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식의
' 아트 시네마 산책 '
< 로제타 - Rosetta >
- " 참혹한 생의 한복판,
'평범하게' 살고픈 소녀 로제타의 간절한
길건너기, 그 몸부림...
여자의 이름은 로제타(에밀리 드켄 분).
그녀가 바라는 건 오로지 하나,
바로 '평범한 삶을 살기' 입니다.
일자리 구하기, 친구 만들기, 엄마와 행복하기
등등,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들에겐 가장 평범한
일상조차 로제타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지요.
작업장으로 보이는 공간에 한 소녀가 황급히
뛰쳐갑니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그녀는 사람들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웁니다.
이제 겨우 열 여덟 살의 '로제타, 그녀'가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공장에서 쫓겨난
게지요.
너무도 억울한 마음에 소리지르며 저항도
해보지만,
그렇다고 딱히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을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영화
<로제타-Rosetta>는 그 막을 열어가지요.
그녀에게 해고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알코올 중독의 엄마는 술 한병을 얻기 위해
관리인에게 몸을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지요.
그런 엄마와 함께 캠프촌의 허드레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지옥같은 나날을 악착같이
버텨내며 근근이 살아가는 로제타에게 가난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헌 옷을 주워서 엄마가 수선하면 그것을 내다
팔거나,
남의 사유지에서 몰래 물고기를 잡는 등
싸구려 와플 한쪽 말고는 부족하기만 한
먹거리를 때우기 위해 전전긍긍하지요.
이토록 혹독한 세상에서 그녀가 살아가기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공장에서 일한 기간이 짧아 근로일수 부족으로
실업급여는 나오지 않고,
여기저기 다른 일거리를 찾아 보지만 그 문턱은
너무도 높기만 하지요.
그렇게,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은 채
삶의 수렁은 더욱 깊어져만 갈 즈음,
로제타는 근처 와플 가게의 종업원 리케
(파브리지오 롱기온 분)와 친구가 됩니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알코올 중독 치료소를
데리고 가려 하는 로제타를 뿌리치며 부러
그녀를 물에 빠트린 채 도망치고 말지요.
마치 깊은 수렁 속 로제타의 삶처럼,
허우적댈수록 빨려들어가기만 하는 늪 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그녀는,
넌덜머리나는 트레일러를 나와 어렵사리
용기를 내어 리케의 집을 찾아갑니다.
실로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가 묻어나는
그곳에서 몸을 누운 채,
너'와 '나'를 오가며 다가올 희망을 짧은
독백으로 반복해서 되뇌이는 로제타...
아주 잠깐이지만 지독한 오늘을 뒤로 넘겨가며
행복의 내일을 꿈꾸어 보는 게지요.
"내 이름은 로제타
난 직업을 얻었어
넌 친구를 얻었어
나도 친구를 얻었어
넌 정상적인 삶을 살아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
넌 구덩이에 추락하지 않아
나도 구덩이에 추락하지 않아
잘 자
잘 자 "
그러나...
가게 사장(올리비아 그루메 분)의 도움으로
맡았던 와플 반죽 일도 아주 잠깐,
그조차도 불과 3일 뒤 사장의 아들이
퇴학당하면서 내쫓기고 말지요.
처절한 상실감에 고통받는 로제타...
그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에 시달립니다.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되니 몇알의 진통제와
함께 달궈진 헤어 드라이기로 배를 문지르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지요.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지 ‘평범한 삶’일 뿐인데,
다른 사람들 속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일이 그녀에겐 너무 버겁기만 합니다.
삶은 점점 더 고달파져만 가고...
리케가 일터에서 와플 기계를 감추어두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빼돌리는 것을 발견한
로제타.
'없는 것보다는 낫다'며 함께 해보자고 권하는
리케를 그녀는 거부하지요.
" 그건 진짜 직업이 아니잖아.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싶어! "
급기야 그녀는 사장에게 이를 고자질함으로써
리케의 일자리를 빼앗기에 이릅니다.
하여,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꿈꾸던 로제타에게
드디어 '내 일(My Job)'이 약속된 '내일(來日)'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만...
나름대로 정의로운 그녀는 자신을 도와준
친구 리케의 신뢰를 저버렸다는 사실에
자못 괴로워하지요.
'왜 그랬냐'고 따져묻는 리케에게 로제타는
답할 뿐입니다.
" 어서 날 때려!
난 그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야."
그 이전,
로제타를 찾아온 리케는 실수로 그만 늪지에
빠져 진저리칩니다.
순간,
리케의 아우성에도 그를 꺼내주는 것을
망설이는 로제타...
리케가 사라진다면 자신이 그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네가 물에 빠졌을 때 꺼내주고 싶지 않았어."
" 하지만 구해줬잖아! "
술에 쩔어 폐인이 된 채 트레일러 계단 앞에
널부러져 있는 엄마를 마주하며,
그토록 지긋지긋한 삶에 마침표를 찍기로
마음먹는 로데타...
그녀는 공중전화를 걸어 사장에게 '더 이상
일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어 엄마를 간신히 침대에 누이고 난 뒤,
겨우 삶아진 계란 하나로 최후의 만찬을
대신하지요.
그리곤, 트레일러 문 틈을 모조리 틀어막은 후
가스밸브를 모두 열어놓은 채 시궁창같은
질곡에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립니다만,
곧 얼마 남지 않은 가스가 바닥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스 한통 제대로 채울 수
없었던 빈곤함이 그녀의 죽음마저 가로막은
셈이지요.
삶의 무게만큼이나 채워진 새 가스통을 안고
낑낑대며 되돌아오는 그녀 언저리를 리케는
오토바이를 타고 조롱하듯 맴돕니다.
