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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三寶) 사찰(寺刹)
불(佛) 법(法) 승(僧)을 이르는 말이며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을 불보사찰( 경남 양산 통도사)
가르침의 법보를 소장한 곳을 법보사찰(경남 합천 해인사)
부처 제자인 고승을 배출한 곳을 승보사찰(전남 화순 송광사)
이들 세 곳의 절은 승려 교육 과정을 강원, 율원, 선원 세 가지 기능을 하기에 각각의 총림이라 부른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발원해 흘러온 오대천이 흐르고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에서 발원해 평창군 진보면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서 한강(골지천)에 합류하는 오대천이며 길이가 66km에 달한다.
오대천은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으니 조선시대 지리 서중"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택리지"(이중환)에
오대산 상원사 서쪽 수정암(서대)의 "우통수"라 기록되어 있으니 백두에서 이어지는 한강의 첫 물이니 발원지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청심대
청심대
청심대와 기녀 청심이
옛날 강릉부사로 부임했던 박양수는 청심이란 기생을 사랑했으니
청심은 인물 좋고 이쁘고 행실이 단정하고 조신했으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다.
시간이 흘러 강릉부사로서 임기가 끝난 박양수가 한양으로 돌아가게 되자 헤어짐이 아쉬운 청심은 배웅길로 따라나섰다.
일행이 진부면 마평리에 이르자 이곳에 우뚝 서 있는 바위에서 박양수와 청심이 석별의 정을 나누는데 선비의 마음을
흐트러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청심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동안 강릉에서는 뭐한겨...
어쨌거나 청심대는 조선 태종 때 강릉 도호부사 양수의 부실(副室) 청심(淸心)이 돌연 순절 산화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고
청심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청심대에서 본 일출과 진부면 마평리
청심대옆의 바위
아기 못 낳은 아낙이 바위를 안고 돌면서 치성을 드리면 아기를 잉태한다는 전설도 있다.
청심대를 나와 지겨운 도로 따라 모릿재로 오른다.
모릿재
평창군 대화면을 지나며
도로 따라 올라가면 지맥길인 모릿재가 나온다.
평창군 대화면에 들러 아침밥으로 이렇게 먹고
주인아주머니께서 금방 구워온 생선을 몇 마리 더 내어 주신다.
31번 지방도로 따라가다 보니 송전탑 결사반대하시는 신부님들을 만나서
먼발치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효석 문학 백리길을 만나서
대화천과 평창강이 만나는 곳
평창강은 백두대간 오대산 두로봉(1422m)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한강지맥길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향하는 길에
계방산(1577m) 남쪽에서 발원하여 평창을 거쳐 영월읍 하송리에서 동강(남한강)과 만나 한강이란 이름으로 흐르는
149km의 길고 사연 많은 강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흐르다가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막히면 또다시 휘어져 꺾이며 흐른다.
물은 세상 어디 안 가는 곳이 없이 흐르며
모든것에 생명을 주고 만물을 이롭게 하며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할지라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아래도 뛰어든다.
세상 만물에 생명을 주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깊은 강은 멀리 흐르며 그 흐름 역시 고요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한강속의 평창강은 강원도 평창 지역을 감싸 안으며 지나는 강이다 그러다 보니 지역명인 평창강이란 이름을 쓰게 되었으며
평창이란 평창강의 상류지역인 장평, 봉평. 오대천 상류의 간평(진부령)을 뜻한다
긴 강줄기 그 속에는 경치 좋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으로는 평창군 용평면 금당계곡과 평창군 방림면의 뇌운계곡이 있으나 지금은 온통 펜션 단지가 생기고
도로가 생겨 경치가 많이 퇴색된듯하다.
그러나 평창강의 경치는 평창을 벗어나 강월도 영월군 주천면을 지나면서 눈이 시릴 것 같은 경치가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나라 강들 중에서 최고의 비경이라 할 수 있는 남한강(정선-영월-단양 180KM 구간)에 견줄 정도로 아름다우며
평창강이 흘러 御殿(어전)으로 향하는 길에 영월군 남면 조선 제6대 임금이셨던 단종 임금께서 님이 그리워 하염없이 눈물
을 흘렸다는 청령포와 노산대가 자리한다.
