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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양음악이론 원문보기 글쓴이: 피뤼소녀
<피리의 악곡들>
*산조(민속악)*
- 정재국류 : 오진석의 피리산조는 이생강의 채보로 남아있었는데, 이를 정재국이 오진석류 피리산조라 할 수 있는 피리산조를 재정리하여 1972년에 피리산조로는 최초로 무대에서 선을 보였고,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로 구성된 정재국류 피리산조로 전승하고 있다. 피리 주법상의 독특한 더름치기․목튀김․혀치기․비청주법 등의 기교가 한껏 발휘되는 음악으로 꿋꿋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다양한 조들을 활용하여 음계의 변화와 본청의 이동을 꾀하고 있다
- 서용석제 한세현류 : 피리 산조는 조선 말기 뛰어난 피리 명인인 오진석(1885-?)에 의해 짜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서용석제 피리산조는 경기 무속음악의 명인인 이충선이 한주환의 대금 산조를 피리로 연주하여 서한범에 가르친 가락을 서용석이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이
가락은 한세현에 의해 연주되어 지며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의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박범훈류 : 박범훈의 스승인 지영희에게서 배운 피리시나위 가락을 토대로 새로 작곡한 현대적인 창작의 개념을 많이 도입하여 새로 작곡된 산조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박범훈류 피리 산조는 경기 시나위 가락 외에 남도계면조·대풍류조·메나리조 등 다양한 조의 변화와 길바꿈을 꾀하고 있으며, 서치기· 비청· 더늠 등의 다양한 주법을 도입하였다. 박범훈의 산조의 장단 구성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이다. 피리 주법상의 기교가 한껏 발휘되는 음악으로 꿋꿋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 이충선류 : 1960년대 초에 국악사양성소의 강사로 있던 시기에 그는 산조를 처음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이충선류의 장단은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굿거리·자진모리 등으로 짜여져 있었다. 이를 토대로 다시 다른 악기의 산조 가락을 피리에 맞게 고친 것을 덧붙여 오늘날 연주되는 것과 같은 피리산조가 확정하게 되었다.
*정악*
종묘제례악 - 세종7년(1435년)때 정대업지곡 15곡, 보태평지곡 11곡을 만듬. 그러나 제사음악으로 사용되지 않고, 세조 9년에 이르러서 정대업 11곡, 보태평 11곡으로 새롭게 고쳐 종묘의 제례음악으로 채택.
경모궁제례악 - 정조 7년에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제례를 봉행할 때 연주되던 음악.
유황곡 - 태조 2년(1393년)에 태조의 무공을 높이 찬양하는 내용의 악장을 개국 공신의 한 사람인 삼봉 정도전이 지어 연주되어 오다가 세조때부터 태조 고황제를 모신 문소전에서 제향을 받들때 연주되었다.
정동방곡 - 태조 2년(1393년) 태조의 무공과 조선의 건국을 송축하기 위해 지음. 이 곡은 태조와 신의왕후의 혼을 모신 사당인 문소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와 경칩일ㆍ상강일에 둑제를 지낼 때 아헌ㆍ종헌ㆍ철변두 절차에서 연주되었다. 세종 때는 회례연에서 사용되기도 하였고, 성종때는 향악과 당악을 위한 악공취재의 시험곡으로도 쓰였다.
경록무강지곡 만 - 세종조 봉래의에 나타난 만은 당피리가 중심이 되는 음악으로 나라음악으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기수영창지곡 : 낙양춘-고려 말엽 12세기에 당시 송나라에서 수입된 음악으로 궁중 연례에 많이 연주되어 왔다.
태평춘지곡 : 본령 - 군왕의 행차 때에 주로 아뢰던 행악의 일종이었다. 원명은 여민락 영으로 그 이름을 줄여서 “영”이라고도 흔히 통칭된다.
서일화지곡 : 해령 - 본령과 동일하게 임금의 거동이나 행차 때에 길게 아뢰던 행악의 한가지로 매우 엄숙하고 화려한 흐름이 장대하다.
장춘불로지곡 : 보허자 - 송나라 때 들어온 송사악 계통의 음악으로 기수영창지곡과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중국에서 전래된 당악이다. 궁중의 연향, 정재, 반주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원래는 7장으로 이루어 졌으나 현재는 3장만 연주되고 있다.
