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6일 / 게스트하우스 신시瓦 그리고 아트숍 발해그래픽스
오늘 탐험 지대는 게스트하우스 ‘신시瓦’와 아트숍 ‘발해그래픽스’이다. 네모난 건물이 유별날 것 없이 들어찬 도심지에서 유별나게 아담한 한옥을 수리하여 사용하는 장소들이다. “도시재생 현안문제를 문화예술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마을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하겠다.
게스트하우스 ‘신시瓦’의 한쪽 담장은 노란 천으로 송두리째 덮여 있다. 큼직큼직한 글씨로 적힌 마틴 루터 킹의 어록이 발길을 잡는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 앉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이 만든 커피를 마시거나 중국 사람들이 재배한 차를 마시거나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재배한 코코아를 마신다. 우리는 일터로 나가기 전에 벌써 세계의 절반이 되는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오늘 마신 커피가 몇 잔이더라? 셈해보는 머릿속으로 케냐인지 탄자니아인지에 사는 계집아이가 커피콩을 따는 모습과 씨앗을 고르는 그 부모의 까만 조약돌 피부가 떠오른다.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방문객을 압도하는 건 흰 무명천이다. 이부자리를 거풍시키고 세탁한 홑청들을 말리느라 조붓한 마당이며 창고 건물 위의 허공에는 빨랫줄이 여러 개다. 늘어지는 빨랫줄은 가운데를 간짓대로 치켜 올렸다. 마당에는 몸피가 제법 굵은 토종 동백나무가 두 그루인데, 그 중 한 그루는 휴식 공간으로 마련된 창고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서 있다. 추위에 얼었던 흔적을 간직했지만 꽃숭어리들이 꽤 붉다. 자그마한 연못에는 아직 식물이 없지만 머잖아 부레옥잠이나 창포가 자리를 잡게 될 거 같다. 좁지만 긴 마루에 걸터앉으니 이곳이 도심지 복판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기와집과 마당은 정겨움을 물씬 풍기며 추억 속으로 여행을 부추긴다.
신시瓦커뮤니티협동조합은 지역 예술작가들이 1년여의 논의를 걸쳐 2014년 초에 설립된 조합으로 동구청의 2014년 상반기 신규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단순한 숙박 공간의 의미를 넘어 동구의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2014년 12월 30일 1호점을 개관하였다. 다양한 예술적 체험이 가능한 개성 넘치는 게스트하우스로서의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신시瓦’는 오픈 기념으로 최성욱 다큐멘터리 작가의 사진전 ‘잃어버린 시간’을 전시중인데 분기별로 지역 작가들의 릴레이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일반 게스트하우스라기보다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조합을 결성하였습니다. 앞으로 10호점까지 민간 외교차원으로서의 게스트하우스를 세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주시민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쪽으로, 공가나 폐가를 문화예술 쪽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이지요. ‘신시瓦’에서의 ‘신시’는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을 다스린 곳에서 따왔어요. 교류의 매개로서의 장소,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매개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입니다.” 게스트하우스 ‘신시瓦’의 입장을 박성현 대표에게 들으니 주변과의 원활한 소통과 살뜰한 공동체의식을 환기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 박 대표는 3월이 비수기라고 말하며 그동안 방문한 이들에게 물으니 “광주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무등산, 5·18유적지, 구시청먹거리, 대인시장 야시장”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대인시장 야시장은 접근성이 우월하여 여름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란다.
방이 세 칸에 회의를 하거나 간단히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전라도땅을 그린 지도, 역동적인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담장 위 조형 작품, 굴뚝에 걸린 초나흘이나 초닷새 밤에 뜰 것 같은 달, 벽면에 걸린 여러 점의 사진 등등, 모두 예술품이다. 이곳은 집의 안팎이 갤러리여서 예술이 먼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곁에서 숨 쉬는 것임을 느끼게 한다. 찾아오는 이들에게 편안한 숙박과 함께 일상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려는 듯하다.
아트숍 ‘발해그래픽스’는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로 25번길 9-4에 있는 편집디자인 전문회사이다. 주로 예술관련 서적 팜플렛, 디자인, 브로셔, 명함, 포스터, 북아트 등 편집디자인이 주 업무이다. 전시도록 및 책자, 리플릿 등을 제작하고 아트상품 개발에도 주력한다. 전시 공간은 디자인 실험실이고 디자인을 판매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선미 대표는 1997년부터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발해’라는 회사명은 서태지 노래 <발해를 꿈꾸며>에서 착안하였다. 그 노래가 세상을 풍미하던 당시에 회사 이름을 공모하다가 발해의 기상을 되살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어 ‘발해’로 결정하였다.
평소에 이 대표는 “마당 있는 사무실을 갖는 게 꿈”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금동 인쇄소 골목에 사무실이 있었다. 도로의 커브에 서 있는 한옥을 구입해서 리모델링하여 2014년 7월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마당을 가운데로 뒤에 있는 한옥은 회사 사무실이고 도로 쪽에 기대인 앞쪽은 쇼룸, 즉 상품을 진열 전시하고 판매하는 장소이다. 기존 한옥의 골격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공간과 개성적인 콘셉트를 살려 인테리어 전문가와 협업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쇼룸은 복덕방이었다. 건물 상단 외벽에 페인트를 새로 바를 법도 한데 벗겨진 페인트며 투박한 시멘트 벽을 그대로 두었다. 이전에 있던 건물을 무작정 철거한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의 의미를 살린 건물임을 무언중에 말하는 듯하다.
상품 전시실 뒷쪽은 간단한 회의장소나 차를 마시는 장소로 쓰기에 안성맞춤인 아담한 공간이다. 긴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벽면은 물론 지붕이 투명하다. 앉아서 고개를 드니 푸른 하늘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밤에는 별빛이 쏟아지듯 내려올 것이고 비라도 내리면 현란한 빗방울의 소리와 율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통하길 발해’라는 간판과 벽에 붙인 ‘멋 꿈’이라고 쓰인 하얀 A4 용지를 보니 이 대표의 발언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꿈은 또 다른 꿈을 꾸게 한다.”
연이틀 포근한 날씨다. 이곳이 객지라 해도 마음이 여유로울 만하다. 마당에서 몸을 내밀고 골목을 내다보는 매화가 불러들이는 것이 벌떼뿐이랴. 매화를 탐하는 행인의 눈길과 향기처럼 퍼지는 탄성의 파문, 봄은 봄이로다. 보고 또 보니 더 잘 보이고 보면 볼수록에 사물도 사람도 그윽하게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