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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선, 안성선, 안도열 안한성-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차사리산1 임마누엘 시온양돈농장-安漢成·72
순흥 안씨 종택 ‘용암세장’ 국가문화재 지정 탄력 | ||||||
전남도,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 | ||||||
사랑채 현판 용암세장(龍巖世庄) 龍巖世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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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달 19일 전남도 문화재위원회 송정현 위원장과 박강철, 최성락, 김지민, 정태연, 남호현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도청 관광문화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갖고 이 같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순흥 안씨 종택인 용암세장은 1929년 건립, 한옥 형태의 건축물로 종택의 사랑채에 해당한다. 비록 세월의 잔흔과 태풍 등 기후변화에 따라 개보수가 요구되나 고풍스러운 담장과 건축 당시 건축주가 심은 연산홍 등 아름다운 정원수가 여전히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보존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현재는 후손인 안영준(75)씨가 살고 있다. 한편 전남도는 지정해제 대상에 대해 기록자료 확보를 해당 지지체에 통보하고 용암세장에 대해서는 자료를 보완해 조만간 문화재청에 지정을 요구할 방침이다. 광양뉴스(http://www.gynet.co.kr) |
용암세장(龍巖世庄)
-지명유래-
車衣浦所 : 진월면 차사리(차동)
진월면은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이 합하여 이루어진 지명이다.
진하면(津下面)은 현재 진상면 청암리와 금이리 사이에 있는 나루터(津)를 경계로 하여
그아래(下)쪽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월포면(月浦面)은 지금의 월길리 중도(中島 )마을 제방이 생기기 전에는
마치 섬진강 가운데 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달 밝은 밤 섬 주위의 물위에 달빛이 어려
섬이 달속에 잠긴 것 같이 보여 월중도(月中島)라 하였는데
여기에서 오는 ‘월(月)’자와 포구의 ‘포(浦)’를 붙여 월포면이라 한것이다.
왜정시대인 서기 1914년 진월면으로 행정구역 개편되었다.
매천집(梅泉集)-황현(黃玹)
권2에는 祭文 1편, 行狀 3편, 墓表 3편, 傳 2편, 雜文 7편이 실려 있다. 제문은 伯母 王孺人에 대한 것이고,
행장은 동몽교관 吳馨眞, 효자 林春發ㆍ安鎭默에 대한 것이며, 묘표는 吳錫演, 安連生, 梁夏龍에 대한 것이다.
安秉蘭
黃瑗-安鎔默의 女
孝子安公行狀 348_550d
안진묵(安鎭默)
字-윤원(允元)
1派27世-참찬공파
세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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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4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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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 |
安子美(안자미)(始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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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 |
永儒(영유 추밀공. 제1파) |
永麟(영린. 제2파) |
永和(영화. 제3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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孚(부 태사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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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 |
珦(향 문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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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
于器(우기 문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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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
牧(목 문숙공) |
愼(신 판관공파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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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
元崇(원숭 문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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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
瑗(원 경질공) |
祖同(조동 부제학공파조) |
垂(수 한림공파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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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
從約(종약 판서공) |
從禮(종례감찰공파조) |
從義(종의검구공파조) |
從廉(종렴도정공파조) |
從信(종신 참판공파조) 從儉(종검 참의공파조) |
10세 |
玖(구 참찬공파조) |
璟(경 찬성공파조) |
琇(수 직장공파조) |
理(리 서파공파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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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 |
知歸(지귀) |
知碩(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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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
瑚(호) |
璿(선) |
琛(침) |
琮(종) |
璣(기 전적공) |
13세 |
處經(처경 장수공) |
處權(처권) |
處常(처상) |
處健(처건) |
處順(처순사제당) |
14세 |
瑒(창) |
璹(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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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
弘業(홍업) |
光業(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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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
璜(황) |
璩(거) |
瓛(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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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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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德(신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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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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珠(주) |
琳(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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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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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生(연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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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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弘宅(홍택) |
弘望(홍망) 광양차동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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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安連生(안연생)
20안홍택(安弘宅) 안홍망(安弘望)ㅡ>21安益垕안익후ㅡ>22安復明안복명ㅡ>23安就成안취성ㅡ>24安國信안국신ㅡ>25安鍾奎안종규ㅡ>26安昌燮안창섭ㅡ>27安鎭默안진묵 안신묵(安愼默)
23안취성(安就成)ㅡ>24안국신(安國信)ㅡ>25안영규(安瑩奎)ㅡㅡ>26안창범(安昌範)
丁酉 | 1717 ~ ? | 순흥(順興) |
병과(丙科) 412등한량(閑良)-1派22世참찬공파-父안익후(安益垕) 祖父안홍망(安弘望) |
안홍망(安泓望)-1파20세
공의 휘는 홍망(泓望)이고 자는 원택(源澤)이다. 아버지는 증 군자감정(贈軍資監正) 휘 연생(連生)이고 어머니는 김해(金海) 허현(許玹)의 딸이다. 선조(宣祖) 임진년에 분성(盆城) 신문리(新文里)로 피란 갔다가 정유년에 부군을 낳았다. 부군은 젊어서부터 기개가 대단하였다. 일찍이 무예(武藝) 과장(科場)에 나갔다가 관하인(官下人)이 오만한 것을 보고 화살을 쏘아 맞히고 나서 하동(河東)의 애치(艾峙)로 피신하였는데, 남원(南原)에서 재차 옮기어 정착한 것이다. 인조조(仁祖朝) 때 무과(武科)에 합격하여 행 부산첨사(行釜山僉使)에 임명되었으나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계묘년에 세상을 떠나니 식자(識者)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그 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전(前) 부인 정부인(貞夫人)은 김해(金海) 김윤(金潤)의 딸이고, 후(後) 부인은 밀양(密陽) 손봉근(孫奉瑾)의 딸이다. 4남 1녀를 두었다. 큰 아들 익하(益廈)는 무과(武科) 주부(主簿)이고 둘째 아들 익후(益垕도 무과 주부인데, 영조(英祖) 무신년(戊申年)에 세운 양무훈(揚武勳)으로 공신녹권을 하사받고 호조참판(戶曹參判)의 증직(贈職)을 받았으며, 셋째 아들은 익장(益章)이고, 넷째 아들 익형(益亨)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의 증직을 받았다.
부군을 처음에 다른 산에 안장(安葬)하였다가 그 뒤 꿈으로 인해 횡천(橫川)역리(驛里) 묘좌(卯坐)에다 자리를 잡아 이장(移葬)할 적에 때마침 역참을 그곳으로 옮기었으며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었다. 전 부인의 묘소는 애치리(艾峙里) 당산(堂山) 유좌(酉坐)이고 후 부인 묘소는 광양군(光陽郡) 진월면(津月面) 방죽리(芳竹里) 앞산 손좌(巽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