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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현동 작공앞에 선 최시온 새내기교사(사진제공 : 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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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공의 노란등과 복작복작 몰려있는 아이들에게 홀려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작공의 교사가 되어있었다. 자석에 끌리듯 자연스럽게 작공에 뿌리내린 지 10개월. 이 신출내기 길잡이 교사의 작공일기를 솔직하게 써 보기로 했다.
8시에 일어나 아침 먹고 여유를 부리다 씻고 9시 50분에 집을 나선다. 사실 10시에 나설 때도 있다. 큭.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내 직장은 작공이란 곳이다. 오자마자 하는 일은 어제 아이들이 남기곤 간 흔적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다. 흔적들이 아름답지만은 않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닦고 쓸고 씻고... 달달한 믹스커피에 차갑게 얼음 띄워 사무실 내 자리에 가져오는 것으로 지긋지긋하지만 멈출 수 없고 열심히 해도 티 안 나는 집안(?)일이 마무리된다.
작공에 동료 선생님이 계시면 못하지만 안 계실 때면 뉴스도 보고 페북도 들어가 보고 메일도 확인하며 살짝 숨 돌리다가 서류작업을 시작한다. 서울시에서 임대료와 인건비를 받고 있지만 프로그램비는 구청이나 교육청에서 받기 때문에 돈을 쓰면 어디에 썼는지, 증빙도 해야 하고 작업할 게 많다. 처음 카드를 쓸 때는 맞게 쓰는 것인지, 써도 되는 것인지, 재차 묻기도 하고 엄청 긴장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겨 돈쓸 때 흥분(?)된다.
서류작업 하다 보면 속 깊은 세라가 작공에 온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고민이 뭔지 얘기하다 서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듣곤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점심은 계란밥! 처음엔 계란밥을 먹는 아이들이 불쌍했는데 한번 먹어보니 이건 뭐 마약과 따로 없다. 둘이서 계란 하나씩 밥에 얹어 간장과 참기름을 조금씩 뿌리곤 매운 라면 한 개를 끓여 찌개처럼 먹는다. 누군가 마음 아파하겠지만, 제일 맛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서류작업을 한다. 일하다 지루하면 괜히 나가서 밖에 한번보고 밖 공기도 마시고 넓지도 않은 홀을 한두 번 돌다 다시 제자리로 온다. 시간이 두 시간쯤 지났을까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작공 터줏대감들이 몰려온다. 잔잔했던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장난에 반응을 할 것인가, 못 들은 척 할 것인가, 진지하게 내 얘기를 해볼까, 장난을 쳐볼까 등 매분 마다 머리가 핑핑 돈다.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아이들 덕에 머리는 아프지만 조금씩 성장을 하게 된다. 처음엔 ‘왜 저럴까. 진짜 어떻게 저럴 수있지?’란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랬겠네’라고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이 저녁프로그램들(영어수업이나 인문학수업, 노래수업 등)을 하기 전 시끄럽게 저녁을먹으면 가위바위보로 설거지담당을 정한다. 희비의 순간은 보지 않으면 정말 아쉬울 정도로 작공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설거지에서 제외되는 아이들은 월드컵 못지않게 환호성을 질러댄다. 설거지에 당첨이 된 아이는 두 가지다. 욕을 하거나 바로 고무장갑을 끼거나. 아이들이 설거지를 마칠 즈음 퇴근준비를 한다. 더하면 올라올 것 같은 서류작업을 내일로 미뤄두고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비운다.
나 : “OO아 저것 좀 가져다 주라”
OO : “제가 왜요?, 제가 할 일이 아닌데요?”
나: (심장이 뚝 떨어지지만 아무렇지 않은척하고 직접 가지러 가는 중에)
OO : “여기요”
나 : “으이그, 해 줄거면서!!!!” (기쁨과 환희)
표현하는데 서툰 아이들과 지내며 ‘속뜻’에 대해 많이 배우는 것 같다. 드세 보이지만 한없이 여린, 관심 없어 보이지만 따뜻한 아이들. 눈치 보면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속뜻’을 알아채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이들 속을 읽는 초능력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왜 일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은 것 같다. 내 대답은 애들이 예뻐서다.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너무 예쁘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도 있겠지만, 성장통 없는 성장이 어디 있겠는가. 성장통을 견디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기특하다. 그리고 작공 아이들 비쥬얼이 좋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크크. 교사인 듯 하지만 사실 작공의 따까리를 하고 있는, 교사 비스무레한 나. 단 하루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계획한대로 살수 없는 작공에서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작공은 학교 밖 청소년 징검다리 거점공간으로 갈현동에 있습니다>
최시온 작공교사 singno@daum.net
<http://www.e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