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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흥규 시집 <어머니의 편지> 발문
구슬리는 말법, 눙치는 가락
- 이 흥 규 론 -
송 수 권
(1)
오랜만에 값진 시집 한 권을 만난다. 남도 부족방언으로 된 차진 시집이다. 인절미같이 짝짝 달라붙는 차진 언어들 속에 한반도 남쪽 그것도 서해안 지방의 옥당골에서 자란 이흥규 시인의 생태학적 DNA에 저장된 모태 솔로의 언어들이야말로 한 시대의 삶을 깊이 파고들면서 심원한 겨레의 정서를 흔든다.
이흥규는 한반도의 남쪽 서해안 영광 법성포 이웃 홍농읍 출신으로 그곳에서 30년을 뼈대 있는 가문을 지켜오면서 자랐다. 지형학적 지도를 그린다면 영광-법성-홍농-공음-상하-무장-해리-고창-질마재-정읍-순창까지의 방언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역은 주로 평야 권 지역이기보다는 서해를 접한 산악 권으로 전라도의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남쪽의 느슨한 평야 쪽 보다 춥고 눈이 많은 지역이다. 이 두 권역은 남도에서 우도농악(정읍중심)과 좌도농악(여수, 순천)으로 그 가락이나 말씨에도 다소 차이성이 드러난다. 세류청청(細柳靑靑) 휘늘어진 것이 남도 말씨요, 가락이라면 아무래도 서해안 쪽은 남해안쪽에 비해 절제가 있고 투박하다. 12진법으로 마디가 끊긴 것이 우도농악이고 절제 없이 휘늘어진 가락이 좌도농악이다.
기사양반! 이 차는 어디로 가는 빤쓰요?
고창 가는 고쟁이요.
그라먼 무장도 가겄소. 야?
공음, 상하, 해리꺼정 우게로 아래로
다 더듬고 강께 얼릉얼릉 올라타씨요.
-이흥규 「장날」3연
「어머니의 편지」 제5부에 들어있는 시다. 말발이 좌도농악처럼 쳐진 것이 아니라 위로 올라붙는 것이 특징이다. 그 대신 고흥반도에서 40년을 자란 모태 솔로인 필자의 시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여그, 아지매 술 한 병만 더 주더라고 잉
아지매 보니께 워메 반갑능거 잉
말끝마다 그러제라 잉 하믄, 더부살이로 따라다니는 ㅇ(이응)받침
나 혼자 언제 그랬다요. 그래 쌈시롱
말끝마다 더 붙는 ‘요’라는 첨사
-송수권 「내 고향 말투」 2연
「장날」에서 이흥규 시인이 구사하는 지형학적 지도 안에 들어있는 말씨에는 필자가 구사하는 고흥반도 말씨에 들어있는 첨사 “~잉”이 빠져 엿가락처럼 늘어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김치에도 남북현상이 있고 굴뚝의 연기에도 남북현상이 있듯이 좁은 공간에도 이처럼 남북현상이 드러난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남주북병”이라는 차이성이 있다. 즉 남산골샌님은 술이요, 북촌 대감촌은 매일 잔치로 떡이라는 뜻이다.
대원군은 팔영지에서 한강 이남은 대(竹)와 난초요, 이북은 수석이라고 말했다. 백석이나 소월시에 대(竹)숲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성장관계에서 유체험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흥규 시인이 자란 법성권역은 손화중의 무장기포권역으로 동학혁명이 무참히 꺾인 자리이기도 하다. 동시에 남방불교의 첫 도래지로 마라난타의 지팡이 끝에 차(茶)씨가 묻어온 곳이다.
(2)
그가 태어난 홍농읍과 법성포는 일찍이 근기 둠벙으로 서면 칠산(七山) 앞면 육산(六山)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옥당골이며 전라도 관찰사는 옥당골 군수를 부러워했다. 옥당골 군수와 안악골(황해도) 군수 자리를 놓고 자리다툼을 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옥당골은 그만큼 차진 곳이란 뜻이다. 법성에서 한 모퉁이만 돌아가면 선운사가 있고 질마재가 있다. 아다시피「질마재」의 전통적 토속성은 또 부족장으로 시를 썼던 미당 서정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는 이흥규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는 질마재의 토속성과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는「질마재 신화」와 한 핏줄 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 《단편 서사시》 (unit-narrative)로서 하나도 손색이 없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이흥규 시는 판소리 장단으로 아니리처럼 꺾어 읽어야만 맛이 난다.
「어머니의 편지」에서 가장 짧은 시 한 편을 예로 들어본다.
오메! 순덕이 가리쟁이 꽃 피었이야.
얼레리 꼴레리 꽃피었다네.
순덕이는 꽃 피었다네.
떽끼! 못본치꾸로 해야제 그럼 못쓴다.
너도 느거메 꽃속에서 나왔어.
순덕이는 인자 여자 되얐다.
-「꽃」전문
순덕이는 누구인가? 고향을 지켜온 우리들이 태어난 어머니다. 프롬(E . Fromm)은 《사랑의 기술》에서 어머니는 우리가 태어난 길이고, 자연이며, 대지이고, 대양이라고 했다. 짧은 이 詩 속에 기막힌 서사가 들어있다. 그건 판소리의 가락 속에 들어있는 해학과 풍자다. 단편 서사시다. ‘단편 서사시’ 개념은 백석이 전범을 보인 <이야기 시>라 할 수 있다. 이 단편 서사시 개념은 팔봉 김기진이 임화의 「우리 아빠의 화로」에 대하여 ① 상상한 소설적 사건 ② 현실적 분위기 ③ 감정의 이입이 객관적임을 들어 그 개념을 처음 끌어냈다. 위의 6행의 짧은 시 속에는 5개의 방언이 투입되어 극도의 시적 압축으로 아우라를 퉁겨내고 있다. 오메, 가리쟁이, 못본치꾸로, 느거메, 인자가 그것이다. 편의상 시 쓰기에는 부적합한 표준말(서울말)로 옮겨보면 오메!(오!), 가리쟁이(가랑이) 못본치꾸로(못 본 척), 느거메(너의 어머니), 인자(이제) 등인데 이런 투박한 말이 박혀서 극서정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투박하다는 말은 다음 강진의 시인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첫 부분만 비교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에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설움에 잠길 테에요.
