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semite 보고서 8월 4일 - Salathe Wall 등반 첫째날
Half Dome 11피치의 비박 사이트에 비하면 고급침대같은 곳에서 비박을 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오늘은 나와 효철이가 홀링조다. 홀링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홀링을 해보니 우려했던 것 보다는 홀백이 쑥쑥 잘 올라온다. 필요하면 자일 호도 가능한 wall hauler의 경이로운 기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홀링조를 하다보니 길이 어떤가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홀링하고 나서 톱이 올라가길 기다리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직접보진 못했지만 강우가 악명 높은 Hollow flake를 무사히 넘아간츳 했다. 대체로 코스가 크게 어려워 보이진 않았고 어느새 목표했던 El Cap Spire가 바로 올려다보이는 곳까지 왔다. 엄청난 속도다. The Ear가 18피치이고 El Cap Spire가 20피치인데 시간이 이직 1시를 조금 넘겼을 뿐이다. 이렇게만 간다면 오늘 El Cap Spire 에서 비박 사이트를 마련하고 남는 시간동안 고정자일을 설치하는 식으로 내일 저녁까지는 충분히 끝낼 수 있겠다. 인제와 했던 약속을 바로 지킬 수가 있겠다.
18피치에서 강우와 경훈이가 톱을 교체. 경훈이의 등반이 시작됐다. The Ear. 귀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커다란 귀모양의 바위귓볼 안쪽 부분에 기어들어가서 침니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 것 같다. 경훈이가 귓볼 안쪽에서 1시간 반동안 거의 꼼짝하지 않더니 두번째로 큰 사이즈의 캐멀럿이 갑자기 허공을 가르면서 떨어진다. 5.6이라는 난이도가 어떻게 매겨진 난이도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무전할 시간이 되어 무전기를 켰으나 몇분 안있어 무전기의 배터리가 다되버렸다. 젠장, 무전기는 항상 말썽이다. 캠프와 교신할 길이 없어져 버렸다. 고함을 질러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는 물론 아니다.
다음 19피치는 개념도상에 5.13으로 표시가 되어있는데 얼마나 어렵길래 5.13일까? 150피트 직상 크랙이다. 경훈이가 2시간 반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동안 고전을 하더니 결국 올라섰다. 주마링해서 올라가보니 경훈이는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에서 강우의 빌레이를 보고있었다. 18피치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얼굴이 벌겋다. 크기가 일정한 크랙이 한없이 지속되는 바람에 장비가 없어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벌써 시간은 7시가 다되가고 El Cap Spire이후로 소정자일을 깔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강우 뒤를 내가 바로 따라갔다. 일초가 촉박했기에 El Cap spire에 닿고서는 바로 톱교체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Half Dome의 19피치가 바로 150피트였는데 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내가 선등으로 인공등반을 하면 어떤 곳이든지 1시간 반에는 할 수 있다고 호언 장담을 했다. 애들이 못하면 나라도 힘이 되어 줘야지. 하프돔의 피로는 불타오르는 책임감에 다 녹아버린 듯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21피치-
크랙이 잘 찢어져 있어서 쉬울 것 같았으나 막상 붙어보니 몸이 붕뜨는 오버행 크랙이다. 해도 금방 지려고 하고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어 래더 최상단 만을 억지로 밟고 서서 조금이라도 빨리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오버행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래더 둘째칸으로 만족을 할 수 밖에 없다. 어느덧 8시 30분이 되니까 해는 이미 산너머로 져버리고 장비크기와 크랙의너비가 제대로 식별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등반하기는 힘들것 같다. 결국 무척이나 든든하게 박혀서 내가 회수하려해도 회수가 잘 안되는 프랜드에 의지해서 하강해버렸다. 내일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다. 15피치 남았으니 내일 열심히 하고 특별히 어려운 구간만 나오지 않으면 내일 안에 끝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철의형의 보고서에서 표현한 "목숨걸고 제기차기는 시도해볼만한 넓이"의 El Cap spire 에서 잠을 청했다.
