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시간의 향기
강표성
금산의 인삼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달콤 쌉싸름한 향이 착 안긴다. 무명실 같은 뿌리들이 다보록한 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미황색 뿌리 하나하나에 긴 갈증의 마디들이 숨어 있고, 비바람과 햇살이 녹아있지 싶다. 어둠 속에서 홀로 익혀낸 시간의 향기이다.
인삼은 적어도 사오년은 땅 속에서 견뎌야 하고 오륙년을 묵혀야 대접받는다. 그 긴 시간 동안에 가장 문제되는 것은 습기와 벌레들이다. 무나 당근처럼 철 따라 자리를 옮기고, 땅을 가려가며 뿌리 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라고 굳이 인적 드문 산비탈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겠다. 하지만 낮은 해가림 아래서도 꽃을 피워야 하고, 붉디붉은 열매를 맺어도 찾는 이 하나 없는 외딴 곳에 심겨졌으니. 때로는 소낙비 속에서 때로는 폭염 아래서 자신을 지켜내며 뿌리에 대한 희망으로 긴 시간을 버텼으리라.
굵직한 게 육년 근은 실히 되겠다. 야무지고 단단하여 그간의 세월이 잘 녹아있다. 수많은 뿌리 중에서 인삼에게만 사람 인(人)자를 붙이는 이유를 알듯 하다. 때깔 좋고 형태 비슷한 것을 찾아서 옛날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뿌리를 정돈하여 모양을 잡아본다. 사람처럼, 양손을 맞잡고 발과 발을 살짝 꼬아주니 그림이 완성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농염한 여인이 거기 있다. 살아있는 미인도다. 미백색 피부가 얼마나 탄력있는지 유리병 속에 잠긴 인삼이 와락 다가온다.
이와는 달리 우직한 사내 같은 것도 있다. 난발이다. 제멋대로, 뿌리를 뻗치고 있는 게 거죽부터가 다르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땅의 기운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들쑥날쑥 볼 품이 없다. 외양이 그러하니 가격도 제대로 쳐주지 않는 무녀리에 가깝다. 그러나 인삼을 볼 줄 아는 이들은 흔쾌히 집어 든다. 값도 값이지만 거친 뿌리에 남아있는 야생의 기운을 믿기 때문이다.
난발마다 얼룩이 남아 있다. 땅 속에서 생살이 먹힌 흔적이다. 어쩔 수 없이 에돌아가면서도 상처가 난 모양이다. 한 곳에 뿌리 내리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돌아가야 할 때와 질러가야 할 때를 기다리며 땅의 주인이 된 그것들, 영광의 상처치곤 옹골차다.
딸애가 떠오른다. 그 애는 취업준비생이다. 도서관과 집만 도돌이표처럼 오가는 인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과외 한번 없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간 것까지는 감사한데, 그 다음 문 앞에서는 긴 시간을 서성이고 있다. 매번 앞으로 나아가지만 투명한 유리문에 머리를 부딪치는 꼴이다.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라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뒷심이 부족한 애를 위해 난발꾸러미를 집어 든다.
이참에 홍삼 만들기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수삼을 아홉 번 찌고 말리는 구증구포를 하면 홍삼이 된다는데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것이다. 연이어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쓴맛이 순화되고 성분도 훨씬 좋아진단다. 습기에도 강하고 보관도 쉬울 뿐더러 무엇보다도 몸에 좋은 사포닌이 많아지기에 보약 중에 최고로 친다는데 이 귀한 걸 먹으면 특별한 기운을 얻을 것만 같다.