결국 땅바닥에 쓰러지며 힘겹게 울음을
터트리고 마는 로제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리케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지요.
곧이어 암전(暗轉)된 화면 속,
그 정지된 흑백의 침묵을 타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벼랑 끝까지 몰리는 로제타의 처절한 모습은
절망과 탄식을 넘어서지요.
엔딩이 안겨주는 먹먹함과 거친 날것의
그 생경함이란...
수많은 로제타가 살고 있는 현 시대를
되돌아보게되는 시간으로 저며옵니다
1. 영화 < 로제타 - Rosetta > 예고편
http://m.cine21.com/movie/minfo/?movie_id=13359#_enliple
아무리 노력해도 평범한 삶은 잡히지 않고,
미친 듯이 발버둥쳐도 세상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는,
그 처참한 신고(辛苦)의 구렁텅이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남자' 아닌, '밥그릇'을 끌어안으며
고군분투하는 '여자'...
트레이닝 점퍼에 짧은 회색 치마를 대충
받쳐 입는 로제타입니다.
보이시한 짧은 컷트를 유지하는 스타일엔
그나마 약간의 여성성이 떼지 않은 장식처럼
남아있지요.
로제타는 식량 대용의 생선을 잡기 위해
늪지에 갈 때면 수풀 속의 작은 비밀 은닉처에서
흙먼지 낀 장화를 꺼내 신습니다.
생활비를 볼모로 엄마와 자는 남자를 쫓아내며,
"우리 엄마는 창녀도, 거지도 아니야.
그러니 제발 내버려둬!"라고 절규하는 여자,
어획이 금지된 사유지에서 철조망을 겉어내며
깨진 병으로 생선을 잡아 요리해 먹는 여자,
리케가 권하는 술 대신 물을 달라고 말하는,
그러다 맥주 한 병을 한번에 들이키는 여자,
리케가 자신이 연주한 밴드의 음악을 틀어놓고
그녀와 춤을 추려고 해보지만 움츠리며 그저
어설프기만 한 여자,
바로 '로제타' 이지요.
하지만 소녀 가장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그다지 자비롭지 않은 터,
차들이 씽씽 달리는 대로를 위험천만하게
가로지르는 로제타와,
현실에 뒹굴고 부딪치며 털썩 주저앉아 우는
로제타 뒤에서 멀찍이 오토바이를 타고 주위를
맴도는 리케,
그 모두를 시종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무심하게
방관할 뿐입니다.
영상 미학과 윤리학의 하모니가 가장 잘 구현된
시금석 같은 작품으로,
1999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 로제타 >.
안정된 직업을 향한 로제타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열망,
그 보통의 삶을 향한 가시밭길...
다르덴 형제 감독은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인터뷰를 통해
"밑바닥에서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적이 있지요.
이들의 작품은 생존하기 힘든 잔혹한 현실을
가차없이 묘사하는 리얼리즘적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다르덴 형제는 로제타를 짓누르는 간난(艱難)과
시련을 굳이 설득하려 하지 않지요.
그 흔한 콜라보적 배경 음악 하나 없이,
많지 않은 대사와 최소한의 음향 효과는
영화 < 로제타 > 를 마치 한편의 다큐처럼
자리하게 합니다.
응축된 대사와 집요하리만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컷 또한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감독만의 색깔로 오롯이 빛어내고 있죠.
다르덴 형제의 전매특허로 그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워킹'은 빠르고 헛헛한
호흡 속 불안정하기만 한 로제타의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투영해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특유의 롱테이크 촬영 방식 또한
로제타와 주변 인물들의 미묘한 떨림까지
천착(穿鑿)해내며 영상 리얼리즘의 미학을
극대화시켜주고 있지요.
하여,
< 로제타 > 는 아주 정교한 미스터리 영화처럼
계산된 움직임이 자로 잰 듯 담아지고 있습니다.
관객 스스로 끊임없이 채워가게 하는
다르덴 형제의 미니멀한 화법이 더 큰 울림을
헌사해주며,
할리우드 문법인 시선과 그 대상으로 구성되는
방식에서 자유로운 편집과 사운드의 창조적인
활용은 완벽합니다.
가히 인상적으로 펼쳐지는 피날레의 카메라
워킹...
그 전까지는 '그녀,로제타' 홀로 바라보거나
카메라만 있고 인물은 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마지막 장면의 로제타의 시선 바깥에는 그나마
남자의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는 게 엿보이지요.
로제타의 왕성하다 못해 집요하기 그지없는
생명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다름아닌
'일자리를 향한 열정' 입니다.
그녀는 흔히 여성에게 기대되는 우선 순위를
뒤집은 채,
동료를 등지고서라도 자신의 밥벌이를
수호하겠다는 원색적인 결연함, 또한 가혹함을
냉정하게 드러내지요.
이처럼 '내일'의 진정어린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아니, 살 수밖에 없는 로제타...
영화의 열린 결말은 로제타의 미래에 관해
여백으로 남겨놓으며,
섣불리 짐작할 순 없겠지만 엔딩 신의 불그레
상기된 얼굴에서 이전과 다른 그녀의 삶을 향한
의지를 조심스레 읽혀지게 합니다.
절망의 진흙탕에서 가스통보다 잔인한 무게로
짓눌러오는 고난을 견뎌내며,
'최선을 다해 살겠노라' 로 여겨지는 로제타의
그 절절한 눈빛을 통해서 말이지요.
- 李 忠 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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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in Cinema┨
영화 < 로제타 - Rosetta > 속 평범한 삶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충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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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9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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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영화 < 로제타 >...
20년전의 이 영화로 다르덴 형제의 나라 벨기에에선 청소년 취업 활성화를 위한 '로제타 플랜'을 만들었다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