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마을 나들이/전 성훈
코로나로 숨죽이고 지내는데 아이들이 바람을 쏘이려가자고 해서 1박2일 여행을 따라나선다. 경기도 여주 일원에 머물 예정이었으나 숙소를 구하지 못해 잠자리는 양평군 서종면 소나기마을 근처이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길을 떠나면 마음은 온통 설렘으로 가득하다.
오래전에 다녔던 중부고속도로는 어찌된 영문인지 구리 부근을 지나면서 가다가 멈춰서고 가다가 멈추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가까스로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창 터미널 시설 공사 중이다. 볼일이 급하여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길 한편에 지동차를 세우고 도속도로 관리사무실 화장실로 들어가니 나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서둘러 들어온다. 집을 나설 때는 모처럼 해방감에 기분이 좋았으나 자동차 안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니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머피의 법칙’처럼 우리 자동차가 달리는 차선은 옆 차선에 비해 늘 지척거린다.
명절이나 휴가철도 아닌데 집을 떠난 지 3시간 20분이 지나서 어렵게 경기도 여주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맛집으로 소개된 ‘그늘집’이란 곳에서 어복쟁반전골과 한우불고기정식을 주문했다. 시골집 구수한 강된장으로 끓인 우거지된장찌개 국물을 두 숟가락 떠서 마시니 입안이 개운하고 군침이 돌면서 기분이 나아진다. 나는 역시 토종한국인의 입맛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갈한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며 식사를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손녀와 손자를 위해 여주 곤충박물관을 찾는다. 변색동물인 카멜레온을 손으로 만져보고 있으니 4살 손자가 징그러운 노래기를 만지며 ‘할아버지 물지 않아요.’하면서 건네준다. 아이들은 동물을 무섭거나 징그러운 대상으로 느끼기에는 아직 천진난만하다. 바깥의 기온이 의외로 포근하여 윗저고리를 벗어들고 간편한 복장으로 곤충박물관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여주를 벗어나 숙소로 잡은 양평군 서종면으로 향한다. 여주로 내려갈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부고속도로대신 양평/원주간 고속도로는 너무나 한가하여 자동차들이 신나게 달린다. 과속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120km를 넘기지 않는데 옆 차선을 달리는 자동차는 쌩하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서종면 ‘소나기마을’을 조금 지나 ‘구름도 바람도 쉬어가는’ 팬션에 도착하여 주변의 산을 바라보니 그다지 단풍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만추의 계절에서 초겨울이 손짓하고 있는 느낌이다. 오전 내내 뿌옇든 미세먼지도 사라져 하늘도 깨끗하다. 숙소에 짐을 넣어두고 혼자 숙소 옆 개울로 내려간다. 계곡 어딘가에서 공사를 하는지 물소리는 좔좔 졸졸 들리는데 맑고 깨끗해야할 계곡의 물이 쌀을 씻은 듯이 뿌옇고 흐리다. 잠시 계곡의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불현듯이 임진왜란 당시 이야기가 생각난다. 조선의 군사들이 많다는 것을 왜군에게 보여주려고 쌀을 씻고 또 씻어서 쌀뜨물이 철철 흐르게 했다는 전설 아닌 전설 같은 이야기다.
양평군과 경희대학교의 후원으로 이곳에 황순원 문학관을 조성하면서 황순원 선생의 단편 ‘소나기’의 무대 원형을 구현하고자 소나기마을 꾸몄다고 한다. 윤초시네 증손녀와 시골 소년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아 궁금하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시험에 ‘소나기’의 주인공들의 관계를 묻는 문제가 있었다. 자신 있게 ‘사랑’이라고 했더니 정답은 ‘우정’이란다. 국어선생님께 왜 사랑이 아니냐고 물어보자, ‘조그마한 녀석이 너무 까졌다’고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햇볕이 잘 드는 박물관 부지 황순원선생 부부의 묘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 옛날 대학에서 1년간 황순원 선생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본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놀의 마지막 불꽃이 사라져가자 팬션 주위는 금세 어둑어둑해진다. 아이들이 구워준 목살과 삼겹살을 안주로 50일 만에 소주 한 잔 마셨더니 감회가 깊다. 위염 증세가 심하여 여름 내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고, 위염 증세가 호전되자 곧바로 기침감기로 6주간 쩔쩔매고 용기를 내서 독감예방주사로 맞고 이제 조금 낫은 듯하다. 홀가분한 마음에 술 한 잔 벗하니 술 한 잔이 이토록 고마울 줄이야. 며칠 전 하늘로 여행을 떠난 친구에게 술 한 잔 권하며 지금 그를 기억할 수 있음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2020년 11월)
“ 내 나이 또래 환갑은 됐음직한 석류나무 한 그루를 이른 봄에 사다 뜨락 볕바른 자리를 가려 심었다. 그해엔 잎만 돋치고 이듬해엔 꽃을 몇 송이 피웠다 지워 다음해엔 열매까지 맺어 뻥긋이 벙으는 모습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다. 헌데 열매는커녕 꽃조차 피우지 않아 혹시 기가 허한 탓인가 싶어 좋다는 거름을 구해다 넣어줬건만 그 다음해에도 한뽄새였다. 어쩌다 다된 나무를 들여온 게 한동안 안쓰럽더니 차츰 나무 대하는 마음이 허심하게 되어갔다. 이렇게 이 해도 열매 없는 가을을 보내고 겨울로 들어서면서였다. 짚과 새끼로 늙은 나무가 추위에 얼지 않게끔 싸매주고 물러나는데 거기 줄기도 가지도 뵈지 않는 자리에 석류가 알알이 달려 톡톡 벙을고 있었다. [황순원, 늙는다는 것]
벙글다 : 맺힘을 풀고 툭 터지며 활짝 열리다
한뽄새 : 언제나 변함이 없는 하나의 생김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