뜨거운 열기가 오르던 아스팔트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빗님이 내리는군요
국가하천 평창강을 지나며
평창군 방림면을 지나며
42번 도로 따라 오르며
지나온 길
여우한테 홀리듯 올라온 여우재 640m
방림면 운교리와 가야 할 곳이 보이고
문재로 가기 전에 본 백덕산과 사자산 방향
참고로 백덕산은 산신(山神)이 여자 산신이고 사자산과 구봉대산의 산신은 남자이다.
오늘 사자산으로 오르려고 새벽 01시에 나왔으며 밥 먹는 시간을 아껴서 왔으니
해빠질 무렵에 영월 법흥사에 도착해서 저녁 범종 소리나 예불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르막길 한참 올라와서 (200km 지점)
좌측 산길로 오르면 지맥 길 등산로가 보기 좋게 이어진다.
산길을 오르며 "석가모니불"을 계속해서 외우며 진행
불러도 대답은 언제나 없으시지만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는 부처님
금방이라도 옆에서 등짝이라도 밀어주실 것 같다.
첫 번째 사자산에 도착해서
산너머 대장님 이름도 보이는군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백덕산으로 가는 길은 등로가 좋은데 두 번째 사자산 가는 길은 등로가 그저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두 번째 사자산
조망은 없고 해는 곧 넘어갈 모양이다.
내가 가야 할 길은 두 방향이다.
연꽃이 할짝 핀 것 같은 구봉대산으로 가느냐! 아니면 연화봉(蓮花峰)으로 가서 연화대가 자리하는 절벽 높은 곳에서
천년고찰 법흥사를 보느냐!
좌측 낙엽 쌓인 희미한 등로길이 연화대로 향하는데 숲이 우거져 길은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연화봉 조망은 아무것도 없고 어디가 연화대인지 가늠하기 힘든다.
가끔 만나는 선답자분들의 묵은 시그널이 아래로 내려가는 길음을 알려주지만 경사가 제법 급하고
떨어지면 골로 갈 것 같다.
대부분의 산객분들이 연화대로 오르는 이유는 조망이 나올 것 같아 오르는 듯 하지만 실제로 조망처를 찾기가 쉽지 않고.
좌측으로 절벽이 이어지니 경사진 하산길을 거의 앞두고 법흥사에서 울리는 저녁 범종소리가 들려와 가슴까지 파고든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사자산 연화봉
구봉산과 법흥사 (213km 지점)
때는 저녁 7시가 넘었으며 들리던 범종소리도 그쳤지만
극락전에서 들리는 스님의 묵직한 불경 소리가 저녁 예불 시간임을 말해준다.
법흥사 적멸보궁을 찾아서
연꽃이 핀듯한 연화대 아래 곱게 자리한 적멸보궁
저녁 예불 시간이라 스님 두 분이 불경을 소리 내어 읊으시는데 보궁 옆에 난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가
조용히 스님 뒤편에 서서 108배를 드린다.
부처님께 창원에 사시는 시루바위 고문님을 "아프지 않게 해 달라"며
보탑이 서 있고 자장율사께서 도를 닦으시던 토굴이 보인다.
한 사람이 엎드려 겨우 들어갈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간 무덤 같은 토굴
좁은 굴속에서 보는 하늘은 어떤 모습이며
칠흑 같은 밤이면 어떤 별들이 보였으며 자장의 본연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백골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인 백골관(白骨觀)을...
수많은 수행자 중에서 자장께서만 백골관 수행하신 듯 보인다.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본다. 자장께서는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저곳 토굴 속에서 백골을 보며 자신또한 백골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인생무상과 신라의 부국강병을 염원했을 수 도 있었겠다 생각도 해보고
풍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사자산 연화봉 연화대 아래 자리 잡은 토굴은 신비롭기만 하다.
*자장께서 이곳에서 백골관 수행을 하셨지만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없을 것 같다는 의문이 드는데 이유는?
사리는 대부분 큰절(황룡사, 태화사, 통도사)에 들어가는데 설악의 봉정암이나 이곳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는 그러지 못하다.
법흥사 석분
어둠이 찾아오는데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앞으로 다가와 힘 없이 날며 한동안 앞을 막아서는데
"해 빠졌는데 그만 집으로 가라"며 하니 어디론가 힘없이 날아간다.
순간 아!~~~ 고문님
늦은 시간이라 전화드리기는 그렇고 내일(5월 19일)은 시루바위 고문님께 전화를 드려봐야 할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쓰인다."
