언어로 발견하여 ‘나비’라고 형상하였기 때문이다. 시가 발명이라기보다는 발견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연은 커튼을 바꾸어다는 행위이다. 두껍고 무거운 겨울 커튼을 얇고 가벼운 봄 커튼으로 바꾸어달고 양쪽 모서리를 꽃핀으로 집어 올렸더니 나비가 생겼다는 것이다. 연노랑 꽃무늬와 꽃핀, 나비가 봄의 심상을 가져다준다. 2연에서는 아예 나비로 상정된 날개 사이로 밖에 풍경이 창안으로 들어오고, 3연에서 창문을 조금 여니까 바람과 새소리가 방안으로 들어와서 시끄럽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풍경과 상황은 시인이 발견하여 형상한 나비 때문이다. 커튼에서 발상한 나비라는 형상물이 봄의 풍경들을 식탁에 들여온 것이다. 이 전개가 빠르고 밝고 환하고 명징한 심상의 전개는 최근 문단에서 만나기 어려운 김정인의 수작이라고 하겠다.
<철새> 역시 경쾌한 김정인의 어법이다. 술렁거리는 갈대숲에서 현란한 말솜씨와 날렵한 몸매와 압구정 거리를 상상한다. <돌연변이>는 김정인의 장점인 발랄한 상상을 경쾌하게 전개하는 방식을 통해 자아를 찾는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여자라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아줌마가 될꺼라고?
맞아! 여자라서
딸 둘의 엄마가 됐어
인생살이가 다 똑 같다고?
아니 난 달라
마흔아홉 되던 봄 머리를 짧게 잘랐고
보라색 염색을 했지
새치 머리엔 꼭 검은 염색이라는 공식은 없거든
핫팬츠에 롱부츠를 신고
힙합을 흥얼거리며 시장엘 가지
사람들 내 뒷모습 그림자까지
스캔하느라 바쁨
먹고 싶은 수박과 귤을 샀지
수박은 여름에 먹어야하고
귤은 겨울에 사야한다는 생각은
깨진지 오래잖아
딸아이를 데리러 학교엘 갔지
잰걸음으로 앞서가 차에 타는 우리 딸
볼 맨 소리로
다른 엄마들처럼 아줌마같이 하고 다니란다
요즘 아이들 말로 헐!
찢어진 청바지에 구멍 난 티셔츠 입었다고
내가 아줌마가 아니고 아가씨인가
세상살이 같지 않고
사람 모양도 제작기인 세상에
사차원이면 어때
나답게 사는 게 내 삶의 방정식
- <돌연변이> 전문
우선 이 시는 쉬운 문답방식을 시에 적용하고 있다. 1연의 전반부에서 묻고, 후반부에서 대답을 하는 방식이다. 대답 방식도 다변화된다. 1연에서는 물음에 긍정을 하지만, 2연에서는 물음에 부정을 한다. 결혼한 아줌마는 같지만 사는 방식은 다르다는 것이다. 3년 이하는 어떻게 다르게 살고 있는가는 진술하고 있다. 마흔아홉에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염색을 하고 핫팬츠에 롱부츠를 신고 힙합을 흥얼거리며 시장에 갔다는 것이다. 보통의 주부 같으면 사서 먹기 어려운 제철과일이 아닌 과일을 스스로 먹고 싶어서 사고, 겨울에 귤을 사야한다는 생각이 깨진지 오래라며, 관습화된 ‘아줌마 삶’의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다. 그러나 관습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눈총을 받게 된다. 먼저 가까이에 사는 딸부터 다른 엄마들처럼 옷차림 몸차림을 하고 다니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반격한다. “찢어진 청바지에 구멍 난 티셔츠 입었다고/ 내가 아줌마가 아니”냐고. 사람들이 모두 제 각각이고 다르게 사는 것처럼, “나답게 사는 게” 가장 좋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답방식, 긍정과 부정, 대화어법으로 시를 재미있고 발랄하게 끌어가고 있으며, 나답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여자>도 관습화되고 억압된 현실에서 화자가 자아를 찾으려는 발랄한 시도가 경쾌하다. 화자는 “뽕브라 없이 처진 가슴을 올릴 수 없다는 것/ 요술 같은 거들 없이 뱃살을 감출 수 없다는 것/ 거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안다고 한다. 거기다가 “파운데이션에 립스틱 없이는 나 다닐 수 없고/ 나이를 물어오면 갓 마흔이라 고집하지만/ 굽 높은 하이힐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외출에서/ 기진해 돌아온 날은/ 돌침대에 다리를 지져야 하”는 나이의 한계를 안다. 술자리도 나이가 들고 힘이 없어서 자정을 넘기지 못한다. 그래서 화자는 “나를 사랑할 시간 충분하지 않아// 눈부신 이 봄날/ 파티를 시작하는 거야/ 풍선을 불고 낯선 사람들을 초대하는 거야/ 친구도 헤어진 옛 애인도 처음인 듯 말이야”라는 삶을 주문한다.