** Yosemite 보고서 8월 5일 - Salathe Wall 등반 둘째날
- 21피치-
어제에 이은 연속이다. 다 못끝낸 크랙에서 5.9 squeeze 침니가 나온다. Half Dome 20피치에서의 squeeze를 상기하고는 마음놓고 침니자세로 올라갔다. Squeeze라 표시된 부분이 있으면 약간 좁은 침니인데 들어가지 말고 약간 밖으로 나와 침니자세를 취해주면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악명높은 좁은 침니들을 해봐야 양놈들은 squeeze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2피치-
5.10d 크랙이다. 사실 길이는 길지 않지만 여전히 오버행이다. 루트가 계속 만만치않다. 꼭 느낌이 half dome에서 어려운 구간 만을 계속 모아놓은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오늘 끝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겠다. 5.5 슬랩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 피치를 끊었다.
-23 피치-
개념도를 보니 두번에 걸친 C1크랙이 있는 길고 긴구간이다. 첫번째 크랙이 고정 확보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두번째는 첫번째 크랙 끝나고 바로 왼쪽으로 트래버스해서 다시직상한다. 같은 C1이지만 고정하켄이 서너개가 있었다. 든든해보이는 고정하켄을 만나면 너무 기쁘다.
C1이라함은 인공등반에 사용되는 용어인데 A0, A1이 고정확보물을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C는 고정확보물 없이 CAM을 주로 이용해서 등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C1+, C2정도가 되면 등반이 지극히 어려워지고 등반하면서 상당히 애먹을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23피치에서 2시간이 소요됐다.
-24~25피치-
24피치는 개념도상에 worst pitch라고 적혀있는 곳이었다. 내가 이 worst pitch까지만 하고 톱을 넘겨주겠다고 하니 경훈이가 동의한다. 너무 힘들다.
Half Dome과는 달리 Salathe Wall은 등반 속도가 전적으로 톱에 의해 결정이 되었다. 피치당 2시간씩 걸리면 하루에 10피치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hollow flake, The Ear만 넘어서면 29~31피치의 Head Wall 구간까지 무리없이 갈 줄 알았는데 The Ear이후로는 쉬운 구간이 하나도 없다. 모두가 최소한 80도이상되는 경사에서의 인공등반이 기본이다.
왜 worst pitch일까를 궁금해하며 올라가보니 아주 어려운 건 아닌데 초입에는 홀드마다 흙이 파묻혀있고 크랙에 물이 흐른다. 인공으로 갈 수 없는 구간이 나와 울며 겨자먹기로 침니자세를 취했더니 등에 물이 스며들어왔다. 옷이 금새 새까맣게 변했다. 등반하기에 나쁘다는 의미에서 worst인 모양이다. 오버행 크랙 바로 밑에서 왼쪽으로 2미터정도를 트래버스하면 볼트에 닿을 수 있는데 오버행의 크랙이 너무 깊어 설사 거기에 프랜드를 박아넣는다고 쳐도 래더를 밟고 몸을 움직일 공간이 없을 것 같았다. 오른쪽 크랙에 프랜드 3개를 든든히 박고 자일을 통과시킨후 몸을 날렸다. 설마 프랜드가 세개다 빠질까. 만약 빠지면 밑에있는 프랜드를 거의다 회수하고 왔으니까 그걸로 등반 끝이다. 너댓번을 조마조마하며 몸을 날리다가 겨우겨우 볼트에 닿았다. 두개의 볼트이긴 했으나 너무 부실해 보여 도저히 피치 끊는 지점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설사 피치를 끊는다고 해도 여기서 어떻게 홀링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장비가 없는데, 울며겨자먹기로 계속가기로 했다. 이어지는 크랙의 너비가 딱 프랜드 3~4호가 들어가는 크기다. 맞는 장비가 정확히 3개가 있었다. 멀리 확보물이 보이긴 하는데 어떠레 할까 고민하다가 3개를 번갈아 회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랐다. 래더로 밟은 프랜드가 빠지면 바로 밑에 두개가 나를 지탱해 주리라 굳게 믿으면서 말이다. 다시 나타난 오버행 턱을 넘으니 넓은 테라스가 나타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25피치의 끝이 었고 아까 지나친 two-bolt가 24피치의 확보지점이었다.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2피치 합쳐 3시간이면 한피치당 1시간 반 씩 양호한 편이다. 24피치가 30미터 정도이고 25피치가 20정도가 된다. 어쨌거나 오늘의 톱으로서 나의 임무는 끝이다. 테라스에는 하켄 하나 밖에 박혀 있지 않아 남은 너트, 프랜드를 최대한 많이 사용해서 확보지점을 마련했다. Triple equalizing을 사용해본 것도 여기서가 처음이었다. 2시다.
