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아카데미 여섯 번째 수업,
한국을 빛내는 예술혼을 싣는 곳
_ 한국의 Global Hub 주재연 대표를 만나다
글 김미선 | 사진 김지혜, 정찬희
정월 대보름을 맞이한 이틀 뒤, 서교동 자락에도 환한 달빛이 고개를 내밀었다. 훤칠한 키, 호리호리한 몸매, 시원시원한 눈매를 지닌 그가 강단에 오르자 상상인들의 호기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방 속에 숨겨진 카메라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고, 사각거리는 연필소리는 이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직한 목소리가 한껏 누그러진 겨울바람을 가른 뒤 상상인들의 귓가에 푸근한 소식을 풀어놓는다. 곧 켜켜이 쌓아 놓았던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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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 만남에 “이끌리다”
공대 출신인 그가 방위산업체 연구소에서의 근무를 포기하고 군입대를 선택한 후 제대했을 때, 그의 눈앞에 떨어진 단어는 ‘막막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 끝에 그가 결정한 것은 방송국 PD 시험이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예술·공연과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시간이 날 때 잠시 도와주고자 티켓 예매를 돕던 차에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을 보았다. 전통 예술에 딱히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 <김덕수 사물놀이>는 달랐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 만남이 전통에 대한 지금까지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그대로 찾아간 <김덕수 사물놀이>사무실에서 그는 그곳에서 일하는 한 명의 외국인 여성을 만나게 된다. 한국의 전통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외국에 소개하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한국의 전통예술을 알리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고, 운명처럼 그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사단법인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비영리 단체의 한계를 느끼고 95년쯤 주식회사를 만들 필요성을 느껴 전환했다. 사물놀이라는 전통적 콘텐츠를 가지고 자료를 만들어 미국의 여러 매니지먼트사에 보냈고, 연락을 받아 96년부터 미국에서 투어를 시작하게 된다. 곧이어 일본과도 계약을 맺게 되고, 유럽은 축제에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충남 부여에 있는 폐교를 사들여 사물놀이를 가르칠 수 있는 학교로 육성했다. 더불어 대중음악과 스튜디오 작업도 시작했으나 99년쯤 회사를 분할하여 다시 전통 예술 위주의 초심으로 돌아간다. 그 뒤 사물놀이 이외의 다른 장르도 챙기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판소리와 굿의 무대화를 계속 꿈꾸고 있다.

기획가의 자질을 “붙잡다”
기획가가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할 3요소란 무엇일까. 그는 정보와 인맥 그리고 본인의 선택을 꼽았다. 정보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축제나 공연에 한정되지 않은, 모든 분야의 정보를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인적자원, 즉 인맥이다. 기획가는 직위와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실무자와 같이 어울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일하는 사람들을 다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지위’란 돌고 돌게 되어 있으며, 결국 어딘가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인맥을 만드는데 적극적이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인맥은 자신감으로 시작해 자신감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뻔뻔하고 당당하면 된다. 먼저 자세를 낮출 필요는 없다. 그건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어떤 타입의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기획을 하는 사람의 부류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한 기획가와 행정적인 능력이 필요한 기획가. 자신이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면 다른 쪽을 계발하면 된다. 잘할 수 있는 것과 재미있어 하는 일 중 선택하여 발전시키는 것은 분명 본인의 몫이다.


무엇이 그를 “달리게” 하는가
에든버러 축제에서 그는 판소리 완창공연을 시도했다. 총 8시간이 걸리는 공연. 춘향가, 심창가,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 5곡을 합쳐 총 20번의 공연을 했다. 무대는 400석 규모였지만 전부 매진되었다. 세계에 알리기에 언어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판소리는 과연 경쟁력 있는 문화 상품일까. 대답은 충분히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대답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활동을 통해서 판소리가 세계무형유산에 등록되는 성과를 얻었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 그것으로 전할 수 있는 공연을 보이는 것. 그의 신념이 통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쪽 분야에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공연·문화·축제 기획을 하는 분야에서의 경제적 입지는 실제로도 풍부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직업의 경제적 여건이 나아진다면 재능 있고 뛰어난 사람들이 이 길에 들어서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던 길을 멈추는 사람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양적·질적 팽창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이다. 물론 행정적인 측면과 교육적인 측면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맞이할 필요가 있지만, 그런 여건을 제외하고 그가 노력할 수 있는 부분에 전심을 기울인다면 해내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전통문화의 “잠재력”을 키우는 길
강의와 질문에 대한 답변이 오가는 시간에 이르는 동안 내가 주목한 것은 ‘교육’이 가진 영향력이었다. 그의 생각의 한 갈래에는 ‘교육’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언급했던 장면은 미국에서 공연하는 팀들의 준수 사항이었다. 미국에서는 어떤 공연을 하든지 공연 전후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콘서트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공연만 덩그러니 짧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연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공연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야 한다. 이런 배려가 지금 당장 눈에 띄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 체험을 한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이를 통해 미래의 문화소비층이라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한국의 전통음악이 왜 젊은 층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소외받고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현재의 교육여건에서 국악은 피상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 역시 문화적 소양을 부담 없이 즐기며 키워줄만한 배경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의 것이 무조건 좋다고 외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익숙하게 접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다채롭고 한국적인 전통의 미를 인식할 수 있는 안목을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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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물놀이와 같이 타악을 중심으로 한 월드음악축제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며 얼마 전 전북의 한 지역에서 기획했던 정월 대보름 축제를 떠올렸다. 불과 500만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이루어진 축제였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뒷산의 대나무를 베고 보름씩 일하며 달집을 만들고, 놀러온 손님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며 각자 집에서 조금씩 음식을 내온 그런 축제였다. 이내 그는 사람들이 정겹게 모여서 온기를 나누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런 축제를 만들어가고 싶다며 운을 뗐다. 그의 바람이 새겨진 두 눈동자가 해맑은 달처럼 반짝거린다. 그의 소원도 달빛을 머금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