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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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가타리나 데이 리치(St. Catherine dei Ricci)
축일: 2월 13일
가타리나 데이 리치는 투스카니의 프라또에 있는
도미니꼬 수도원의 수녀이다.
그녀는 좋은 감각과 정성을 다하여 맡아온
수련장과 장상직을 사임하였는데, 그녀의 놀라운
신앙 체험들은 많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예를 들면, 매주일 같은 시간에 아주 오랜 시간동안
탈혼하였는데, 이때 그녀는 되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수난에 흠뻑 취하곤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2년 동안이나 정기적으로 일어났다.
가타리나의 영향은 수녀원의 벽 안에서만 인정된게
아니다. 그녀의 편지에서 나타난 그대로,
교회의 개혁 운동에 최선을 다하였다.
가타리나는 필립보 네리와 가롤로 보로메오 그리고
성 비오 5세와 함께 현대 교회의 개혁자로서
높은 칭송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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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고스베르토(Gosbert)
축일 2월 13일
성 고스베르투스(Gosbertus, 또는 고스베르토)는
독일 북부 니더작센(Niedersachsen) 지방에 있는
오스나브뤼크의 제4대 주교이자 성 안스카리우스
(Anscharius, 2월 3일)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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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니아노(Martinian)
축일 2월 13일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태어난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18세 때에 고향 근방의 '계약의 궤의 장소'라 불리는
산으로 은거하여 은수자로서 25년을 살았다.
그의 전기에는 전설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중의 한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조에(Zoe)라는 한 카이사레아의 여인이 그의 성덕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유혹해보려고 하였다.
그녀는 밤늦게 사막을 방황하는 가련한 여인으로 꾸몄다.
그런 다음 그녀는 그의 움막에서 하루 밤을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하여 뜻을 이루었다.
새벽녘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넝마 같은 옷을 벗고
화려한 옷으로 갈이 입으면서 성 마르티니아누스에게
자신은 카이사레아의 귀부인이며 막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으니 같이 가자고 제의하였다.
그는 쾌히 승낙하면서 오늘 축복받으러 올 사람이 있지만
같이 가자며 길을 나선 후 갑자기 자기 움막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그 불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온몸이 반쯤 그을린 채로 밖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이처럼 약한 불도 못 견디는 주제에 연옥의 불은
어떻게 견디겠소?” 하고 말하였다.
이에 그 여인도 회개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하늘을 지붕 삼고 바람을 친구로 삼아
일생을 살았다. 그는 특히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에서 위대한 수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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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치니오 혹은 레신, 주교(616년경 순교)
축일 : 2월 13일
프랑스 왕가 출신인 그는 그의 사촌인
국왕 클로테르 1세의 궁에 들어가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직책으로 올랐지만,
자신의 크리스챤 의무를 빠드린 적은 없었다.
단식과 기도 그리고 항상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자세는
그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국왕 칠페릭은 그를 앙주의 공작으로 봉하고,
친구로 지내다가, 앙리의 주교가 서거하자,
주민들이 그를 주교로 추대하였다.
왕가와의 관계 때문에 그는 주교로 취임하자마자
굶주린 이를 먹이고, 포로들을 귀향시켰으며,
교구민들의 영육을 따뜻이 돌볼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설교는 매우 감동적이고 힘찼으며,
주교직을 수행하는 동안 자주 은둔소를 찾아
스스로를 쇄신할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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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푸스카(Fusca)
성녀 마우라(Maura)
축일 2월 13일
성녀 푸스카(Fusca)는 15살 된 소녀로
데키우스 황제 때 이탈리아 라벤나(Ravenna)에서
유모인 성녀 마우라와 함께 순교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이들 성녀들은 각각 칼에 찔린
소녀와 유모로서 표현된다.
그들은 라벤나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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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모돔녹(Modomnoc)
축일 2월 13일
성 모돔녹의 찬가는 이런 구절로 시작된다.