애초에는 여기서 비박할 생각이 없었지만 비박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에 닿았으니 이곳에서 비박하기로 결정을 했다. 물론 내일을 위한 고정자일을 깔아야한다. 등반 자일이 네동이 있으니 29피치까지 깔면 내일 등반이 수월해질 것이다. 등반이 이렇게 어려우니 계획했던 31피치 비박지까지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강우, 경훈, 효철이는 고정자일을 깔기 위해 계속 등반을 하고 나는 비박지에 남아서 홀링백을 비롯한 짐정리를 했다. 남는 자일을 이용해 테라스 이곳 저곳을 연결했더니 어느덧 비박지가 거미집으로 변해 버렸다.
경훈이가 등반하다가 26피치 루트파인딩을 잘못하여 엉뚱한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중간에 패ㅜ듈럼을 해야하는데 안하고 직상한 것이다. 위쪽으로 슬링도 많고 튼튼한 볼트도 있어서 그랬다는데 길을 잃을 만도 했다. 다행히 26피치 확보지점에 닿을 수 있어서 계속 등반을 하고 효철이가 길이 아닌 곳을 주마로 등반하여 테라스로 하강을 했다. 경훈이과 강우가 등반하다 또 뭘 떨어뜨리는 것 같다. 가뜩이나 장비가 부족한데 자꾸이렇게 떨어뜨리면 앞으로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28피치 중간까지 고정자일을 설치하니 해가 저물었다. 내일 오전에 Head Wall 구간을 지나고 나면 나머지 루트는 쉬울 테니까 저녁에는 정상에 무난이 도착할 수 있겠지.
식량은 내일 아침까지밖에 준비 하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물에 미숫가루라도 타마시면서 하루를 보내는 수밖에 없겠다. 한 사람당 하루에 3리터를 예상하고 가져갔는데 예상외로 물이 많이 남아서 내일 하루 종일의 물까지 충분할 것 같다.
약속한 대로 인제를 비롯한 지원조가 정상에 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처지보다 위에서 걱정할 지원조가 오히려 더 걱정이 된다. 모두들 내일에 대한 걱정반 기대반으로 밤을 지샜다.
비박지가 넓긴 넓은데 좀 기운 것 때문에 자꾸 몸이 밑으로 내려간다. 물론 확보해서 잤다. 그래서 밸트가 몸을 조이게 되고 결국 그렇게 넓은 비박지에서 제대로 잠이 들수가 없었던 것 같다.
** Yosemite 보고서 8월 6일 - Salathe Wall 등반 세째날 (등반완료)
오늘은 모두가 두피치씩만 선등하기로 약속했다.
28,29-경훈
30,31-창봉
32,33-강우
34,35-효철
정말 기가 막힌 계획이지 않는가?
28피치는 어제 반을 끝냈기 때문에 경훈이가 별로 어렵지 않게 끝냈다.
29피치부터는 그 유명한 Head Wall 구간이다. 내가 second을 보고 경훈이가 선등을 했다. 선인의 어센트처럼 슬링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오버행이 위압적이다. 경훈이에게 잠시 매달려 보라고 하고 사진도 찍어 줬다. 자일 유통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기에 최대한 길게 자일을 통과시키도록 계속 코치를 해줬다. 크럭스인 오버행 턱 넘어가는데서 크랙이 수평이라 장비가 박혔는지 제대로 믿을 수가 없다며 한참을 망설이더니 어느덧 무난히 넘어갔다. 내가 second으로 가면서 장비를 회수할 차례인데 말이 장비 회수지 이건 완전히 서커스하는 기분이다. 15미터도 안되는 구간에서 주마트래버스를 네번이나 해야 했다. 확보물에서 나의 몸이 떨어지지 않도록 확보줄 두개를 사용. 한번은 어쩔 수 없이 벽에서 떨어졌는데 벽과 내몸사이의 거리가 5m이상 벌어진다. 완전히 허공에 매달린 셈이다. 바람때문에 몸이 빙글빙글 나팔개비 처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토할 것 같다. 빨리 주마링을 해서 올라가는 길만이 살길이다. 까마득한 허공에서의 주마링. 그렇게 무서운 주마링은 해본 기억이 없다.