모란을 투박한 말투로 바꾼다면 “목단”이 될 테고 “뚝뚝 떨어져”와 같은 자음군의 말이 모음군의 부드러운 말결에 문을 치고 있다. 더 부언한다면 ㅁ, ㄹ, ㄴ, ㅇ,의 유성음에 무성음이 끼어든 형태다. 그래서 지형학적으로 본다면 서해안 말투는 북도의 질마재 영감 시인 서정주의 말투와도 엇비슷하다.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어리냐…… <화사>에서”처럼 투박한 말투의 어감은 양성모음의 계열이 아닌 음성모음의 계열(혹은 중성모음)로서 최남단의 영랑시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워메! 쪼깐이 쪼까 보소 저.
키는 쬐깐헌 것이 배는 남산만 허게 불러 각고
지 몸뚱아리 보담도 더 큰 물동우를 이고 오네.
웂시 사는 죄로 못 먹고 못 큰 딸내미
입하나 덜라고 시집보낸 날 밤에
지 부모는 얼매나 잠 못 자고 뛰적끼롔겄능가.
돌쪼구도 암놈 수놈 짝이 맞어야 허는 벱인디
저것이 장대겉은 서방을 감당허고 워찌케 살끄나?
넘이 보기에도 꺽쩡이 태산이등만은
워쩌코롬 맹글었는가
저 쬐깐헌 뱃속에도 아가 들어섰네. 그랴!
아무가 생각해도 신통방통허제?
그렁께 옛날부텀 사람 짝 맞추는 디는
크고 작은 것은 염려헐 것 웂다고들 허잖는개비여.
삼신님께서 사람을 맹그실 때
아조 지 짝까지 맞춰서 맹근다고 안 허등가.
그나저나 인자 거중 달이 차 가는 디
저 쬐깐헌 옥문으로 워찌케 아를 낳을끄나?
씨잘데기 웂시 뭔 입방정을 그렇고 떠능가.
아무리 쪼깐헌 뱃속이라도
시상에 못나올 것 같으면 그 속에 아가 생곘겄능가?
지가 뚫고 나올 수 있씅께로 들어앉었제.
그라고 작은 꼬치가 맵드라고 몸땡이는 쪼깐혀도
지 서방 야물딱지게 닥달허는 것 보먼
옹통진 것이 어간내기가 아니드라고 안?
쪼깐아, 꺽정도 마라. 와!
못나올 것 같으면 생기도 않했어야?
나올 때 되면 지 스스로 알아서 나올팅게
꿈틀거릴 적마다 워쩌튼지 튼실허게만 커라고
배아지 살살 문질러 주어라이~
보깨지 말고 아그 나라고 조왕님께 빌팅게
헌 치매 외빠지데끼 쑥 빠처불어라 와!
-쪼깐이 전문
이 시 속에 등장하는 「쪼깐이」는 누구인가? 익명성의 여자는 전자에서 보인 순덕이 아니겠는가? 꽃같이 피어난 여자 순덕이는 어쩌면 그렇게《질마재 신화》에서 나오는 ‘한물댁’ 이나 ‘이생원 마누라’ 와 닮아 있는지 그 캐릭터가 신비스럽기만 하다. 못살고 가난한 애환 속에서도 결코 인내와 끈기로 한(恨)을 극복해 가는 삶의 의지가 《어머니의 편지》전체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 시집의 특징이다. “상처(truma)가 없는 시는 읽지도 쓰지도 말자.” 또는 "시인이 앉았다 일어선 자리에선 된바람이 분다.” 는 말, 여기에다 남도방언이 지닌 특유의 해학과 풍자가 깔린 삶을 극복해가는 힘은 이 시집의 발광체가 되어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판소리가락이 지닌 힘은 해학과 풍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 때문이다. <오메!>나 <워메!>를 좌도 가락으로 가져간다면 <옴머!> <웜메메!>가 될 것이다. 그것은 판소리나 아니리에서 <좋제!> <옳거니!> 등 추임새 소리와 같은 것이다.
(3)
남도의 말깔(갈(어감)+가락)은 타 지방의 말깔과 달리 세류청청 휘늘어진 봄버들 가지처럼 낭창거림이 있다. 이 기법을 허튼가락, 덤벙기법으로 보고 ‘구슬리는 말법’과 ‘눙치는 가락’으로 본다. 그래서 남도서정은 언어자체가 자연스럽게 그늘을 친다. 음식의 삭힘 새가 맛이 곰삭으면 그늘(개미)있는 맛으로 가고 판소리로 가면 ‘그늘 있는 소리’ 시로 가면 ‘그늘 있는 시’로 가는데 소리가 곰삭지 않으면(그늘이 붙지 않으면) 왱병 모가지 비트는 소리 작작하라고 퉁을 준다. 왱병(부뚜막의 식초병)이나 그늘(개미)은 국어사전에도 없고 《한국 현대시어 사전(김재홍 편저)》이나 《토박이말 쓰임 사전》에 송수권 시인이 이런 유의 말을 많이 올려놓았다. 그는 이런 말을 이시대의 “봉인(封印)된 말” 이라고 명명했다. (봉인된 말을 찾아서 (시) ; <퉁>시집 참조)
그동안 남도방언으로 된 시집도, 한국 방언 시도 많이 나왔지만 이흥규 시인의 《방언서사시집》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 시의 맹점은 언어의 대활령(大活灵)과 소활령(小活灵)을 구별하지도 못하고 시를 써온 점이다. 모바일 시대, IT강국이 되면서 너무나 발 빠르게 변화된 속도 속에서 은폐되거나 소멸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전통문화 속의 고유한 태ㅅ말들을 ‘현대’라는 병통 속에 반성도 없이 봉인하고 왔다는 점이다. 겨레말의 심혼인 대활령은 부족방언에 있고. 소활령은 표준말에 있는데 우리 국어교육이나 시 창작은 이를 전연 도외시 한 것이다. 따라서 표준말은 시 창작에 대단히 부적합하다.
