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이 되고 싶었어!
이은정
신기하다. 산도, 마을도, 사람도, 휙휙 지나간다. 기차창문 바깥으로 펼쳐지는 정경에 소년은 넋을 잃고 바깥 풍경에 빠져있다. 강릉이 고향인 이 까까머리소년이 처음으로 강원도를 벗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가고 있다. 대구에서 일하고 있는 누나를 찾아간다. 누나가 보고 싶어서 가는 것은 아니다. 일하러 간다. 돈을 벌려고 대구에 간다.
중1때 2학기 육성회비 수납을 앞두고 소년은 대구에 돈을 벌려고 왔다. 1년 먼저 대구에 내려와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누나와 함께 일하려고 왔다. 소년은 돈을 빨리 벌고 공부를 다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육성회비만 벌면 다시 어머니 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날이 좀처럼 소년에게 다가 오지는 않았다. 아침에 공장으로 가는 길에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먼 길을 돌아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날엔 늦어 혼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까까머리 소년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일을 마치면 자전거 타고 한 시간 너머 걸리는 야학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특히 2교대 공장 일을 마치고 가는 날엔 꾸벅 졸다 자전거를 탄 채로 밭두렁에 빠진 일도 많았다. 그럴 때는 많이도 울었다. 그저 서러웠다. 그러나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자전거를 끌며 더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살아야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살아야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에서 동생이랑 누나랑 함께 살 줄 알았다. 그것은 소년에게는 살아가는 끈이었다. 그 끈은 결국 소년을 검정고시, 방송통신고, 기능대, 사이버대, 대학원으로 이끌었다. 그 강원도 까까머리 소년은 어릴 때 꿈꾸던 과장님, 부장님, 상무님이 되었고 이제 사장님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 난 수없이 넘어져봤기에 안 넘어지는 방법도 알고 넘어져도 일어나는 방법도 알아요.”
아내는 이런 남편을 따라가면 안 넘어질 것 같았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잘 살 수 있어요!’ 란 말보다 훨씬 강력한 프러포즈였다. 그래서 아내는 이 오뚝이 소년과 결혼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에게 묻는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일한 남편을 떠올리며...
“ 당신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어?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유혹도 많았을 텐데?”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이젠 흰머리가 듬성한 40대 후반의 아저씨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씨익 웃으며 말한다.
“ 음.., 과장님이 되고 싶었거든. 과장님이 되고 싶었어. 공부를 하면 과장님이 되는 줄 알았어.”
까까머리 어린 소년에게 과장님은 꽤 크고 힘(?)있는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어린 시절에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짐짓 누르고 한마디 툭 던진다.
“ 장하네. 기특하네. 애썼어, 여보!”
남편은 어느새 잠이 들어 코를 곯아 댄다.
남편 옆에는 그 까까머리 소년을 닮은 밤톨 같은 두 아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이제는 어엿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그 소년을 아내는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고맙대이, 욕 봤대이. 여보야! 잘 살아줘서...
그리고 사랑한대이!”
**안녕하세요~막내 이은정입니다.^^
처음에 꽃자리 들어왔을땐 그저 많은 선생님들에게 배우자 란 맘으로 들어 왔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쭈삣되는 낯설음도 있었으나 여러선생님들의 사랑으로 보듬어주셔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에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한 선생님들 뵈면서 저도 글을통해서 치유란것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글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기다림과 연습,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태어나 수필이란 글을 처음 써보고 어줍잖게 흉내내봤습니다. 많은 가르침 주세요.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꽃자리의 영원한 회원이고싶습니다
글의 제목이 "과장님이 되고싶었어" 입니다^^:::
이은정 글.hwp
프로필 :
다문화사회전문가
한국어 강사
꽃자리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