여민락 - 조선시대 세종 때 창제된 <봉래의>에 포함되었던 음악이다. 한문으로 된 <용비어천가>의 일부를 노래롤 부르기도 하던 곡이다. 사신의 연향이나 임금의 거동 때 행악으로 사용되던 음악인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형이 생기게 되어 이미 조선 초기에 편찬된 <경국대전>에는 여민락이 들어간 곡명들이 보인다.
도드리 - 밑도드리(수연장지곡)과 웃도드리(송구여지곡)으로 나뉜다. 조선조 세조 때에 만들어진 곡으로 나라의 중요 연향과 정재의 반주음악으로 널리 연주되는 곡이다.
유초신지곡 - 관현악 합주의 대편성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평조회상이라고도 하며, 우조계면조 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변조한 악곡이다.
표정만방지곡 - 영산회상의 한 갈래로 관악기가 중심이 된느 관악합주곡이다. 삼현 영산회상 혹은 대풍류라고도 부른다. 이 곡ㅇ을 연주하는 악기는 주로 삼현육각, 즉 피리 2, 대금1 해금1 장구1 좌고1로 가야금이나 거문고 등 현악기가 빠진 편성이다.
만파정식지곡 - 취타는 불고 때린다는 뜻으로 고려시대 후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군악조의음악이다. 만파정식지곡인 취타는 대취타를 변주하여 연주하는 곡이다. 임금의 능행등의 행사와 성문을 드나들 때 전정의식이 있을 때 군대행진이나 개선할 때 장군이 기동 할 때 성문을 여 닫을 때 등에 연주하였다.
절화~군악 - 행진곡풍의 관악곡으로 현악기는 사용되지 않는다. 절화부터 차례로 길타령, 금전악, 군악으로 연주된다.
자진한입 - 자진한입은 우리나라 가곡의 원형인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을 말한다. 만대엽과 중대엽은 조선 초기에는 연주되었으나 조선 조 말엽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쇠퇴하여 빠른 삭대엽만 남았는데, 여기서 여러곡이 파생하여 현재 가곡의 모체가 되는 것이다. 자진한입은 경풍년이란 아명으로 부르기도 하고 이것을 다시 나누어 경풍년, 수룡음, 염양춘이라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수제천 - 수제천은 전래하는 아악곡 중 가장 오랜 것으로서 약 1200년 전 신라시대에 창작되어 궁중 연례 및 무용반주음악으로 연주되어 오는 전 4악장으로 된 관악곡이다. 정읍 또는 빗가락정음이라고도 한다. 빗가락정읍이란 곡명은 세가락정읍인 둥둥과 구별하기 위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동동 - 대악후보 권7에 수록되어 있는 동동은 계면조이다. 고려시대의 속악 정재인 아박무에 동동사를 부르고 반주음악으로 쓰였다는 동동곡을 연주한다는 악학궤범 권3의 기록도 볼수 있다.
중광지곡 - 궁중 혹은 민간에서 연주되고 있는 조곡과 같은 형식의 음악이다. 현악영산회상 또는 줄풍류라고 하는데 악기 편성은 거문고1, 가얏고1, 해금1, 단소1, 세피리1, 젓대1, 장구1로 편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 양금을 편성하기도 한다.
천년만세 - 천년만세에는 계면가락도드리, 양청도드리, 우조가락도드리가 있다. 계면가락도드리는 계면조 가락에 의한 도드리란 뜻에서 온 것이고, 양청도드리는 보허자의 파생곡인 웃도드리를 다시 변주한 곡이다. 우조가락도드리는 우조가락에 의한 도드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령지곡 - 대취타는 취타와 세악을 대규모로 갖춘 군악으로 취타 또는 무령지곡이라 한다.원래 대취타는 다양하게 쓰였으나 근대 이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천과정을 거쳐서 본래의 대취타가 지닌 대규모의 편성에서 축소되어 현재는 취고수의 음악만으로 축소되에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대취타는 1910년 한일합병이후 절멸되었다가 1961년 10월 국군의 날 기념행사로 52명 편제로 재현되었으며, 1971년 6월 최인서옹을 예능보유자로 지정, 1993년 정재국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가곡 - 가곡은 만년장환지곡이라고도 하며, 3행으로 된 시조시를 관현반주에 맞추어 5장 형식으로 노래하는 음악을 말하는데 그 원형은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으로 나누게 된다.
