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서사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어린이의 미숙한 시점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새로움, 새로운 세계로의 무한한 확장성 등 어린이 서사는 여러 특징적인 점들이 있다. 그러나, 어린이 서사가 겨냥하는 것이 어른이란 사실이야말로 주목 할 만하다. 어린이 서사는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감상하며 어린이에게 동화되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다. 영화 <시크릿 가든>또한 마찬가지이다. <시크릿 가든>의 주인공 메리는 전쟁이 가져온 상처를 어린 나이부터 경험한 인물이다. 자매를 잃은 어머니는 슬픔 속에 허우적대어 메리에게 신경써주지 못하고, 급기야 병에 걸려 죽기에 이른다.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따라 세상을 떠난다. 메리는 불행을 채 학습하기도 전에 불행 속에 갖힌, 전쟁이 나은 가엾은 인물인 것이다. 메리 이외에도 이 영화에는 비극의 피해자들의 행렬을 이룬다. 메리의 이모부이자 저택의 주인으로 아내를 잃고 힘들어하는 아치볼드, 그의 아들인 콜린, 심지어 버려진 강아지까지 모두 전쟁이 낳은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인생의 활력들이 죄다 사라지고, 기존의 것들이 무로 돌아간 이 상황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철저한 부조리의 시대에 휩싸여 버린 개인들은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영화의 답은 엉뚱하지만 ‘정원’이다. 만약 누군가가 전쟁의 상처를 정원으로 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허황된 세계 속에 사는 자로 취급받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정원’을 넘어선 ‘어린시절의 정원’이라면 내면을 치유하기에 충분함을 일러준다. 단순히 외부의 자연을 흡수하는 것으로 치료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담겨 있고,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원, 이 공간이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자신의 텅빈 가슴을 채우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한다. 혹자는 자극적인 것을, 혹자는 신비하고 특별한 것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진정한 치유의 길은 모험과 새로움이 아니라 ‘순수’에 있다. 어린 시절의 원상적 행복감, 모든 것들이 신비로웠던 그 시절의 순수함이 인간 행복의 본질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웃었는가? 모든 인간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것에 웃을 수 있었다. 그런 시절을 망각하고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 뿐인 것이지, 여전히 세상은 신비롭다. 영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이 세계의 근원적 신비로움을 드러내고, 우리 인간들이 이 같은 신비로움 속에 사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별 것 아니어 보이는 정원이 극한의 상처를 치유하는 기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적 치유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물론 아이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어린아이에게 동화되어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순수’함을 통한 치유를 시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어린 시절의 행복감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행복한 진정한 ‘순수’로의 회귀를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 모두 아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