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2017년 4월 29일 토요일
ㅡ 삼각산 인평대군 송계별업와 정선의 산영루 흔적을 찾아
ㅡ 심산, 조장빈, 심우경, 박한찬, 박동욱, 이규성, 이수인, 허재을, 노경아, 김세옥 (*제가 아직 성함을 다 몰라서 빠뜨린 선배님들은 조장빈님이 추가 확인 부탁드립니다)
ㅡ 프롤로그
난 개인의 역사성을 믿는다.
한 개인의 통찰력과 윤리, 그리고 신념이
인간의 역사와 시대를 흔들거나
변화시킬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순신장군이나 이산이 그랬고
가까이는 안중근 열사나 애국지사들,
이국땅 프랑스에서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한 박병선 박사가 그랬다.
이렇게 괄목하지 않지만
어느 시대라도 인간은 진보한 노력을 간단없이 해왔고 그 흔적들을 남겼다.
인문산행은 산에 남은
그런 인간의 흔적들을 찾아
의미를 새기는 역사성 추구의 소중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매우 매력있다.ㅡ
몇년 전 4.19탑 근처에 살때
수없이 오르내렸던 대동문 아랫길에
이리도 많은 인문산행 흔적이 있다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 앞에
무식함이 무색하다.
도랑길에 묻혀있는 석공들의 채석장 표식,
얼음이 얼면 초보때 피에르깡 등
아이젠 웤을 연습하던 구천계곡위에
늠름한 바위글씨,
당대 현감이었던 이신이 남긴 것이라 하는데
남아있는 바윗글씨 중 으뜸이라고 한다.
그 신선한 폭포아래서 옛 선비들처럼 심산선배가 가져온
럭셔리한 와인을 일배씩 한다.
별서는 단순한 별장의 개념이 아니라
공직에 나아갈수 있는 위치와 능력을 지닌 인재가 그것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후학을 기르고 공부하는 장소를 이르는 말이라고 심우경 선배께서 좋은 가르침을 주신다.
인평대군의 별서였던 영휴당과 보허각은
배드민튼장으로 터를 잡고있고
오직 남아있는 장대석 2개는
돌의자 노릇을 하고있다.
고양시에서 북한산 문화재 복원사업을 해
곳곳에 유적에 대한 현판이 세워지고
계곡에 정선의 그림으로 남아있던
산영루는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겸재의 그림속에 있는
딱 봐도 노적봉인 노적봉을,
우리가 노상 오르내리는 그 노적을
그가 그렸다는게 신기하다.
시공이 닿아 마치 오늘의 우리와
그때의 겸재가 만나는 느낌,
산영루가 있는 계곡은 시가 절로 지어질 것처럼 지금도 깊고 청청하다.
계곡에서 잠시 풍치를 즐기다
절을 증축중인 중흥사에 들렀다가,
심산 선배의 권유로 태고사로 올라선다.
고려때 대승 보위의 사리탑과
색감이 강렬한 매우 인상적인
산신각 그림을 만난다.
우리의 오랜 민간 신앙인 산신각이
불교에 의해 차별 받은 얘기는 무속에 문외한인 내겐 새롭고 놀라운 사실이다.
공부가 깊으신 여러 선배님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종일 듣는 답사 인문학
귀동냥 지식이 만만치않다.
정말이지 인문산행, 딱 내스타일이다.
참으로 오랫만에 북한산성 계곡을 내려오며
북한산박물관에 탁본으로 보관되어있는
칠유암(?)의 실제바위도 보고
산성 수문의 흔적도 답사하고,
원효봉과 의상봉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뒤풀이를 하니
신록의 산을 바라보며 마시는
한 잔의 하산주,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인문산행 여는 마당
채석장 표식 바위가 길 옆 도랑에 숨어있다
인평대군의 처소도
송계별업의 유일한 흔적인 장대석
구천 계곡
이신의 바위글씨
누군가가 손수 만들어 구천계곡을 쓸고 가꾸는 싸리 빗자루
중흥사 밑
태고사
태고사 산신각
산영루
산영루 계곡
산성계곡 내려오다 멋진 바위글씨
칠유암
닫는 마당
원효봉과 의상봉을 내다보며 하산주
첫댓글 메모하지않고 기억에 의존하였기에
오류. 오기 지적 절대 수용합니다
지적바랍니다
이규성교수님.이수인님이 빠지셨고 심우경교수님이 우경으로~~ 장개석은 장대석^^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개인의 역사성이라는 글이 마음에 와닿네요~~ 참고로 심산 선배는 81학번임^^
그저 산선배님이라는 의미였습니다만 참고하겠습니다~^^
개인사정으로 저도 학번은 83입니다~
@압록(김세옥) 산선배라는 깊은 뜻이 있었네요~~
덕분에 즐겁게 감상합니다.
인문산행...참 좋은 프로그램인것 같습니다.
저도 시간 내서 꼭 참석하겠습니다.^^
이제야 지나온 인문산행기 정리를 하다 세옥언니 쓰신 글
다시 한번 읽고 공부합니다.
미루지 말아야 하는데..
도처에 상수가 많이 계시니
배움의 길이 실로
즐겁습니다.
선배님. 바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