만은 느리고 중은 중간속도이며 삭은 빠르게 연주한다는 뜻으로 영조 35년에 편찬된 대악후보에는 만대엽만 나타나있어 세주 때 까지는 느린 만대엽만 불려졌다고 볼 수 있다.
가사 - 조선 조 중엽 이후 생긴 것으로 가사체로 된 긴 사설을 노래하는 성악곡이다. 조선 전기부터 있던 가사도 노래로 불리워졌던 것 같으나 곡이 전해지지 않아서 가사와 비교할 수가 없다.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에는 17곡이 실려 있으나 그 중 7고이 없어지고 죽지사, 수양산가가 새로 생겨 12곡이 되었다.
시조 - 시조는 가곡과 마찬가지로 시조시를 가사로 하여 초, 중, 종의 3장으로 된 부르기가 수월하고 보편화된 노래로 시조창, 단가, 시절단가, 시절가등으로 불려 지기도 한다. 시조창은 조선 영조 때 이세춘에 의하여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춘앵전 - 춘앵전은 조선조 순조 때 창작된 궁중정재의 하나이다. 춘앵전은 본시 중국 당대에 창제된 무악의 이름인 것을 순조 때 그 이름만을 발리어 춤과 음악은 독특하니 아주 새로운 것으로 지은 것을 이르고 있다.
<피리명인>
*정악*
이인식 ( ? ~ ? ) - 조선 후기의 국악사로 피리의 명인이며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본관 경주. 본명 성효. 피리의 명인으로 헌종∼고종 연간에 활약하였다. 거문고의 대가 수경의 할아버지이며 원근·병성 등 많은 국악인을 배출시켰다. 그는 장악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궁중의 많은 연례에서 피리를 불었다. 벼슬은 1847년(헌종 13)에 가전악, 1876년(고종 13)에 전악을 거쳐 악사가 되었다.
최순영 (1864~1940) - 국악사로 피리를 전공하였고 이왕직 전악과 아악수장을 거쳐 아악사를 지냈고 아악부원양성소 주임교수로 있었다. 본관 전주. 본명 순룡. 서울 출생. 1875년(고종 12) 장악원악공으로 피리를 전공하고, 1903년(광무 7) 전악이 되었다. 10년 국권피탈이 되자 사직했다가 11년에 다시 이왕직 전악에 임명되고 13년 아악수장을 거쳐 32년 아악사를 역임했으나 38년 고령으로 은퇴하였다.
김영제(1883~1956) - 국악이론가, 가야금 ·피리의 명인. 가야금이 전공이었으나 편보와 악기 개량에도 뛰어났으며, 국악자료의 수집, 악보 정리, 악률의 개정 등에 공헌하였다. 또 아악부원양성소를 개설해 후진을 길러내는 한편 승무의 부활에도 힘썼다. 1897년(광무1) 장례원 전악에 오르고, 1908년(융희2)에는 궁내부의 국악사), 1911년에는 이왕직아악사, 1928년에는 제4대 아악사장에 임명되었다. 또 아악부원양성소를 개설하여 후진을 길러내는 한편 승무의 부활에도 힘썼다.
김보남(1912∼1964) - 호는 신곡. 서울 출생.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제3기생으로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였고, 후에 아악수·아악수장·아악사가 되었다. 춤에 소질이 있어 박성재·김천흥의 두 선배와 더불어 무용연구소에 나가 승무를 배웠고, 1950년대까지 한국 춤으로 크게 활약하였다.
김준현(1918~1961) - 본관은 경주, 호는 가농이다. 충남 연기 출생이며 14세 때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 제4기생으로 입소, 최순영에게 피리를 배우고, 김계선에게 대금을 배웠다. 1936년 아악수가 되고,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의 국악사가 되었다. 목피리를 잘 불어 합주는 물론 독주에도 능하였으며 국악의 피리연주에 신기원을 이룩하였다. 1952년 국악진흥회로부터 제3회 국악상을 받았다.
