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열며
새해라고 새해 연하장이 날라온다. 새로운 한해를 새롭게 시작 하라는 격려와 소원성취의 덕담이 넘쳐난다. 관공서에서 오는 연하장은 수백명 수천명에게 보내는 것이기에 디자인이나 메시지 내용이 뻔하다지만 지기(知己)들과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사진 형태의 연하장도 부귀와 건강과 행복을 원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부자 되세요’나 ‘대박 나세요’ 같은 덕담은 잠시 기분 좋은 말일뿐 공짜나 횡재를 조장하는 것 같아 따라하기가 어렵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라는 옛 스님의 충고가 이맘때 쯤 새롭게 들려온다. 가끔 거울을 보면 거기 흰머리가 듬성듬성하고 이마에 주름이 진 사내가 서 있다. 낯설다. 그를 긍정하고 그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걸 즐겁게 인정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언젠가 도반스님이 세월이 가는 것이 나이별로 확연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십대에는 시간이 거북이처럼 가고 이십대 때는 황소처럼 가며 삼사십대에는 개가 달리는 것 같고 오십대에는 비호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육십대는 휙~간다고 한다. ‘휙~간다’고 할 때 고개를 돌리며 휘파람을 불듯 말해서 한바탕 웃었다. 나이가 먹을 수록 세월이 빠르게 느끼는 것은 물이 줄어드는 둠벙의 물고기처럼 고통스런 죽음이 시시각각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세월이 빠르게 느껴지는 건 예전에는 내가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점점 내가 해야 할 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누군가 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하여 비판에만 열을 올리고 그것이 무슨 애종심(愛宗心)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선배스님들과 어른스님들에게 향하던 비판의 손가락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철이 든 것이다. 철이 들었다는 건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원하지 않고,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도 않으며 기쁜 마음으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게 아닐런지. ‘일체유심조’라는 말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 현장에서 경험되고 실감이 나면서부터 생긴 변화일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남들의 ‘소원성취’를 기도하고 덕담을 건네기보다 저는 ‘이렇게 살겠습니다’라는 다짐으로 시작하고 싶다.
먼저 올해는 일을 하느라고 마음의 평화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이 흔히 무엇을 하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말하듯, 수행자가 마음의 평화를 놓치는 것은 본말(本末)이 전도된 일이다. 그렇다고 일을 안하거나 줄이며 혼자만의 시간을 더 늘이겠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밀도있는 사유를 하고 준비를 더 철저히 해서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젠가 동쪽으로 쓰러진다는 믿음으로 일을 해나겠다. 사람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농담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간격을 헐겁게 할 것이다. 다행히 내게는 천성적으로 우스갯소리를 하는 재주가 있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겨우 땅 한 평에 묻히지만 출가 수행자는 죽으면 묻힐 땅 한 평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르는 곳이 화장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갈 때 ‘괜히 왔다간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르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겠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하라.
모든 철학과 사상과 견해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는 이 한마디는 이 세상에서 부처라는 스승을 만나서 입은 최고의 은혜일 것이다. 바른견해가 나를 이끌어 가는 곳, 순간순간 깨어 있음이 선사하는 선물 말고 무엇을 다시 구하랴. 작년부터 뜻있는 스님들끼리 시작한 공부모임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할 것이다. 대화란 들을 줄도 알아야 하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먼저 내면을 살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다 토론의 주제로 삼고 서로가 잘하는 것이나 부족한 것들을 끄집어 내어 ‘사유의 끝’에 도달하는 치열한 대화를 펼쳐 나가리라. 말과 더불어 얼굴표정이나 눈빛으로 전달되는 대화는 그 자체가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올해는 일요법회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노인분들만 남은 가을 들판 같은 삭막한 시골에서 사람을 모아 법회를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다. 그러나 읍내로 행동반경을 넓히고 지역신문에 광고도 하고 발품도 팔면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이다. 다행히 작년말 부터 일요법회 참석하는 불자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니 올해 연말에는 삼십명정도가 법회에 참여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성철스님은 ‘수행이란 안으로는 가난을 배우고 밖으로는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겨울의 텅빈 들판에 새봄의 싹이 숨어 있듯이 그렇게 우리 스스로가 새로운 기운이 되어보자.
첫댓글 스님, 원격으로 소중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참말로 세월이 빠르다는 건 내가 점점 해야 할 일이라고 뒤늦게 느끼는 게 있는 거 같습니다. 또한 일을 한다고 마음의 평화를 놓치면 안된다는 말씀 또한 더없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