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최예태의 작품론
진실된 자기 발견 -박 선 규/ 문학박사(미학전공)
1. 서론
진실(眞實. truth)이란 성정(性情)이 바르고 참됨. 헛되지 않는 참된 마음. 또는 성실(誠實. sincerity)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진실은 곧 순수이며 진리인 것이다.
진리(眞理. true reason)는 참된 도리로서 사물이 그와 같이 발현되도록 하는 진실된 원리로 사물에 내재한 생성 변화 이치같은 것을 자칭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보편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논리의 법칙에 일치해야 하는 지식 지능, 감성 등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시한 명제(truth itself)로서 진리 자체인 것이다.
예술작품에서의 이러한 진실은 자연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자연의 근원에 신묘(神妙. marvellousness)한 이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때 드러난다. 로버트 니스베트(Robert Nisbet. 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수)는 "풍경화는 예술가 자신의 독특한 의식에 의하여 추출된 대지, 바다, 하늘의 어느 부분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수단이다."하였다. 소재를 어떤 시각에서 포착하였으며 그것을 얼마나 진실되게 표현하였느냐, 말하자면 시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사물의 진실된 부분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였으며, 어떤 회화적 형태로서 그 진실을 표현하였느냐의 문제는 창조적 수단과 관계된다는 의미이다. 예술은 생산 지향적인 삶의 한 차원이다. 화가 최예태의 작품은 진실을 표현하는 창조적 수단을 통하여 이러한 삶의 한 차원을 부여하였고, 삶에서도 어떠한 삶이 가장 중요한가를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2. 프로메테우스의 정신
화가 최예태는 '악성 베토벤(Beethoven, Ludwing van, 1770-1827)은 음악에 대한 방향과 목적 그리고 이념에 대하여 즉, 모든 악장은 고뇌를 통해서 환희에 도달한다. 고전주의 형식은 물론 자기가 추구하고 있는 기존의 소나타 형식을 버리고 항상 새로운 악장으로 변화하면서, 인간의 사랑과 진실한 삶의 희열을 발견한다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정신을 받아드려 악성으로서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하였다. 베토벤은 1810년 귀머거리가 된 후에도 근대 음악을 확립시켰으며 걸작을 남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 것이다. 베토벤의 이러한 불굴의 의지는 프로메테우스의 정신과 같은 것이 있음을 말한 화가 최예태의 예술에 대한 이미지속에서 시작되고 이미지 속에서 끝나는 삶 자체를 진실하게 부각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는가 역력히 보인다. 미래의 지식을 소유한 자가 된 프로메테우스의 정신과 악성 베토벤의 정신을 받아드린 사람은 화가 최예태라는 것을 그의 작품이 입증해 주고 있다.
"창저력은 천재에게만 부여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하였따. 작품을 통하여 표현된 진실은 노력의 집적(集積)그 자체이다. 노력의 집적은 새로운 미를 창조해 낼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작가로 만들기로 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하여 그 방법을 단순화하고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집중한다."하였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란 어떤 아이디어(idea)나 유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기숙생리(技熟生理)즉, 기교가 능숙해질 때까지 그림을 그리면 그 가운데 스스로 어떤 사리가 자생한다 하였다.
"문필가는 매일매일 일정량의 지면을 채우는 것을 배워야 한다. 화가는 어떤 분량의 캔버스를 채우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조각가는 끈기있게 정을 손에 잡아야 한다. 이것이 훈련이다...사실 이것은 예술이 생산되는 에너지의 근원이다."고 말한 것처럼 화가 최예태는 바로 이러한 것을 창작에 있어서 최상의 방법으로 간주한 것이다.
3. 자아발견
그리하여 화가 최예태는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인 자아를 발견하려는 것이다.
자아란 철학상의 개념으로 체험을 지지(支持)하는 의식의 통일체를 뜻한다. 철학의 대상이 되는 자아는 일상 생활 가운데 자연스런 심신의 합일체로서의 자기를 반성하고, 진실로 자기의 자유에 맡겨진 자기, 자기가 일체의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아 개념도 학자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면 소크라테스(Sokrates, BC 470~399. 그리스 철학자)의 '자기가 가진 지식 내용과 그 진위(眞僞)를 음미하는 반성적 자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11. 그리스 철학자)의 그리고 데카르트(Descartes, Rene, 1596~`650. 프랑스 철학자)의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즉, 생각하는 자아로서 정신아(精神我), 반성아로 선험(先驗)적인 개념으로 간주한 것 등이다.