지루지떡!
암몰떡네 꼬치밭 조께 보소. 저!
찌단헌 꼬치가 디레디레 허네.
뙤밭 된등에다가 심고 거름도 씨언찬허등마는
워째 저리도 잘 되얐당가?
자네는 이적지 그것도 몰릉가?
궁댕이 몽실몽실 헌 홀엄씨 암몰떡이
지녁마다 가리쟁이 벌리고 오짐을 싸주는디
꼬치 지가 안 크고 배기겄능가?
워매! 그래이~ 그러먼 나도
우리 꼬치 밭에 지녁마다 오짐 싸줄라네.
자네는 벨시럽게 싸주어 봐야 소용웁써
홀엄씨도 아님시로 씨잘데기 웂는 짓걸이 헌다고
꼬치덜이 욕이나 안헐랑가 모르겄네.
그런디 자네네 까지는 워째 저렇고 크당가?
홀엄씨도 아닌 자네가 오짐 싸주어봐야 소용웂실턴디?
나는 우리 까지 밭에 얼씬도 안허네.
달밤에 우리 서방이 오짐을 싸중께
저도 뽄따라서 컷능갑제.
그러먼 나도 우리 서방보고
달밤에 까지 밭에 오짐 싸주락 헐라네.
허이구! 행여라도 그런 소리 말소.
자네 서방은 아무리 싸주어도 소용 웂실팅게.
까지들이 뽄따라서 쪼그라들지나 안을랑가 몰리겄네.
월랠래! 저놈의 예펜네 말하는 주댕이 조까 보소.
자네는 넘의 서방 거시기까지 워찌 그리 잘 안당가?
자네 은제 우리 서방 것 봤제?
씨언찬 헌 것 달고 댕기는 자네 서방은 감추기 바쁜디
은제 볼 틈이나 있당가?
항시 노리끼리 헌 자네 얼굴 보먼
거시기는 보나마나 뻔 허제.
-궁금증, 전문
위의 시는 《질마재 신화》속에 나오는 <소한××놈>보다 더 재미난 시다. 에로스의 원형감각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 그 상상력의 폭이 훨씬 깊이가 있다. 그래서 제목도 <궁금증>이라 제하였을 듯하다. 농경문화 속의 삶의 애환이 판소리 다섯마당인 변강쇠의 <기물타령>과도 흡사하다. <고추와 가지>가 상징하는 에로스로서 다음 변강쇠의 <기물타령>과 어떻게 닮았는가는 스스로 판독해 보기 바란다.
저 여인 반소하여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사령 서려는지 쌍걸랑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 군뢰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에 불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 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는지 맑은 콧물은 무슨 일꼬. 성정도 혹독하다.
화 곧 나면 눈물 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쓸 숭어인지 꼬챙이 굶이 굽어져 있다. 뒷 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다. 소년 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굿댄지 검붉기는 무슨 일고. 칠팔월 알밤인지
두 쪽 한데 붙어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걸랑 등물세간 걱정 없네.
지루지떡(댁)과 암몰떡(댁)네의 대화 속엔 바로 변강쇠의 ‘기물타령’이 그대로 투입되어 있다. 고추와 가지는 바로 기물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기물타령에서 오다가다 청석관에서 만난 강쇠와 옹녀가 눈길 한 번에 끼가 발동해서 즉각 산속 바위에서 일을 벌이면서 옹녀가 성기를 묘사하는 부분은 눈물겹다. 유랑민의 설움이 그 성기에 노출되면서 정착민의 꿈인 세간도구들의 나열이 그렇다. <궁금증>이 감춤의 상상력이라면 기물타령은 드러내는 상상력의 기법이 다를 뿐이다. ‘지루지떡! ∕ 암몰떡네 꼬치밭 조께 보소. 저! ∕ 찌단헌 꼬치가 디레디레 허네. ∕ 뙤밭 된등에다가 심고 거름도 씨언찬허등마는 ∕ 워째 저리도 잘 되얐당가? ’
화룡첨정 이라더니 이 장면 하나의 묘사는 천금과 같은 문장이다. 판소리(아니리) 가락이라면 기찬 허튼 가락이고 덤벙 기법이다.
이흥규 시인은 키도 크고 밥도 두 공기씩이나 비우는 육척장신으로 굴때장군 칭호를 가지고 있다. 마을 앞 정자나무 밑 들 독도 뽑아 던진 힘센 변강쇠같은 놈이다.
광주생활 20년 서울로 옮겨 10년이 훨씬 넘더니 이제 힘센 명창하나가 솟았구나. 실로 필자가 더 보탤 수 있는 말은 이 말이다. 광주에 있을 때는 네 詩를 천하 박색이라고 타박도 많이 했는데 나이 들어 경중미인(京中美人)을 산 남자로다!
법성포 조구 둠벙 한 모퉁이만 돌아가면 선운사 동백꽃마을 질마재 힘 좋은 시인의 신화가 있고 그 아랫동네 쪼깐이가 사는 순덕이 마을에 변강쇠같은 시인이 솟아났음은 천하에 명패를 돌릴 만하다. 광주에선 좌청룡으로 행세했던 시인이여! 이제야 시마에 휘둘려 끼가 넘치누나. 소설집 《도시의 불빛》그리고 시론집 《시는 아름다운 마음의 거울》 연타에 이은 방언 서사시집 《어머니의 편지》 속에 쪼깐이처럼 걸출한 詩들을 방목하시라.