김태섭(1922∼1993) - 종묘제례악 악사. 서울 출신.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과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기예능보유자였다. 1936년 이왕직 아악부 양성소 제5기생으로 궁중음악과 무용을 전공하였다. 전공악기는 피리이며, 피리 명인 김준현이 그의 스승이다. 만년에는 피리연주가로서 보다는 정악곡의 장구반주를 주로 맡았고, 또한 후배 악사들을 지도하였다. 1941년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 1947년 구황궁 아악부 아악사, 1951년 국립국악원 예술사, 1955년 국악사를 거쳐, 1978년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궁중음악과 무용 등 다양한 기능을 가졌던 음악인인 그는 피리와 태평소를 비롯하여 생황의 연주에도 능통한 악사로 그동안 관악기 분야에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1970년대 후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 출강하여 가곡과 시조를 지도하기도 했다.
정재국( 1942~ ) - 충북 진천 출생 1962년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출신.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풍류의 기능 보유자이다. 현재 피리정악 및 대취타보존회 대표. 정악계에서는 최고의 대가라고 불리움.1966년 국립국악원 연주단 연주원이었고, 1967년에는 국립국악원 장악과 근무하였으며 1972년 제1회 피리독주회(국립극장 소극장) 열었다.
1981.1 국립국악원 연주단 지도위원되었고 1993.8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대취타' 보유자가 되었다.
곽태천(1946~ ) - 1946년 09월 30일에 태어났으며 현재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음악학부 국악전공 교수이고 영남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이다.
박인기(1947~ ) - 서울출생. 박인기는 6년 과정의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를 졸업(1967)하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국립국악원 연주원을 거쳐 추계예술대학교와 이화여자 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그는 1997년부터 한양대학교 음악대학교수로 재직한다. 1977.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국비전수장학생으로서 이수자가 되었다. 정농악회와 서울악회를 중심으로 전통 정악의 맥을 지키며 많은 연주를 하였고, 국악 관현악단과의 피리협주곡을 비롯하여 창작음악 연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영국, 독일, 미국, 쿠바 등 국제적인 음악회에 초청되어 한국 피리음악을 널리 알렸다. 특히 박인기는 피리의 좁은 음역을 확대하려는 뜻에서 넓은 음역대를 가지 황종피리, 임종피리 등을 개발하여 피리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김관희(1951~ )-1951년생으로 1964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 입소하여 피리를 전공하고 1970년 졸업하면서 바로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평생 국립국악원에 근무하였다. 국악원의 피리 연주자 부수석, 수석 등의 경력을 가지면서 크고 작은 모든 음악회에 피리 연주자로서 활약을 하였고 음반 녹음과 해외무대도 경험하였다. 수석으로 김태섭, 이충선, 정재국 등을 사사했다. 특히 김태섭과 정재국의 영향이 커 그의 사표가 되고 있다. 그 외에 이주환에게 가곡, 가사, 시조를, 이창배에게 민요를, 김천흥에게는 한국춤, 그리고 박동진에게는 판소리도 배워 그가 반주음악을 연주하거나 합주를 할 때 더 없이 좋은 자산이 되고 춤을 배운 것 역시 정재의 반주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김관희는 정악피리와 함께 무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된 대취타도 전공했다.
곽태규(1954~ ) - 1954년 11월 07일에 태어났다. 현재 국립국악원 연주단 단원이며 이화여대 음대 강사이다. 또한 국립국악원 정악단 악장(피리)였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다.
박치완 -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 박치완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이며 서울대 국악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을 졸업했으며 국립국악원 정악단 단원을 역임했고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수석에 재직 중이다.
황규상 -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 졸업했다.
현재 국립국악원 단원이며 한양대에 수업을 나오고 있다.
이영 -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했고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하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하였다.
*산조(민속악)*
장량선 - 해주에서 태어남. 황해도 해주 삼현을 박동신에게 가르쳤고, 피리보다는 장구에 더 능하였다.
강학수 - 강학수선생은 조선조 말엽 궁중전악인 김여관 선생의 수제자로 피리의 여러 가지 독특한 기교와 주법을 거의 완전무결하게 구사하였다.
최인서 (1892~1978) - 경기도 포천 출생. 일찍이 서울로 올라와 태평소의 명인 박오순에게 그 주법과 제작법, 그리고 대취타의 여러 가지 곡조를 배우고 일가를 이루었다. 같은 태평소의 명인 임원식과 쌍벽을 이루었으나 임원식이 작고한 뒤로는 혼자서 태평소의 법통을 지켜왔으며 뒤에 국립국악원 악사들에게 이를 전수하여 오늘날까지도 그 법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1971년 대취타 중의 태평소로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그의 대취타의 태평소기능은 제자인 김태섭과 정재국에 의해 이어져 오고 있다.
