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론
노동은 신성한가? 이념의 시대엔 그랬다. 혁명적 낭만기 막시스트들은 노동자를 주체로 세우기 위해 북돋고, 자본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해 그 말을 썼다. 모두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었다. 대개 지식인은 노동의 주체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금도 과연 노동을 신성하다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까? 인력시장을 가 보라. 돈 없는 사람들이 태어나면서 지닌 삶의 유일한 연장인 몸뚱이를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거래하는 현장을 보라. 이 사회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노동력을 남에게 팖으로서 연명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노동의 순수성과 신성함이란 없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노동의 보람이란 옛날 장인이나 농부가 드물게 맛보던 일의 성취감이 아니라, 오직 돈의 보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동은 비루한가? 그렇다 비루하다. 사람들은 노동을 부끄러워 한다. 그래서 3D 업이 생겼다. 힘들수록 천시하기 때문이다. 대신 와이셔츠를 입고 소위 머리를 굴리는 직업은 고상하다. 이 땅에 유독 심한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별은 노동을 극히 불순하게 왜곡하였고, 불노소득에 혈안이 된 중산층의 고뇌는 노동을 무식으로 만들었다.
왜 이렇게 노동이 전락했을까? 노동뿐 아니라 인격이 전락했을까?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이니 성취라는 게 정말 있기는 있을까? 갈수록 첨단화된 자동화 기계 설비 때문인가? 인간이 하는 일이 고작 기계의 보조기능과 단순 기능으로 전락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기능화는 이미 수천년 이어온 것이 아닌가?
노동이란 그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신성하다 비루하다 가치판단 할 대상이 아니다. 물론 노동은 육체에 집중하면서 잡생각을 몰아내어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다. 아무튼 선가에서는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노동을 생존의 필수로 여기기도 했다.
노동 즉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동물도 일을 할까? 성경의 구약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벌로 평생 땅을 갈아야 하는 징역형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인간만이 천국에서 쫓겨나 지상이라는 감옥에서 노역형을 받는다. 그 얘기는 다른 말로 인간 외의 생물은 노동을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틀린 말이다. 개미가 먹이를 찾아다니고, 벌이 꿀을 모으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들도 일이라는 걸 한다. 살아가기 위해 모든 생물들은 힘써 일을 한다. 그런데 왜 인간의 일은 창세기의 이야기처럼 형벌처럼 느껴지는가? 그것은 정말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일까? 그럴지 모른다. 정말 인간은 타락한 것 같다. 일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신석기와 청동기를 거치면서 도구가 발달하고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계급이 형성되고 지배와 착취 관계가 형성되면서 인간의 노동은 ‘나의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남'은 물론 주인과 고용주, 국가 등이다. 그들은 권력으로 억압하고 세금이나 지대, 빚, 뇌물 등으로 잉여노동으로 불리는 부분을 -그러나 실제로는 과잉노동을- 착취한다. 지배와 독점이 강화되자 인간의 일이란 노역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노동은 불순한 노동이 되었다. ‘순수한 노동’은 내가 살기 위해 나의 자율의지로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불순한 노동’은 내가 살아 남기 위해 ‘남의 의지’에 맞게 일하는 것이다. 대개 개인의 성향 따위는 무시된다. 우리가 아는 노동의 대부분이 그런 불순한 노동이다.
그러니 현재의 임노동 제도의 노동자들이란 과저 노예제 사회의 노예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그들보다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농촌의 지주들로부터 탈출했지만 공장과 회사의 사업주들에게 묶이게 되었다.
월 최저생계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서 노동을 팔기 위해 서성이는 도시인의 모습을 보라. 우리는 자기의 의지를 남에게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그것이 현실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니 평등 같은 말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나왔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과 밀고 당기는 끊임없는 임금협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대부분의 노동운동은 노예제도와 별 차이가 없는 노동구조의 근본적 변혁은 꿈도 꾸지 못한다. 약자를 옹호한다는 면에서는 옳다. 그러나 그것은 적대적 협력일 뿐이다. 지배받을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런 노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한다. 설사 기업이 있다면 고정임금과 상하 지배관계가 아니라 수익 배분과 수평적 평등관계의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노동을 살기 위한 개인의 자기 의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때만 우리는 그들을 자유인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땅에 고급 저급할 것 없이 모든 직업인을 대상으로, 과연 노예 아닌 자유인이 얼마나 있을까? 인류는 문명이 발생한 5천년 동안 노예사회를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불순한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가 스스로의 메시아가 되지 않는 한.
첫댓글 강증산이 말하는 도통문명이 오면...어찌보면 선천의 긴 역사를 마감하고 우리가 지나온 근대의 民主化라는 과정이 그 디딤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주인된 의식으로 스스로가 하늘임을 아는 것,개개인의 선언이 전체의 의식이 될때...
글쎄요. 정말 그런 각성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저는 후천과 천국을 역사적 시간에 앞서 실존의 시간에서 보는 편이지만. 2015년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이 에너지와 환경 위기의 파고를 넘으며 사람들의 각성이 어느 수준으로 높아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