남방불교 도래지 법성(法聖)과 홍농(弘農)엔 봄이 가고 지금 신록이 한바탕 자지러지겠구나!. 大尾
* 序言
情이 넘치는 판소리 가락
- 남도 사투리 - 이흥규 서언
고향의 흙냄새와 함께 그 땅에서 수천 년간 몸담고 살아온 선조들의 체취가 배어있는 사투리는 우리가 태어나서 어머니 품에서 처음으로 배운 말이다. 말 이전에 엄마와 아이의 혼과 혼이 맞닿아 자연스럽게 익힌 언어로 원초적인 얼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투리가 사라져 버린다면 내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정이 시들고 말 것이며 메마른 대화는 상대방에게 정을 실어주지 못할 것이다. 고향을 잃은 문학 또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이며 전자매체 속에 갇혀있는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문학작품과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사투리는 존재한다. 그 까닭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또는 정치세력의 변동을 좇아, 혹은 이웃 문화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사투리는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지역적 특성을 보여준다. 특히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은 반도임에도 각 지역의 방언이 매우 발달하고 발음이나 억양이 뚜렷이 달라 말끝의 고저나 장단만 듣고도 말하는 사람이 어느 지방의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의 방언이 이렇게 다양한 것은 위에 말한 여러 가지 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지방이 산맥으로 나누어져 있어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사람들의 내왕이 드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지역의 특색을 지닌 언어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다.
어느 지역의 사투리든 사투리는 그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그 지방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나 성격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에 독특한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전라도 사투리는 말의 억양과 장단에 리듬과 운율을 담은 가락이 흐르고 있어 주고받는 대화가 그대로 판소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말 속에 말하는 이의 감정이 진솔하게 담겨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남에게 속마음을 숨김없이 내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억양과 고저장단에 저절로 행동을 연출할 수밖에 없도록 율동이 들어있어 말과 연기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가락에는 가슴을 감아 도는 뭉클한 정이 얹혀있다. 아래에 그 예를 들어보자.
오메! 깔끄막이 영판 까드락시럽구만.
오뉴월 뙤약벹에 물텅보리 오통가마이 짊어지고
멍덕재 뽀닥뽀닥 넘는 것 맹이로
허벌나게 솟아뿌는 땀 땜시 등짝이 철떡철떡 허네.
아이고, 성님! 그라요?
글안혀도 나가 오늘 산에 올라감서 성님 디릴라고
어저께 고향에 성묘 댕겨옴시로
막걸리 한 말 지고 왔씅께 이리 뽀짝 앉으씨요.
오메! 그려?
논배미다가 다리몽생이 말뚝 박고
죽을 동 살 동 모리고 허우적거리던 농사철에
목구녕에서 땡기는 틉틉헌 막걸리 한사발이 보약이였제.
일에 지쳐서 사지 삭신이 녹작지근 허던 새참 때
시암물속에 당가논 알싸헌 것이 넘어가먼 뱃창시가 씨언 했씅께.
나가 성님한테 고런 맛 보여디릴라고
얼음 차대기 속에다가 담어왔씅께 싸게 잔 받으시씨요.
어이, 고맙네. 동상!
아따,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것이 꼭, 그 쩍 맛이네 그려.
자, 자네도 한잔 받게.
밀건 쐐주 맹이로 야금부릴 것도 웂고
새참 때 첨보는 길손한테도 툭사발 철철 넘치게 따라주던
고 막걸리가 우리네 고향 인심 아니였능감?
그렇고만이라우.
성님 동상 불러감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 오고가는 정이
찧면 찔수록 끈적끈적 달라붙는 따땃헌 찰떡맹키로
꼬시롬허게 상대방 맴을 감아부렀지라이.
아먼, 아먼!
논두렁 밭두렁에서 물쌈질 허다가도
툭사바리 앞에 놓고 주거니 받거니 허다보면
맴이 풀어져서 됩데 늬 것 내 것 웂시 친해졌씅께
요 막걸리가 쌈질 말기는 거간꾼 아니였능감?
-고향막걸리 전문-
위의 사투리 시에서 보는바와 같이 두 사람의 대화 속에는 상대방을 위해주고 배려하는 정이 철철 흘러넘친다. “나가 성님한테 고런 맛 보여디릴라고 갖고 왔씅께 싸게 잔 받으이씨요.” “어이, 고맙네. 동상! 아따, 입안에 착착 달라붙는 것이 꼭, 그 쩍 맛이네 그려. 자, 자네도 한잔 받게.” 이 대화 속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판소리 가락이 살아있다. 그리고 그 가락에는 가슴을 감아 도는 뭉클한 정이 얹혀있다. 따라서 전라도 사투리는 순박하고 거짓 없는 순수한 말 가락 그 자체가 언어예술이다. 이처럼 대화 속에 리듬과 운율이 살아있는 사투리로 시를 빚는다면 읽는 이가 꼭 전라도사람이 아니더라도 어휘나 단어, 기호 속에 진하게 녹아있는 정감과 흥겨운 판소리 가락을 능히 읽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전국이 일일생활권 시대인 21세기에 이르러 각 지방의 특색과 풍습, 그 지역 사람들의 성격을 대변해 주던 사투리가 거의 사라져가고 전 국토 어디든 표준말만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사투리 자체를 세련되지 못한 투박한 언어로 비하하여 어릴 적부터 사투리를 써 온 사람들도 사회에서나 직장에서 가능한 한 사투리를 기피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자면 표준말 역시 서울지역의 방언이다. 다만 국가적으로 언어통일의 차원에서 서울지역의 말을 표준어로 정했을 뿐이다. 그러나 시골 초등학교에서도 사투리를 멀리하고 국어교육 시간에 표준말지도만 하는 상황이여서 머지않은 장래에 사투리는 시골에서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이제 시골 노인네들마저 생을 마감하고 난 뒤에는 이 땅에서 사투리는 자연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각 지역의 향토문화의 발전은 곧 그 나라 문화발전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한나라 언어의 바람직한 발전을 기대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투리는 다양한 언어 발전의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언어가 다양해야 사상 감정 또한 풍부해 지는 것이다. 방언에는 향토민의 얼이 담겨 있어 그 정신의 기저에서 우러난 정서가 풍요롭게 배어있다. 그러므로 사투리는 잃어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자원이다. 표준어에 밀려 오랫동안 찬밥 신세이던 사투리가 귀중한 문화자원으로 대접받으려면 방언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사투리의 감칠맛 나는 정서를 작품에 담아 우리의 언어를 문학의 넉넉한 바탕으로, 또 정신세계의 기름진 토양으로 끌어들여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현대문명과 도시의 뒷골목에서 발생한 삭막한 비정이 토속적인 삶을 오염시키지 못한 산골 벽촌의 생활 속에는 아직도 인간미가 살아있다. 그래서 사투리에는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남을 배려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끈끈한 정이 듬뿍 녹아있어 자연스럽게 사랑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자라면서 혼에 섞여 버무린 사투리의 쫀득쫀득 감칠맛 깊은 어감에 반한 나는 교단 봉직 40년 동안 타지방 근무 때에도 전라도 사투리를 의도적으로 가르쳐왔다. 그러면서 사라져 가는 사투리를 찾아내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 땅위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순수한 감정이 담긴 토속어를 찾아내 시를 빚고 시집을 발간코자 한다.
