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최고조로 치달은 7월마지막날.
아들부부랑 귀염둥이 손자를 만나러 곤지암 리조트에서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편이 큰일났다는표정으로 황망해하며 나를 이끌고 냉장고로 데려간다.
어머나 세상에 !!
이런 삼복더위에 냉장고가 고장이 나버렸다.휴가기간이랑 주말이겹쳐 써비스도 안되고,새로 구입할 시간도없다.
뭔 일이 터질라하면 꼭 엎친데 덮친다더니,난감하기 짝이없다.
어제밤부터 고장이 났었는지 냉동실 음식들이 물컹거린다 . 발등에 불이떨어졌다 .
잠이 덜깬 상태에서 김치냉장고로 옮길수 있는것은 옮기고 버릴것은 버리고 시원한 곳에 두면 며칠은 버텨낼거같은 건어물종류는 지하 효소방으로 올겨놓고 겨우 한숨을 돌렸다.
눈떠자마자 부랴부랴 정신없이 해치우느라 여태껏 잠옷 바람인줄도 몰랐다.
소스랑 장아찌 종류를 버릴려고 큰대야에 모았더니 꽤큰 그릇인데도 넘쳐 또다른 그릇에 담아야했다.
소스를 비우고난 빈병 이랑 빈통들도 한박스나된다.
다먹지도 못할 장아찌들을 머하러 저렇게나 담가놨었는지 ..' 앞으로 다시는 담그나봐라'
유통기한 지난 소스들을 저렇게 나 사다놓고 맨날 쓰는 양념은 간장이랑 효소 마늘만 사용하고있었다.
저것들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모두 들어내고나니 냉장고안이 더럽기도 저렇게나 더러웠었나?
냉장고 청소를 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하면서도 일벌이기가두려워 외면하고 지나왔던 대가가 너무나 처참하다 .
남편보기가 너무 챙피하다.혼자 화를내며 남편에게 보지 말라며쫒아냈다.
차마 보여줄수가 없다.남편은 이해한다면서 '엄마냉장고도 그렇더라.하며 나간다 . 그나마 위로가된다.
어머님 냉장고 냉동실 문을열면 뮌가 하나 툭 털어지곤한다 . 주로 절에서가져온 떡쪼가리들이 많지만 바나나도 시꺼먼채 들어있고 먹다남은 짜장면까지 들어 있을때도있다. .
어머님댁에 갈때마다 냉동실을 비워내는데 갈때마다 이상한것들로 채워져있다.
시골로 이사오곤난 뒤부터 닭모이로 주라고 노인정에서 먹다남은 음식찌꺼기 들을 걷어와서 냉동실에 모아둔다 .
이런거 모아두지말라고 남편이 화를내고 나도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없어 갈때마다 말없이 꺼내오는걸로 맘을비웠다
.앞으론 당장먹을거외엔 냉장고를 채우지않으리라 다짐을하고 또했다.
김치냉장고는 쓸모가 너무나 많다 .
말그대로 김치를담가 보관하는용도인데 대신 잼이랑 베리류를 보관하려면 냉동실은 참으로 고마운존재이다.
베리류는 냉동보관했다가 먹으면 영양성분이 더풍부해진다하니 봄에열심히 따모아 그득그득 쟁여놓았다가 여름동안 비워지고 가을에엔 알밤으로 새로 채워졌다가 겨울동안비워진다.
냉장고가 없던시절엔 소금에절이거나 말려서 보관을했겠지.
새삼문명의 혜택을 누리고있음을 감사히여긴다.
손자들 시대가 되면 로봇이 굿은일 다해주고 드론 자동차가 날아다니겠지
고장난 냉장고는 다녀온뒤에 해결하기로 하고 리조트로 출발했다 .
세살짜리꼬맹이 하나를 앞세우고 우리부부 아들부부 미혼인 딸애랑 어른다섯이 휴양지를 돌아다니는데
우리말고 다른팀들도 다들 꼬맹이 하나에 어른 네다섯이 줄줄이 따라 다닌다.
옛날 나의어릴적풍경은 엄마등에 아이하나 업히고 그뒤를 고만고만한아이들이 줄줄이 따라다니는 풍경들이었는데
할머니가 된 지금의 세상은 변해도 너무나 변했다.
냉장고 일은 싹잊고 행복한시간 잘 보내고왔다.
집에 오자마자 써비스를 요청하니 다음날와서 하는말이 부품비가 30만원이 드니 고치는거보다는 새로사는걸 권한다.
15년을사용했으니 아까울건없지만 새로사려면 냉장고값이 몇백인데 고민좀 하다가 김치냉장고가 두대있으니 비싼양문형말고 , 좀저렴한 문한개짜리인 옛날걸로 사기로했다.
음식을 쟁여두지 않기로결심했으니 좀작아도 괜찬을듯싶어서다 .
고장난 냉장고는 버리지않고 정리함으로 사용하기로했다 .
선반위에 가득하던 명절때 들어온 참치캔 이랑 세제류 술 등등 차곡차곡정리하니 창고가 깔끔해졌다 .
이제부터 냉장고 청소를 깨끗이하고 음식도 쟁여놓지않겠다고 다짐 또다짐했다.
일벌인김에 창고 청소를 구석구석 걸레질을하고나니 기분이 너무너무상쾌하다.
이런게 전화위복인가보다 .
다음날 주방도 뒤집었다.말려놓은 나물들은 또 왜그리도 많은지,저걸 다 언제 해먹겠다고 저리도 말려놨는지.....
보름나물 해먹겠다고 말려놓은 모양인데 둘이 해먹기엔 너무많은 양이다.
버릴거버리고 헌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 헌냉장고가 요렇게요긴하게 쓰일줄 이야...
고장난 냉장고 덕분에 창고랑 주방이 훤 해졌다..
일벌이기가 두려워 번번히 급한것만 하다가 ,
고장난냉장고 덕분에 묵혀두었던 창고청소를 제대로하고나서 남편이랑 옛추억에 잠시잠겨본다.
새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양문형냉장고와 식탁을 들여놓고 신혼집같다고 좋아라했었던....
좋은추억이 어린 헌냉장고를 버리지않고 정리함으로 재활용하게되니 다행스럽다..
오래된 옛집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그집에서 조상들이 쓰던 옛것들을 여지껏 사용하거나 보관하는것들을 보면
참으로 부러웠다.
조상들이 쓰던것과 새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누구도 흉내낼수없는 고유의 역사가 담긴 집....
어릴때 살던 고향집은 헐리어 없어진지 오래이고 대구에 와서도 몇번을 이사를 다녔는지 헤아릴수도 없다.
조상들이 살던 튼튼한집과 손때묻은 가구집기들을 물려받은 후손들은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축복을 못누렸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우리들의 흔적을 남겨주고싶다.
백년이지나도 허물어지지 않을 이집과 손때묻은 가구 집기들과 내그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