밤 8시 넘어 더 이상 진행하기보다 법흥사 일주문 근처에서 지붕 없는 곳에 누워 별을 보며 노숙을 하기로 하는데
마음이 답답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짐 싸서 다시 걷는다 시골에서 새소리는 참으로 청아하고 맑다.
길을 걸으며 영월군 무릉도원면 어느 집에서
영월군 무릉도원면에 들어와
주천강이죠
무릉도원면에 들어와 어느 돼지 국밥집에 들어왔으나
국밥에 구린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밥 한술 뜨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계산하고 나온다.
맑은 공기를 벗 삼아 왔다가 한순간 구린네를 배속에 넣고 왔으니 속이 답답해진다.
계유정난 때 믿었던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단종대왕께서 영월로 유배를 가시는 동안 이곳을 지나며 잠시 쉬어가던 자리라고 한다.
주천강은 흘러 흘러 평창강에 합류하고
단종의 비애가 가득한 영월 땅
천근같이 무거운 단종의 애달픈 발걸음에 영월이 목놓아 울었던 군등치
단종대왕께서 주천강의 절벽 사이로 난 험악한 고갯길을 넘어가며
발자국마다 차오르는 자신의 고통보다 아내인 정순왕후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에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훗날 신숙주는 단종의 부인이셨던 정순왕후를 자기 집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청을 한 사람이며
정인지는 김종서의 첫째 며느리를 노비로 삼는다.
*사육신 여섯 분(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하위지. 이개, 유성원)은 모진 고문과 형벌을 받고 참혹하게 죽었으며
이때 가족 친지 70명이 함께 죽고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남의 집 종이 된다.
박팽년은 둘째 아들 부인(아들)이 임신하여 몸종(딸)의 낳은 자식과 바꿔치기해서 살아남았으며
하위지 역시 직계 후손이 살아남는다
주천면
영월군 주천면에 들어와 아침에 냄새나던 국밥 대신에 햇반에 깻잎으로 아침식사를 해본다.
한반도교를 지나며 평창강을 지나며
한반도 지형 전마대 주차장에서
인증사진 담고
평창강과 주천강이 만나는 자리에 멋진 한반도 지형이 그려져 있다.
주차장에서
잔치 국수 먹고 가라는 식당의 주인 할매분이 있어
들어가 수다란 수다는 다 떨고 앉아 기다린다
햇반 먹은 지 1시간 지났으니 잔치 국수로 시켰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국수를 먹는데 옆집 아이스크림 주인 할매분이 "아이고 잘생긴 총각이네"라며 격하게 반겨 주시고
국수 먹고 결국 아이스크림집에 가서 동네 할매분들께 아이스크림 사 드리고 나오니
주차장에서 만난 영스님
멀리 진주에서 찾아오셨습니다.
조금 전에 국수 먹었는데 또 이렇게 오늘 배 터지게 먹어 봅니다.
그나저나 부처님께서는 하루 한끼 소식을 하셨는데 ,오늘 도대체 한꺼번에 몇 끼를 먹는지
영스님께 영월 구경하라고 가라며 전해주고
다슬기 잡으시는 동네 아제분들
영월군 남면 쌍북리 마을을 지나며
점심때가 지나 창원 시루바위 고문님께 전화를 드려봅니다.
몸이 너무 좋지 못해서 서울 병원에 입원 중이시며 목소리에 힘이 없습니다.
-제가 마음씨 좋은 부처님께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렸으니 꼭 괜찮아질 겁니다. 힘내세요!"-
"예! 힘내서 꼭 방장님 뵙도록 하겠습니다."
-고문님! 어떻게 하던 힘내십시오!-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나니 마지막인 듯하여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끊은 게 마음에 걸린다.
우울한 마음으로 도로를 지나는데
도로 공사 중이신 인부 아저씨 한분이 얼음 꽁꽁 한 병을 주시고
소나기재를 지나며
아이고 더버라
선돌이죠
멀리 단종 대왕께서 유배 가셨던 청령포가 보일 듯 말듯하고
영스님도 한 장 담아드리고
좌측으로 응봉산 우측 멀리 태화산 넘어 김삿갓의 고향인 마대산이 보일 듯하고
그 뒤로 풍기 부석사가 자리하는 백두대간 선달산 자락인 듯하다
이틀 후 부석사까지 가야하니 몸은 얼마나 고달플지
단종대왕의 시신을 거두어 안장해 드린 영월 호장 엄흥도 비각
단종과 엄홍도
1457년 6월 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그다음 날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간 기거하시던 중 홍수로 인하여 영월 시내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세조 3년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되면서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관풍헌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滅)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엄흥도가"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엄홍도는 이후에 경북 군위군 산성면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셨고 지금도 군위군 산성면에 가면 엄홍도 묘가 있다.