-30피치-
Head Wall! 지금도 이단어를 상기하면 갑자기 흥분이 된다. 톱교체를 위해 경훈이 옆에 섰을 때 나는 Head Wall의 크랙을 보고 한마디로 경악을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혹자는 그 크랙을 보면서 자신이 본 크랙 중 "가장 아름다운 크랙"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건 헛소리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징그럽게 생긴 크랙을 본적이 없다. 150피트 짜리 오버행성 크랙이 한번의 분기도 없이 마치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매끄럽게 나있었다. 오버행이라는 것은 직접매달려 볼때도 잘 모르고 후등하면서 주마링을 하면 바로 확인이 된다. 30피치의 확보지점에서 주마링을 시작하자마자 몸이 벽에서 허공으로 떨어져나간다. 이런 스타일의 끔찍하게 길어보이는 크랙을 선등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31피치까지만 하면 모든것이 순조롭게 진행이 될 텐데 여기까지 와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너무 등반하기에 부담이 되는 길이의 크랙이다. 그 장대함이 한눈이 다 보여서 더욱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등반을 시작했다.
프랜드 1,2,3호가 계속해서 쓰이는 크랙인데 워낙크랙이 길다 보니 장비를 뒤에 톼두고 가면 나중에 장비가 없어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다. 추락 방지용으로는 너트를 설치하고 전진용으로 프랜드를 사용했다. 내가 팡단하기로는 1/3정도 왔는데 경훈이는 내게 반이상 갔다고 한다. 오버행이라 착시를 일으키는 모양이다. 물론 내가 아니고 경훈이가 말이다. 정말 꾸역꾸역 올라갔다. 전과 같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올라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그렇게 흥얼 거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의 무의식이 내게 어떤 사고의 전조를 알리는 듯했다. 사고가 나면 TV에 아마 생중계가 될 것이다. 갑자기 집생각도 나고 만약 사고가 나면 Head Wall로 누가 구조하러 올까하는 생각도 해봤다. 헬기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고 제아무리 뛰어난 구조대라도 하강이 불가능한 이런 곳에 구조하러 올 리가 없다. TV가 중계되는 동안 그대로 벽에 매달려 굶어죽거나 얼어죽겠지...등등. 정말 별 쓸데 없는 잡생각들이 오갔다. 확보용으로 너트를 설치하려고 너트를 꺼내는 순간 뭔가가 떨어진다. 캐멀럿 4호다. 경훈이에게 바로 떠러졌는데 경훈이가 잡지 못하고 저멀리 28피치 시작점에 확보해있는 강우 바로 옆 풀이 돋은 ledge에 정확히 떨어진다. 다행이 장비는 안잊어버렸는데 경훈이가 입술이 찢어진 모양이다. 정말 괜찮은지를 몇번이나 확인을 했다. 빨리 올라가지도 못하면서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다가 장비를 떨어뜨리고 있는 미련한 내가 한없이 미워졌다. 그렇게 내가 미워지니까 인공등반 속도가 부쩍 빨라졌다. 1/3정도 남은 크랙을 확보용으로 설치하던 너트도 더이상 설치하지 않고 막무가내고 지나쳤다. 밑에서는 안보이지만 오버행 턱 바로 밑부분에 three-bolt가 있었다. 볼트가 든든하긴 했으나 발 스탠스가 전혀 없는 최악의 확보지점이었다. 래더를 가지고 양쪽볼트에 연결 빌레이시트를 대신 했다.
-31피치-
해는 직통으로 비쳐들지만 고도가 높아서인지 아니면 바람이 거세게 불어와서인지 더위를 느끼지 못하겠다. 30피치의 연속인 크랙을 5미터가량 더 하고 다시 미세한 실크랙이 나있는 작은 오버행을 넘어야 했다. 새끼 손톱보다도 더 작은 너트를 집어 넣고 래더를 밟는 순간 "꽝".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너트에 매달릴때 퀵드로우에 자일을 통과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낙비". 퀵드로우가 프로펠러가 되어 빙긍빙긍 돌며 내려갔다. 효철이가 그걸 잡으려고 이러지리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효철이 어깨에 맞고 퀵드로우는 계속 허공 속으로 커브를 그리며 사라져갔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효철이는 잡으려고 한것이아니라 피하려고 했다고 했다....할말이 없다.