딸애 또한 구증구포의 기간을 지나고 있다. 어둠의 시간들을 견뎌내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중이다.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은 적도 많았을 테다. 적당히 타협하고 싶지만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자신이 꿈꾸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법. 쓰디쓴 시간들을 통과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홍삼을 만들기 위해 잘 씻은 삼을 베보자기에 깔고 찜통에 찐다. 한 김을 식힌 후에 다시 김을 들이고, 이렇게 아홉 번의 과정을 거치는 게 쉽지 않다. 단단하기만 하던 미황색 몸피가 수증기를 맞으면서 서서히 변해간다. 다부진 뿌리가 한결 부드러워지고 말랑말랑해진다. 탱탱한 긴장감 대신 손맛이 수굿하다. 한번, 두 번, 뜨거운 김과 서늘한 바람을 차례로 거치면서 조금 더 각별한 무엇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지루하게, 김을 들이고 식히는 과정을 이어가노라니 여러 생각이 오간다. 사람이든 물질이든 존재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무엇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치 않는 비바람을 버티기도 하고, 절뚝거리며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런 후의 오롯함.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귀한 것일수록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사는 일도 그러하다. 살다 보면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고꾸라지고 주저앉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본다. 그렇다고 무너져 내리면 다시는 돌아가기 힘든 법, 힘겹지만 일어서는 연습을 한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 그게 바로 인생인지도 모른다.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면서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손 잡는 연습을 해본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흠집 투성이의 자신. 그러다가 질펀하게 주저앉아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배우기도 한다. 바닥에서 배우는 서늘한 발견이다.
구증구포는 내게 기도와도 같다. 거친 난발이 지루하고 힘든 시기를 거쳐서 신비로운 홍삼이 되듯, 아이 또한 크고 작은 시련을 통과해서 단단한 사람으로 변하기를 빈다. 나와 상대가 다르지 않음을 알고, 인간은 과정적인 존재임을 알아가면 좋겠다. 내 길을 바삐 걷다가도 지켜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생의 비의를 깨달아 가는 겸허한 인격이 된다면 돌아가는 이 노정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꾸들꾸들해진 삼을 펴서 채반에 널어놓는다. 달달하면서도 깊은 쓴 맛이 집안에 그윽하다.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찌고 말려야 한다. 구증구포를 통과한 이 거친 시간의 향기는 과연 어떤 느낌일지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첫댓글 아내의 공방에 가면 여러가지 꽃차들이 작은 병에 담겨 있습니다. 모두가 '구증구포'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꽃 잎마다 향기가 달라서 곁에 있는 내 서재까지 향기 그윽합니다. 강표성 회장님께서 구증구포를 기도라 하셨습니다. 아내가 정성을 들이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갑니다. 회장님의 기도에 힘입어 분명 따님의 취업도 이루어지리라 굳게 믿습니다. 달달하면서서 쌉쌀한 향기가 손에 잡히는 듯합니다. '거친 시간의 향기'라는 제목을 보면서 오래전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순경 속에서 핀 꽃보다 역경을 이긴 꽃이 더 향기가 그윽하다. 너도 그런 사람이 되라."
딸아이를 지켜보면서 당시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았네요. 다행히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자녀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엄마임을 인정합니다. 잔소리 맘인 거죠 ㅎㅎㅎ 이효순 선생님의 목련차는 세상의 어떤 꽃차보다 풍미 그윽한 이유가 구증구포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었군요. 정성으로 향기를 붙잡아 둔 차를 생각하며 깊이 감사드립니다~^^*
강 선생님이 홍삼 사업자인줄 알았습니다.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여기에 자녀 교육을 대입하시고... 수필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딸 덕분에 홍삼 만들기에 도전해 보았네요. 취업에 성공하면 또 다른 관문이 기다리고 있고 그 관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 사람 사는 일도 구증구포의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답글에 감사드립니다^^*
그날이 그날이요, 그일이 그일인 인생,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생,
예와 달리, 한민족의 헤지로 삶의 모습이 달라졌기에 이제는 지전 몇 장이면,
언제라도 구할 수 있는 그 흔한 인삼들!
그러나 그 한 뿌리의 인삼이 인삼으로 태어나기 위해 얼마나 숱한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는지,
길을 가면서 거리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이 비록 지전 몇 장의 가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가 한 인생을 일궈내기에 얼마나 힘들게 험준한 고개를 넘고, 굽이 맴도는 강물을 건넜는지.
그러기에 모든 인생은 소중하며, 고난과 고통의 크기가 더한 인생일수록
그 삶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는 '평범 속의 비범'이라는 새로운 발견.
잔잔한 감동과 함께 교훈까지도 한아름 안고 돌아섭니다.
강표성 선생님!
선생님의 댓글을 보니 홈삼을 만들 때의 그 지극했던 마음이 떠오르네요. 고개 넘고 또 다른 고개를 바라보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어, 잠시 심호흡을 해봅니다.
부족한 글에 답글을 달아주시고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남천 선생님, 오늘도 평안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