단종 대왕릉
단종의 죽음
국역 연려실기술: 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이 쓴 조선시대 야사에는 단종 죽음에 대한 그날의 기록이 남아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잇으니 나장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재촉했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앞에 엎드려 있으니 단종께서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여기에 온 까닭을 물으니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 하나가 항상 단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 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의 목에 걸고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당기니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남한강에 몸을 던져 죽어 강가에 시체가 가득하였고, 이날 뇌우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단종과 그의 왕비
정순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난 뒤 동대문 인근 지금의 숭인동 산기슭에 초가삼간을 짓고
따라 나온 시녀의 동냥으로 살다가 이후로는 인근 아낙네의 적선으로 살았죠
나중에는 염색 들이는 일을 하며 근근이 연명하면서도 죽을 때까지 세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았으며
조석으로 인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무사를 기원했고 단종의 죽음을 알고 평생을 통곡하며 명복을 빌었다
정순왕후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가슴 깊이 한을 묻으며 82세까지 사셨다고 한다.
단종 대왕 정자각 단종대왕께 재물을 올리는 곳
죽어서도 외롭지 않을 단종
사육신(死六臣)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유응부. 이개. 유성원
생육신(生六臣)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상담수. 남효은 이런 분들이 있어 죽어서도 외롭지 않을 임금이다
동강을 지나
완택산 산세는 웅장하게 보이는 한편 아주 어지럽게 보인다.
인근 민박집에 들러 통 닭 한 마리 배달시켜 놓고
내일 밥을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몇 조각 먹고 나머지는 넣어둔다.
새벽에 01 무렵인가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차고
긴 옷으로 갈아입는다
오늘 부지런하게 걸어야 해 질 무렵에 함백산 아래 자장께서 마지막을 보내셨던 정암사에 도착할 텐데
발걸음은 무겁고 더디기만 하다.
잠자기 좋은 자리에 버스 승강장이 보이고
이른 아침이지만 영업은 안 하고
영월 땅은 끝나고 정선군 땅에 들어와
정선군 신동읍
공기 좋고 아주 깨끗한 동네다.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
아직 이른 아침이라 편의점 문도 닫혀있는데
배는 고프고 도로가에 배춧국의 구수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간 누님 두 분이 하시는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어지간한 동네는 혼자 들어가면 밥 안 주는데
인심이 너무 좋은 동네였나 잠시만 기다려 보란다.
근사한 아침밥을 받아놓고 보니
계란 하나는 잘 생겼다며 서비스로 내어 놓으셨고
배춧국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국이라 두 그릇은 거뜬하게 비우고 일어나며
밥값으로 만 원짜리 하나 놓고 그 고마움을 표시한다.
가야 할 미륵재(해발 1천 m)는 높기만 하고
신동읍 조동마을(안경 마을이라고도 부른다)
안경다리
무슨 뜻인지 알죠
물이 지나는 자리와 사람이 다니는 길 위에 기차가 다니는 길이 있어
마치 안경을 놓은듯해서 붙여진 이름의 다리
조용한 함백역을 지나며
미륵재 시작하는 해발 600m인 곳
이곳에서 해발 1천 미터까지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날씨는 덥지만 바람이 간간이 불어준다.
미륵재 오르며 본 정선군 조동마을
오르막길의 경사는 심하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 어깨는 무너져 내리고 숨이 넘어갈 듯하다
멀리 정선의 두위봉이 보이는군요 (300km 지점)
저곳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1,400년 된 주목나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인양 하늘을 이고 살고 있다
경사진 미륵재는 산 중턱에 미륵암이 있어 부르게 되었는데 경사가 심하고 지루하다
미륵재를 내려와 도로길을 걸으면 정선군 남면에 도착한다
슈퍼에 들러 물과 아이스크림을 사서 넣고
정선군 남면 백두대간 함백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는 지장천길에 자리 잡은 높은 절벽길
남면에서 일방통행의 도로길을 걷는데 인근에서 공사하시는 분께서 날씨가 무척 더운데
고생한다며 잠시 서보라고 하시더니
아이스 박스에서 커피와 이온음료 그리고 달달한 음료수를 꺼내서 주시며 더운데 수고하시란다.