다시 재도전. 또다른 너트를 넣고 매달렸지만 "꽝". 두번째 추락이다. 세번째도 "꽝". 너트의 크기와 바위의 입자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에 바위가 힘을 받아 조금만 깨져도 너트가 크랙에서 빠져 버리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키가 컸으면 좀더 위에 크게 나있는 크랙에 더 든든하게 너트를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아 고민 끝에 경훈이에게 구원요청을 했다.
"너라면 할 수 있을거야"
역시 경훈이다. 한번에 너트를 든든히 설치하더니 래더를 밟고 일어선다.
Long Ledge. Head Wall구간에 오면 하강이 매우 어려워지고 31피치의 확보지점인 Long Ledge에 이르지 못하면 비박이 가능한 장소가 하나도 없다.
이제 Long Ledge까지 왔으니 한시름 놨다. 4시다. 이후부턴 강우가 선등을 할 차례지만 last로 오는 강우를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경훈이가 다시 32피치까지 톱을 선다.
효철이와 나는 Lond Ledge에서 강우와 경훈이가 계속 올라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정상가서 꿈에도 그리던 지원조를 만날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낙비"하는 외침이 들린다. 장비를 떨어뜨린 것이다. 제발 정상까지만 빨리 가다오. 조금 있으니 장비가 또 떨어진다. 33피치를 강우가 선등하는 모양인데 이번에 프랜드가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가뜩이나 중간 사이즈의 프랜드가 모자라서 등반에 어려움이 많은데 이러면 문제가 너무 커진다. 심히 우려가 된다. 시간이 흘러 7시반이 되었다. 이제 1시간 남았다. 1시간 후면 해가 지고 그때까지 등반을 완료하지 못하면 Long Ledge에서 하룻밤을 더 지새야 할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음 졸이는데 또 "낙비!!!!"
"야! 이 XXX들, 등반을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나도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 살짝 오버행이 져있는지라 뭔가가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비를 일부러 집어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효철이도
"아...저게 다 사대 장빈데..."하며 머리를 감싼다.
"저 놈들한테 장비값 다 물어내라고 해!"
나도 분통이 터져 한마디 더했다.
일단 장비는 그렇다치고 위 상황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했다.
저 위로 강우가 34피치까지 다끝냈는지 못끝냈는지 개미소리만하게 뭔가가 들리고 경훈이와 나보다 먼저 주마링하여 올라간 효철이의 강우의 완료신호를 기다리는 처절한 외침만이 허공에서 찢어진다.
"강우형, 어떻게 됐어~~~~? 강우형~~~강우형~~~~강우야~~~~대답좀해~~~~~~~"
그러나 바람 소리만 들리고 강우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런 대답이 없다. 노을도 거의 다 사그라들고 주위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들고 있었다.
".........완료..........".
그렇다! 완료하는 소리를 희미하게 나마 분명히 들었다. 위에 있는 두사람은 오버행 바로 아래에 있어서 소리가 전달이 안되는 모양이었지만 그보다 한 피치 아래 있는 내게는 희미하지만 그렇게 똑똑히 들렸다. 35피치는 어두워도 갈 수있는 5.6 슬랩이다.정말 아슬아슬하게 등반이 끝났다. 주마링하며 계속 따라 올라가 보니 Long Ledge 윗구간도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인공등반을 요하는 오버행과 크랙이 연이어 있었다.
강우가 어두워서 피치끊는 지점을 확인 못했는지 정상 거의 다가서 테라스에 프랜드를 박고 피치를 끊었던 것이다. 그 이후론 자일에 비너만 통과시키고 걸어올라갔는데 굵은 소나무 주위로 평평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아슬아슬하게 등반이 끝났다. 등반 일정자체가 너무도 절묘했다는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팀구성도 더할 나위없었고 비박지를 정한 것도 그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등반을 어정쩡하게 빨리했거나 늦게 했다면 25피치 테라스에 비박지를 정하지 못하고 바위에 말그대로 매달려 자야 했을 것임이 틀림 없다.
