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를 익히던 다방골 기생들
기생들이 줄줄 따라 다닌 개화기의 한의사
1910년 무렵의 약방 중심지인 구리개(을지로입구)의 약방에서는 첩제(帖製)가 아닌 정제(錠劑)나 분약(粉藥) 그리고 액약(液藥) 등이었다.
요즈음의 약국에서 팔던 것 같은 것은 인단(仁丹)·팔보단(八寶丹)·자선환(慈善丸)·청심환·회생수(回生水)·청심보명단(清心保命丹)·급체쾌통산(急滯快通散) 등이 있었다.
됴고약(효경다리 됴고약) 외에 지금도 널리 팔리고 있는 활명수도 있었다. 구리개의 제생당(濟生堂) 약방주인 이경봉(李庚鳳)은 근대 약품무역의 선구자로 제약업을 기업화 하는데 앞장섰던 이 사람은 부인까지 양장을 시킬 정도로 멋쟁이(하이칼라)였다고 전한다.
이 당시 ‘장안 기생들이 의약인들을 줄줄 따라 다녔다’는 말이 지금까지 약업계에 전해내려 오는 것을 보면 당시의 의약인들은 인기인이었던 것 같다.
가전비약(家傳秘藥))으로 쏟아져 나온 구급 및 보건제약이 크게 히트한 때에 일본인 약 행상(行商)들은 경향각지로 돌아다니며 문맹의 시골사람들을 현혹시켜 돈을 긁어모았던 시절도 있었다. 「아라이」(新井)라는 일인은 1905년~10년 사이에 호남지방에서 ‘인단(仁丹)’을 만병통치로 선전하여 떼돈을 벌었다던가. 농촌사람들은「아라이」의 술책에 속아 외상으로 마구 사서 이자까지 붙여 가을에 쌀로 갚았다니 참으로 어수룩한 시절이었다.
“1899년에 김덕진(金德鎭)이 양약국 ‘일신의원’을 황토현에 설(設)하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를 최초의 약국으로 인정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1910년 유세환(劉世煥)이 종로3가에서 연 ‘인사당 약국’이 최초의 약국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약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약국을 개설한 것은 1922년 이정재가 낙원동에 세운 삼우당(三佑堂)이다. 1920년대에는 일본약이 판치던 때로 안약의 대학목약(大學目藥), 관절염의「류마치아레치라스」, 매독치료제 「요도가리 환(丸)」등이 많이 팔렸다고 전한다.(*)
개화기의 만병통치약 '인단' 광고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