“작은 배를 타고 동으로부터 검푸른 바다를 가로질러,
나의 모돔녹은 아일랜드 사람에게 은혜로운 벌들을
모시었네.…” 그는 아일랜드 왕가의 후손으로
웨일스(Wales) 지방에서 높은 지식과 수도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여기서 그는 성 다윗(David, 3월 1일)의
지도를 받으며 벌을 돌보았는데, 후일 귀향할 때
그 벌들을 아일랜드로 가져와 보급시켰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에 의하면 그는 아일랜드 남동부
킬케니(Kilkenny)의 티브래니(Tibraghny)에서
은수자가 되었고 후에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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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니뇨(Benignus)
축일 2월 13일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토디의 사제인 성 베니뇨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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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아트릭스(Beatrice)
축일 2월 13일
오르시나외 가족성에서 태어난 베아트릭스
(Beatrix, 또는 베아트리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르메니의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녀는 지극히 엄격한 생활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그녀의 천상 정배를 옆에
모신 듯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또 그녀는 오랜 수도생활 중에 주님을 수차례나
목격했는데, 주님께서 볼 수 있는 형상으로
그녀 곁에 서 계셨다고 한다.
그녀는 특히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고 항상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부엌에서 주방 일을
할 때 불로 자기 팔을 지지기도 했으나 상처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그녀는
신비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가끔은 악령의 출현도
보았다고 한다. 또 성체에 대한 그녀의 신심은 너무나
지극하여 성체를 모시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사에 완전히 빠져들어 탈혼 상태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교회는 베아트릭스를 감실 안에
숨어 계시는 주님의 현존, 즉 성체조배 신심의 개척자로
간주한다. 또한 그녀는 주님의 다섯 상처를
환시를 통해 자주 보았던 뛰어난 신비가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69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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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Stephen)
축일 2월 13일
이탈리아 리에티 수도원의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놀라운 신심의 소유자로 그 당시 교회 안에 널리
알려졌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I, 9월 3일)는 그의 저서인 "대화록"에서
누차 이 거룩한 사람을 격찬했는데,
"말은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생활은 위대하다"고
하면서 그의 인내를 자주 예로 들었다.
또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임종하는 자리에 천사가 임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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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스테파노(Stephen)
축일 2월 13일
리옹의 주교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아리우스주의에 빠진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사람들을 가톨릭 신앙에로 개종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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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가보(Agabus)
축일 2월 13일
예루살렘 출신의 유대계 그리스도인이자 예언자였던
성 아가부스(또는 아가보)는 안티오키아에 가서
로마 제국의 기근을 예언하였는데(사도 11,27-28),
이 일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재임 기간인 49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그는 성 바오로(Paulus)의 투옥을 예견했던
아가부스와 동일 인물인 듯하다(사도 21,10 이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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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르칸젤라 지를라니(Archangela Girlani)
축일 2월 13일
엘레아노르 지를라니(Eleanor Girlani)는
이탈리아 몬페라토(Monferrato)의 트리노(Trino)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열심하고 신심이 두터운 아이로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로카 델레 돈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으나 그곳의 규율이 생각보다 엄격하지
않음을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 봉헌생활을 하겠다고 하자
그녀의 부친은 처음에 극구 반대하다가
결국은 딸에게 굴복하였다.
그래서 1478년 그녀는 파르마(Parma)에서 카르멜회의
수녀가 되었고, 그러면서 아르칸젤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여러 면에서 성숙했기 때문에 서원 후
얼마 되지 않아 원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만투아(Mantua)의 카르멜회 설립 책임자로 파견되었다.
아르칸젤라 수녀는 그곳에서 높은 완덕을 추구하였고
또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모든 수도자적인
덕행의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았고, 보속을 실행하는 데에
지극히 엄격하였으며, 모든 이와의 기도 나눔을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였다. 장시간 동안 그녀는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고 또 땅에서 몇 야드 높이의 공중에
떠 있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64년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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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이모(Aimus)
축일 2월 13일
성 아이무스(또는 아이모)는
이탈리아의 밀라노(Milano) 대교구의
메다에 성 빅토르(Victor)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아이모니우스(Aimonius)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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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르멘질다(Ermengild)
축일 2월 13일
성녀 에르멘질다(Ermengilda)는 잉글랜드(England)
켄트(Kent)의 국왕 에르콘베르투스(Erconbertus)의
딸로 모친은 성녀 섹스부르가(Sexburga, 7월 6일)이다.
