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나 인도를 여행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힌두교, 이슬람교 문화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인간이 만든 종교와 문화는 수 천 수 만 세월을 통해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다. 독자적 세계 속에서 돌아가던 문화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갈등은 더 복잡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느 사회에서도 문제란 근본적으로 같은 종류이기도 하고, 해결 방법도 의외로 쉬울 수 있다.
모험담이나 해양 표류기는 청소년 시기에 참 끌리는 이야기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를 비롯한 서바이벌 시리즈가 한 때 큰 인기를 끌었다. 질풍노도 청소년들과 함께 고민하는 가족이 함께 볼 영화로 알맞은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를 소개한다. 캐나다의 소설가 얀 마텔(Yann Martel)의 <파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얀 마텔은 어릴 적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여러 곳에서 생활했고, 이후에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겪은 풍부한 경험담을 토대로 판타지 넘치는 작품을 만들었다.

영화는 다양한 동물들의 일상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주인공 ‘피신’은 남부 인도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는 부모와 운동을 좋아하는 형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낸다. 학창시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한 주인공은 스스로 이름을 파이(Pi)로 바꾸어 부르도록 한다.
프랑스 식민지 폰디체리 문화는 힌두교 바탕에 속한다. 힌두신화에 나오는 원숭이 신 하누만,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 세상을 유지시키는 비슈누, 마하바라타의 영웅 크리슈나 이야기 등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동남아시아만 하더라도 이런 힌두문화가 널리 보급되어 있어 이국적 문화 경관을 만들어 낸다.
종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파이는 크리스트교를 만나게 된다. ‘힌두교를 통해 믿음을,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배우게 되며, 형제애와 헌신의 종교 이슬람과도 만나게 된다. 세 개의 종교를 동시에 믿는다.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아버지는 과학과 이성을 믿으라고 한다. 맹목적 신앙보다 ‘이성적 사고’를 가지라고 한다.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 동물원에 있는 ‘리처드 파커’라는 벵골 호랑이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호랑이와 같은 동물과 인간은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실존적 고민을 하는 파이는 까뮈의 ‘이방인’을 읽으며 뭔가 탈출구를 찾고자 한다. 잠시 무용수 아난디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재정난에 빠진 아버지는 동물원 동물을 팔고 캐나다로 떠나기로 한다.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아 떠났지만, 파이 가족은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가게 된다. 채식주의자 가족이 배 안에서 먹을 음식이 없다. 불교신자인 동승객이 상황에 따라서는 채식만 고집하지 말고 육식도 해야한다고 설득한다.
마리아나 해구 위를 지나던 배는 폭풍우를 만나 침몰한다. 상어떼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떨어진 구명보트에는 호랑이, 얼룩말, 오랑우탄, 하이에나가 타고 있다. 동물들은 서로 싸우다 죽고 파이와 호랑이만 남는다. 육식 동물인 호랑이와 한 배에서 지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파이는 구명보트와 연결된 일인용 뗏목에서 생존을 위해 물고기를 잡으면서도 물고기가 비슈누의 화신이라 믿고 감사 기도를 한다. 파이는 비상식량으로 생존하지만, 호랑이를 위해 물고기를 잡아줄 수밖에 없다. 호랑이와 ‘같이 살려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길들이기는 힘들지만 훈련시킬 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랑이와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생존하면서 파이는 깨닫게 된다. “한 뼘 그늘의 소중함”, “연장, 양동이, 칼, 연필 따위가 귀한 보물”이 되리라는 것, 자신을 위협하는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는 것”, “리처드 파커가 없었으면 난 지금쯤 죽었을 것”임을, “리처드 파커를 보며 긴장하고 녀석을 돌보는 곳에 삶을 의미를” 두게 된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바다 생물들의 영상과 대자연의 변화무쌍한 장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파이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다시 폭풍우를 만나는 날, 번개가 치는 하늘을 보며 경이로움과 신비로움 경험을 한다. 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작은 뗏목마저 잃어버린 그는 절망에 빠져 마지막 기도를 올린다. 정신을 읽었다가 깨어나 보니 미어캣이 우글거리는 무인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 섬은 식충식물로 가득한 곳이라 다시 떠나기로 한다. 드디어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다. 침몰한지 227일 만에 육지에 구조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는 파이의 모험 이야기는 다른 방식으로 들려줄 수도 있다. 그 역시 아무런 증거가 없으니 결국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으로 남고, 결과는 다르지 않다.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장면이 많아 청소년에게 호기심을 키워주는 좋은 기회가 된다. 영화를 본 뒤에 소설을 읽으면 좀 더 이해가 깊다. 물론 영화와 다른 부분도 있다.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다루는 남인도를 직접 경험하려면 타밀나두와 케랄라를 비롯한 남인도 여행을 떠나도 좋다. 요즘 청소년들과 관계에 대해 부모나 교사 모두 힘들어한다. 소설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모든 생물은 광기가 있어서...이런 미치광이 기질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적응의 원천이기도 하니까, 그런 기질이 없으면 어떤 종도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