김정인의 시에는 가족의 일화를 담은 시들이 여럿 보이고, 대부분이 시적 형상에 성공하고 있다. 현재 남편과의 일화를 시로 형상한 <그때 그 남자>는 연애의 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재치 있게 진술한다.
변죽 좋은 말솜씨에
해 벌쭉 웃지만 않았어도
커피숍에서 영화 본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않았어도
막차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따라 가지 않았을 텐데
성인식을 막 지난 스물 그땐
사랑한다는 말 하나에 전부를 던질 나이잖아
굿샷, 하늘높이 날아가는
그때 그 남자
늦도록 안방에서 코를 고는 저 남자
오십에 배가 나온 무뚝뚝한 저 남자
흰 머리칼 잔주름 늘어가는 저 남자
그때 그 남자의 해장국 끊여두고
방문을 넘어가는 콧소리
‘여 봉, 일어나세용,
- <그때 그 남자> 전문
1~5연은 결혼하기 전 상황이다. 시적 화자인 주인공이 남편을 만나서 얽히고 반해서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다. 그런 남편의 현재는 안방에서 코를 골거나 오십에 배가 나와서 무뚝뚝하고 흰 머리칼과 잔주름이 나 있다. 이게 현실이고 현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재를 화자는 비하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긍정으로 넘어간다. 또 하나의 김정인만이 갖는 매력이다.
시 <대들보>에서는 남편을 든든한 대들보에 비유한다. 가계의 지붕을 받치고 서 있는 따뜻하고 자신에게 엄격하고 빈틈이 없는 남편은 대들보와 같다. 그러나 화자는 “언제까지라도 든든한 대들보인줄 알던 그가/ 한순간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철렁 내려앉는”는 경험을 하게 된다. 화자가 “못된 성질부릴 땐 말없이 무르팍을 내주며/ 내 발길질 마다않고 참아준 그/ 단 한 번 나무라는 일 없이 그저 다독여만 주는” 남편이었지만, 어느 날 “그의 한쪽 어깨가 기울어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의 다른 시 <괴동역>은 아버지가 등장한다. 괴동역은 포항제철 철강제조에 필요한 원료나 자재를 실어 나르는 역이다. 그 역은 “바랜 역사의 풍경사진 몇 장과/ 진열된 안전모와 장비들만 덩그러니/ 출구 없는 대합실을 지킬 뿐/ 매표창구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는 것처럼 사람보다는 물자를 수송하는 역이다. 그 역의 “선로 한켠,/ 아버지의 30여년 출근부를 책임졌던/ 241983호 통근 열차가/ 녹슨 괴동선을 잡고 우두커니 서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화자의 아버지가 그 열차를 타고 30여년을 출퇴근했음을 알 수 있다. 괴동역이라는 오래되고 녹슨 역에서, 통근열차로 출퇴근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는 방식이 사물과 적실하게 조응을 하면서 잔잔한 공감을 형성한다.