그녀는 머시아(Mercia)의 국왕 울페르와 결혼하여
남편의 나라에 그리스도교를 크게 확장하는데
기여하였다. 675년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성녀 에르멘질다는 자기의 어머니와 함께
셰피(Sheppey) 섬의 민스터(Minster)에 수도원을
세우고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밀턴(Milton) 수도원에서 수도복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민스터의 원장이 되었다가
사임하고는 엘리 수도원에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에르메닐다(Ermenilda)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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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에우스토키움(Eustochium)
축일 2월 13일
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태어난 에우스토키움의 출생은
어느 수녀원의 스캔들을 상기시킨다.
그녀는 어느 수녀의 딸로 수녀원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 후 이 사건을 묵인한 공동체는 주교의 명에 따라
폐쇄되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루크레지아(Lucrezia)로
아주 소란스러운 장난꾸러기였으나 학교는 열심히 다녔다.
그녀는 나이가 들자 수녀회에 입회하기를 원하였지만
기구한 출생 때문에 입회를 거부당하다가
주교의 승인을 받고 겨우 수련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평상시에는 매우 점잖고 순종적이며 친절했지만
가끔씩 아주 이상한 성격의 일면을 보이기도 했는데,
완고하고 야성적이며 격렬한 성격으로 인하여
적잖은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그녀가 마귀에 들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그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나
한 번은 원장의 병을 기도로써 고친 사실도 있었다.
에우스토키움은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였고,
그분을 끝까지 섬기려는 열의는 어느 누구
못지 않았기에 동료 수도자들 가운데 뛰어난 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녀는 파도바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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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율리아노(Julian)
축일 2월 13일
많은 사람들이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가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순교했다고 하지만,
로마 순교록은 그가 프랑스 리옹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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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2월 13일
크리스티나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의
비스콘티(Visconti) 가문의 딸로 매우 조숙한
소녀였다. 불과 다섯 살 때 그녀는 이미
기도와 고행을 잘 배워 실천하였다.
10살이 되자 그녀의 부모는 결혼시키려 했으나
그녀는 수녀가 되겠다고 끝까지 항거하였다.
그러나 12세 때 그녀의 부모가 거의 강제적으로
혼인을 시키자 밤을 틈타서 하녀와 더불어
도망쳤다고 한다. 그 길로 크리스티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수자회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거의 일 년 동안을 방황하면서 지내야 했다.
주거를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세 되던 해에 크리스티나는 아시시(Assisi)를
순례하였는데, 스폴레토를 지나다가 갈리티아라는
부인을 만나 함께 생활하였다.
아시시를 방문한 후 스폴레토로 돌아온 그녀는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성당에서 온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병원을 찾아서 자원봉사도 하였지만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 후에 갈리티아가
찾아와서 다시 함께 지내며 덕을 닦도록 힘쓰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던 그녀는
23세의 나이로 병이 들어 운명하였다.
그녀의 덕은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그녀에게
간구하면 치유의 은사가 주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그녀는 정규 수도회의 회원이 아닌
평범한 동정녀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34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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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폴리에욱토(Polyeuctus)
축일 2월 13일
아르메니아(Armenia)의 멜리테네는
로마군의 주둔지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고난을 당했다. 그리스 출신으로
로마군의 장교이던 성 폴리에욱투스(또는 폴리에욱토)는
네아르쿠스(Nearchus)라는 그리스도인 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외교인이었다.
그는 친구의 행동과 신앙을 보고 감명을 받아
개종하였다. 그는 신앙을 얻고 난 뒤부터 늘
싱글벙글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다가 마침내
그가 그리스도인임이 드러나서 고문을 받게 되었다.
형리는 그가 장교이기에 배교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오히려 그는 더욱 기뻐하면서 순교를 자청하였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에서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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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후노(Huno)
축일 2월 13일
성 후노는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6월 23일)의
지도하에 있던 영국 엘리 섬의 베네딕토 수도원의
사제로 성녀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고 그녀를
매장하였다. 그 후 그는 은퇴하여 펜스(Fens)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토니(Thorney) 수도원으로 이장되었고,
그곳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