고정자일 깔고 11피치에서 시작하여 3일을 예상해서 등반한다면 20, 25피치에서 자야한다. 20,31피치에서 자는 것은 야바위를 각오해야한다. 밝은 대낮에도 그렇게 치가 떨리던 Head Wall구간을 어떻게 야바위를 한단 말인가? 11피치에서 시작 1박 2일에 Salathe를 끝낼 수있는 실력이 있다면 25피치에서 자고 다음날 정상에 도착해야할 것이다. 인공등반의 달인이라면 모를까 내가 보기엔 이틀은 무리다. 우리의 등반은 하늘이 도운 등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혹시나 기대를 했던 지원조는 안온건지 철수를 한건지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아침에 탄 미숫가루를 효철이가 저녁이라고 하면서 주길래 두모금마시다 말았다. 상해있었다. 정말 물만 먹고 잤다............그래도 행복했다. 이런 기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 Yosemite 보고서 8월 7일 - 하산
El Cap 정상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Camp로 하산을 시작했다. 전날 먹은 것이 거의 없는터라 모두들 걸음 걸이가 환자같다. 나도 말 그대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갑자기 한동안 어지러워 쓰러질 뻔했다.
정상에서 이삼백미터 내려 왔는데 앞에 가 있는 강우가 난데 없이 "How away "공대 에코를 한다. 이녀석이 드디어 미쳤구나...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연이어 "울~대", "How high!" 인제와 진욱이의 반가운 목소리 였던 것이다. 너무 반가와 한동안 목이 메어 에코도 할 수 없었다.
얘기를 들은 즉 지원조도 El Cap정상까지 3번이나 오르내리느라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다. 바로 어제 저녁까지도 우리를 기다리다갔다고 했다. 목이 터져라 밑에다 대고 에코도 했고 말이다. 사흘 만에 보는 얼굴들이 었지만 우린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만큼 기뻐했다. 인제, 진욱이가 우리를 위해 준비해온 라면과 통조림, 베이컨은 진수성찬이었다. Camp에서 자주 안면이 있는 멕시코사람들 두명도 우연히 만나 식사대접을 해주었다. East Buttress로 해서 정상에 올라와 어제 정상에서 비박을 했단다.
하산길에 지원조가 안왔으면 우린 필경 내려오다가 모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산길이 알다시피 가도가도 끝이없다.
Camp에서 허기진 배를 더 채우고 나니 저녁엔 이제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바위가 또 하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모두들 같이모여 단란하게 bouldering을 즐겼다. 무식한 Big Wall Climbing이 아니라 Art Climbing을 말이다.-Art Climbing...내 지갑을 찾아준 슬로바키아 사람의 표현이다.
** Yosemite 보고서 8월 8일 - 사고발생
이젠 난 내일이면 떠나야한다. 오늘 하루는 떠날 준비를 해야한다. 약3주간 있었더니 이곳 생활이 완전히 몸에 배어 돌아가기가 싫다. 집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살집도 구하지 못했는데 가서 해야할 일들이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빈캔 주우면서 그냥 눌러 살아도 될 것 같긴한데.....Yosemite의 아침은 적막하다. Yosemite의 나무를 오르지 못하는 살진 다람쥐들이 또 보고 싶을 것이다. 처음 왔을 때보다 아침공기도 많이 차가워져서 텐트밖에서 비박하면 춥다. 아침에 맨 먼저 일어나 내가 밥도 짓고 국도 끓이고... 그동안 정이 많이 든 후배들에게 밥이라도 맛있게 해주고 싶었다.
밥이 다됐나 냄새를 맡고 있는데 지나가던 인디언처럼 생긴 여자가
"Ohio"
라고 한다.
"No, I'm from Korea"
"Oh, really?...."
그여자가 Half Dome에서 다리다친 한국인들을 아냐고 연이어 묻는다. 인천교대 아저씨들 얘기다. -인천교대 아저씨들은 우리와 하프돔을 같이 등반한 날은 중간에서 실패하고 내려가고 그후에 또 재등반을 시도했는데 10피치 Robbins Traverse에서 톱이 추락 다리가 부러진것이 요세미테 전체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난 우리와는 다른 팀이라는 말만 해줬다.