<형산강> 역시 아버지를 회억하여 쓴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포항체철소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주변 풍경, 그리고 퇴근 후에 포장마차에서 한잔 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늦도록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모녀의 풍경이 “대문 밖을 서성이던 어머니/ 어린 나를 앞세우고 강둑으로 나선다”로 형상된다. 화자는 “강둑을 휘청휘청 걸으시던 아버지”가 다니던 둔치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아버지를 회상한다.
시인은 아버지의 본 모습을 <황제 펭귄>에서도 찾는다. 빙하에서는 알이 부화하지 못하니까, 아버지가 발등에 알을 얹어서 체온으로 부화시키고, 부화한 아기 펭귄에게 위장 속의 먹이를 꺼내서 먹여주고, 어미가 돌아오면 새끼를 내어주고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가는 모습에서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식구들을 뒤에 두고 먹이를 구하러 가는 모습은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지 모를 먼 길 휘청 휘청 떠나는/ 뒷모습 쓸쓸하고 뭉클”한 아버지 모습이다. 화자는 “우리 집 황제였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그랬다”고 한다.
김정인의 시에는 화자가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시들이 많다. 인생의 지문인 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은유하는 것이다. <갱년기>라는 시를 보자. 이 진술의 기법 역시 경쾌하고 발랄하여 읽는데 재미있다.
장마 끝자락에 가는 비가 내린다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고
땀난 얼굴 수건으로 닦았다
에어컨을 켰다 껐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거실에 누워 빗소리 듣는다
베란다 수납장을 깨워
입사 10주년기념 수저세트, 약탕기, 스텐그릇, 아이들 도시락
동네마트 개업 소쿠리,
친정집에서 가져온 김치 통까지
살림살이의 게으른 이력이 고스란히 나오는
세간을 다 정리하고도 모자라
버킷리스트를 생각한다
술집에 노래방을 거쳐 온 남편의 코고는 소리
이불을 들썩거리고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모호한 밤이
나를 벗 삼아 놀자는데
후끈 더웠다 으슬으슬 추웠다
식은땀만 가는 빗줄기를 세고
- <갱년기> 전문
여성 갱년기의 증상을 시로 형상하고 있다. 더웠다가 춥고, 오래된 수납장을 뒤져 사용 안한지 오래 된 주방도구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아내의 이런 증상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남편은 술집과 노래방을 거쳐서 집에 들어와서 코를 골고 잠을 잘뿐이다. 담배인 <ESSE>를 몸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에로틱 기법이다. 이런 비유는 독자에게 호기심을 주어 가독성을 높여준다. 역시 재미있다.
나만큼 사랑받는 여자 있을까 몰라
몸에서 한시도 때놓지 못하는 남자
일할 때도 손을 잡고 있어야하고
모임에도 꼭 데려가 상석에 앉혀주지
혼자 있을 땐
잘근 잘근 깨물기도 하면서
매일 키스 해주는 남자
- <ESSE> 부분
이렇게 시적 대상을 은유하고 유희하는 능력이 김정인에게 있다. 남자들의 기호품인 담배를 여성에 비유하고, 남자가 기호품을 아끼는 정도를 여자를 사랑하는 행위에 비유한다. 시는 시인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태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유희동기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원래 시가 놀이에 사용되는 노래 가사였다는 것을 보면, 시에는 원래 이런 유희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인들이 김정인과 같은 유희방식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냅킨> 역시 마찬가지 비유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탄생과 죽음, 그리고 다른 사물로 탄생과 죽음이라는 똑 같은 순환과정을 거친다. 냅킨 역시 마찬가지다. 냅킨도 어떤 기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물로 주로 물건을 닦는 역할을 한다. 그 역할 내에서는 인간처럼 운명으로 갈린다고 밖에 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냅킨은 지저분한 해장국집 상 바닥을 닦기도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먹던 여자의 입술을 닦기도 하는 것이다. 시인은 냅킨의 운명을 통해 “사는 거 뭐 별거라고”라는 시행을 통해 인생을 비유하는 것이다.