조그만 핸드폰 속에 세상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정보화 시대에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컴퓨터나 핸드폰 칩에 꽁꽁 묶여 그 심성이 날로 삭막해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미래의 주인공들의 인성이 염려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투리 시집 발간은 순박한 시골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소박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기 까닭에 정이 메마른 젊은이들의 심성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정서순화에도 한 몫 하리라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시골 사람들의 정감과 애환이 담긴 사투리 시집은 사회에서 은퇴한 이들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숨어있는 귀향의식을 자극하여 도시로만 집중되는 인구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리라 예상된다.
더불어 지역민들의 생활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투리시집은 사투리가 사라진 먼 훗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활환경속에서 살고 있을 미래세계의 후손들에게 오늘날의 생활모습과 향토의 특색이 녹아있는 방언의 변천과정을 제공해 주는 좋은 자료가 되지 않겠는가.
계사년 봄날 아침, 지당거사 서재에서
참고 시 모음 – 전라도 사투리 시
1, 새벽
2, 어머니의 편지
3, 할매의 충고
4, 가라지
5, 고속도로
6, 아빠또 살이
7, 복
8, 상질
9, 별점
10, 기도
새벽
얘들아, 새복 되얐다.
장딱이 목청을 뽑은지가 한참 되얐당께!
바다랑 하늘이 지끔 쪼개지고 있는 것 잠 봐라.
해님이 바다너머에서 튀어터진다.
햇살이 하늘 사방군데로 화살을 쏘아뿐께
빛을 몽땅 빨아먹은 바다가
새악씨 볼따구니 맹키로 뽈구작작 허니
연지곤지를 찍어 볼르는구나.
둥근 해가 이마빡을 살짝 내비친께로
어둠이 어느새 내빼부렀다.
애들아, 언능 인나그라.
뒤 안 대밭에서는 폴시께 굿 판 났당께!
밤새 뽀시락도 안 허고 잠자던 삐들기들이
후다닥 푸드덕 날개춤을 춤시로
뚱실뚱실 얼굴 내미는 햇덩어리 속으로 날아가뿐다.
감나무 가장구에서는 까치가
어서들 인나서 부지런히 움직끼레 보라고
새복잠 웂스시던 할아부지 대신
보튼지침을 해쌈시로 깨우잖느냐?
얘들아, 싸게 서둘러라.
후딱 세수 허고, 밥 먹고, 핵교 가야쓴당께!
햇님이 벌써 솟뚜껑섬 우게 뽈딱 올라 서부렀다.
늑아부지 괭이는 폴새 땅을 백번도 더 팠것다.
지 몸땡이는 돌볼 틈도 웂시
아등바등 발싸심 해쌓는 부모 생각 혀서라도
느그덜도 얼렁얼렁 핵교당에 가서
선상님 말씸을 부지런히 주서담어야지야.
아, 후딱! 후딱!
어머니의 편지
아그덜 보그라.
핵교 문턱도 못 넘어본 느그 어매가 지끔 편지를 쓴다.
못된 모시매들 만나서 연애질 헌다고
느그 외할아부지가 핵교 근처에는 삐끔도 못 허게 했제.
글고 밭도 매고 애기 보라고
글자캥이는 몽당연필도 못 잡아보게 했단다.
느그 아부지 만나서 접방살이 헐찍에
밭두룩에서 큰놈 낳고 밥 먹으로 옹께
뒤야지가 솥뚜껑을 밀어내고 밥을 다 묵어부러서
냉수만 항그럭 퍼마시고 또 밭으로 갔지야.
그쩍에는 정지 옆에다가 뒤야지를 키웠씅께.
근디, 어느새 세월이 담박질 허고 가부렀다.
지끔은 존 시상이여야~
문 일이든지 그저 부지런히만 허먼 배 안골코
놈 밥 묵을 때 죽이라도 배부르게 묵응께.
어찌든지 부지런히만 허그라 이~
늑어메는 지끔 느그덜 한테 보낼라고
지 감 다듬어 놓고 편지를 쓴다.
마을 회관에서 글자도 갈차 주고 편지도 쓰락 혀서 쓰는디
아! 글씨, 이놈에 글씨가 통 맘먹은 대로 되아야 말이제?
내가 쓴 편지를 느그덜이 어찌코롬 알아나 볼랑가 모르겄다.
싱거운 겉절이는 바로 묵고
짠 지는 냉장고에 넣어놓았다가 쪼께 익으먼 묵어라.
그러고 방학 때는 꼭 새끼들 보내그라.
남새밭에다가 단쑤시랑 깡냉이도 숭거놨시야~
북감재도 밑이 잘 들었씅께 주전부리는 걱정헐 것 웂다.
내는 우리 강아지들
고무랑 고무랑 크는 것 보는 재미로 사니께
방학 내동 있을 폭 대그라.
할메의 충고
언년아!