고마운 분 부처님의 가피로 행복 가득한 날 보내시라고 말씀드린다.
남면에서 무릉리까지 왕복 4차선이며 도로 갓길로 조심해서 진행
좌, 민둥산
우, 두위봉을 두고 있는 정선군 남면 무릉리
이곳부터 지장천 따라 한가로운 도로가로 진행
정선군 사북에 들어오니 폐탄광에서 흘러나오는 철분 성분으로 인해서 하천은 붉은색이고
점심 무렵이 훨씬 지났지만 가야 할 함백산 아래 정암사까지 거리가 멀어 점심은 생략한다
고한에 들어와
고한에서
태백산 정암사 자장율사께서 꿈에 문수보살의 지혜를 받아 창건한 사찰이다.(327km 지점)
정암사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수마노탑이 있어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 전각으로
우리나라 5대 적멸 보궁 중 하나이다.
이곳 역시 자장께서 말년을 보내시며 사리를 모셨다거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께서 통도사 사리를 나눠 봉안했다는 이야기만 전하는데
자장율사와의 관계로 형성된 적멸 보궁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정암사의 수마노탑이 산 중턱에 보이고
수마노석은 당에서 동해의 울진항으로 들어와 보관하였다가 말년에 창건한 사찰이며
고구려와 접경지인 이곳에 선덕여왕(647년)이 비담의 난으로 병사(病死)하자 정치적으로 밀려 찾은 곳이다
말년에 이곳에서 거지로 분장한 문수보살을 뵙지만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백두대간 태백의 기운이 모두 모이는 곳에 자리하기에
기돗발이 엄청 좋다고 한다.
정암사 수마노탑 읽어 보시고
수마노탑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
탑의 네모서리 끝에 풍경이 아슬하게 달려 있는데 바람 부는 날 오면 아주 듣기 좋을 것 같다.
저녁 예불 시간이라 정암사 범종이 계곡으로 울려 퍼지고
잠시 범종 소리를 들으니 마음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듯하다.
적멸보궁 길에 사찰마다 범종소리와 예불소리를 듣게 되는데
참 듣기 좋고 하루의 피로를 모두 풀어주는 소리로 들린다.
수마노석이란?
적멸궁(寂滅宮)
편액에는 적멸궁이라 쓰여있는데 번뇌가 사라져 깨달음을 이룬 경계의 보배로운 궁전을 뜻한다.
우리 같은 잡인들은 중앙의 문으로 들면 안 되고 좌, 우측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니
열려있는 문으로 안을 살펴보니 주시 스님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스님이 점잖게 앉아 계신다
큰절로 인사를 드리니 "어디서 왔노"하신다
"강원도 건봉사에서 적멸보궁 길 따라 양산 통도사 가는 길에 108배하려고 들렀습니다."
다리 아플 텐데 격식 차리지 말고 절은 조금만 하라고 하신다.
범종 소리가 끝나자 스님께서 "지심귀명례"를 소리 내어 읊으시는데 참 듣기 좋다
스님의 염불 소리와 함께 서울에 살고 계시는 골짝 대장님께서 하루빨리 완쾌되어
전국의 산들을 거침없이 걷게 해 달라며 부처님께 108배를 한다.
20분간 절을 마치고 일어서 나오며 스님께 인사드리고
만항마을(1100m)을 지나며 만항재로 오른다.
만항마을은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이며 한여름에도 겨울 이불을 덮고 자는 동네다.
오늘은 이곳 마을 민박집에서 잠을 잘까 했지만 민박집 여주인께서 혼자는 안된단다
무슨 이런 맥 빠지는 경우가 다 있는지... 새벽에 나간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돈도 싫다고 하시니 쫓겨나듯 밖으로 나와 다음길을 이어간다.
함백에서 백운산 가는 길에 자리 잡은 풍차는 바람이 불어오니
세팔 모두 벌려 잡을 수없는 바람을 잡겠다고 윙윙거린다.