김정인의 시에는 현대문명에 대한 이지적인 비판의 시선이 있다. 비판은 문학의 고유 기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큐브를 맞추다>라는 시에는 현대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갇혀 사는 커리우먼의 비극을 읽을 수 있다.
순응만이 공식인
그녀의 지구는 네모다
아파트, 사무실, 백화점, 스마트폰...
네모의 벽과 벽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반복일상의 진단은 만성어지럼증
흰색이 최선이다 싶지만
꺾인 모퉁이를 돌면 빨강 노랑 파랑으로
얼키설키 얼룩지는 생의 기슭
쑥국새 울음과 보리밭
별자리와 빗소리도 까맣게 지워버린
네모의 얼룩에 마음을 달아본다
알고 보면 무지 쉬운 거라고
큐브 달인이 된 아이의 혼잣말에
고개 끄덕이며
경쾌한 리듬을 되살려
다시 네모 속으로 들어가는
그녀는 커리어우먼
- <큐브를 맞추다> 전문
현대는 자본의 생산방식에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축적된 자본은 도시문명을 형성하여 소비를 촉진시켜 이익을 얻고, 이익은 다시 다른 생산수단을 만드는데 사용하거나 소비재를 만들어 무한한 이익을 얻고 있다. 소비에 중독된 인간은 소비를 위해 몸을 혹사하며 돈을 구하느라 인간적인 품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인간의 품성이란 좀 더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사유를 구가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갇힌 인간은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로운 생활방식과 사유를 구가할 수 없다. 항상 돈에 꽂혀 있다. 돈 중심의 사고를 하게 한다. 자본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린 인간은 바로 ‘네모’의 각진 세상에 날카롭게 경쟁하며 사는 것이다. 네모는 그런 현대문명의 상징이다. 이 네모에 갇혀 평생을 돈을 벌고 소비하다가 일생을 탕진하는 게 자본주의 삶의 방식이다. 화자는 “아파트, 사무실, 백화점, 스마트폰…/ 네모의 벽과 벽 사이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만성어지럼증”에 걸린 커리우먼이다. 어떤 측면에서 커리우먼이라는 말조차도 자본이 여성을 가정에서 공장으로 노동력을 끌어내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커리우먼이라는 허상에 잡혀 노동에 투입된 여성은 대부분 투입하는 시간에 비해 차별적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고유한 가정의 기능인 육아나 안전하고 영양이 풍부한 가정의 식단을 포기한다. 포기한 육아나 식단은 밖에서 돈을 주고 해결해야 하므로 그 이익은 다시 자본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쑥국새 울음과 보리밭/ 별자리와 빗소리도 까맣게 지워버린” 삶을 살아가는 커리우먼의 일상은 얼룩진 삶일 뿐이다.
<김과장의 퇴근>은 돈을 구하기 위해서 유흥노동에 투입된 여성노동자와 자본주의 생산수단에 매어 사는 남성노동자를 동시에 이야기한다. 자아실현과 생의 만족을 위한 바람직하고 인간적인 건실한 노동이 아니라, 자본이 장치한 소비재를 구하기 위해 돈을 구하려는 유흥노동자와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정신과 육체를 쥐고 짜는 공장이나 회사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의 씁쓸한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노동의 본래 목적은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김정인은 두 남녀 노동자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김정인의 시를 읽어가면서 그만의 특징적인 방법과 주제를 살펴보았다. 그는 우리 문단이 잃어버리고 있는 경쾌한 어법을 구사하고, 발랄한 상상을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방식도 남다르게 경쾌하다. 이러한 언술방식을 기본으로 자전적인 가족일화를 가족애로 형상하고, 사물에 대한 육체적 비유와 자본화된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문명과 사회현상에 대한 이지적 비판을 잃지 않고 있다. 시의 고유한 특성과 목적을 나름대로 방식으로 개진해가는 그의 시가 창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