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15)
修羅(수라)
거미새끼하나 방바닥에 날인것을 나는아모생각없시 문밖으로 쓸어벌인다
차디찬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쓸려나간곧에 큰거미가왔다
나는 가슴이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쓸어 문밖으로 벌이며
찬밖이라도 새끼있는데로가라고하며 설어워한다
이렇게해서 아린가슴이 싹기도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깨인듯한 발이 채 서지도못한 무척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없서진곧으로와서 아물걸인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듯하다
내손에 올으기라도하라고 나는손을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이나벌이며 나를서럽게한다
나는 이작은것을 곻이 보드러운종이에받어 또 문밖으로벌이며
이것의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이것의걱정을하며있다가 쉬이 맞나기나했으면 좋으렸만하고 슳버한다
- 백석(白石 1912-1996), 『다시 읽는 백석 시』, 현대시비평연구회 편저, 소명출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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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 천상(天上)의 6도(六道)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중 아수라는 육도(六道)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으로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귀신입니다. 이 아수라에서 파생된 말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이 있는데, 이는 '여러 사람이 무질서하게 마구 떠들어대거나 덤비어 뒤죽박죽이 된 난장판'을 말합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다시 공격을 당하여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이나 ‘전쟁이나 싸움 등으로 혼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에 빠진 곳’이라면 모두 아수라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백석의 시 ‘수라’는 1936년에 발간한 시집 『사슴』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집 『사슴』은 해방 전 백석이 발간한 유일한 시집입니다. 백석은 일제 강점기 특히 1930년대 조선의 시대상을 이런 아수라장으로 본 듯합니다. 일제는 이 시기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식민지 조선을 병참기지화 합니다. 강제징용, 강제징병, 강제동원이 실시되고, 경제수탈이 강화됩니다. 궁핍해진 농민들은 고향을 등지거나 만주나 일본 등 국외로 이주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 떠오르는 건 뿔뿔히 흩어지는 이산(離散)입니다. 백석의 시 ‘수라’는 이런 상황을 어느 추운 밤에 맞닥뜨린 거미 가족들에 빗대어 그린 듯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입니다. 지금의 표준어인 현대어로 고쳐서 수록한 백석의 시집들이 다수 있는데 원문 그대로 옮긴 것은 당시의 말맛을 그대로 느껴보고자 해서입니다. 전쟁, 자연재해, 기후위기. 원인이 어디에 있든 난민들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난민들의 대부분은 이산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 원인은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합니다. 수천 명의 사상자 발생을 알리는 지진과 또 다른 전쟁 소식이 거의 동시에 들려옵니다. 세계 곳곳이 아수라장입니다. 우리는, 이곳은, 어떤가요? (20231011)
첫댓글 백석의 시 <수라> 잘 읽었습니다.
보광님 왈 : 시집 『사슴』은 해방 전 백석이 발간한 유일한 시집입니다. 백석은 일제 강점기 특히 1930년대 조선의 시대상을 이런 아수라장으로 본 듯합니다. (...) 수천 명의 사상자 발생을 알리는 지진과 또 다른 전쟁 소식이 거의 동시에 들려옵니다. 세계 곳곳이 아수라장입니다. 우리는, 이곳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