한말·일제강점기의 태평소의 명인으로 태평소의 법통을 국립국악원 악사들에 전수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오게 하였다.
이충선(1901∼1989) - 경기 무속음악 반주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삼현육각과 산조, 풍류, 대풍류, 무용반주 등에 통달한 예인이었다. 악기도 해금, 피리, 대금, 단소, 양금, 태평소, 가야금, 철금 등 거문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악기에 능통했다. 이충선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9호 송파산대놀이의 악사(피리, 대금)로 지정되어 활동하였다.
이규성(904~?) - 경기 안성 출생, 호는 월정이다. 1985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에서 조사한 줄풍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이규성은 경기도 안성군에서 태어났고 15세 때 안성에서 이기석에게 영산회상을 배웠고 대전으로 이주하여 대전정악원 시절에 율회에서 피리풍류를 불었다. 이 자료에는 이규성이 풍류만 연주한 것으로 봐서 풍류객인 것 같다.
박동신(1909 ~ 1992 ) -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기예능보유자. 황해도 해주출생. 16세 때 먹티기라는 악사로부터 해서삼현육각을 배웠고, 이호윤과 장량선에게 피리를 배웠다. 1995년(1980년대 초 녹음) 제작한 음반 있다.
지영희(1909∼1979) - 경기도 무속 음악과 민속악의‘산 귀신’으로 불리며 장구, 아쟁, 해금, 피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 양경원에게 피리 삼현육각을 학습했다.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로 활동했고,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유망한 신인들을 양성했다.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고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해외이민으로 지정이 해제되었다. 피리 시나위를 통한 피리산조에 영향을 끼쳤다.
최경만(1947~ ) - 전통 민속음악의 대부로, 피리음악의 명인으로 일컬어지는 최경만은 1947년 2월 1일 지금의 서울 군자동에서 태어났다. 1965년에 창단된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단원으로 활약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음악감독 역임이며 중앙대학교 겸임교수이다. 한국전통음악연구회 총연합회 회장이기도 하고, 한국피리음악연구회 고문이다.
허용업(1947~ ) - 1947년 경기도 양주 출생. 그의 부친 허상천은 민속악(피리)연주자 였으며 백부인 허상복 또한 해방전후 민속악연주의 대가로 크게 활동하던 명인이었다. 이충선에게 삼현악곡의 기본곡과 무악 전반에 걸쳐 수업한 후 강학수와 이일선에게 수학한다. 민속악 연주만을 고집하였고, 음반이 있다.
박범훈(1948~ ) - 양평에서 태어났고 현재 중앙대학교 총장이다. 1987년 중앙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하고 1994년 오케스트라 아시아 상임지휘자를 했다. 1995년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 예술감독을 했고 2003년에는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원장,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국악관현악과 교수를 했다. 2007년에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선거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회 위원장을 했었다. 현재 박범훈이 스승인 지영희에게서 배운 피리시나위 가락을 토대로 새로 작곡한 산조 박범훈류가 있다.
한세현(1956~ ) - 1956년 전남 화순생이다. 서울국악예술 고등학교에서 지영희에게 피리를 학습하였고 국립국악원에서 연주자로 활동 중이다. 민속악 피리 연주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적은 우리 현실에 비해 완숙한 경지에 이른 피리 연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
경주 신라문화제 전국 기악경연대회 대상 (대통령상 수상)을 탔고, 한세현 피리독주회 6회 발표했다.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연주단 악장이며 한국피리음악연구회 지도위원이다.
나영선 - 학교는 한양대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하였고 조선대학교 음악교육학 석사 졸업하였다. 그는 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전수자이며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주자이다. 현재 국립국악원 정악 연주 단원이고 21세기 피리음악 연구회 회원이다.
*참고자료*
http://cafe.naver.com/sorijangle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504
http://blog.naver.com/sunrise18?Redirect=Log&logNo=80000629007
http://blog.naver.com/kjjmad?Redirect=Log&logNo=14726427
http://blog.naver.com/hws0102?Redirect=Log&logNo=40033503938
http://cafe.naver.com/kkmj1004.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
피리정악보-정재국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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