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錢無罪, 無錢有罪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10월 16일 난데없는 인질극이 생생하게 TV로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범인들은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탈출한 12명 중 지강헌 등 4명.
이들은 8일간 서울각지를 돌며 강도행각을 벌이다
16일 경찰에 포위되자 북가좌동의 어느 가정집에 침입해 일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방송사와 기자는 그들이 요구했으며,그 순간부터 이 사건의 결말은
예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특이하게도 지강헌은 경찰에게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줄 것을 요구했고,
스피커로 음악이 흘러나오던 도중 4명중 가장 어렸던 강영일을 제외한 3명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지강헌은 노래를 들으며 깨진 유리조각으로 목을 찔렀고,
인질구출작전에 나선 경찰은 인질의 비명소리에
지강헌에게 총격을 가했다. 결국 그는 이송된 병원에서 사망했다.
또 다른 한명은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쏴 자살했으며, 다른 한명은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당시에 경찰은 비지스가 아닌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를 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 전 해 극적인 직선제 쟁취와 88년 올림픽 4위,
늘상 새 정권(노태우집권기를 새 정권 이라 부를 수 있을 지 의문이지만..)이 집권하면
내거는 '선진국진입'의 환상에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은
본질적인 부조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새마을 사업 비리로 70억을 횡령한 것과 관련 7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복역 2년 3개월만에 풀려났다.
(지강헌은 550만원을 훔친죄로 보호감호 포함 17년을 선고받았다).
사실 지강헌은 흉악범이 맞다.
그로인해 침해받은 사람들의 삶은 그가 어떤 말을 했다 해도 보상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고 있는 죄도 없앨 수 있다...
이게 대한민국 법이다"는 소리가 단순히 흉악범의 입에서 나온 푸념이라고 치부될 수 없는 것은
그 말이 너무 아프게 이 사회의 환부를 건드렸기 때문일게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 참 가슴아픈 말이다..
1988년 10월 남가좌동 어느 가정집에서 썬글라스를 끼고 창가에서 인질을 붙잡고 소리치던
지강헌의 모습이 떠오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집에서 티비로 그들 최후의 몸부림을 지켜보며 마음이 무거웠던 기억이
영화 홀리데이를 보면 다시 답답해진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김안석(최민수 분)이라는 공권력의 상징으로 가공의 인물을 설정하고,
여러 영화적 장치를 했지만 보호감호라는 이중처벌과 만인에게 평등하지 못한 법의 잣대를 아프게
유전무죄 무전유죄 라고 고하던 슬픈 시절의 절규가 그 시대를 통과해온 지금의 우리에게 영화는
그들의 절규를 잊지말라는 듯 쓰라리게 느껴진다.
지금이라고 그 때 그들의 외침이 개선된 것도 아니고 역시 돈있고 빽있는 놈들에겐 관대한 법적용을
확 뜯어 고치지 못하는건 마찬가지 이기에 아마도 그 영화를 보며 더 답답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시인이 되는게 꿈이었다는 지강헌, 그는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듣고 싶다고 말하였지만
경찰이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를 틀어줘서 그 노래를 들으며 깨진 유리날로 제 목을 찔러 죽었다는..,
영화를 보면 잔상이 그 때 실제로 보았던 지강헌의 모습과 섞여 오버랩 되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