낯짝 못난 년이 색경 탓만 허는 것잉께
인자 그만 디레다 보그라 이~
늬 얽은 구녘새마다
콩알같은 복이 쪼락쪼락 끼어있응께
한평생 목구녘에 거무줄은 안 칠 것이여
걱정일랑은 저 흘러가는 냇깔에다가
내뿐져불어라. 와!
낯짝 뺀지르르 해갖고 희떡삐떡 허먼
들어오던 복도 내빼는 것이다.
여자는 그저 다소곳 허니 맴만 한질로 묵으먼
복이 저절로 기어들어 오는 벱이여.
너는 늬 에미 빼다 박어서 궁댕이가 펑처짐 헌 것이
웃짝만 옹골찬 놈 엥기먼 헌 치매 외 빠지데끼
퇴깽이 겉은 새끼덜 쑥쑥 빠져나올팅게
자석복도 많을 것이다.
늬가 내지른 새끼들 워찌케 키울 것인가
꺽쩡도 말어!
워쩌튼지 튼실허게 낳아 놓기만 허먼 지 복이야
하눌님이 다 알아서 점지해 주니께
염려 헐 것 웂어야~
인자 살아보먼 나이 먹어갈수록
새끼덜 많은 것이 젤 큰 복이라는 것도
차차 알게 될 것잉께
키울 걱정일랑은 팽개쳐불어라. 와!
가라지
가라지 할메!
가라지가 옛날에는 뻘밭이였다고 허든디 증말이다요?
하아? 이 할메가 에렛을 쩍에는 얼매나 좋았다고.
아름다울「가」자에 비단「라」자
비단보다도 곱고 보드런 뻘 이였제.
보리모개 팰 때쯤이면 농촌 일이 쪼께 한 숨 돌린께로
뻘밭에다 구댕이 파고 드러누워서
얼굴만 내놓고 뻘찜을 허고 나면
온 삭신이 지절로 풀렸씅께.
어디, 고 것 뿐이간디? 뻘이 얼매나 연하고 존지
지끔 머리깜는 삼뿌보다도 더 보드랍고 미끈미끈 혔지.
몸뚱아리에다가 뻘로 범벅 칠 허고 하루 볕만 쬐고 나면
살가테 부시럼딱지나 가려움증은 씻은디끼 나서부렀단다.
그 쩍에는 약이나 어디 있었간디? 뻘이 젤 존 약 이였제.
워리! 뻘이 그렇고 좋았당가요?
그럼, 뻘밭에만 나가믄 먹을 것이 뒤여졌씅께.
갯가테 사람덜은 아무리 가난 혀도 배는 안골았단다.
꼬막, 바지락, 백합조개, 참게는 말 헐 것도 웂고
소라, 전복이나 낙지, 꼴뚜기, 해삼 같은 것들 천지였제.
지끔 사람덜이 좋다는 짱뚱이 같은 것들은 먹도 안했어야?
뻘밭 끄트머리 바우댕이 우게는 꿀이 다닥다닥 붙고
미역 ,다시마, 매생이 같은 시푸런 풀들은 또 얼매나 흔했던지.
사람덜 몸에 존 것은 다 갯바닥에 있었씅께.
그렇고 존 뻘이 다 어디로 갔당가요?
일본놈들이 뻘밭에다 논 맹근다고 무냉기 막고 나서
짠물이 안 들어 온께로 뻘밭이 차차 논 되야뿐졌단다.
농사지면 해독나서 지대로 되도 않고
사방군데 널렸던 먹거리도 웂서져뿐지고
사람덜이 여그 있다가는 배 골아 죽을 것 같은께로
마포 잠뱅이 구렁내 빠지데끼 솔래솔래 떠나뿐졌냐. 안?
살기 좋던 마을이 사람덜 떠나고 폐촌 되야뿐졌제.
그쩍만 생각허먼 분통이 터질락 헌께 억지로 잊어뿐단다.
근디 뻘밭이 그렇고 존지 모르는 무지헌 사람덜이
뻘밭을 웂세불고 논 맹글고 공장을 짓는닥 허니……쯧쯧!
고속도로
돌산떡! 요 메칠 통 안보이등만 어디 댕게오셌소?
야! 우리 아덜따라 전주가서 호강쪼까 혔소.
여그서 전주꺼정 옛날 같으먼 하루내동 걸릴 것인디
뭔 놈의 차가 땅속으로 하늘로 막 날라댕게라우?
에이! 그짓말도 엔간히 허씨요.
늬바꾸 달린 차가 날라댕긴다는 말은 고지도 안 들리요.
아니여라우. 순천서 전주꺼정 굴을 몣개나 뚫벘는지
박쥐맹키로 시꺼먼 굴속으로 날라가다가
굴속에서 나오먼 또 산 허고 산 허고 다리를 놓아각꼬
다리 우게서 봉께로
영낙웂시 공중으로 날라댕기는 비양기등만이라우.
오메, 그래라우. 아덜 덕분에
시꺼먼 박쥐 비양기 타고 호강쪼까 했겄소. 야?
큼메 말이요.
나는 날라댕김서 호숩게 호강했소만은
그 높은 바우댕이 산을 워찌케 뚫벘쓸께라우?
참말로 징허게 심 들었을 턴디
굴 파는 사람덜 영판 고상덜 했겄등만이라우.
요새는 나라가 발전해서 기계로 해뿐께 옛날 같간디라우?
나도 서울 우리 딸네 집 가서 봉께로
먼 놈의 집덜이 꼭 도깨비 뿔난 것 맹이로 생긴 것을
뿔딩 이라고 허는디
하눌 끄텀머리꺼정 송곳질 허는 것 맹입디다.
전주도 고런 집덜이 뙤깃뙤깃 보이드랑께라우.
인공지내고 구정 때 그놈에 보리고개 냉김시로
배골아 허기저서 푸석푸석헌 밭뙤기 파기도 심들었는디
농샌일도 모다 기계로 해뿐께 월매나 좋소.