The Nose를 등반하기 위한 예비작업으로 다시 성균이, 성호, 인제, 수형이가 고정자일을 깔기 위해 다시 El Cap 으로 떠난다. The Nose의 초입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철의형과 같이 등반한 효철이와 내가 전부였기 때문에 성균이가 떠나기전 "형 같이 갈래요?"하고 넌지시 물어 본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화장실에 갔다와서 얘기해준다고 했다. "형 같이 가요." 했으면 같이 갔었을 수도 있었는데...이런 걸 보고 운명이라 부르나 보다.
혼자 Village Store와 Visitor Center에 Shuttle Bus를 타고 다니면서 엽서며 선물할 사진들을 샀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들고 와서 Camp에 남아 있던 애들과 같이 먹었다. 몇몇사람들에게 엽서도 쓰고 트럼프놀이도 하며 오전의 적막함을 즐겼다.
'지금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 중 한시절이 되겠구나.'
그런데...이런 고요함이, 이 모든 것이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저 멀리서 희승이가 울면서 허겁지겁 달려왔다. 사고가 났단다. 성호가 추락해서 지금 양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조대에 연락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갑자기 더위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지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사고 현장에 도착해보니 아직 구조대원 한명만이 The Nose 1피치로 올라간 듯 했다. 도저히 구조대원이라고 믿기지 않는 뚱뚱해보이는 사람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걸어가는 것을 재치고 정신없이 1피치초입을 향해서 올라가니 아침에 봤던 인디언 여자가 암벽화를 신고 올라간다. "Are you rescue team?"...."Ohio....!" 밑에 있는 노란 옷을 입은 의사에게 길안내나 하라고 내게 지시를 한다.
성호를 남긴 모든 등반대원들이 하강을 하고 The Nose 1피치는 금새 구조대원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그렇게 4시간 동안 구조작업이 진행되었다. 사고 발생시간 11시. 성호는 하오의 뜨거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 채 그렇게 4시간동안을 신음하고 있었다.
수형이는 장비결함에 의한 사고라며 머리부분이 완전히 날아가서 와이어만 남아있는 노트 얘기를 해댄다. 그런데 성균이가 사고가 발생한 크랙을 가리키는 걸 보니 The Nose 1피치가 아닌 엉뚱한 크랙이었다. 순간 아침에 있었던 성균이와의 대화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성호는 일단 바위 위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Yosemite Clinic으로 옮겨졌다. X-ray를 찍어본 의사가 양쪽 발목의 Talus라는 부분이 골절됐다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저녁에 다시 구급차와 헬기로 Modesto까지 이송되었다.
** Yosemite 보고서 - 에필로그
성호는 modesto에 있는 Doctors Medical Center라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사고수습과정에서 조경일OB님이 정신적으로 아주 큰 도움을 주셨다는 것 또한 덧붙이고 싶다.
나는 병원에 있다가 8월13일 메릴랜드로 돌아갔으며 나머지 Yosemite에 남아있는 대원들은 사고의 주원인이 되었던 너트의 파편을 찾아내기 위해 The Nose 1피치를 등반해서 사고 현장으로의 접근, 사진촬영을 실시 했다.
10일 정도 남은 기간동안엔 Lost Arrow를 간단히 등반하고 Toulomne meadow에 워킹을 다녀왔다고 한다. 사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원정의 과정과 결과에 상관없이 일단 원정기간 중 한 대원이 심한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나마 머리나 허리를 다치지 않은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원정은 실패한 원정이라고 평가를 하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을 줄로 안다.
하지만 단한가지 이번 요세미테 원정에 참가했던 원정대원 모두가 그곳에서 다시 한번 자신뿐 아니라 동료에 대한 깊은 애정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점을 무엇보다도 강조하고 싶다.
*** 기타 이 사이트에는 요세미테 클라이밍과 관련된 많은 사진들이 있습니다.
글쓴이 : 현창봉 ( hyeoncb@hotmail.com)
출처 : 서울대 문리대 산악부 http://alpine.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