332km 지점
만항재에 도착하니 매점의 문이 닫혀있고 매점 안 의자에서 바람만 피할 수 있으면 노숙하려니
먼저 자리 잡고 내려가지 않는 사람이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하는 수 없이 정선 고한 택시를 부른다
그런데 택시는 이곳까지 올라오지 않는다며 알아서 하라는 콜택시 안내 하시는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유는 산꾼들이 고한 택시를 호출해 놓고 지나가는 차를 타고 가버리는 상황이 연출되어 고한에서는 콜을 불러도 만항재로
올라오니 않는다고 한다
매점 주인분께 전화를 해서 아시는 기사분 있으면 보내달라고 하자 20분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만항재는 고려말 혹은 조선 초기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사람들이
이방원의 횡포에 쫓겨나 언젠가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곳에서 제일 높은 만항에서 물 한 그릇 떠놓고 빌었다고
해서 망향이라 불렀다가 훗 날 만항이 되었다고 한다.
첫댓글 방장님… 감사합니다… 전부 다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합니다.
어제 좋은 소식 감사했구요
다친 발 빠른 회복 바랍니다.
저는요. 방장님이 J3클럽의 방장님이시라서 참 좋습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리고 늘 아말다말 건강하시구요.
숙연해지는 후기... 마음 따뜻한 후기...
모두가 하늘에 전해졌으리라 믿어요.
소백에서 간절한 마음
그리고 통도사에서 함께 절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깨이님의 건강한 발걸음과 아름다운 대한민국 많이 보고 느끼시기 바랍니다.
적멸보궁 청아한 범종소리와 예불소리의 편안함. 간절함의 기원과 고마움!
강원도 건봉사에서 양산 통도사까지~,
먼 길 홀로 걸음 하신 소중한 추억을
편안히 해설 듣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범 종 소리와 예불 소리를 들으려 시간 조정이 많이 필요했던 걸음 입니다.
지금 2번째 길을 준비중인데 아마도 한여름 장마철에 길을 떠날것 같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후기 정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로가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산을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밤에는 늦게까지 뻐꾸기가
멀고 긴 울음을 울었습니다.
그 울음끝을 따라가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멀고 긴 걸음, 먹먹해집니다.
요즘 열심히 하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힘 내시구요 오르막이던 내리막길이던 늘 자연과 함께 하시기 바랄게요
청심대 일출이 참 멋집니다.
사자산 법흥사는 늘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보는군요.
볼거리 많은 후기 잘보고 갑니다.
3부도 기대해봅니다.
청심대 아름다운 곳이죠
5대 적멸보궁은 기돗발이 아주 좋다고 하니
시간 내면 한번 들러 보시면 마음이 편안해 지실듯 합니다.
먼길떠나신 시루바위 고문님께 방장님의 따듯한 마음
잘 전달 되었을거라 믿습니다
보내고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목소리 들으셨으니 다행입니다.
간절한 마음을 담았지만
고문님은 봄 소풍 떠나듯 멀리 떠나고 말았네요
여름에 2번째 성지순례길을 떠나볼까 합니다.
동강 누님이 시간 되시면 함께 하면 좋을텐데...
일간 연락 드릴께요
눈에 확들어오는곳이 청심대네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청심대는 아침 일출과 함께 시작하면 정말 좋은곳인데 설악으로 가는길에 한번 찾아 보시면 좋을듯합니다.
늘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구요
이런 저런 적멸보궁 이야기들 ~~~~
모두가 험난한 걸음이지만
의미있게 다가오는 걸음길이고요 .
모두 다녀온 곳들
님이 걸으신곳들이 눈에 선하내요
예천에서 함께 걸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홀로 걷는길에 누군가 찾아 오시면 새롭게 시작하는듯 힘이 나요
비오는 아침에 하늘 한번 보고 3번째 이야기 준비중입니다.
방장님 항상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랜 여정으로 고단하실때 약간의 성의를 표하고 절집 기도방에서 쉬시는것도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 중대사자암, 법흥사에서 기도차 유한적이 있적 있습니다.
아침에는 공양도 가능하답니다.
안녕하세요
다음 일정을 늘 예불시간에 맞추다 보니 절 집에서 하룻밤 보낸다는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요즘 코로나 문제로 스님께 절에서 하룻밤 자고 자고 가도 되는지... 입 안에만 머물뿐이구요
성지 순례 두번째 준비중인데 그때는 꼭 토보살님의 말씀대로 한번 청해 보겠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