지끔은 존 시상이여라우,
배골을 꺽정 웂고, 꿈도 못 꾸던 서울 귀경도 허고,
이로코 편헌 시상이 올 중을 누가 알았겄소?
복도 잔생이도 웂는 사람
한시상 수랑구녘 속에만 빠져 살다가
이 존 시상 못보고 떠난 즉아부지는 억울혀서
저 시상에서 편히 눈도 못 감을 것이요.
아빠또 살이
통새미떡!
아따! 오랜만이요. 은제 내래오셌소?
어저께 바깥양반 지사지내고 오늘이 굉일날잉께
미똥에 잡초나 안났는가 둘러보고자와서 왔지라우.
워메! 서울물이 좋긴 좋은개비요.
얼굴에 지름기가 뻔질뻔질 헌 것이
지끔 시집가도 개얀컸소야?
아이고! 숭해라.
요새는 손주새끼덜 치닥거리 허느라
폭싹 늙어부렀는디이~
그나 성냥곽 쌓아 놓은 것 맨치로 생긴 아빠또 속에서
깝깝혀서 워쩌코롬 사요?
내는 우리 아덜 따라가 메칠 있다봉께로
뻘떡정이 나서 못젼디겄습디다.
킁께, 말이요. 그래도 워쩔 것이요.
새끼덜 키움시로 돈꺽정 웂시 살게 헐라먼
몰똑짢은 새끼덜언 내가 샐펴봐 주어야제.
메누리보고 새끼덜 돌봄시로 일허로 댕게라고 허겄습디여?
그래도 퇴깽이 겉은 새끼덜이
여시 짓껄이를 허는 것을 보먼 월매나 귀여운지
고것들 거둬 멕이는 재미가 쏠쏠 허드랑께요?
큼메 말이요. 고것은 그러겄소.
내도 고놈의 손주새끼덜이 눈앞에 알쫑그레서
밤이면 잠도 통 안 오드랑께요?
고 또랑또랑 헌 눈꾸녁이랑 얍실얍실 헌 볼태기가
눈에 찡게각꼬 눈이 온이 감기들 안틍만이라우?
넘덜언 시에미가 메누리 식모살이헌다고 허지만은
생각허기 나름이랑께요.
아, 젊었을 찍에도 식구덜 종노릇 허고 살지 안혔깐디요?
시에미다 메누리다 곅식따진들 엇따쓰겄소.
아빠또 정지 일이야 에릴쩌그 빠꿈살이 허는 것 맨치로
벨로 심도 안 들고 옛날처럼 냉갈도 안 난께로
내가 봐도 낯쪼가리가 희여물검 해지드랑께라우.
그려서 지끔은 올란다 갈란다 자발도 안 떨고
맬겁시 투정도 안 부리고 시골에 오고 자운 맴을
손주새끼덜 꼬랑지다가 쨈매부렀소.
복
오메! 우리 꽃님이 이삔 것조까 보소.
기양 날로 깨물라도 비렁내 한나도 안나겄네.
긍께, 의료봉사 허로 나온 의과대학상이 한번 보고
솔개가 삥아리 채가디끼 얼렁 채가뿔제.
다 타고난 지 복이여.
인자 우리 꽃님이가 의사 사모님 되야각고
몸뚱아리 비단으로 감고 놋요강에 떠르르르 오줌 눔서
할랑할랑 부채질이나 허고 살겄네. 웨?
아, 옛날 말이제. 구식 탱탱헌 놋요강, 부채질은 무신,
희컨 좌변기에 안지먼 아그덜이 물총쏘디끼
씨싸쓰쏴 똥구녁이랑 보물단지를 깨깟이 씻께준당만
글고 에이콩인가 뭇잉가가 씨언헌 바람을 핑게중께
한여름에도 더운 줄 모리고 산다네.
아따! 긍께 고것이 이러트면 그렇다 그 말이제
먼 말을 그렇고도 못알아먹능가.
내동 배골코 살던 옛날에도 아, 말이 안 있능가.
개똥밭에 어푸러져도 이승이 금방석잉께
웂시 살아도 오래 사는 것이 젤로 큰 복이라고
인자 시상이 모도 금방석 되야부렀싱께
그저 워쩌튼지 병 웂시 오래 살어야 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네는 더 글제.
출세 헌 아덜, 메누리가 효도를 헝께
주메이 빌만 허먼 채와준다고 소문이 자자허등만.
아덜 하나 잘됭께 신세가 한끕에 풀링거이제.
거 뭔 실딱쟁이 웂는 소린가.
이빨 아드등 물고 쎄가 빠지게 키운 새낀디
한끕이란 말이 가당키나 헝가?
젊었을 찍에 새끼덜 쪼깨 잘 키워 보겄다고
징허게도 고상고상 혔는디 고진감래라고
인자사 그 복이 돌아 온 것이제.
상질
해 가는 질 허고 달 가는 질이 같데끼
인생질도 똑 같은개비라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마소.
해질, 달질 이라고 은제나 똑 같든가?
티끌 하나 웂이 맑은 하늘에 나 보씨요. 허고
온 낯짝 들내 놓고 가는 날이 있는가 허면
구름에 가려서 볼 빌똥말똥 담박질 허는 날도 있고
죄 진 데끼 하루 죙일
씨꺼먼 먹구름 속에 아조 숨어뿐 날도 있잖튼가?
사람이 가는 질도 마찮가지다네.
오뉴월 뙤약볕에 등짐 짊어지고 보튼 지침 해감스로
깔끄막 오르내려야 허는 고된 질이 있는가 허면
삐까뻔쩍 헌 자가용타고 콧노래 부름스로
빤듯이 뚫린 고속도로를 휑휑~ 쏘아가는 팔자도 있고
신선마냥 호숩게 하늘로 날라댕기는
비양기 똥구멍에서 나온 희컨 구름질 안보이등가?
어리! 질은 다 똑같은 질인종 알았등마는
그라고 봉께 질도 질 나름 이구만이라우.
행복헌 질 박복헌 질이 민경 드레다보데끼 훤허요.