물론 심리학적으로는 '행동의 기저에 깔려 있는 어떤 추구, 그에 따른 여러 경향과 함께 특수한 질서 체제를 형성하고, 개체 행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주체적 조건'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심리학적 에고(ego)라는 개념으로 추구 측면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에술가들이 말하는 자아 개념은 이와 다르다. "자아 성취를 위한 출발 또는 접근 관계를 예술, 사유, 도덕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말하자면 자아 성취를 위한 예술, 사유, 도덕의 통일성을 이루어 신의 경지에 귀의하려는 인간 행위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자아 실현은 인간의 행위가 진,선,미의 궁극에 이르러 자연에 귀의하려는 것이다. 자아 실현을 위한 예술적 인간 행위는 '전체의 부분으로서의 예술안에 있는 상징'이 아니라 '전체로서 이성안에 있는 상징'으로서 미학적인 것이다."하였다.
따라서 예술가들의 자아 실현을 위한 행위는 첫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노작(勞作)의 축적을 통하여 자신에게 내재한 신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것으로서 인간에 대한 도전 정신이다.
둘째, 부분과 부분이 결합되어 하나의 개체를 이루며, 독립된 개체로서 또는 인간이라는 '더불어'로서의 사람으로 태어나고 자라며 그 자체에 내재한 신적 능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화가 최예태는 이러한 두가지의 자아 실현을 위한 방법을 구사하여 사물 자체의 진실성을 규명하는 작업으로서 대치하고 있다. 그의 사실성은 자아 실현의 결과이다. 사물의 진실을 추적함으로서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는 회화란 곧 발견이고 표현이므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고 만들어 가는 일이라 하였다. 진실로 자아 실현을 위한 노력이 그의 사실성을 띤 작품 속에 화선지에 스며든 먹물처럼 녹아 있다. 공허가 아니라 빛나는 삶의 근원적 의미로서 말이다.
4. 생명의 향기
화가 최예태는 '살아 있는 꽃이 향기를 잃으면 죽은 꽃이나 다름없다'하였다. 생화와 조화(造花)의 차이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살아있는 그림'을 원한다. 그는 살아있는 그림을 창작하기 위하여 구체적 묘사 방법을 선택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실성은 사물 자체의 자기 모습을 생생하게, 광휘성있게 드러내줌으로서 자아실현을 시도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사실적 묘사에 함축되어 있는 것을 사물의 표피에서 보는 구체성이 아니라 그러한 구체성을 이루는 것으로 구체성 이면에 내재하는 어떤 원초적 에너지 같은 것이다.
"무릇 어떤 경치를 그린 그림은 화면에 배치한 것들이 크고 작고, 많고 적고를 생각하지 않고 반드시 정밀 정교함으로서 하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데, 정밀 정교하지 못하면 신묘한 기운이 흩어진다.고 말한 것처럼 그러한 사물을 생성하는 신묘한 어떤 이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면 솔씨가 발아되어 커다란 노송이 되도록 자라게 하는 그 진리를 표현하기 위하여 화가 최예태는 실감나도록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말한 꽃의 향기는 사물이 그러한 현상으로 형태를 이루어 모습을 나타내게 하는 그 신묘한 힘 자체이다. 정밀하고 정교한 문고리만한 귀거리를 귀에 달았다고 그 여인의 인격이 돋보이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실주의적 표현 양식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향기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지속적인 실험 작업을 통한 노작의 집적 자체가 화가 최예태의 사실성에 내재한 예술성이며 또한 작품성이다.
5. 결론
예술가의 과제는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부동의 고형물에서부터 운동의 생성 즉, 생명의 표현을 획득하는 것이다"하였다.
운동의 생성은 곧 생명의 탄생이자 성장을 암시한다. 2차원적 캠버스에 삼차원적 공간성을 부여하고, 실제로 정지된 상태의 형태와 색상으로 사물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창작은 그것 자체로서 만족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을 항상 괴롭혀왔던 형식과 구조 자체에 주의를 기우렸던 어리석은 작업으로서 사실주의적 형식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생명의 향기를 그것도 진실하게 나타내는 것, 그것으로 인한 자아 실현이다. 더구나 가치관이 다윈적 현상으로 타락하고 이에 따라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이 질풍처럼 세계 예술계를 강타하는 현실에서 끈질기게 진실을 추구하여 생명의 향기를 내품는 작업으로 일관하는 창작 태도는 결국 작품의 경지를 일품(逸品)의 경지 이상으로 상승시켜 놓았다.
현대는 녹슬은 진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대를 상징하기도 한다. 좋든 싫든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화가 최예태의 작품들은 다채로운 천부의 재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