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임원에서 농장주로… 전직 GS 칼텍스 전무보 정경섭씨의 귀농 스토리
겨울 매서운 추위에 얼어붙었던 만물들이 봄볕에 기지개를 켜며 소생되어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 꽃이 피면서 나른한 육신, 피곤한 춘곤을 벗어나고픈 나들이의 유혹은 물리치기가 힘들다. 그 유혹을 이끈 곳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일명 ‘골용진’이라는 마을. 골용진이라는 이름은 팔당댐이 조성되기 전 마을 앞 강물의 수심이 얕았을 때 배를 건너는 나루터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곳엔 1997년 호남정유, 지금은 GS 칼텍스라는 정유회사에서 전무보라는 ‘별자리’를 박차고 성공적으로 귀농한 정경섭(61세)박사가 주도하고 있는 ‘생태건강마을’이 있다. 그의 귀농일지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그린토피아 홈페이지: www.green-topia.com
대기업 임원직을 뒤로하고 귀농한 정경섭 박사는 골용진마을을 연 관광객 5천 명이 다녀가는 농촌관광 명소로 발전시킨 선구자다.
공학박사출신 대기업 전무의 귀농
그는 연세대학교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정유에서 일했다.
그 후 미국유타대학에서 연료공학으로 공학박사를 취득한 뒤 호남정유 전무보로 발탁된 정유업계에서 알아주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자리를 박차고 귀농했다. 20여 년 전 3형제가 의기투합,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화천리 50만평의 청호산을 사고 난 뒤 산촌 출입이 잦아진 것이 그의 귀농의지를 촉발케 했다.
공학박사에 임직원까지 꿰어 찼건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 직장 상사가 동조해 주지 않고 불화에 타협이 쉽지 않아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그는 1997년 51세, 전무보라는 높은 자리를 내동댕이쳤다.
6개월여 전국 강산을 답사 끝에 지금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과수원과 밭을 사들이면서 아들 둘 4식구가 전원생활에 정착,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다.
연간 5천여 체험관광객 방문
공학박사서 농촌관광 박사로 변신
농촌관광, “항상 연구하는 자세 가져야”
체험학습관광개발로 인기모아
그는 이곳 5,000평 산자락 밑에 배나무 500주 2,000평, 포도 200주 1,000여 평, 그 밖에 복숭아, 사과, 앵두, 매실 등 과수와 채소밭을 가지고 있다.
그 농원 한켠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민박임대형 방 4개를 들인 카페형 전원주택을 갖고 있다.
그는 농원을 ‘그린토피아’라고 이름 짓고 1년 중 5,000 여 명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 농원은 북한강변에 위치해 물안개와 연꽃이 피어나는 분위기에 때문에 가족모임, 단체행사, 워크숍에 이용되며, 피로한 심신을 푸는 쾌적한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농장주 정경섭 박사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고구마, 감자 캐기, 계곡 물놀이, 떡과 수세미 만들기, 밤 줍기, 배, 포도, 사과, 앵두 따기 등 체험관광과 수확물의 직거래로 호남정유 재직 시 보다 상회하는 아주 짭짤한 수입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귀농엔 전혀 후회 없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린토피아는 그동안 영화나 TV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눈에 들어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김혜수, 김석훈 주연의 TV 드라마 ‘한강수타령’,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의 장소로도 자주 활용됐다.
교육 및 견학에 열심…성공 밑거름
정 박사는 당초 노후에 전원에서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마시고 아름다운 농촌경관 즐기며, 순박한 농촌인심을 누리며 사는 낭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귀농을 꿈꿨다.
그러나 처음 1,500평 농사로는 생계비가 부족해 차츰 땅을 5,000평까지 늘리면서 본격적인 농사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 탓에 그는 당시 수원에 있던 서울 농생대에서 최고 경영자과정 1년 수업을 비롯하여 농업기술자연협회 귀농창업자교육, 그린투어 최고경영자과정, 테마식물원과정, 벤처농과정, 인터넷관련 전자상거래학습과정 등 안정적인 귀농정착을 도모할 학습과정을 두루 수학했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명 과수원, 나주배연구소, 장성사과연구소, 수원 원예연구소 등 연구농장을 두루 섭렵, 견학하고 관찰했다.
각고의 학습과 견학 끝에 혼자만의 관광농원을 가꾸는 것으로는 소득창출이 어렵다고 판단 마을 주민을 설득하여 마을관광단지 조성을 독려했다.
특히 국유림 불하 및 차지(借地)로 더덕 수십만평 농사를 짓던 주민을 설득하여 4월 배꽃축제 6월 앵두축제 개최를 주도했다.
앵두 축제 개최시 벽촌 마을에 1일 350여명의 관광객이 몰려와 체험 수확과 숙박관광이 쇄도하면서 마을 혁신에 불꽃이 지펴졌다.
이때부터 정 박사는 경복대학 농촌관광학과 유선무 교수의 컨설팅으로 그린토피아 농원을 설계하고 펜션주택을 지은 뒤 본격적으로 관광농원업을 개척해 나갔다.
주민들도 관광객이 크게 늘어나자 관광마인드가 형성되었고, 제반 여건을 갖추는 노력이 이어져 이 곳이 ‘생태건강마을’ 선정으로 이어지게 됐다.
정 박사의 선구적 노력과 이에 부응하는 주민들의 참여로 이제 골용진마을은 관광이 주업, 농사는 부업으로 전환된 것이다.
공학박사에서 농촌관광학 박사(?)로 변신한 정경섭 씨는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귀농과 관광펜션업을 영위했지만 “이젠 펜션주택의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 서비스와 홍보강화 없이는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다”며, “농촌 체험관광 마을사업 또한 시장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운영자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연구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