근디, 시상을 맨 몸땡이로 하루라도 더 떼운 부모가
새끼들헌티 편허고 행복헌 질로 가라고
아무리 갤차주어도 소용 웂드란 마시.
사람마다 지 갈 질이 따로 있씅께
요리가그라 저리가그라 참견해봐야
씨잘데기 웂는 잔소리로백히 더 들리겄능가요?
이질 저질 해도
지가 가고자운 질이 젤로 존 질일텡께
내비 두는 것이 상질 아니겄어요?
어차피 지 팔자 도망은 못가는 것잉께요.
별 점
쪼각달이 아조 곱구나. 오늘이 메칠이냐?
달력 봉께로 삼월오일 음력 초엿세날이요..
그려? 이월 초엿셋날에다가 경칩이라.
쩌그 저, 쪼각달 옆에 쫌생이별이 워쩌코롬 생곘냐?
쫌생이별이 뭇이다요?
달 이우제 모톰모톰 희부덕덕 헌 쪼깐별 무데기다.
쬐깐헌 별들이 달 꼬랑지에 올망졸망 줄서서 따라가요.
그래야? 금년 농새는 보나마나 풍년잉께 꺽정 웂겄다.
하이고! 아부지는 고래때 야그를 지끔도 허시요?
우주선이 달나라를 왔다리 갔다리 허는 시상에
달 허고 별 허고가 농사 허고 문 상관이 있다요?
아야, 그런 소리 말그라.
나도 너만 때 할아부지 말씸에 꼭 너맹굴로 생각혔었다.
근디, 그날은 달이랑 별들이 모도 한발썩이나 떨어져서
여그 쩌그 띄엄띄엄 백해각고 보이도 않드랑마다.
할아부지는 금년 농새 망쳐부렀는디 워쩌코롬 살끄나?
허심서 한숨을 쉬시는디 하도 얼척 웂어서
그런다고 참말로 숭년이 들라디야 허고 밑도 않했등만
그해 가실에는 타작마당에 공출 댈 것도 모지래서
이시락 쪼시래기 주실 것도 웂었지야.
농사가 잘 되야도 왜놈덜한테 다 뺏기고
보릿고개 때는 굶어죽는 사람덜이 쐬야부렀는디,
가실보톰 풋대죽으로 입에 풀칠이나 험서 젼뎌낼랑께로
부잣집도 시안보톰 쫑그래미로 찻독바닥 긁는 소리가 났제
옛날같으먼 진수성찬도 남은 음석 이라고 내뿌는 시상에
요새는 호강허고 삼시로도 그 종을 모리는 느그덜이
그쩌그 험헌 시상을 워찌 알겄냐?
기도
하이고오! 이 노릇을 워쩔끄나?
둠벙은 고사허고 참시암물꺼정 보타부러
논바닥이란 논바닥은 모도 백년묵은 소낭구 껍닥맹이로
등짝이 쩍 쩍 갈라져부러 각고
인자 한창 땅심 빨아먹을 볘포기가 말라 꼬실라지는디
목구녕에 뜨건 짐 뱉어감스로 가꿔 논
저 새끼덜 같은 곡식덜을 워째야 쓸거나?
비나이다. 비나이다. 일월성신님께 비나이다.
지발덕분에 우리 농사꾼조께 굽어살폐서
단비나 한줄금 씨언허게 쏟아줍시소사!
하눌에서는 목간도 안 허고 오짐도 안 싸는 개벼?
오뉴월 뙤약볱에 곡석덜이 우썩우썩 자라야 헐턴디
달포가 넘도록 비캥이는 먹구름도 삐끔을 안 허니
웬수녀르시상! 논바닥에 기양 콱!
대갱이 쳐밖고 디져부러야 헐랑개비여?
웂시 사는 농사꾼들 얇은 뱃가죽 등짝에 붙어서
꼬실라진 나락맹이로 말라 보타져 죽는 꼴을
하눌님이 보고 싶은 개빈디
빈다고 들어줄성 싶은가?
저 방정맞은 주딩이 지랄같은 소리 허고 자빠졌네.
손이 발 되게 빌어도 들어주실까 말까 헌디
볘락 마질라고 하늘 원망을 그렇고 헝가?
단비 내레줄라다가도 도로 거둬가시겄네.
지발덕분에 볘락이라도 딱딱 때렜으먼 좋겄네.
볘락때리먼 감로수같은 비야 원 웂시 쏟아지것지 맹?
꺽쩡 말어. 이리 가물다가도 하눌님이 맴만 잡수시먼
은제 그랬냐는디끼 비를 홈빡 내레주실 거잉께.
그렇고만 됨사 무신 걱쩡인가?
논밭에 곡석덜이 좋아서 너울너울 춤을 출턴디
그렁께 저녁마닥 새복마닥 장꽝에 정화수 떠놓고
지극정성으로 빌어야 써!
지댈디 웂는 농촌사람덜이 비빌 언덕이 어디 있등가?
믿을 디라고는 영험허신 일월성싱님네 백히 웂씅께
정성을 다해 빌다보먼 비 오시는 날도 있겄제.
죄 웂는 목심 모다 굶어죽게야 허실라등가?
♠ 이 흥 규 약력
※ 전남 영광 출생 (號 ; 芝堂), 행복을 전하는『꽃 사랑』대표
※ 한국문인협회 회원,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시분과 회장
※ 광주 시인협회 기획위원장, 광주전남 아동문학회 사무국장
※ 광주광역시 교원연수원 강사, 문학동인 죽란시사회 회장 역임
※ 해동문인협회 이사, 한강문학 동인회장
※ 국제문화교류회 문학부문 문화교육상
※ 새싹회 글짓기지도교사상, 경향신문사 글짓기지도교사상
※ 광주전남 아동문학상, 「우리문학」추천 등단
※ 전남도민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국보문학 소설 당선
※ 시집 ; 달빛 낚기, 외 4권, 소설집 ; 도시의 불빛
※ 산문집 ; 생각나들이, 시창작론집 ; 시는 아름다운 마음의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